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타령으로 구현해 낸 춤의 향연
[공연리뷰] 타령으로 구현해 낸 춤의 향연
  • 김혜라 공연평론가
  • 승인 2021.12.06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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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시립무용단 ‘음무동락(音舞同樂)’
'음무동락' 공연장면 중 일부(제공=천안시립무용단)
'음무동락' 공연장면(사진제공=천안시립무용단)

[더프리뷰=서울] 김혜라 춤비평가 = 타령을 통해 삶을 노래하고 춤추며 인생 고개를 넘어보자는 취지로 천안시립무용단 김용철 예술감독이 신작 <음무동락>(11월 25-26일, 천안시청봉서홀)을 선보였다. ‘음무동락(音舞同樂).’ 제목의 발음은 어렵지만 ‘삶의 주름과 미소를 동시에 담고 있는 타령’(감독의 말)으로 우리네 삶의 이심전심을 춤으로 친근하게 풀어내었다. 사랑하고 이별하며 생겨나는 정서적 감정이 춤으로 소리로 형상화되어 춤은 음을 감싸주고 음은 춤을 지지하며 묵은 감정을 무대로 끄집어낸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듯 복잡한 마음의 갈래를 작품에서 펼쳐 보인다. 보이지 않는 내면과 인식의 세계가 몸의 서사로 구현된 네 개의 장에서 삶의 여정을 떠올려 보게 된다. 우리가 무언가를 바라고 후회하고 그리워하며 매일을 살고 있듯 작품의 내용도 삶을 기원하는 원(願)·타령(1장), 그리움의 흥(馫.scent)·타령(2장), 사랑하는 님을 찾아 나선 굿(㖌.exorcism)·타령(3장), 그리고 순수한 축제의 타령(4장)으로 구성되었다. 작품 1.2장은 김용철 감독 특유의 예민한 감수성과 상상력으로 타령을 해석하였다.

'음무동락' 공연장면 중 일부(제공=천안시립무용단)
'음무동락' 공연장면(사진제공=천안시립무용단)

무대를 자세히 살펴보자. <천안삼거리> 타령이 울리며 무대는 원(願)·타령이 시작된다. 인생 굽이굽이 넘어야 할 고개를 상징하는 단순화된 장치(오브제)가 무대 주변에 설치되어 있다. 익살스럽고 왁자지껄한 2인무가 제각기 다른 도구(부채,담뱃대,수건)를 들고 천안삼거리 시장판이 떠오르는 흥겨운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무대의 흥겨움도 이내 <영정거리> 타령에 맞춰 다른 층위의 군무로 결이 달라진다. 마치 영정들이 노니는 듯한 시공간으로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정체불명의 영혼들이 노니는 축제장 같은 인상이다. 흑백 도포를 입은 젠더리스의 영정(무용수)들은 익살스러운 표정과 칼군무로 이별의 길에서 액운을 털어내듯 신명나는 춤을 한 판 춘다. 이 무용수들의 춤은 한을 털어내고 가볍게 떠날 수 있게 터를 닦는 가이드이자 위로자 같아 보였다. 하늘과 땅, 이승과 저승, 신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로 이들(시립단원들)의 춤과 연기는 김 감독 특유의 비가시적 존재를 상징화하는 개성이 발현된 장면으로 볼만했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경쾌한 중량감으로 감독만의 별리정한(別離情恨)으로 해석한 영정거리와 비나리춤 무대는 소설 속 공간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상상력이 충만하다. 결정적인 흥이 고조되는 순간 무대에는 한이 스며든다. 기민하게 흥과 한이 교차되는 터닝 포인트를 짚어내는 허를 찌르는 순간 자연스럽게 이별 고개(2장)로 넘어간다. 

'음무동락' 공연장면 중 일부(제공=천안시립무용단)
'음무동락' 공연장면(사진=옥상훈)

