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사랑이 이긴다 – 소프라노 박혜상 리사이틀
[공연리뷰] 사랑이 이긴다 – 소프라노 박혜상 리사이틀
  • 한혜원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2.02.10 18: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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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헤상의 리사이틀 'Amore & Vita' 공연 장면 일부 (c)크레디아
박헤상 리사이틀 'Amore & Vita' 공연 장면. (c)크레디아

[더프리뷰=서울] 한혜원 음악 칼럼니스트 = 지난해 <마술피리>의 파미나로 메트 오페라에 데뷔한 소프라노 박혜상이 국내에서 리사이틀을 가졌다. 2월 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주제는 ‘Amore & Vita’(사랑과 삶)이었다.

지난 11월의 리사이틀 때도 몹쓸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었고, 그 와중에 자신의 무대를 보러 와준 청중 앞에서 박혜상은 감격했다.

지금은 상황이 더 나쁘다. 하루 3만-4만 명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고, ‘오미크론에 걸린 친구가 없다면 당신은 친구가 없는 것’이라는 기사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티스트는 사명감을 갖고 무대에 설 것 같다.

아시아 소프라노로서 최초로 DG와 전속 계약하고 메트 뿐 아니라 <사랑의 묘약>의 아디나로 베를린 슈타츠오퍼, <잔니 스키키>의 라우레타로 캐나다 오페라 하우스에서의 무대가 예정되어 있는 박혜상. 그녀가 자신의 청중을 위해 어떤 선물을 준비했을까 기대하며 객석에 자리했다.

그녀는 정공법을 택했다. 흔하디 흔하지만 가장 효력있는 치유 방법, 사랑. 그녀가 노래한 다양한 형태의 사랑은 청중의 마음에 촉촉한 물티슈처럼 스며들었다.

1부는 바로크 노래들로 열었다. 카치니의 ‘아마릴리’, 다울랜드의 ‘다시 돌아와요, 달콤한 연인이여’, 스카를라티의 ‘나를 괴롭히지 마오’를 포즈(pause) 없이 이어서 불렀다. 아름다운 모음의 연결, 속삭이고 애원하는 다채로운 표현력은 청중을 젊은 연인들의 열정 속으로 거침없이 이끌었다.

이어진 로드리고의 ‘아델라’에서는 이런 가사가 나왔다. ‘그녀는 사랑으로 죽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기타 반주로 많이 들어온 곡인데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의 피아노도 그 쓸쓸한 여운을 제대로 표현했다. 사랑은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하는 오묘한 것.

5번째 곡 퍼셀의 ‘디도와 에네아스’ 중 ‘내가 대지에 묻힐 때’는 사랑하는 에네아스 왕자를 떠나보낸 후 슬픔에 빠진 디도 여왕이 스스로 제단에 올라 불을 붙이며 죽음을 준비하는 노래다. 이 노래를 부르며 박혜상은 무대 뒤로 천천히 퇴장하는 연극적 연출을 선보였다.

분위기를 바꾸어 발랄한 곡들도 연주했다. 로시니의 ‘베네치아의 곤돌라 경주’라든가 베리오의 ‘춤’ 같은 곡들이다. 특히 ‘춤’에서 기교와 활력, 민요풍의 리듬을 아주 맛깔스럽게 살렸다.

박혜상은 2부에서도 여러 실험적 시도를 했다. 2부는 현악사중주와 함께했는데, 노래하기 앞서 세이킬로스의 비문을 낭송했다.

살아있는 동안 빛나라. 결코 그대 슬퍼하지 말라.

인생은 찰나와도 같으며, 시간은 마지막을 청할 테니.

박헤상의 리사이틀 'Amore & Vita' 공연 장면 일부 (c)크레디아
박헤상 리사이틀 'Amore & Vita' 공연 장면. (c)크레디아

사랑과 인생이 담긴 이 비문이 그녀에게 영감을 준 것은 틀림없다. 이어서 현악사중주를 지휘하는 듯한 모습으로 레스피기의 ‘저녁노을’을 부르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쿠르트 바일의 ‘Speak Low’를 부를 차례. 이때 박혜상이 청중들에게 함께 숨을 크게 다섯 번 쉬자면서, 힘들어도 괜찮다고 하지 말고 힘들다고 해도 된다며, 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자기에게 가장 힐링이 돼야 하는 부분에 손을 얹고 들으라고 했다. 솔직히 이 부분에서 흐름이 좀 끊어졌다. 취지를 꼭 말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음악가는 음악으로 더 명확하게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숨을 크게 쉬라고 할 때,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오히려 음악 덕에 잊고 있던 답답함이 확 다가왔다.

에릭 사티의 ‘Je te veux’는 유려한 왈츠 리듬이 에로틱한 느낌을 자아낸다. 단 6개월 뜨겁게 사랑했던 수잔 발라동과의 연애 기간에 쓴 곡이다. 이 경쾌하고 매력적인 곡을 쓰고 나서 죽는 날까지 수잔만을 사랑한 에릭 사티를 떠올리니 가슴이 저려왔다.

박혜상은 청중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싶었던 것 같다. 거슈인의 ‘Do it again’과 허버트의 ‘Kiss me again’으로 멋들어지게 그녀의 존재를 어필하며 무대를 마쳤다.

앙코르로 2월 8일 뉴욕필과 링컨센터 갈라 콘서트에서 부를 드보르작 <루살카> 중 ‘달의 노래’와 임긍수 ‘강 건너 봄이 오듯’, 남도민요 ‘새타령’, 그리고 로시니의 ‘방금 들린 그 노래 소리’를 들려주었다. ‘새타령’을 이렇게 사랑스럽게 부르는 성악가는 없을 것만 같다.

박헤상의 리사이틀 'Amore & Vita' 공연 장면 일부 (c)크레디아
박헤상 리사이틀 'Amore & Vita' 공연 장면. (c)크레디아

악보를 완전히 보지 않고 부르지 않은 부분은 조금 아쉽다. 물론 악보를 두었으되 청중과 상당히 소통하며 노래했기에 상쇄되기는 했다. 또 마이크를 사용한 부분도 아쉽다. 2부 스트링 콰르텟의 반주가 피아노보다 커서 그런지 마이크 울림을 높인 것 같다. 사실 거슈인 노래들은 볼륨 좋은 스피커에서 나오는, 그런 울림이 다소 어울리기도 했다. 그래도 다음에는 볼륨이 크지 않아도 멀리까지 닿는 그녀만의 공명을 좀더 감상하고 싶다.

콘서트홀을 나서며 행복했다. 그녀가 채워준 사랑과 음악으로 벅찼다. 세상에 많은 이들이 사랑을 노래하지만 이토록 섬세하고, 전혀 지루함 없이, 정성껏 빚은 사랑으로의 초대는 정말 귀하게 여겨진다.

사랑이 이긴다. 코로나에도, 세금에도, 입시에도, 찌든 사회생활에도 치유 방법은 하나뿐이다.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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