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린츠 브루크너 오케스트라 첫 내한공연
[공연리뷰] 린츠 브루크너 오케스트라 첫 내한공연
  • 박제성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2.11.02 09: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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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2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브루크너 린츠 오케스트라 공연 사진(사진제공=박제성)
브루크너 린츠 오케스트라 공연 사진(사진제공=인아츠프로덕션)

[더프리뷰=서울] 박제성 음악칼럼니스트 = 린츠 브루크너 오케스트라의 첫 내한 공연이 지난 10월 26일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이루어졌다. 이 오케스트라의 모태는 20세기 중반에 건립된 오스트리아의 린츠 극장 오케스트라로서 1967년부터 오페라 외에 독립 콘서트를 할 때에는 브루크너 오케스트라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60년이 채 안 되는 역사를 갖고 있는 이 악단이 브루크너 전문악단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던 것은 이전 명예 지휘자였던 쿠르트 아이히호른(Kurt Eichhorn)과 일본 카메라타(Camerata) 레이블에서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 레코딩을 시작하면서부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옛 거장들의 올드패션드한 스타일을 간직하고 있던 아이히호른 이후 상임 지휘자였던 데니스 러셀 데이비스(Dennis Russell Davies)와 함께 아르테 노바(Arte Nova) 레이블에서 교향곡 전집을, 그리고 2017년부터 상임 지휘자로 있는 마르쿠스 포슈너(Markus Poschner)와 함께 카프리치오(Capriccio) 레이블에서 다시 한 번 브루크너 전집을 진행하며 명실상부한 브루크너 전문 악단으로서의 위상을 세워나가고 있다.

한국 오케스트라들은 가끔씩 브루크너를 다루면서 그 음악의 모습을 점진적으로 알려나가고 있지만 악단의 기량과 스타일의 숙련도에 있어서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고, 그나마 2013년 런던 심포니-베르나르드 하이팅크가 9번을, 역시 2013년 베를린 필하모닉-사이먼 래틀이 7번을, 2016년 밤베르크 심포니-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가 7번, 2019년 빈 필하모닉-크리스티안 틸레만이 8번을 연주하여 진정한 브루크너의 해석과 사운드의 기준을 제시해준 바 있다. 그러나 이 정도의 퀄리티를 접할 기회가 너무 간헐적이고, 여전히 브루크너는 아무나 연주해서는 안 되는 레퍼토리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사실. 이렇게 브루크너 사운드에 대한 기준과 다양한 경험이 필요한 현실 가운데 작곡가가 태어나고 묻힌 도시인 린츠 브루크너 오케스트라의 사운드를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한 공연 첫날 프로그램인 브루크너 교향곡 5번을 통해 독일 악단들의 무겁고 짙은 사운드와는 달리 오스트리아 악단들 특유의 밝으면서도 투명하며 날렵한 사운드를 보여주었다. 목관은 대체로 살짝 소리가 강하면서 확산감이 빼어났고 금관은 다이내믹하면서도 오스트리아 특유의 몽글한 사운드가 특징적이었으며 현악파트 또한 대체로 빈 현악의 독특한 질감과 스타일을 갖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이들의 사운드는 살짝 기름기가 부족한 듯한 느낌으로서 때때로 고급스러운 앙상블이나 볼륨감 있는 음색이 아쉬울 때도 있지만, 그래도 이 정도 규모를 유지하는 그레이드의 오케스트라로서는 상당히 좋은 연주력을 갖고 있었다. 최근 대구에서 선보인 만하임 극장 오케스트라와 여러 면에 있어서 비견할 만했다.

브루크너 린츠 오케스트라 '지휘자 포슈너'(사진제공=박제성)
브루크너 린츠 오케스트라 지휘자 포슈너 (사진제공=인아츠프로덕션)

첫 악장이 시작되면서부터 지휘자인 포슈너의 관점이 확연히 드러났다. 1주제는 상당히 느린 템포로 제시하며 웅장함을 극대화했고 2주제는 상대적으로 스타카토 베이스나 우울한 멜로디 라인의 정도를 덜 자극적으로 표현하는 동시에 3주제는 리드미컬한 운율이나 코랄적인 울림보다는 각각 발전부로의 자연스러운 연결 혹은 재현부에서의 추진력을 위한 연료로 사용하려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저역의 단단한 리듬을 매우 일정하게 견지하는 한편 자신이 강조하고 싶은 디테일과 라인을 도드라지게 강조하는 모습 또한 돋보였는데, 이로부터 후기낭만파적인 스타일보다는 오스트리아 고전주의의 형식적 계승자로서의 측면을 강조하려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었다. 더 나아가 그 주제들과 발전방법을 하나의 흐름 위에 꾸려나가기보다는 섹션별로 독립적인 방식으로 병렬시키는 포슈너의 스타일은 현대음악적인 접근방법으로서, 전 상임 지휘자인 러셀 데이비스도 그러하거니와 포슈너 역시 현대음악 해석에 강점을 갖는 지휘자들인 만큼 이러한 분석적인 접근 방식이 드러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4악장에서 푸가 주제가 제시된 이후 주제들이 다양한 형태로 변형하며 코다로 치달을수록 모든 파트로부터 에너지를 축적해 나아가는 모습, 그리고 3악장 스타카토 주제들에 이어 아첼레란도로 음악이 피어오를 때의 모습, 1악장 후반부에 등장하는 재현부의 명료하면서도 분명한 표현력이 주는 강인한 인상 등등은 포슈너의 이러한 해석 관점에 의해 신선한 기운을 전달받을 수 있었는데, 다른 한편 이러한 인위적인 스타일링은 2악장과 4악장에 등장하는 코랄풍의 자연스러운 사운드와 3악장의 랜틀러 선율이 얼마간 그로테스크하게 들려 브루크너 음악 고유의 정서가 충분히 피어나지 못하는 듯하기도 했다.

린츠 부루크너 오케스트라 공연사진(사진제공=박제성)
린츠 부루크너 오케스트라 공연 (사진제공=인아츠프로덕션)

그럼에도 불구하고 린츠 브루크너 오케스트라와 포슈너의 연주는 브루크너 연주에 있어서 또 다른 해석적 가능성과 더불어 브루크너의 이디엄에 정통한 악단 자체의 노련함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는 점에 있어서 의의를 둘 수 있겠다. 이번 첫 내한 공연을 발판 삼아 린츠 브루크너 오케스트라가 한국 청중에게 브루크너 교향곡들의 가치와 악단 자체의 음향을 자주 알릴 수 있는 기회를 꾸준히 만들어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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