구상(具象)과 추상적 이미지를 교차시킨 방식으로 흥(馫)·타령의 무대는 그리움의 정취를 음미할 수 있게 구성하였다. <엄마야 누나야> 노래가 나오며 뻔한 감정의 클리셰(cliché)로 전개될 우려가 예측되었으나 무대 하수 네 명 댄서들이 구원자가 되었다. 뒤편 구석에서 서성이는 무리의 춤이 그것으로 마치 님(산자)을 두고 세상을 떠날 수 없는 내면의 심경을 대변하기도 하고, 애절함의 복선으로 해석될 여지가 농후하다. 사실적인 곡조(‘엄마야 누나야’)를 복잡한 심경과 분위기로 변모시켜 그리움의 정서가 한껏 짙어지게 하는 공신인 것이다. 저승사자 같은 검정 도포에 우산을 들고 있는 사제 주변에서 이승을 차마 떠나지 못하는 세 무용수의 춤은 삭힌 감정이 근육이 되어 단단해진 몸에서 풍기는 정한(情恨)의 춤이자 정중동의 정수라 할 만하다. 동시에 무대 상수에서 <엄마야 누나야> 노래의 느낌과는 다른 템포와 활동력으로 움직이는 오누이 같은 남녀의 춤이 병치되어 있다. 이들의 꿋꿋한 동작은 그렇게 춤추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현실이 반추되는 의외의 춤이었다. 보통 ‘엄마’ 단어만 들어도 눈물이 맺히는 우리네 정서를 전복하듯 감독의 감각이 발휘된 진부하지 않은 표현이었다. 무대 상·하수에서 각기 다른 결로 춤 춘 두 무리의 에너지, 속도, 무드가 달랐기에 오히려 복잡한 내면의 심경이 여러 갈래로 짚어지며 애절함의 향기가 증폭되었다. 

'음무동락' 공연장면 중 일부(제공=천안시립무용단)
'음무동락' 공연장면(사진=옥상훈)

전반부와는 달리 3장은 현대적인 한국춤을 염두한 타령 해석으로 이어진다. <부모은중경> 소리로 염원의 포문을 연다. 처연한 곡의 흐름과는 대조되는 모던한 동작들(추상적인)로 굿적 감성을 군무의 역동성으로 풀고자 했으나 타령 내용과 춤의 적절한 접점을 찾기는 쉽지 않다. 님, 굿, 타령이 매개 없이 따로 노는 듯하다. 굿스러운 분위기로 군무는 다다르지 못하였고, ‘님’의 구체성도 확보되지 않아 3장에서는 몸의 서사적 의미가 희미한 아쉬움이 남는 무대였다. 이로 인해 연결되는 ‘축제’의 마지막 장이 생경하게 어떤 조짐도 없이 인생 고비를 넘어가 버린 듯해 자연스러운 흐름이 끊긴다(필자는 25일 현장에서 관람했으나, 26일 유튜브로 송출된 영상에선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완화되었다). 앞선 각 장들이 여러 타령으로 구분되어 있으나 실제 작품에서는 제의적 감성으로 이별의 정한과 애절한 기원이 얽히고설켜 자연스럽게 넘나들기에 마지막 장이 1차원적 단순함으로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음무동락' 공연장면 중 일부(제공=천안시립무용단)
'음무동락' 공연장면(사진제공=천안시립무용단)

어찌하든 마지막 장은 순진한 아이들처럼 무용수들이 제각기 아크로바틱한 기량을 뽐내며 난장의 마당판 분위기로 충만했다. 아마도 춤추는 이 보는 이 모두 맺힌 속내와 감정을 토로하며 다시 잘 살아보자는 다짐이며 서로를 향한 손짓일지도 모르겠다. 팬데믹 시기 희노애락의 고개를 넘어 견디고 있는 우리네 일상을 자축하고 위무(慰撫)하려는 의도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더욱 마지막 장은 국악관현악 <축제> 곡이 녹음이 아닌 실연으로 연주돼야 격이 맞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음무동락’ 제목답게 구성진 소리가락에 춤을 실어 함께 즐기기 위해서는 말이다.

김용철 감독이 천안시립무용단에 부임하여 올린 첫 정기공연 <음무동락>은 무용극처럼 이야기가 연결되는 작업은 아니다. 옴니버스(omnibus, 몇 개의 독립된 짧은 이야기들) 식으로 각 장의 음악(타령)적 성격에 맞게 춤으로 입힌 내용들이 자발성을 확보한 채로 출렁이는 판에 가깝다. 전체의 장을 삶의 여정으로 연결시켜 이해하든, 각장에서 표현하는 정서적 감흥에만 공감하든 이는 관객의 몫이다. 춤타령의 멋과 맛을 입맛에 맞게 음미하면 된다는 말이다. 전체적으로 다시 작품을 복기해보면 감독의 독창적인 예술적 감수성이 1장에서 온전하게 발휘되었고, 2장에서 복합적인 해석이 가능한 안무적 역량을 보여주었다. 3장에서는 서사보다는 정제된 모던한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었고 4장에서는 다소 힘을 빼어(삶과 죽음의 경계 같은 비가시적 세계를 복합적으로 구현한 그의 대표작 <업경대>와 비교해보면) 단조롭게 전개된 인상이다. 시립단체의 수장으로서 시민들에게 쉽게 다가가려는 배려였을까? 허나 지역의 대표적인 천안흥타령축제도 있으니 정기공연에서는 안무적 역량이 있는 김용철 감독의 작품성이 맘껏 발현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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