임현정의 프로그램 노트 1, 바흐 음악과 그의 잔향
임현정의 프로그램 노트 1, 바흐 음악과 그의 잔향
  • 강창호 기자
  • 승인 2019.03.03 2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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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임현정 피아노 리사이틀, <바흐, 베토벤을 만나다> 프로그램 북에서
피아니스트 임현정, 피아노 리사이틀 "바흐, 베토벤을 만나다"/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피아니스트 임현정, 피아노 리사이틀 "바흐, 베토벤을 만나다"/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더프리뷰=서울] 강창호, 박상윤 기자 = 최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바흐, 베토벤을 만나다>라는 제목으로 리사이틀을 펼친 임현정, 개성있는 캐릭터를 지닌 그의 연주와 글은 그동안 오랜 시간들 속에서 잘 익은 바흐와 베토벤에 관한 깊은 담론을 담아냈다. 공연 프로그램 북에 게재된 그의 글을 통해 임현정을 다시 만난다.

우리는 바흐 하면 그를 박물관에 보관하며 숭배하는 성스러운 작품, ‘음악의 아버지’가 떠오른다. 특히 대위법이라는 무시무시한 작곡법이 우리로 하여금 바흐의 음악을 수학적이고 논리적인 음악으로 인식하여 연습곡으로만 다가가게 하는 건 아닐까(?) 음악 전공생 중 한 명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바흐는 나무소리같이 딱딱하게 연주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마음껏 표현하고 싶지만, 두려움에 브레이크가 잡힌다”고 했다. 과연 바흐의 음악은 엄격한 고전적인 음악만일까?

피아니스트 임현정, 피아노 리사이틀 "바흐, 베토벤을 만나다"/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피아니스트 임현정, 피아노 리사이틀 "바흐, 베토벤을 만나다"/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바흐의 관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갓 20살이 된 바흐는 안슈타트 교회 오르간 연주자로 임명되었는데, 그때 당시 북스테후데라는 오르가니스트는 굉장히 유명한 스타였다. 실제로 바흐는 그의 연주를 듣기 위해 안슈타트에서 류벡까지 거의 500km나 되는 거리를 직접 걸어갔다 올 정도로 북스테후데의 광 팬이었다. 근무하고 있던 안슈타트 교회에서 한 달 휴가를 얻어 류벡을 갔다 올 예정이었지만, 바흐는 소리 소문도 없이 4개월이란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추기경단은 그런 바흐에게 경고를 내렸고, 그 후 안슈타트로 돌아온 바흐에게 오르간을 연주할 때 이상한 화음으로 즉흥연주를 해서 “청중들을 혼란하게 한다”라는 경고까지 내렸다.

200년이 지난 지금, 바흐를 숭배하고 있는 우리에게 굉장히 놀라운 이야기이다.

사실 바흐는 굉장히 개성있고 열정적인 음악인이었다. 안슈타트 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서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음악세계를 넓히고 음악을 탐구하는데 목말라있었고 실제로 500km나 되는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거장의 연주를 듣기 위해 직접 걸어갔던 당돌한 청년이었다.

사랑 또한 열렬했던 바흐는 실제로 교회 안에서 어느 여성과 연애를 하다가 또 추기경단에게 경고를 받았다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그리고 아는 동료와 길거리에서 칼싸움을 해서 소란을 일으킨 적도 있었다.

