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국립부산국악원 무용단 ‘야류별곡-달의 시간으로 사는 마을’
[공연리뷰] 국립부산국악원 무용단 ‘야류별곡-달의 시간으로 사는 마을’
  • 김혜라 공연평론가
  • 승인 2022.07.05 0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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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인 미감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전통춤 현장
'야류별곡' 프롤로그 (사진제공=국립부산국악원)
'야류별곡' 프롤로그 (사진제공=국립부산국악원)

[더프리뷰=부산] 김혜라 춤비평가 = 전통과 민속은 국가 차원에서 지원하고 유지시켜야 하는 종목이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여러 세대와 공감하기에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생각을 달리하게 한 춤 현장을 만났다. 국립부산국악원 무용단의 정기공연 <야류별곡-달의 시간으로 사는 마을>(6월 3-4일, 국립부산국악원 연악당)은 동래야류의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도 시대적 감수성이 반영된 대중성이 있는 작업이라는 판단이다. 필자가 전통을 섭렵한 안목은 아니지만 컨템퍼러리 공연을 주로 보는 입장에서도 상당히 무대가 인상적이었다.

<야류별곡>은 국가무형문화재인 동래야류 전체 과장이 극장춤으로 구현되어 마당과는 다른 탈춤으로 해석되었다. 각 과장마다 갈등을 해소하는 방식이나 정서적인 교감이 다채롭게 수렴되어 흥, 한, 신명, 풍자, 해학의 탈춤이 매끄러운 극장용 사이즈로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게 한 공연이었다. 부산 동래지역 들판에서 행해져서 불린 야류(野遊)는 말뚝이가 양반들을 조롱하는 야유(揶揄)처럼 권력층에 당하고 사는 민중의 서러운 감정을 해소하는 방식이 현재 우리 사회의 갑들에 의해 억울한 을들의 몸과도 접속할 여지가 있는 무대였다. 밤새 한바탕 욕하며 웃고 놀며 고된 일상으로부터 일탈하는 자유가 허락된 들놀음 판은 오늘에도 여전히 일상적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장치로서 유효해 보였다.

'야류별곡' 프롤로그 (사진제공=국립부산국악원)
'야류별곡' 프롤로그 (사진제공=국립부산국악원)

전체 구성은 7개 과장으로 프롤로그(달의 시간으로 사는 마을)와 5개의 과장(문둥이과장, 양반과장, 영노과장, 할미과장, 동살맞이), 에필로그(해의 시간)로 되어 있다. 무대로 올라온 야류는 탈춤의 극적 요소인 재담과 발림이 주로 춤적 구성과 현대적인 이미지로 풀어내졌다. 이를테면 보통 마당에서 관중과 말로 서로 주고받는 직접적인 소통보다는 무대에서 형상적 이미지로 표현했고, 과장의 갈등구조도 굿거리와 덧배기 장단의 흥과 춤으로 강화시켜 해소하려 하였다. 여기에 무대 뒤쪽 귀퉁이에 둥그렇게 연주자를 배치해 춤꾼들과 소통하며 최대한 원형 마당 판의 장점과 극장무대의 판타지를 살리려 했다. 야류가 정월대보름의 연희인 만큼 둥근 달의 형상이 닮은 무대는 달빛 아래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그늘진 모습이 담겨 있었다. 한 많은 세상사를 훌훌 털어내며 흥취에 젖어 새벽을 맞이하며 해의 시간이자 일상의 시간으로 나가는 민중의 희로애락이 무대 곳곳에 세심하게 배려된 것이다.

'야류별곡' 에필로그 (사진제공=국립부산국악원)
'야류별곡' 에필로그 (사진제공=국립부산국악원)

무엇보다 이 작품에서 가장 현대적인 미감으로 보이는 것은 무대 중앙에 위치한 웜홀 같은 원형 구조물이다. 영화 <백 투 더 퓨처>에서 주인공이 타임머신 스포츠카를 타고 과거와 현재를 광폭횡보했던 것처럼 춤꾼들이 원형의 장치를 통해 등퇴장을 할 때마다 과거와 현재 공간을 잇는 통로로서 예전 들놀음 현장을 상상하게 하였다. 또한 달(프롤로그)이 되고 해(에필로그)가 되는 밤에서 새벽녘으로 이동하는 극 흐름을 매개하며 인간애를 바탕으로 한 전체 서사에 적합한 장치였다. 이는 정민선 미술감독의 극에 대한 이해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으로, 과거의 재현이 아닌 현실과 연결된 입체적인 시공간으로 끌어올렸다.

'야류별곡' 문둥과장 (사진제공=국립부산국악원)
'야류별곡' 문둥과장 (사진제공=국립부산국악원)

각 과장에서 인상적인 몇 부분을 짚어보면 다음과 같다. 원래 성대한 소품과 화려한 행렬인 길놀이에 속하는 에필로그는 춤꾼들이 풀어내는 기원의 춤으로 보인다. 줄당기기 형상으로도 보이는 춤꾼 몸들의 이음새로 말뚝이 탈의 상징성을 부각시키며 전 과장에 출현하는 인물들이 등장하여 공동체의 화합을 염원하며 공연의 포문을 연다. 원래 두 명의 문둥이가 등장하는 문둥과장(1장)은 문둥이 가족으로 탄생한다. 특히 아기 문둥이는 인형으로 설정하여 두 명의 배우가 줄을 조절하며 실제 아이처럼 부부 문둥이를 매개한다. 도합 문둥과장에 가족 구성원 다섯 명이 등장하여 꾸려가는 셈으로 고달픈 문둥이 삶보다는 희망적인 가족상으로 원작과 다른 미소를 짓게 한 푸근한 과장이다.

