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논객의 춤시선-1] 춤을 잘 추는 진정성 있는 무용가를 만나고 싶다
[낭만논객의 춤시선-1] 춤을 잘 추는 진정성 있는 무용가를 만나고 싶다
  • 장승헌 공연기획자
  • 승인 2022.06.16 12: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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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미경의 참춤 ‘레퍼토리 8’
복미경 사진 Ⓒ복미경
복미경 사진 /사진제공=복미경

[더프리뷰=서울] 장승헌 공연기획자 = 참으로 오랜만에 ‘춤의 갈증’을 푼 이틀간의 봄날 밤이었다. 지난 5월 24일부터 7월 23일까지 약 2개월 동안 진행되는 창무예술원의 봄 시즌 기획공연 <전통과 창작의 만남> 개막공연으로 선택된 중견 한국무용가 <복미경 참춤>의 ‘홀춤 레퍼토리 8’을 보고 다소 상기된 마음으로 공연의 의미를 기억해 보려 한다.

필자는 최근까지 여러 해 동안 크고 작은 전통춤 공연에서 해설 혹은 사회자란 명분으로 수많은 전통춤꾼들을 만나오고 있다. 따라서 여러 세대 전통춤꾼들의 무대에 서는 비장함과 미세한 떨림과 긴장감, 혹은 춤을 스스로 즐기는 다양한 표정들을 비롯해 예상치 못한 상황들과도 마주했다. 또한 그들의 혼신을 다 하는 전통춤에 대한 열정은 물론, 사제지간의 묘한 경쟁심에 이르기까지... 한편, 이 모든 이유를 동반한 상황들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던 계기도 되었다.

하지만 수 년 전부터 무형문화재 세 부류 전통춤(승무, 태평무, 살풀이춤)을 중심으로 몇 가지 민속춤과 지역의 춤들로 구성된 프로그램에서 어떤 궁금증이 들기 시작했다. 과연 저 무용가들이 얼마나 진정성 있는 마음으로 춤을 추고 있을까? 스승의 춤사위를 수 천 번 답습하는 가운데 자신의 움직임에는 얼마나 공감대를 이루고 있을까 하는 것이다. 창작춤보다 접근이 쉬워 선택한 무용가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혹은 이수자로서 자격증을 위해 일종의 의무감으로 무대에서 춤동작 순서만 정확하게 되풀이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의심이 든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스스로 행복하게 춤을 추는 진정성 있는 ‘찐 춤꾼’들의 모습을 보는 일이 점점 더 귀하게 느껴진다.

무려 3년 째, 팬데믹의 장기전에 지쳐갈 무렵인 2022년 5월 하순, 홍대입구 포스트 극장에서 만난 <복미경 참춤 - 레퍼토리 8>을 지켜보면서 그간의 목마름이 일순간 해소된 것은 이런 연유이다.

'무산향' 복미경 Ⓒ복미경
'무산향' 복미경 /사진제공=복미경

5월 24일(화) 궁중무 <춘앵전>, 무형문화재 전통춤인 한영숙 류 <승무> <살풀이 춤>, 그리고 <태평무>를 차례로 선보였다. 25일(수) 둘째 날에는 궁중정재 <무산향>을 시작으로 <산조 춤> <교방 굿거리> 그리고 마지막 레퍼토리인 <설장고 춤>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이를테면 나 홀로 <팔무전> 무대를 용감하게 시도했다. 사회 겸 판소리로 무대를 채워 준 소리꾼 방수미(국립민속국악원 수석단원)의 막간 해설이 분위기를 한층 살렸다. 김태영(타악 연주자)이 이끄는 젊은 연주자 8명의 현장 음악이 흥과 신명을 담아 춤을 부르는 소리를 선사했다. 객석에 한민족의 희, 노, 애, 락의 춤을 정 중 동의 미학에 담아내며 중견 무용가로서의 내공을 가감 없이 쏟아내며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갈채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전통춤은 50대부터 시작이다.” 필자가 나름 오랫동안 전통춤판 현장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굳힌 생각의 결론을 피력해 본다. 주위의 질타를 각오하고서 말이다. 자신의 춤사위를 장착한 50대 전통무용가들의 춤은 존재감을 얻기까지 스승을 모시면서 학습한 반복된 연습시간들, 무대 경험과 삶의 흔적들로 먹먹하게 하거나 혹은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춤꾼이 보여주는 아우라와 진정성 있는 몸의 커뮤니케이션을 확인하는 순간 현장 춤 기획자의 마음은 설렐 수밖에 없고 이따금씩 존중의 마음을 격하게 표현하기도 한다.

'산조 춤' 복미경 Ⓒ복미경
'산조 춤' 복미경 /사진제공=복미경

이미 우리 무용계에서 춤 잘 추기로 소문 난 중견 무용가 복미경은 마치 ‘팔색조’란 단어의 의미를 증명이나 하려는 듯 이틀 동안 무려 8편의 각각 다른 작품으로 관객과 만났다. 객석에서 춤을 감상하는 이들의 저마다 취향을 존중하지만 필자에게는 첫 날 공연은 <승무>와 <태평무>, 이튿날에는 <산조 춤>과 <교방굿거리 춤>이 특히 눈에 띄었다. 물론 다른 네 빛깔의 춤들도 수준 이상의 품격과 춤의 결로 객석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화사한 궁중의상의 궁중정재 <춘앵전>으로 첫 인사를 마친 다음, 무대 한켠에 승무 북이 자리했다.

