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논객의 춤시선-8] 가무악 정신 유감없이 펼쳐보인 '진경(進慶)'
[낭만논객의 춤시선-8] 가무악 정신 유감없이 펼쳐보인 '진경(進慶)'
  • 장승헌 공연기획자
  • 승인 2022.11.16 15: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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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도립국악원 무용단 2022 정기공연
진경 (사진=)
'진경' 공연 홍보 이미지 (사진제공=전라북도립국악원)

[더프리뷰=전주] 장승헌 공연기획자 = 가을 단풍이 온 나라를 물들이고 있는 아름다운 계절 10월 중순. 모든 것이 풍요로운 계절을 맞아 3년여 만에 일상의 자유로움을 되찾았음을 실감하게 한 무용공연 한 편이 호남지역에서 펼쳐졌다.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에서 막을 올린 지역 브랜드 공연 <진경>. 14일과 15일 이틀간 관객들의 참여 열기로 ‘한’ ‘흥‘ ’멋‘ '태‘ - 우리 춤의 의미를 모두 채우며 눈길을 사로잡았다.

필자는 둘째날(15일 오후 4시) 공연을 몇몇 지인과 함께 관람했다. 꽤나 이른 시간인데도 공연장 입구에서부터 교통체증이 심해지더니 급기야 주차공간이 없을 정도로 경찰이 신호로 차량 소통을 유도하기 시작했다. 무용공연을 보려는 관객들이 이리도 많단 말인가 들뜬 기분이 들었지만 원인은 이내 파악되었다. 저녁 시간에 열리는 유명 트로트 가수의 야외 콘서트를 보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극장 로비와 2층 카페를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지난 3년간 코로나 팬데믹 장기화에 지친 일상을 마치 이날 하루에 모두 보상받으러 몰려든다는 인상마저 받으며 연지홀로 들어가 자리했다. 한국무용가 이혜경이 금년 1월 전북도립국악원 무용단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후 만든 첫 작품이란 점에서 그 기대와 관심이 서울 지역 무용인들에게까지 퍼진 듯, 서울과 여타 지역 무용인들이 객석에서 다수 눈에 띄었다.

'벽사진경(辟邪進慶, 벽액을 물리치고 좋은 날로 향하다)'의 의미를 담은 <진경>이란 제목이 먼저 객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막이 오르기 전, 손에 든 프로그램 표지의 강렬한 이미지는 물론 광활한 호남평야 곡창지대의 색감과 소품 그리고 무엇보다 전북무형문화재 7-6호 <고창농악>의 노란색 고깔 색감과 상모놀이, 그리고 너른 들녘의 풍경이 오롯이 지역 브랜드 공연 분위기로 한가득 채워져 있었다. 어떤 사진 이미지를 메인 포스터로 정해야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을까 기획팀의 홍보 단계에서부터 의견이 분분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었다. 결국 호남 곡창의 들녘과 인근 지역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지천에서 열 두발 상모를 큰 원으로 돌리는 농부의 강인한 삶의 시간들이 이목을 집중시킨다. 바로 남성 주역무용수 송형준(초로)의 우직한 모습이었다.

 

진경 (사진제공=전라북도립무용단)
'진경' 공연 (사진제공=전라북도립국악원)

한편, 이 작품에 참여한 스태프진의 면면도 역대급 수준을 자랑했다. 해서 필자는 이미 수작(秀作) 한 편이 제대로 펼쳐지겠구나! 라는 기대감이 들었다. 제1장 <벽사>를 시작으로 2장 <푸른 볏골>, 3장 <지평선>과 4장 <초로>, 5장 <뜰볼비>, 6장 <농악>과 에필로그 <진경>으로 진행된 7개의 장면을 통해 객석을 후끈하게 달구어 놓았다. 적절한 서사와 노래, 그리고 대사를 툭 툭 내뱉는 자연스런 음향효과처럼 너무도 확실한 주제의식들이 오롯이 친근함으로 다가왔다.

 

진경 (사진제공=전라북도립국악원)
'진경' 공연 (사진제공=전라북도립국악원)

특히 극장예술의 근간인 미장센의 효율적 활용과 협업 공간으로 장식한 무대미술(이종영), 한국창작춤 안무가들이 최애하는 의상디자인(민천홍)의 고급스런 빛깔과 소재의 결까지, 이 모든 아련한 서정성과 넉넉함으로 연지홀 공간을 가득 채운 이혜경 안무자와 대본 및 연출자(조주현)의 섬세한 배려, 조명디자인(김철희)에 이르기까지 절묘한 스태프 정신의 조합은 시종일관 작품 전편의 감성과 스토리텔링의 의미를 유지시켰다. 지난 1년간 고민하고 주제 및 작품 선정에 이르기까진 밤 잠 설쳤을 예술감독의 노력이 <진경>을 통해 오롯이 관객 모두에게 전해졌다. 그간 유럽 무대(독일, 오스트리아 등)에서 스스로 체험한 프로페셔널한 공연제작 경험과 시스템 구축을 통한 협업의식이 이번 작품에서 소리 없이 강한 모습으로 빛을 발했다. 하여 지금까지 전북도립무용단에서 보여 주지 않았던 수평적 작품제작 진행방식과 작동이 얼마나 중요한 뷰 포인트인가를 현장 스태프들이 한번쯤 고민해 봐야 할 과제가 아닌가 생각되었다.

 

진경 (사진제공=전라북도립국악원)
'진경' 공연 (사진제공=전라북도립국악원)

아울러 순수 공연예술로서 극적 긴장감과 적당한 놀이정신과 해학, 그리고 인간과 동물(소)과의 정(情)을 통한 ’농자지천하대자본‘의 깃발이 좌우로 펄럭이며 5천년 훨씬 넘은 오랜 농업국가 대한민국 민초들의 삶의 기록을 자연스레 펼쳐보였다. 일제강점기, 정성껏 가꾼 백미를 현해탄 건너 일본으로 보내야 하는 억울한 대량 수탈이 자행되던 군산 항구에 집결된 쌀가마니들. 우리 농부들의 피, 땀, 눈물의 서럽고 억울한 굴욕의 역사마저도 아름다운 여성 무용수들의 처연한 몸 움직임으로, 혹은 너무도 소중한 먹거리인 쌀의 이미지를 영상미로 승화시킨 안무와 연출은 가슴 먹먹함으로 일순간 훅 마음 속 깊이 스며들었다.

 

진경 (사진제공=전라북도립국악원)
'진경' 공연 (사진제공=전라북도립국악원)

신명나는 농악놀이 장면에서는 개개인의 기량도 놀라웠지만, 열과 성을 다해 작품에 몰입하는 무용수들의 표정과 연기에서 진정성을 확인한 점은 오랫동안 기억 창고에 머물러 있을 듯하다. 2023년 세계잼보리대회가 전라북도 새만금, 그 광활한 지역 명소에서 개최된다는 소식도 들려오는 이즈음, 이 <진경>을 통해 세계 청소년들에게 우리 농업국가로서의 위상이 선보여지기를 진심 희망한다. 계절마저 시의적절하게도 더할 나위 없이 풍요로운 가을 들녁, 특별히 전라북도 전 지역에 이 공연이 시, 군, 면, 단위 소재 주민들에게까지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길 바라마지 않는다. 지난 오랜 시간 지역축제 예술감독과 프로그래머로서의 경험, 그리고 현장 공연기획자로서 느낀 확신의 감각을 통해 부연설명 없이 전라북도 관계자들께 감히 제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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