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한국적 소재의 현대적 움직임, 한국창작춤이 가야 할 길
[공연리뷰] 한국적 소재의 현대적 움직임, 한국창작춤이 가야 할 길
  • 김미영 무용평론가
  • 승인 2022.09.06 0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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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시립무용단의 ‘업경대’
업경대 에필로그 (사진제공=박봉주)
'업경대' 에필로그 © 박봉주

[더프리뷰=천안] 김미영 무용평론가 = 천안시립무용단의 제20회 정기공연 <업경대(業鏡臺>가 지난 8월 19일(금)-20일(토) 천안예술의전당의 무대에 섰다. 이번 작품은 김용철 예술감독의 대표작으로 지난 2010년 국립극장 주최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 초청작으로 초연된 바 있다. 사람이 죽은 뒤 49일 동안 치르는 불교식 제사의례를 모티브로 한 이번 작품은 안무가의 상상력이 덧붙여져 죽음을 통해 삶의 가치를 돌아보게 한다. 소재를 비롯해 작품의 전개 방향이나 음향에 불경을 독송하는 장면이 나오는 등 불교적 성격이 강하긴 하지만 일선 종교에 한정짓기 보다는 결국 죽음을 맞이할 인간이 어떤 모양의 삶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성찰이다.

불교신자가 아닌 나로서는 49재에 대해 대강의 지식만 있는 상태였지만 죽음과 그 이후 심판의 과정이 있다는 큰 줄기는 나의 기독교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심판의 내용은 다르지만 결국 죽음 이후 천국으로 갈 것인지 지옥으로 갈 것인지, 혹은 좋은 곳에서 다시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을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심판이 있으니 지금의 삶을 잘 살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생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비추어 보는 거울, 그것이 바로 업경대이다.

무대에 세로로 길게 서 있는 일곱 개의 거울과 그 앞에 죽음을 의미하는 흰 종이꽃이 놓여 업경대와 49재를 상징한다. 거울은 가장 먼저 무대에 서서 관객들을 비춘다. 마치 나에게 어떤 착한 일을 했느냐 묻는 듯 관객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이후 세 남자가 거울 앞쪽에 일렬로 등장하며 맨 앞에 얼굴의 반쪽만 흰 칠을 한 남성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얼굴의 흰 칠은 사람인지 신인지를 구분한다. 반만 되어 있는 흰 칠을 보아 신과 사람의 매개자임을 알 수 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을 안내하듯 앞서 있다. 그 뒤에 망자가 있고 그 뒤에 신이 있다. 얼굴을 비롯해 전체 흰 분장을 한 그는 삶을 심판하는 신이다.

거울의 뒤에 서서 역시 얼굴의 반쪽만 흰 칠을 한 이들이 거울 앞으로 손만 움직이는 다소 기괴한 움직임을 펼치고 그 옆에 웅크리고 앉은 맨몸의 사람들의 모습에서 음산함이 느껴진다. 어둡고 무언가를 삼킬 것 같은 음향에서도 으스스한 기운이 가득하다. 심판을 통과하지 못해 구천을 떠도는 영혼들이 갈 곳을 찾지 못한 채 자신들의 먹잇감을 구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보는 이들에게 공포감을 일으킨다. 망자를 자기들의 무리에 삼키려는 듯 입을 잔뜩 벌리고 손아귀를 벌려대던 이들이 지옥으로 빨려 들어가듯 오케스트라 피트 아래로 점차 사라진다.

 

업경대 2장 © 박봉주
'업경대' 2장 © 박봉주

2장은 무대 가로로 흰 방석을 깔아놓은 것 같은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그 뒤에 어렴풋이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그락 사그락 소리를 내기에 보니 방석이 아닌 흰 습자지이다. 흰 습자지를 한 쪽 끝부터 조금씩 움켜쥐기를 두 번, 그 두 개를 합치니 커다란 흰 꽃이 되고 그 꽃을 한 송이는 머리 위에, 한 송이는 자리 앞에 고정시킨다. 꽃을 만드는 과정의 동작들이 인상적이었는데 연결되는 부드러운 동작이 아닌 분절된 동작으로 로봇처럼 보이는 움직임이다. 사람이 아님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들은 앞선 1장에서 거울 뒤에 있던 이들과는 다른 존재로 구분된다. 분장도 다르다. 얼굴 전체에 흰 칠이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신적 존재 혹은 환생을 앞둔 선한 삶을 살았던 존재일 수도 있다. 누군가의 죽음을 예비하듯 앞에 고정한 흰 종이꽃 앞에 턱을 괴고 앉아 기다린다. 이후 망자 뒤에 서 있던 신과 이들의 춤이 이어진다.