한영숙  류 '승무' 복미경 Ⓒ복미경
한영숙 류 '승무' 복미경 /사진제공=복미경

두 번째 프로그램 한영숙 류 <승무>에서는 비교적 천장이 높은 극장 공간을 휘감는 장삼자락과 안정된 호흡으로 시종일관 장단을 이끌어 가며 정교한 디딤새로 방향전환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어지는 해탈의 북을 마주한 그녀의 뒤태에서 단단한 내공이 전해진다. 장구 장단(김태영)과 엇박으로 주고받는 북장단은 마치 능숙한 셰프가 칼을 도마에서 다루듯 조심스레 나지막하게 또 때로는 광폭의 북을 향해 날렵한 손목을 활용하며 흥을 부르고 강약을 조절하며 내려치는 리듬감이 절묘했다. 이 날 <승무>를 지켜 본 어느 중견 현대무용가의 일성이 흥미롭다. “섹시한 복미경의 승무를 훔쳐보았다.”

한영숙 류 '살풀이' 복미경 Ⓒ복미경
한영숙 류 '살풀이' 복미경 /사진제공=복미경

세 번째로는 한국 여인 저마다의 감성을 명주수건에 담아내는 한영숙 류 <살풀이 춤>이 이어졌다. 특히 고(故) 한영숙 선생의 마지막 제자로 알려지는 손경순 선생은 리허설을 직접 촘촘하게 참관하던 중, 낮은 목소리로 필자에게 “이제 미경이의 살출이 춤이 제대로 농익어 물이 올랐다”며 조심스레 칭찬을 아끼지 않기도 했다. 소리꾼 방수미의 막간 판소리 <흥보가> 박 타는 대목이 구성지게 극장공간의 기운을 잠시 바꾸어 놓는다.

한성준-한영숙 류 '태평무' 복미경 Ⓒ복미경
한성준-한영숙 류 '태평무' 복미경 /사진제공=복미경

마지막 춤은 복미경의 한성준-한영숙 류 <태평무>다. 지난 15년 전 손경순 예전무용단의 공연에서 이미 필자의 눈도장을 강하게 찍었던 그녀의 분신과도 같은 춤이다. 해서 2008년 MCT 전통춤 기획공연 <봄날, 우리 춤 속으로>에 초청되기도 했는데 이후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 특유의 엄격하며 도도한, 그리고 치맛자락을 살짝 잡은 손짓의 날렵함과 사선으로 향하는 시선과 버선발 디딤새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춘앵전' 복미경 Ⓒ복미경
'춘앵전' 복미경 /사진제공=복미경

둘째 날(25일)의 네 가지 레퍼토리는 약식 대모반을 소품으로 붉은색과 청록색의 대비된 의상 색감 속에 전 날 선보인 단아한 <춘앵전>과는 대조적이다. 다소 활달한 기운마저 느끼는 정재 <무산향>으로 문을 열었다. 어깨 위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거북 장식이 조명을 받아 유난스레 화사한 기운을 객석에 전달했다. 이윽고 이날의 백미인 황무봉-손경순 류 그리고 재해석한 <산조춤>에서 거문고와 북장단의 묵직하고도 깊이 있는 춤의 결을 감상할 수 있었다. 깊은 연륜으로 몸 안에 스며든 정재 훈련으로 다져진 긴장과 호흡을 근간으로 한 움직임이 인상적이었다. 한복장인 그레타 리(이용주)선생의 붉은 복숭아 빛 의상, 파스텔 톤의 결이 신비한 춤기운을 불어 넣어 주기도 했다.

'교방굿거리 춤' 복미경 Ⓒ복미경
'교방굿거리 춤' 복미경 /사진제공=복미경

한편, 경남무형문화재 제21호 김수악 류 <교방굿거리 춤>에서도 복미경의 춤 해석은 기존과는 다른 코발트 빛깔의 의상과 춤사위를 절묘하게 배치시켜 속 깊은 호흡과 소고놀이 장단을 이끌어 가는 노련함을 보였다. 이어지는 양도일 류 <설장고 춤>은 이틀 공연의 대미를 장식하는 무대였다.

'설장고 춤' 복미경 Ⓒ복미경
'설장고 춤' 복미경 /사진제공=복미경

필자는 지난 수십 년의 시간동안 호기심, 혹은 일련의 춤 중독자의 의무감으로 나라 안팎 수많은 극장 공간에서 펼쳐지는 전통춤, 창작춤과 컨템포러리 그리고 발레까지 다채로운 장르의 춤 무대를 제 집처럼 드나들고 있다. 이른바 ‘댄스 노마드(낭만논객)’ 혹은 춤 유목민을 자처하고 있기도 하다. 그 사이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지 않은 우리 무용계에서 지원금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춤을 채찍질하듯 스스로에게 엄격한 진정성 있는 춤꾼들을 만나면 고맙고 감사한 마음 이를 데가 없다. 50대 중반, 그녀의 놀라운 기획력과 실천에 존중을 넘어 누군가 기억해야 할 전통춤의 전령사임에 틀림이 없다.

국립국악원 무용단원, 춤 스승인 손경순 예전무용단 대표, 그리고 진도 국립남도국악원 안무자에 이어 지난 5년간, 전북 남원국립민속국악원 무용단 안무자로서의 이력을 바탕으로 <복미경 참춤>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제대로 된 중견 무용가의 소명의식과 그 건재함과 당당한 자존감을 소리 소문 없이 강하게, 진정성 있는 춤의 마음을 그저 일상처럼 실천하고 있다. 해서 필자는 현장 기획자로서 그저 객석 한 쪽에서 오래도록 응원하고 지켜 볼 뿐이다. 무릇, 춤이란 장르는 분명 ‘댄서의 예술’이라는 화두를 새삼 떠 올리는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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