'야류별곡' 영노과장 (사진제공=국립부산국악원)
'야류별곡' 영노과장 (사진제공=국립부산국악원)

보통 신랄한 비판을 하는 양반과장(2장)은 의외로 상당히 절제된 대화 수위로 인해 말뚝이의 역할이 강한 인상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양반을 잡아먹는 가상의 반인반수인 영노가 한 명에서 다섯 명으로 등장하여 각색된 것(3장 영노과장)이 이채롭다. 탈과 복색에서도 마치 웹툰 영상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의복은 동화적이며 해학적인 캐릭터로 재미나다. 영노탈도 춤꾼 등 뒤로 달아 탈놀이가 아닌 역동적인 군무에 중점을 둘 수 있었고, 양반들을 응징하는 장면도 오케스트라 박스를 적절히 활용하며 마치 지하세계로 끌고 가듯 인상적이다.

'야류별곡' 할미과장 (사진제공=국립부산국악원)
'야류별곡' 할미과장 (사진제공=국립부산국악원)

가장 흥미로웠던 할미과장(4장)은 할미의 죽음에 담긴 묵직한 사회적인 의미보다는 영감의 욕망에 초점을 맞추었다. 영감과 제대각시가 노는 것을 할미가 보고 갈라놓은 줄 알았건만 줄지어 등장하는 화려한 제대각시들은 할미를 죽음으로 이르게 한다. 마치 조강지처의 아우라(aura)가 무색해진 제2, 제3 무한 생성되어 등장하는 제대각시의 일렬 행진은 정신혜 감독의 신선한 연출이다. 할멈이 화병이 나 죽든 말든 속없이 신나 죽는 영감은 염치도 없고 성적 욕망에만 솔직한 현대인에 가깝다. 요즘 세상이야 여자가 남자의 부당한 작태를 참고 사는 시대가 아닌 만큼 기존 할미의 어이없는 죽음보다는 스스로 분해 죽는 설정이 더 시대적으로 와 닿는다. 분해 죽은 할미를 살릴 생각이 1도 없는 영감의 행태에 관객들은 “인공호흡을 하라”고 다그치고 “119에 전화를 하라”는 야유가 터지며 관객이 적절히 참여하며 감칠맛 나는 과장이 되었다.

'야류별곡' 동살맞이 (사진제공=국립부산국악원)
'야류별곡' 동살맞이 (사진제공=국립부산국악원)

여기에 죽은 할미를 염하는 상여 장면도 중의적인 의미를 갖추고 있다. 상갓집 등이자 유골함이 되는 작은 장치는 서러웠던 육신이 죽은 후에야 위안을 찾은 아늑한 집이 되며 복합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장면이다. 동살맞이(5장)에서는 일체감 있는 군무로 말뚝이를 중심으로 모든 인물들이 뒤풀이를 하듯 난장의 춤판을 벌인다. 무대 원형 장치는 해로 변하고 햇살이 비치는 마지막 장면(에필로그)에서 춤꾼들은 현실로 일상으로 돌아간다. 문둥이 아이, 말뚝이, 할미가 해의 시간을 맞이하며 힘없는 자 소외된 자 죽은 자 모두가 힘을 내어 살아보자는 다짐으로 관객도 동조하게 되며 마무리된다.

'야류별곡' 동살맞이 (사진제공=부산국립국악원)
'야류별곡' 동살맞이 (사진제공=국립부산국악원)

전반적으로 흥미롭게 관람하였으나 아쉬운 점도 있다. 원래 미얄할미 캐릭터는 연극과 춤에서 창작적 모티브로 자주 활용되는 과장으로 영감이 집으로 돌아와 세 자식의 죽음을 듣고 할미를 발로 차 어이없게 죽게 한다. 할미의 죽음은 이승과 저승, 죽음과 삶이 어이없게 펼쳐지는 세상에서 힘없이 죽어가는 민중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가부장제 사회에서 한 많은 여성 삶의 은유일 터. 이 부분보다는 일반적인 처첩 관계로만 조명(안무자의 선택이기는 하다)되었기에 할미의 상여 길이 덜 슬프고 덜 허망하게 느껴진다. 또한 동래야류에서는 탈을 중심으로 다른 야류에 비해 말뚝이의 역할이 중요하다. 말뚝이는 양반들과 세상의 갑들을 혼쭐내는 저항적 이미지가 강하나 여기에서는 말뚝이의 역할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따라서 양반과장에서 무언가 시원한 해소가 덜하다는 인상이다. 말뚝이의 배김새나 탈을 가지고 노는 탈놀이도 특별하지 않아 영남춤 특유의 말뚝이가 가진 대표적인 상징성이 눈에 띄지 않는다. 지역전통을 무대화한 춤으로 세련된 복색과 장치로 현대적 미감으로 이미지화했으나 전통의 창조적 변용 측면에서 더욱 원형의 다각적인 해석, 영남춤 특유의 탈놀이와 배김새의 변주에 대한 고민이 더해지길 기대해 본다.

그럼에도 국립부산국악원의 <야류별곡>은 우리 일상적 삶과 무관한 과거의 연희가 아니라 당대의 여러 겹의 정서를 반영하려는 노력이 보인 작품이다. 영남지역 전통춤의 발굴과 창조적 변화를 기꺼이 맞이하는 작품은 춤으로 창작해 낸 동래야류의 새로운 버전이다. 특히 전통의 대중화란 측면에서 보면 더할 나위 없는 유쾌한 해원의 춤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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