 

업경대 2장 © 박봉주
'업경대' 2장 © 박봉주

그들이 무대 중앙에 서로 뭉쳐 신난 모습으로 입을 벌리고 춤을 춘다. 아래에 깔려 있던 천을 들어 들썩이자 그 때마다 흰 꽃가루가 피어오른다. 망자의 생전에 선한 일을 한 것들이 비쳐진 것일까? 착한 행동들을 칭찬하듯 망자를 환영하듯 꽃가루가 점점 더 휘날린다. 이 때 불경을 외는 소리가 들려온다. 후손들이 불경을 외우며 정성을 들여 재를 지낼 때 좋은 곳으로 환생한다는 49재의 의미가 담긴다.

 

업경대 3장 © 박봉주
'업경대' 3장 © 박봉주

그리고 등장하는 검은 의상의 군무진. 이들은 마치 하나로 연결되어 지네처럼 움직이는데 그 모습이 매우 흉측하고 혐오스럽다. 망자의 생전 악행과 죽음 앞에서도 버리지 못한 삶의 미련이 중의적으로 검은 군무진에 의해 표현된다. 매우 역동적이면서도 스펙터클한 움직임은 북소리까지 더해지며 에너지를 높이는가 하면 종종거리는 발걸음으로 존재를 인식시킨다. 이 장면에서 무용수 전체가 등장하는 군무가 진행되는데 이전까지 현대적으로 개발된 움직임들이 주를 이룬 반면 여기서는 한국무용의 전통동작들을 볼 수 있다. 객석 저 뒤편부터 관객들의 무대 뒤편부터 관객들의 머리 위로 커다란 천이 무대를 향해 날아간다. 관객들을 모두 덮고 지나가는 만큼 죽음은 그 누구도 피해가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무대를 전부 덮은 천 아래로 망자 뒤에 서 있던 신이 등장한다. 마치 우리들의 삶도 심판하겠다는 듯이 바라보던 신이 커다란 천을 이끌고 무대 아래로 사라진다. “I’ll be back” 하고 다시 올라올 것 같은 느낌을 남기고 말이다. 마치 똑바로 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업경대 4장 © 박봉주
'업경대' 4장 © 박봉주

무대 위의 망자가 맨몸 차림이다.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듯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듯이, 옷도 입지 않은 맨몸 차림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이승에 이별을 고하는 춤을 추는 사이 다시 등장한 무당이 무대 위에서부터 길게 늘어져 있는 지전을 뜯어내 망자의 한을 풀고 극락왕생을 빌어준다. 작품 후에 흰 소복을 떠올리는 의상과 상여를 상징하는 흰 장대 우산 군무의 에필로그가 진행된다. 장례가 슬프고 어둡기만 한 것이 아니라, 즐거운 축제가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첨언하는 것이다.

<업경대>는 한국춤비평가협회 작품상 베스트6, PAF 춤작가상, 대한민국무용대상 군무부 베스트5, 연낙재 무용작품상 베스트5 등 화려한 수상경력과 미국, 멕시코, 북경 등 수많은 해외공연에서 호평을 받은 바 있다. 한국적 요소를 담으면서도 현대적인 움직임과 볼거리를 제공하며 대중성을 갖추었기에 가능한 결실이었다.

 

업경대 4장 © 박봉주
'업경대' 4장 © 박봉주

하지만 과제는 안고 있다. <업경대>의 과제라기보다는 한국창작춤의 과제일 것이다. 올해 본 한국창작춤에서 49재를 소재로 한 작품만 벌써 세 번째이다. 한국무용 관람의 빈도가 매우 저조하기에 세 작품은 적은 것이 아니다. 안무가의 포커스가 조금씩 다르긴 해도 결국 49재에 씻김굿이 보태진 내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망자의 긴 여정을 따라가야 하니 작품은 개성이 없이 구태의연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망자의 개인 서사가 아닌 망자의 저승길 유랑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들러야 하는 스팟이 정해져 있다. 마치 패키지 여행과 같다. 꼭 들러야 할 스팟이 정해져 있기에 중간 중간 다른 것에 눈길을 줄 여유가 없다. 어떤 여행객이 와도 보여주는 곳은 늘 한결같다.

이번 작품을 보며 천안시립무용단의 또 다른 가능성을 기대해본다. 한국무용의 고유 움직임에서부터 다양한 현대적 움직임까지 무리 없이 소화해 내는 모습 때문이다. 사실 <업경대>라는 작품을 익히 알고는 있었으나 이렇게 현대적인 동작들로 만들어졌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 바통은 김용철 예술감독에게 쥐어졌다.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또 다른 한국창작춤의 소재를 발굴해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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