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정 칼럼] 펜으로 쓰는 춤(10) - 피나 바우쉬와 부퍼탈
[김윤정 칼럼] 펜으로 쓰는 춤(10) - 피나 바우쉬와 부퍼탈
  • 김윤정 무용가
  • 승인 2021.09.21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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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퍼팔 시청 (사진=김윤정)
부퍼탈 시청 (사진=김윤정)

[더프리뷰=뒤셀도르프] 예술작품은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하고 보존되며 시간이 흘러도 후세에 남겨진다. 그리고 미술, 문학, 음악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가 더욱 커지기도 하고 사람들이 소유할 수도 있고 언제고 듣고 읽을 수 있다. 그러니까 예술가가 사라져도 예술가의 그 정신은 물론 물리적으로도 작품이 남는 것이다. 때로는 기하학적인 고가의 작품도 재력 있는 개인이면 소장할 수도 있다. 그런데 공연예술은 어느 누구도 작품을 소유할 수가 없다.

그리고 공연예술만큼은 그 시간 그 장소에 함께하지 않은 사람은 뭐라고 평가를 하거나 말을 할 수도 없다. 얼마나 매력 있는 동시대적 예술인가? 언제고 펼쳐보고 들을 수 있거나, 또는 한 번의 클릭으로 몇 번이고 쉽게 보고 즐길 수 있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시간을 내서 공연 정보를 찾아보고 예매를 하고 그 시간을 비워 놓고 극장까지 찾아가서 공연을 관람하고자 하는 관객들과 오랜 시간 작업하고 연습하고 기획되는 과정을 거친 작품이 만나는 순간이라니, 그리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순간이라니, 그리고 끝나면 텅 빈 무대만 남는다니 얼마나 처연하게 아름다운가 말이다.

공연의 감동과 파워풀한 에너지는 여운을 남기며 그냥 사라지는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사라지기 위해 존재하기도 한다. 완벽하게 사라져야 다시 새롭게 시작될 거라고 나는 믿는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어떤 면에서는 그 자체로 백퍼센트의 존재 여건을 갖추었기에 존재하듯이 사라질 때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 같기도 하다.

덧없이 사라지기에 더욱 아름다운 예술

나는 집안에 지난 작품 포스터나, 사진들을 잘 걸어 놓지 않는다. 한번 지나고 끝난 것은 그대로 그 자체로 존중되어야 하는 것 같아서이기도 하고 내일과 연결되는 현재가 더 중요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가끔 친구들이 공연영상을 보여 달라고 하면 어쩔 수 없이 공유하기도 하지만 나는 이런저런 핑계로 잘 꺼내지 않는다. 대부분 기록용으로 찍은 평면적인 영상은 도저히 공연의 느낌을, 호흡을 그대로 담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소유될 수 없는 무형의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더 공연이 끝나고 나면 어딘가 허무하다고 하지만 사실 공연예술은 그 순간적인 존재함과 사라짐이 있어 더욱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 일 수도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미술은 아름다운데 고정되어 있는 이미지가 어쩐지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문학은 읽을 때는 감동과 지적 충만감을 주지만 어쩐지 읽는 걸로만은 부족하고(괴테가 <파우스트>에서 말하듯이 이론은 회색이기 때문일까), 그리고 좋은 음악은 온몸과 정신을 흔들어 놓기도 하지만 어쩐지 듣는 걸로만은 부족하다. 그런데 무용은 내가 좋아하는 이 모든 다른 예술들을 어우르며 춤으로 동작으로 극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표현할 수 있다. 작가(안무가)로서는 최고의 축복이며 행복인 것 같다.

