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벨칸토 오페라와 판타지를 동시에 맛보는 기쁨
[공연리뷰] 벨칸토 오페라와 판타지를 동시에 맛보는 기쁨
  • 한혜원 음악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8.12 1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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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아트오페라단 ‘사랑의 묘약’
오페라 사랑의 묘약 (사진제공=성남문화재단)
'사랑의 묘약' - 벨코레와 아디나의 결혼 전야 축하파티
(사진제공=성남문화재단)

[더프리뷰=서울] 한혜원 음악칼럼니스트 = 지난 8월 5-6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가에타노 도니제티의 벨칸토 오페라 대표작 <사랑의 묘약>이 공연되었다. 성남문화재단과 노블아트오페라단의 공동제작 무대였다.

<사랑의 묘약>은 대부분 비극으로 끝맺는 오페라 작품들 가운데 몇 안 되는 희극 오페라다. <돈 파스콸레> <연대의 아가씨>와 함께 도니제티의 3대 희가극으로 꼽힌다. 1832년에 초연된 이래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사랑의 묘약>은 파바로티의 상징과도 같은 ‘남몰래 흘리는 눈물’ 외에도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그 옛날 파리스처럼’ ‘산들바람에게 물어봐’ 등 아름다운 곡들이 가득한 작품이다.

'사랑의 묘약' - 네모리노(서필)와 아디나(김신혜)
(사진제공=성남문화재단)

이회수의 무대와 연출은 현대적이고 동화적이었다. 커다란 하트 모양의 나무가 아름드리 서 있는 듯한 마을을 재현했다. 주인공들과 마을 사람들의 의상은 흰 옷 위에 제각각 다른 무늬를 그려 넣었고, 군인들 의상에도 역시 흰 바탕에 근육과 식스팩을 그려 넣었다. 유독 벨코레와 둘카마라는 보라와 빨강, 번쩍거리는 초록 의상을 각각 입어 강렬한 캐릭터를 표현했다. 무대와 의상으로 인해 작품은 200년 전 이탈리아가 아니라 현재 지구촌 어느 시골에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로 다가왔다.

오페라 사랑의 묘약 (사진제공=성남문화재단)
'사랑의 묘약' - 아디나의 결혼을 만류하는 네모리노
(사진제공=성남문화재단)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처녀이자 부유한 지주의 딸 아디나는 순박한 네모리노의 마음 쯤이야 쥐락펴락할 수 있는 캐릭터다. 소프라노 김신혜는 볼륨이 크지는 않아도 옹골찬 소리로 지적이고 매력 넘치는 아디나를 선명히 보여주었다.

테너 서필에 놀랐다. 지난 5월 <허왕후>에서 보여준 표독한 모략가 석탈해에서 어수룩한 시골 청년으로 완벽히 변신했다. 석탈해는 강철같은 소리를 가졌던 반면, 네모리노는 맑고 명료하고 풍부한 소리로 사랑을 노래했다. ‘남몰래 흘리는 눈물’뿐만 아니라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에서 서필은 벨칸토 아리아의 아름다움을 확인시켜 주었다.

오페라 사랑의 묘약 (사진제공=성남문화재단)
'사랑의 묘약' - 씬스틸러 둘카마라(전태현)의 등장
(사진제공=성남문화재단)

김신혜와의 이중창은 사랑스러웠다. 산들바람처럼 자유롭고 싶은 아디나와 시냇물처럼 우직하게 한길로 가겠다는 네모리노의 가치관이 한 편의 청춘영화처럼 아기자기하게 펼쳐졌다. 두 사람의 노련한 호흡으로 성량의 차이를 거의 느낄 수 없었던 점도 인상적이었다.

바리톤 박정민도 모든 여자를 반하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가득 찬 벨코레 상사를 훌륭하게 연기했다. 그가 부르는 ‘그 옛날 파리스처럼’은 위풍당당하면서도 낭만이 넘쳤다.

뭐니뭐니해도 <사랑의 묘약>의 하이라이트는 둘카마라의 등장이다. 베이스 전태현은 능수능란하게 약장사 둘카마라를 연기했다. 둘카마라를 표현한 깨알같은 디테일에서 재치가 엿보였다.

오페라 사랑의 묘약 (사진제공=성남문화재단)
'사랑의 묘약' - "사랑의 묘약의 정체는 포도주!"
(사진제공=성남문화재단)

‘사랑의 묘약’은 중세유럽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설에서 등장하는 사랑에 빠지는 약이다. 아디나는 지주의 딸로, 대부분 문맹인 여느 농민들과 달리 책을 읽는 여인이다. 그녀는 둘카마라의 농간에 속지 않고, 벨코레의 군복에도 흔들리지 않는 현명함을 지녔으나, 트리스탄과 이졸데 같은 드라마틱한 사랑을 꿈꾼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마술의 묘약을 마신 후 사랑에 빠졌고, 그 사랑의 대가는 죽음이었다. 그러나 젊은 아가씨는 영원한 사랑에 환상을 품기 마련이다. 돈 많은 남자를 찾는 마을 처녀들과 달리 진실한 사랑을 추구하는 아디나. 아디나가 이미 다 갖추었기 때문일까.

지성과 미모와 재력과 인성까지 겸비한 여인이 순박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는 판타지다. 판타지는 펠리체 로마니의 명대본과 가에타노 도니제티의 걸출한 음악으로 구현되어 청중을 웃게 만든다. 성남문화재단과 노블아트오페라단의 <사랑의 묘약>은 성악가들의 역량과 재기발랄하고 세련된 연출로 잘 빚어낸 수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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