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정 칼럼] 펜으로 쓰는 춤(22) - 허구의 세상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김윤정 칼럼] 펜으로 쓰는 춤(22) - 허구의 세상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김윤정 무용가
  • 승인 2022.07.08 0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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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셀도르프 라인강 해질녘 (사진제공=김윤정)
뒤셀도르프 라인강 해질녘 (사진제공=김윤정)

[더프리뷰=뒤셀도르프] 김윤정 무용가 = 무대는 진짜가 아니다. 허구다. 그런데 사실 세상도 잘 짜인 허구에 의해서 돌아간다. 인생은 어쩌면 우리가 그 허구로 구성된 세상을 어떻게 믿고 다루느냐에 달려 있기도 하다.

무대에서 우리는 자신들의 역할을 진짜처럼 혼신을 다해 춤추고 연기하지만 그 자체가 될 수는 없으며 그 자체인 듯 연기하고 사람들에게 그 순간만큼은 진짜인 것처럼 보여 감동을 주는것이다.

집에서 꽃꽂이하다 찍은 한 컷 (사진제공=김윤정)
집에서 꽃꽂이하다 찍은 한 컷 (사진제공=김윤정)

‘허구’ 그 자체의 진실과 미학은 분명히 존재한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Yuval Harari 1976-) 는 그의 저서 <호모 데우스>에서 허구라는 세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허구는 나쁜 것이 아니다. 허구는 꼭 필요하다. 돈, 국가, 기업 같은 허구적 실체에 대한 널리 통용되는 이야기가 없다면 복잡한 인간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다.

똑같은 허구적 실체를 믿지 않으면 축구 경기를 할 수 없고, 허구 없이는 시장과 법원의 이점을 누릴 수 없다. 하지만 이야기는 단지 도구일 뿐이다. 이야기가 목표나 잣대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이 단지 허구임을 잊을 때 우리는 실제에 대한 감각을 잃게 되며, 그때 우리는 기업을 위해 많은 돈을 벌려고, 또는 국익을 보호하려고 전쟁을 시작한다. 기업, 돈, 국가는 우리의 상상에서만 존재한다. 우리는 우리를 도우라고 그것들을 발명했다. 그런데 왜 그것들을 위해 우리의 생명을 희생하는가?

네덜란드 바닷가 갈매기 (사진제공=김윤정)
네덜란드 바닷가 갈매기 (사진제공=김윤정)

이야기(허구)는 인간사회의 토대이며 기둥이다. 역사가 전개됨에 따라 신, 국가, 기업에 대한 이야기들이 점점 힘을 길러 객관적 실재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위대한 신, 천명, 또는 성경을 믿음으로써 파이윰 호수, 만리장성, 샤르트르 같은 대성당을 건설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런 이야기들을 맹신한다는 것은 인간의 노력이 실재하는 감응적 존재들의 삶을 더 낫게 하는 일보다는 신과 국가 같은 허구적 실체들의 영광을 드높이는 데 집중된다는 뜻이었다.”

나는 하라리의 허구에 관한 이야기들이 꼭 국가적, 종교적 차원에서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우리는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허구들을 잘 해독해야 하는 것 같다.

베를린 신호등 (사진제공=김윤정)
베를린 신호등 (사진제공=김윤정)

메타버스(Metaverse)

요즘 가상세계를 일컫는 ‘메타버스’라는 말을 사전에서 보면 “웹상에서 아바타를 이용하여 현실세계와 같은 사회, 경제, 문화적 활동이 이뤄지는 가상세계를 일컫는 말로 1992년 미국 SF 작가 닐 스티븐슨의 소설 <스노 크래시>에 처음 등장한 개념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메타버스 말고 우리가 진짜라고 여기는 현실도 사실은 허구의 이야기들을 만들고 그걸 믿기로 공동으로 약속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기도 하다.

메타버스라는 가상현실은 네 가지로 나뉜다.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 현실의 공간, 상황 위에 가상의 이미지, 스토리, 환경 등을 덧입혀서 현실을 기반으로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포켓몬)

라이프로깅(lifelogging) : 자신의 삶에 관한 다양한 경험과 정보를 기록하여 저장하고 공유하는 세상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카카오페이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거울세계(mirror world) : 현실세계의 모습, 정보, 구조 등을 가져가서 복사하듯이 디지털 거울에 비춰주면서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지도와 길 찾기 서비스, 여러 음식배달 앱)

가상세계(virtual world) : 현실과는 다른 공간, 시대, 문화적 배경, 등장인물, 사회제도 등을 디자인해 놓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메타버스를 의미한다. (온라인으로 다중접속을 지원하는 여러 게임들)

우리는 메타버스라는 가상현실 속에서 더욱 풍부한 경험을 하게 되지만 그 안에서는 중대 범죄도 일어나고, 그런 일들을 제대로 법적으로 제재하기에는 아직 많이 미흡한 것 또한 사실이다.

실수로 엎지른 에스프레소 (사진제공=김윤정)
실수로 엎지른 에스프레소 (사진제공=김윤정)

나의 메타버스 인스타

라이프로깅이라 할 수 있는, 나를 포함한 사람들이 열중하는 또는 일상처럼 즐기는 흔한 인스타그램이라는 메타버스에 관한 이야기를 해본다.