2004년 통영바닷가에서 남해안별신굿을 관람하고 있는 피나바우쉬/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2004년 통영바닷가에서 남해안별신굿을 관람하고 있는 피나바우쉬/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나는 위대한 안무가가 죽고 그 무용단은 계속 존재하면서 그 작가의 레퍼토리가 그대로 재공연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한 사람의 안무가가 수많은 작품을 남기고 죽으면 안타깝게도 그 작품들은 작가가 살아생전에 보여지던 그 느낌하고는 완전히 다른 에너지라는 것을 관객의 자리에서 느꼈었다. 나는 이런 경험을 독일이 낳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안무가 피나 바우쉬 (Pina Baush, 1940-2009)가 살아 있을 때의 공연과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 같은 작품들을 보면서 느꼈었다. 심지어 분명히 몇몇을 제외하고는 같은 무용수들의 열연임에도 불구하고 피나가 생전에 직접 끝까지 옆에서 연출한 공연과 사후 그녀의 부재 속에 재연된 공연은 어디가 달라도 달랐다. 분명히 같은 안무가의 작품을 같은 무용단이 공연을 하고 있음에도 그녀가 살아 있을 때의 공연보다 힘이 빠진 듯한 느낌이었는데 극장 로비에서 만난 지인들의 반응도 나하고 다르지 않았다.

(잠시 피나 바우쉬 하니까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파리의 떼아트르 드 라 빌 극장은 일 년 회원권을 끊을 때 일곱 개의 공연을 예매할 수 있는데 다른 여섯 개의 떼아트르 드 라 빌 공연을 예약한 사람만이 피나 바우쉬의 공연을 예약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고 한다. 그것도 일 년 전에 예매가 끝나므로, 그러니까 피나 바우쉬는 일 년 앞서 떼아트르 드 라 빌 극장 운영에 크나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늘 매진이 되는 피나의 공연을 잘 이용한, 그야말로 아주 영리한 떼아트르 드 라 빌의 탁월한 경영과 홍보적 발상인 것이다.)

부퍼 계곡위로 달리는 쉬베베반 (사진=김윤정)
부퍼탈 계곡 위로 달리는 슈베베반 (사진=김윤정)

며칠 전 무용가 친구로부터 야외공연 초대를 받았다. 정말 코로나 이후로 라이브 무용공연을 독일에서 본지 너무 오랜만이기도 했고 마침 시간도 맞았고 더구나 부퍼탈에서 공연을 한다고 해서 반가운 마음으로 공연을 보러 다녀왔다. 20미터의 벽 위에서 로프를 달고 하는 공연이었는데 해변에서 많이 보이는 선 베드 같은 의자들이 야외에 비치되어 있었다. 거의 누워야 보일 만큼 높은 벽에 매달려 하는 공연으로 아찔해 보였지만 날고 싶은 인간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공연이었고 선 베드 의자에 편안하게 누워 보는 신선함도 있었다. 나중에는 의자가 부족하니까 요가 매트리스를 가져와서 바닥에 깔고 누워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아련한 추억이 서린 부퍼탈을 오랜만에 느껴보고 싶어 몇 시간 일찍 가서 조금 둘러보기로 했다. 하나의 도시조차 한 사람의 예술가가 있을 때와 부재할 때 느낌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나의 과장된 마음이었을까? 어딘지 음산하고 스산한 바람이 품속으로 파고들어 더욱 회색의 도시로 느껴졌다. 부퍼탈은 왠지 다른 독일 도시보다는 분위기가 어딘지 칙칙하고 어두운 편이다. 거리 곳곳에는 곧 있을 연방의회(Bundestagwahl) 선거 캠페인이 한창이었다. 바닥에 펼쳐져 있는 공약들 중에 마음에 드는 공약을 골라 돌을 올려놓는 SPD(사회민주당) 캠페인에 나도 돌을 하나 집어 들어 최저임금 인상 칸에 올려놓는 가벼운 참여를 했다.

피나 바우쉬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도시 부퍼탈

부퍼탈은 산업혁명 시절부터 19세기까지 최고의 경제적 전성기를 누리던 부유한 산업도시였지만 그 화려한 역사를 뒤로 하고 20세기로 오면서 차츰 경제적 주요 기관들이 쾰른과 뒤셀도르프 등지로 옮겨지면서 현재는 거의 파산 직전이라 할 만큼 어려운 도시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나 바우쉬가 부퍼탈 탄츠테아터로 자리를 잡으면서 부퍼탈은 전 세계에서 그녀의 공연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관객들로 붐비기 시작했으며 그녀는 전 세계를 다니며 부퍼탈 탄츠테아터를 알렸다.

