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소재의 발굴, 담백한 표현 - 김연재 ‘Dance in Digilog’
[공연리뷰] 소재의 발굴, 담백한 표현 - 김연재 ‘Dance in Digilog’
  • 김미영 무용평론가
  • 승인 2022.06.03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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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ce in Digilog'공연사진 (사진제공=김미영)
'Dance in Digilog'공연사진 (Ⓒ=나승)

[더프리뷰=서울] 김미영 무용평론가 = 지난 4월 7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김연재의 <Dance in Digilog> 공연이 열렸다. 디지로그는 디지털(digital)과 아날로그(analog)의 합성어이다. 아날로그 사회에서 디지털 사회로 이행하는 과도기를 말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디지털 기술과 아날로그적 정서가 융합하는 첨단기술을 의미한다. 김연재는 고(故) 이어령 문화부 초대 장관의 ‘지금은 디지로그 시대이기 때문에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잘 융합시켜서 활용하는 조화로운 인재가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에 감명을 받고 이를 작품의 모티브로 활용하였다.

한국무용 전공자들이 다양하게 창작활동을 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정서가 담긴 컨템포러리한 작품으로 발전된 형태를 보여 주기보다는 지루한 답보상태를 이어가는 것을 본다. 이는 도제식 배움으로 인한 스승의 스타일을 답습하거나 기존의 고정된 틀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인데 다양한 소재의 부재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모더니즘적 작품의 구성을 고수하고 처연한 감정선을 보여주는 데 그치고 마는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작품소재가 계속해서 그만그만한 창작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본다.

<Dance in Digilog>는 소재 면에서 한국무용 전공자로서 다소 과감한 도전이었고 그로 인해 궁금증을 불러일으킨 것이 사실이다. 그녀는 “기술과 잘 융합된 공연을 만들고 싶었다. 영상과 기술이 무용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공연으로 관객들이 지루할 틈 없는 작품을 보여드리고 싶다.”라고 제작 배경을 밝혔다. 작품은 군더더기 없이 안무가가 풀어내고자 하는 것들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표현했다. 더 멋지게 보이고 싶은 허풍이나 가식이 없어 담백한 매력이 있었다. 한국무용만이 가진 때로는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창작에 있어 사족이 되어버리는 끈적이는 테크닉 대신 간소화된 움직임 개발도 새로운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 했다.

아쉬운 점도 있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안무가가 관객과 나누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어쩌면 보이는 현상을 올곧게 무대에 올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보는 사람은 개인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지금의 현상을 보고 안무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보여준다면 저 멀리 있는 작품이 아닌 나와 관계하는 더 친밀한 작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안무가는 ‘관객들에게 절대 불편함을 주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안무가가 말한 불편함이 이해하지 못하는 작품에 대한 것이라면 동감이다. 하지만 자신의 견해가 혹시 관객과 맞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우려라면 피하기보다는 과감한 자기표현이 필요하다.

김연재는 무용계에 다소 생소한 이름이다. 올해 서울대에서 댄스 리터러시에 관련한 박사학위를 받으며 9년에 걸친 연구활동을 마무리짓고 이제 막 무대에 첫 인사를 하는 늦깎이 신인 안무가이다. 리틀엔젤스 출신으로 이미 갖춰진 공연을 하는 무용수로서의 생활에 더 익숙한 그녀지만 자신의 생각을 춤으로 만드는 작업에 늘 매력을 느껴왔다. 2월에 잠깐이나마 안무작업을 시도해 볼 수 있었던 기회를 얻어 그간 경험해보지 못했던 안무적 요소들을 토대로 이번 작업이 진행할 수 있었다고 한다.

 

1장공연사진(사진제공=김연재)
'Dance in Digilog' 1장 공연사진 (Ⓒ=나승)

무대의 첫 장면은 샤막을 사용하여 무대 전면에 보이는 자물쇠로 시작된다. 이후 지문의 영상을 보여주며 스마트폰의 잠금해제를 풀 듯이 디지털 세계로 입장하게 된다. 로그인, ip주소, 코드화된 정보, 픽셀화된 이미지 등을 영상과 오브제로 보여주는가 하면 분절된 동작과 반복, 흰 조명과 의상으로 기계화된 인간 혹은 로봇을 상징한다.

 

2장공연사진(사진제공=김연재)
'Dance in Digilog' 2장 공연사진 (Ⓒ=나승)

다음 장은 앞의 장면과 대조적으로 부드럽고 유연한 움직임이 주를 이룬다. 무용수 사이에 접촉이 일어나 서로 기대고 손을 맞잡는다. 차가운 디지털의 세계에서 따뜻한 자연의 세계로 휴머니즘을 연상시킨다. 원형을 이용한 무대와 중심에 시계추처럼 구를 늘어뜨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현실세계를 표현한다. 부드럽게 흐르는 움직임 속에 한국 춤이 가진 에너지의 흐름과 간결하게 이어지는 곡선의 형태들이 눈에 띄었다.

 

3장공연사진 (사진제공=김연재)
'Dance in Digilog' 3장 공연사진 (Ⓒ=나승)

마지막에 이르러 디지로그의 공간이 표현된다. 이번 작품은 차가운 디지털 속성에 인간의 정서가 융합된다는 의미보다는 과도기적 의미의 디지로그가 더 가깝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세계로 가는 지점에서 겪는 혼란은 흰색의 사각스툴(픽셀화된 이미지로 보였던)에 서로 올라가려는 모습, 가상현실 속에서의 자기 공간과 현실에서의 차이, 어우러지지 못하고 서로 융합되지 못한 과정으로 표현되고 마침내는 차차 이들의 경계가 희미해진다.

김연재의 작품은 보여주고자 하는 이야기를 보는 이들에게 명쾌하게 제시하며 올곧게 주제를 좇는 에너지를 볼 수 있었다. 표현하고 싶은 것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구성의 변화만을 꾀하는 식상함을 따르지 않았다는 점에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기대하게 한다. 하지만 단조로운 구성은 앞으로 그녀가 더욱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현 상황을 늘어놓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관객과 나누고 싶은 메시지를 더욱 고민하여 제시한다면 충분히 확장될 수 있다. 안무적 심화과정을 거친 다음 작업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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