내 주변에는 에스엔에스를 적극적으로 하는 친구와 완전 관심이 없거나 나처럼 양쪽에 걸치고 있는 친구들로 나뉜다. 그런데 나의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에는 에스엔에스를 거의 하지 않는 친구들의 삶의 질이 훨씬 높아 보인다. 물론 이것은 지극히 나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에스앤에스에 전혀 관심이 없는 그들은 대부분 현실 자체로 만족하며 굳이 라이프로깅까지 크게 에너지를 쏟지 않고도 충만해 보인다.

그럼에도 나는 인스타그램이란 허구적 공간을 즐긴다. 워낙 사진을 찍고 찍히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인스타그램 같은 가상공간 안에 사진을 올리는 일은 즐거운 취미 중 하나가 되었다. 눈에 보이는 사물들을 찍고 나면 실제 내 눈에 보이는 것보다 사진으로 찍힌 순간이 전혀 다른 형식으로 남겨지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같은 사물도 찍는 시간에 따라 날씨에 따라 매번 다르게 보인다. 그런 매력이 나를 멈추지 않고 찍게 만드는 동기가 된다. 그런데 광대한 대자연과 하늘은 늘 내 시야에 보이는 것보다 카메라 렌즈 안에 잡히는 것이 실망스럽기까지 한데 아무리 스마트폰 속의 카메라 기능이 발전을 했다고 해도 대자연을 그 이상으로 담는 것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라펜베르크 숲 산책 중 만난 풍경 (사진제공=김윤정)
그라펜베르크 숲 산책 중 만난 풍경 (사진제공=김윤정)

나는 중년이 되고 보니 적당히 세속적이면서도 또 적당히 탈속적인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아니 이미 그렇게 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멈추지 않고 흐르는 시간과 늘 변화하고 움직이고 있는 사물들과 공간을 사진으로 고정 시키는 순간들을 즐긴다. 버지니아 울프가 <파도>라는 책에서 한 순간만이라도 꽉 잡고 있자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매일 매순간 욕망한다. 욕망은 언제나 무언가에 매료된 상태라고 한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한 기록이라고는 하지만 열린 공간 안에 나의 일상을 공유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피상성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안다. 그 공간에서는 나의 절대 고독과 고통조차 미화시키고 싶은 욕망이 존재한다는 것도 얼마나 매력적인 허구인가? 사실 피상적이고 허구적인 것이 가지고 있는 미학은 인생에 대단히 중요하다.

오마에리카 카페 테이블 위, 23세 시절 카프카 사진 (사진제공=김윤정)
오마에리카 카페 테이블 위, 23세 시절 카프카 사진 (사진제공=김윤정)

나는 인스타에 내가 뭘 먹고 뭘 즐기고 누굴 만나고 뭘 읽고 있는지, 그렇게 일기처럼 하루의 이미지들을 올린다. 무언가 과장되고 부풀린 듯한 느낌도 있지만 그런 나의 작은 허영조차 즐기는 여유쯤은 부리고 싶은 것이다.

누군가는 그런 허구의 공간을 통해 그야말로 생산적으로 돈을 벌어들이거나 많은 사람들과 유용하고 실용적인 정보들을 나누기도 한다.

자신의 재능과 아이디어를 상품화해서 생산적인 일을 한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그런데 나의 수준은 그야말로 그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고, 공감해주는 친구들과 인사하는 정도로 만족하며 가볍게 즐기고 있는 것이다.

파트너가 낸 사진집 (사진제공=김윤정)
파트너가 낸 사진집 (사진제공=김윤정)

I photo, therefor I am

내 파트너도 늘 사진을 나 이상으로 찍는 걸 즐기는데, 그가 바라보는 관심사는 나와는 사뭇 다르지만 우리는 사진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I think, therefore I am)라고 했던 프랑스 철학가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 탄생 400주년에 맞춰 그동안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들로 <I photo, therefore I am>이라는 제목의 포토북을 출판하기도 했다. 청소년 시절부터 사진을 찍어 상(Deutscher Jugend-Photopreis)까지 받았던 그가 아날로그에서부터 디지털화되어가는 시대를 목격하며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들로 현대인들을 표현한 사진책이다.

산책 중에 본 들꽃 (사진제공=김윤정)
산책 중에 본 들꽃 (사진제공=김윤정)

사진을 찍으면서 깨닫게 되는 진실의 순간들 - 나는 그렇게 매일 일상을 기록한다는 의미로 사진을 찍으면서 깨닫게 된 것이 있다. 사물들도 사람들도 모두가 생각보다 각자 어울리는 자기 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불평할 것이 없다. 스스로 그렇게 살수밖에 없는 각자 특유의 성향, 생각, 행동, 또는 원형적인 습관들이 그들을 그 자리에 가져다 놓은 것이다. 먼지는 결국 날리다가 구석이라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듯이 말이다. 사람도 사물도 각자 어울리는 자리에 있는 그 모습의 질서를 찍을 때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사물이나 사람들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곳에 있을 때 느껴지는 기이함에서 또한 영감을 받는다. 아마도 당분간은 그렇게 매일 찍고 업로드하고 공유하게 될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언젠가 내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날 이 모든 것들이 나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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