엥겔스 동상(사진=김윤정)
엥겔스 동상(사진=김윤정)

며칠 뒤 내가 부퍼탈을 다시 찾은 날은 우연히도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1895) 생가의 재건축이 끝나고 엥겔스 뮤지엄의 개관식이 열리고 있었다. 부퍼탈은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저작 중 하나로 꼽히는 <공산당 선언문>과 <자본론>을 쓴 엥겔스가 태어난 곳이다. <공산당 선언문>은 칼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동으로 쓴 것이다. 그리고 부퍼탈은 부퍼 계곡 위로 매달려 달리는 모노레일의 슈베베반(Schwebebahn)으로도 유명한 도시다. 우연히도 엥겔스 뮤지엄도 새롭게 단장하고 문을 열었고 슈베베반도 재정비를 하느라 한동안 운영되지 않다가 다시 최근 새로운 디자인으로 재개되었고 피나 바우쉬의 작품이 늘 공연되던 샤우슈필하우스도 ‘피나 바우쉬 센터’로 탄생되기 위해 재건축 중이었다.

엥겔스 뮤지엄 (사진=김윤정)
엥겔스 뮤지엄 (사진=김윤정)

피나가 고인이 된 후로도 그녀의 작품들은 독일 주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여전히 세계를 돌고 있으며 독일에서도 그녀의 공연 레퍼토리가 영구히 공연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피나 바우쉬 전용극장과 센터를 건립 중이다. 이들이 훌륭한 예술가를 대하는 자세와 그런 유산을 유지하려는 정신은 그야말로 존경스럽다.

기존의 샤우슈필하우스를 피나 바우쉬 센터로 개편

피나 바우쉬 센터 웹사이트를 참고해 가며 소개를 해보겠다.

피나 바우쉬 센터 건립을 위한 어마어마한 예산은 2018년에 통과되었고 독일국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정부 및 시에서 각각 5천840만 유로와 500만 유로를 지원 받아 재건축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센터의 운영비용으로 연간 680만 유로를 주정부로부터 지원 받으며 부퍼탈시로 부터는 연간 340만 유로를 받는다고 한다.

피나 바우쉬 센터로 거듭날 샤우슈필하우스는 게르하르트 그라우프너(Gerhard Graubner) 교수에 의해 1964년에서 1966년 사이에 지어져 등재된 극장으로, 기존의 내향적 성향의 입구 정면을 모두 도시를 향해 열린 공간으로 만들면서 이벤트 공간을 만들고 디자인의 기본 아이디어를 크게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여러 개의 파티션으로 분리할 것이라고 한다.

샤우슈필 하우스(사진=김윤정)
샤우슈필 하우스(사진=김윤정)

극장의 기본 콘셉트와 아이디어를 최대한 그대로 유지하면서 피나 바우쉬 센터를 운영할 4개 분과가 새로 들어서기에 필요한 공간을 위층으로 올려서 충분라게 만든다고 한다.

탄츠테아터 부퍼탈 피나 바우쉬, 국제교류 제작팀, 부퍼보겐 포럼, 피나 바우쉬 파운데이션, 이 4개의 기둥은 활동 및 조직 측면에서 서로 긴밀히 공유하면서 한 지붕 아래서 통합의 시너지 효과를 누릴 것이라고 한다.

피나 바우쉬 센터는 전통과 혁신, 예술적 우수성과 예술에 대한 민주적 개념을 결합한다는 기본 콘셉트 아래 지역사회를 참여시키면서 국제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다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피나가 생전에 무용수들 각자의 개성을 살리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가 영향을 받은 안무가였다는 점을 중시, 그 정신을 이어받아 어린 학생이나 노인 같은 일반인들의 예술적 잠재력을 참여시키는 ‘사회참여적’ 작업방식을 적극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도 한다.