피아니스트 임현정, 피아노 리사이틀 "바흐, 베토벤을 만나다"/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피아니스트 임현정, 피아노 리사이틀 "바흐, 베토벤을 만나다"/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이 청년의 불타는 열정, 음악의 대한 목마름, 그리고 파동치는 자신의 심장을 바흐는 음악에 고스란히 표현하였다. 그리고 음악의 모든 장조와 단조를 모두 사용한 12개 조성의 평균율 안에서 자신의 모든 희로애락을 펼쳐냈다. 특히 평균율은 프렐류드와 푸가로 구성된 작품으로 <프렐류드>는 자유롭고 즉흥적인 구조로 되어있다. 그래서 우리 마음에 진동하고 있는 서정적인 음률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다. 반면에 <푸가>는 대위법이라는 엄격한 기법을 사용하지만 그 안에 담겨진 다양한 음악적인 표현들은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들과 함께 숨 쉬고 있다. 또한 200년 전에 바흐의 가슴 안에서 뛰었던 심장은 지금도 우리 안에 뛰고 있는 심장과 다름이 없다. 따라서 시공간을 초월하여 200년이 훌쩍 지난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 역시 바흐의 음악을 생생히 표현하고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바흐의 음악을 혼신을 다해 표현하면 “그의 음악과 하나가 될 수 있고, 나 또한 그렇게 할 것이다”라는 다짐은 경솔함이 아니라, 음악을 진정으로 사랑할 때 나올 수 있는 굉장한 용기가 아닐까(?) 작곡가가 음악을 작곡했을 때, 파동치던 그의 심장과 하나가 되어 표현하는 것이 연주자의 몫이 아닐까?

그러나 우리는 어렸을 때 음악을 접하면서 대부분 베토벤이나 바흐라고 하면 어떤 콩쿠르나 입시 시험에 꼭 빠지지 않고 나오는 지정곡들을 떠올리곤 한다. 그래서 그들의 음악을 연주할 때면 이런 고정관념 속에 빠져들어 아름다움을 펼치기보다는 시험에서 떨어지면 어떡하지, 이렇게 연주하면 심사위원들이 마음에 들어할까, 틀리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작곡가의 의도를 탐구하기 보다는 시험에 붙기 위해 연주하는 경우가 있고, 작곡가의 세계를 파헤치며 그의 인생, 전 레퍼토리를 연구하기보다는 그들과 상관없는, 지금 우리들이 만든 전통에 맞을까(?) 하며 음악을 연주하는 경우도 있다.

피아니스트 임현정, 피아노 리사이틀 "바흐, 베토벤을 만나다"/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피아니스트 임현정, 피아노 리사이틀 "바흐, 베토벤을 만나다"/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그런데 10대 때 나에게 개인적으로 큰 사건이 일어났었다. 갑자기 아버지가 큰 심장수술을 하시게 된 것이다. 그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아버지는 굉장히 강한 존재였다. ‘아버지’라고 하면 그저 절대 무너질 수 없는 굉장히 단단하고도 강한 존재, 불멸의 무적이었는데 그런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실려갔던 것. 그 후 갑자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아! 아버지 역시 한 인간이었구나. 연약하고 가냘픔이 있는 한 인간이로구나! 절대 무너질 수 없고 멀리서 두려움으로 바라보았던 나의 아버지도 역시 아픔과 상처가 있고 그것들을 지금의 현재와 화해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는 그저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었구나!”

나에게는 정말 충격적이고도 놀라웠던 큰 깨달음이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나의 예술과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작곡가들의 음악을 대하는 자세에 혁명을 일으켰다.

“더 이상 그 어떤 작곡가도 그저 성스럽기만 한 박물관 작품으로 멀리서만 숭배하지 않고 나의 몸과 영혼을 다 바쳐 하나가 되어 연주하리라”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 그들의 음악은 ‘한 인간의 삶을 그대로 반영한 마음의 고백’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변화무상한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해 준 그들의 마음과 심장은 곧 내 마음 안에서 뛰고 있는 심장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모든 것을 알고 싶었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그들의 의도와 하나가 되고, 이런 음악을 작곡했을 때 파동치던 그들의 심장과 하나가 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작곡가들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어갔고 그들에 관한 탐구, ‘음악’이라는 그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는 여정은 지금도 끝나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

글/피아니스트 임현정 HJ Lim

피아니스트 임현정, 피아노 리사이틀 "바흐, 베토벤을 만나다"/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피아니스트 임현정, 피아노 리사이틀 "바흐, 베토벤을 만나다"/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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