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구원은 비극의 뿌리에서 피어난다

메이지 프로덕션 콘서트 오페라 구노의 ‘파우스트’ - "달콤한 유혹"

2022-08-01     한혜원 음악칼럼니스트
오페라

[더프리뷰=서울] 한혜원 음악칼럼니스트 = “사람은 무엇으로 구원을 얻는가?” 괴테가 60년에 걸쳐 완성한 역작 <파우스트>를 통해 던진 질문이다.

요한 게오르그 파우스트(1480-1541)는 중세 독일에 실존했던 연금술사다. 흑마술사로 알려진 파우스트가 마법의 외투를 입고 세계일주를 했다거나 악마와의 계약으로 영혼을 빼앗겼다는 여러 일화가 있다. 요한 슈피스와 크리스토퍼 말로 등 숱한 작가들이 파우스트의 전설을 모아 글로 썼다. 기담 위주의 여타 이야기들과 달리, 괴테는 파우스트의 선을 향한 의지와 구원을 주제로 한 희곡을 쓰는 데 평생을 바쳤다. 그래서 괴테의 <파우스트>는 세월이 지나도 사랑받는 고전으로 남았다.

괴테의 희곡을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한 시도 역시 많았으니, 오페라만 무려 16개 작품에 이른다. 그중 가장 사랑받는 작품이 바로 구노의 <파우스트>다. 오페라는 파우스트의 방대한 여정을 담지는 않고 1부 마르그리트(그레첸)와의 사랑만을 다룬다. 

오페라

지난 7월 2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구노의 <파우스트-달콤한 유혹>이 콘서트 오페라로 공연되었다. 프랑스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메이지 프로덕션의 기획 공연이었다.

지난해 브장송 국제지휘콩쿠르 특별상을 받은 이든이 지휘봉을 잡았고, 해외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나 국내에서는 보기 힘든 성악가들이 대거 출연했다. 테너 박승주와 소프라노 장혜지, 베이스 고경일, 바리톤 김태일, 카운터테너 정시만이 그들이다. 흥미롭게도 테너 박승주는 최근 쾰른과 리스본에서 <파우스트>를 노래했고, 베이스 고경일 역시 독일 및 덴마크에서 메피스토펠레로 무대에 섰다. 소프라노 장혜지도 지난 2015년 서울시 오페라단의 <파우스트>에서 마르그리트로 출연한 바 있다. 

콘서트 오페라이기 때문에 무대는 미디어 아트로 연출했다. 미디어 아트의 활용은 배경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이상을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강점이 있다. 강릉 오페라단 예술감독인 이범로가 연출을 맡았다.

미디어 아트의 역할도 컸으나 콘서트 오페라를 그랜드 오페라로 느끼게 해준 것은 지휘자 이든의 역량이었다. 프라임 필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이든의 지휘로 살아있는 생명체가 된 듯했다. 오케스트라는 깊고 긴 호흡으로 거대한 서사를 이끌었고, 다이내믹한 음악의 흐름에 청중을 몰입하게 했다. 연주는 역동적이고 세련되고 컬러풀했으며, 프레이즈마다 아스라이 여운을 남겼다.   

파우스트(테너

성악가들도 열연을 펼쳤다. 테너 박승주는 곧고 심지 있는 미성으로 사랑에 빠진 청년 파우스트를 연기했다. ‘정결한 집’과 ‘사랑의 밤’에서 지극히 아름답고 서정적인 노래를 들려주었다. 고음에서 힘을 뺀 피아니시모도 일품이었고, 소리를 감싸 안으며 끝맺는 프레이즈도 아름다웠다.

소프라노 장혜지의 마르그리트도 흠잡을 곳 없었다. ‘툴레의 왕’을 부르며 변치 않는 사랑을 꿈꾸던 소녀, 보석 앞에서 무장해제되는 모습, 버림받은 상태로 주위의 시선을 견디며 ‘그 사람은 돌아오지 않네’를 부르는 슬픔 가득한 여인을 훌륭하게 연기했다.

베이스 고경일은 엄청난 존재감으로 무대를 견인했다. ‘금송아지의 노래’로 악마의 본성을 드러내고, ‘당신은 잠들려 하였지만’을 부르며 마르그리트의 비참한 상황을 조롱하는 메피스토펠레. 고경일은 압도적인 성량에 손짓이나 웃음소리에도 생생한 카리스마를 실으며 살아있는 메피스토펠레를 빚어냈다. 4막의 파우스트-마르그리트-메피스토펠레의 3중창 ‘하늘의 천사여’는 세 사람의 단단한 호흡과 꽉 찬 발성, 긴장감으로 팽팽했던 명연이었다. 

발랑땡(바리톤

바리톤 김태일의 발랑땡도 안정적이었다. 프랑스 유학파 출신다운 정확한 딕션과 명료한 발성, 무게있는 음색과 진중한 표현력이 배역과 잘 맞아떨어졌다.  

그리고 카운터 테너 정시만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고지순하고 기품 있는 시에벨을 연기한 정시만의 소리에는 빛과 그늘이 공존하는 듯했다. 메조 소프라노가 주로 맡는 시에벨을 정시만이 한 덕분에, 시에벨이라는 인물이 더 고귀한 품성의 인격체로 돋보여졌다. 

파우스트와

구노는 괴테와 다른 결말을 보여준다. 파우스트가 사형을 기다리는 마르그리트를 구하러 가 눈물의 재회를 하지만 마르그리트는 끝내 파우스트를 거부한다. 마르그리트의 육신은 사형장에서 죽으나 구원을 받고, 파우스트에게는 심판이 내려진다. 매트 오페라 합창단의 장엄한 합창 속에 마르그리트는 천사들의 안내를 받고, 파우스트는 악마들의 뒤를 따랐다. 

베이스

한때 세상의 모든 지식을 탐구했던 파우스트도 육체의 연약함을 이기지 못한 한낱 인간이었다. 순수한 마르그리트는 잘못된 선택으로 가진 것 전부를 잃었으나 견고한 믿음을 잃지 않고 간구한 끝에 구원을 받는다. 구원으로 이르는 길에는 꽃이 뿌려져 있지 않다. 비극의 뿌리에서 구원이 피어난다. 인간은 실수와 실패, 죄를 거듭하면서 선을 추구하는 불완전한 존재이니까.

구노의 음악은 선악의 경계와 비극과 구원을 묵상하게 했다. 완성도 높은 무대를 만나 벅찬 밤이었다. 이 무대에 선 음악가들이 향후 국내외 최정상급이 되지 않을까 예감한 시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