21세기 부퍼탈 탄츠테아터의 프로그램은 피나 바우쉬의 작품 레퍼토리와 공연예술의 예술적 스펙트럼과 관객의 관심을 동시에 확장하기 위해 다른 분야 예술가들과 장르를 초월한 협력을 한다고 한다. 이를 위해 세계적으로 찬사를 받는 무용, 영화, 건축 등 전 세계 예술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을 계획이라고 한다.

2004년 단원들과 함께 통영을 방문한 피나바우쉬/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2004년 단원들과 함께 통영을 방문한 피나바우쉬/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2004년 통영의 바닷가에서 남해안별신굿과 함께하는 피나바우쉬/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2004년 통영의 바닷가에서 남해안별신굿과 함께하는 피나바우쉬/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한 예술가에 대한 놀라운 경외

피나 바우쉬 센터 안에 들어설 기관과 사회문화적 파트너와의 협력과 함께, 다양한 국가의 도시 및 축제들과 협력할 것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주요 페스티벌은 파트너가 되어 부퍼탈에서 자체 프로그램을 발표할 뿐만 아니라 공동제작과 공동작업을 하는 방식이다. 전 세계 무용센터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모든 대륙의 흥미롭고 새로운 예술적 아이디어를 나눌 이상적인 기술 및 공간 조건을 제공할 계획이다.

피나 바우쉬 재단은 현재 피나 바우쉬의 광범위한 예술적 유산을 아카이브 형태로 접근할 수 있도록 그 자료들을 세분화, 항목화하고 있다. 재단의 목표는 이 독특한 예술작품들에 대한 다양한 자료와 귀중한 지식을 그대로 유지하여 다음 세대에게 계속 영감을 주고 새로운 창작 활동을 촉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피나 바우쉬 아카이브는 학습, 연구 및 만남의 장소가 될 것이며, 피나의 유산에 대한 이론적, 실제적 참여가 결합될 것이다. 아카이브의 복잡한 자료들은 디지털 데이터베이스에서 접근할 수 있으며, 지속적으로 갱신되는 접근방식이 가능해질 것이다. 따라서 피나 바우쉬 아카이브는 전 세계적으로 그녀의 작업에 대한 모든 탐구의 중심지가 될 것이며 그녀의 작업을 직.간접적으로 다루는 강의, 세미나 및 콘퍼런스도 지속적으로 열 예정이다.

기타 주요 활동으로는 전시회, 학계 간의 협력, 워크숍뿐만 아니라 차세대 무용 예술가가 아이디어를 시험하고 개발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다양한 연령, 배경 및 교육을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참여를 유도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사람들이 피나 바우쉬의 거대한 예술적 유산에 대해 배우고 그것을 조사하고 그것에 참여하는 자신의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장학금 및 연구, 교육 및 신흥인재 지원과 같은 사업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피나 바우쉬 공연이 11월에 있을 오페라하우스 (사진=김윤정)
11월 피나 바우쉬 공연이 열릴 오페라하우스 (사진=김윤정)

피나 바우쉬 센터는 부퍼탈 탄츠테아터를 위한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표시하고 예술적 유산이 전달될 수 있는 활기차고 상상력 풍부한 방식의 선도적인 예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한 사람의 예술가로 인해 하나의 도시가 빛이 나고 그 빛이 꺼지면 또 다른 노력으로 그 혼을 살리려는 독일의 범국가적 의지를 보면서, 그리고 한 위대한 예술가를 대하는 자세와 그 추진력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독일이라는 나라의 문화적 수준에 경의감을 갖게 된다. 한 예술가의 사후 그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그 정신을 유지하면서 그 가치를 후세에 어떻게 남기고 계승할 것인가에 대한 그들의 진지한 노력, 그리고 마침내 만들어낸 청사진이 놀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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