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음악성과 대중성, 두 마리 토끼를 거머쥔 수작 – 김해시 오페라 ‘허왕후’
[공연리뷰] 음악성과 대중성, 두 마리 토끼를 거머쥔 수작 – 김해시 오페라 ‘허왕후’
  • 한혜원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2.05.26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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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왕후' 3막 1장 (c)(재)김해문화재단

[더프리뷰=서울] 한혜원 음악 칼럼니스트 = 제13회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에서는 전통 있는 명작 오페라들과 창작 오페라들이 함께 공연되고 있다. 서울에서 열리는 행사라 수도권 중심의 오페라단들이 주를 이루지만, 준비된 지역예술단체들도 참여한다. 김해시와 김해문화재단이 제작한 오페라 <허왕후>가 지난 5월 14-15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올려졌다.

오페라 <허왕후>는 가야사 복원에 맞춘 역사문화 콘텐츠로 김해시가 야심차게 내놓은 대형 오페라다. 1년 3개월의 제작기간을 거쳐 지난해 4월 김해에서 초연되었다.

김숙영의 대본은 흥미로웠다.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의 눈으로 본 가야제국의 시작을 그렸다. 완전히 허구의 이야기지만 부족국가에서 통일국가로의 발전을 도모한 가야 왕실의 음모와 혈투를 마치 무협영화처럼 박진감 있게 그려냈다. 제철기술을 바탕으로 부강해지는 가야. 신탁을 받고 백성의 추앙에 힘입어 금관가야의 왕위에 오르는 김수로. 그러나 사로국 첩자 석탈해가 허황옥의 시녀 디얀시를 꼬드겨 철기 제작도를 훔쳐낸다. 많이 본 클리셰지만 음악과 연출과 연기력으로 스릴 넘치는 드라마가 나왔다. 석탈해를 악역으로 설정한 것도 꽤 재미있었다.

'허왕후' 2막 (c)(재)김해문화재단

물론 장대한 서사를 모두 음악으로 풀어낼 수 없어 상당 부분을 대사나 자막으로 처리해 어색한 면도 없지 않았다. 공연을 거듭하면서 다듬어갈 부분이다.

<허왕후>의 작곡은 전국 공모전을 통해 선발된 김주원이 맡았다. 가곡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와 <무서운 시간>의 작곡자다.

오페라는 음악이나 연출 면에서 제법 뮤지컬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1막의 합창에 이어 이진아시의 아리아 ‘천지가 개벽한 후’나 허황옥의 아리아 ‘해맑은 웃음 뒤에 강인함이’, 또 석탈해의 대사 같은 경우 상당한 대중성을 띠었고 그래서 더 관객을 무대로 몰입시킨 것 같다. 그러면서도 1막 이진아시와 수로의 대립에서는 클라리넷과 트럼펫으로 긴장감을 주고, 석탈해와 디얀시의 밀회에서는 타악기와 합창, 관악으로 위험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3막 2장의 3자 대면에서 하바네라가 깔리며 그 위를 넘나드는 오케스트레이션도 압권이었다. 솔로와 듀엣, 합창들도 각각 테마가 담겨 있었고, 대사와 대사 사이, 노래가 없는 모든 부분마다 놓칠 수 없는 음악이 적절하게 들어가 스토리가 계속 이어졌다. 클래식 같다가 뮤지컬 같다가 ost같은 음악이었다.

'허왕후' 4막 (c)(재)김해문화재단
'허왕후' 4막 (c)(재)김해문화재단

디얀시의 아리아가 많은 갈채를 받았다. ‘웃음보다 울음이 더 많았던 날 중에’와 ‘내 어리석음이 부끄러울 뿐’을 부르는 디얀시는 투란도트의 류처럼 처연하고 아름다웠다. 소프라노 손가슬의 깨끗한 음색이 돋보였다.

석탈해를 연기한 테너 서필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빈틈없이 꽉 찬 울림과 대사 톤, 그리고 연기력이 대단했다. 김수로를 맡은 테너 정의근은 안정적이고 선한 느낌을 주었고, 허황옥의 소프라노 김신혜도 탄탄한 고음과 연기로 작품을 주도했다. 이진아시의 바리톤 박정민, 신귀간의 베이스 이대범도 기억에 남는다.

여성 작가이자 연출가인 김숙영이 허황옥을 여전사처럼 묘사한 것도 흥미로웠다. 그래도 석탈해와 1대1 대결까지 하는 것은 무리 아니었나 싶다. 가야국 남자들 동선이 짜임새 있지 못하고 그 대결을 구경하는 모양새가 되었으니. 칼싸움하는 장면 역시 실감나기에는 조금 아쉬웠다. 사실 오페라에서 이 정도면 무난하나, 작품이 대형 뮤지컬 느낌이다 보니 액션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던 것 같기도 하다.

'허왕후' 1막 (c)(재)김해문화재단
'허왕후' 1막 (c)(재)김해문화재단

무대도 훌륭했다. 천정은 둥근 원형의 창이 하늘로 나있는 형태로, 빛이 쏟아져 들어오게 디자인되었다. 왕실을 표현할 때는 높은 계단이 하늘로 이어져 위엄을 보여주고,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의 공간인 2막에서는 벚꽃이 흩날리는 서정적인 장면이 연출되었다.

허황옥이 배를 타고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 역시 아주 공들인 작품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김해시가 자랑할 만한 문화 콘텐츠로 자리잡기를 바란다. 지역문화를 알리기 위해 제작된 오페라들이 주로 그 지역에서만 공연되고 마는 현실 속에서 <허왕후>는 대중적 인기를 끌 수 있는 수작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음악의 힘이 크게 느껴진 작품이다. 대본이나 성악가들의 노래나 합창에서 2%의 아쉬움이 있었으나, 김주원의 음악은 모든 것을 상위권으로 끌어올렸다.

커튼콜 모습 (c)(재)김해문화재단
커튼콜 모습 (c)(재)김해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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