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필름 리뷰] 극장과는 다른 상상력으로 접속하는 댄스필름 속 풍경들
[댄스필름 리뷰] 극장과는 다른 상상력으로 접속하는 댄스필름 속 풍경들
  • 김혜라 공연평론가
  • 승인 2022.07.15 18: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르코댄스필름 A TO Z: 정훈목 김주빈 <댄스필름 새다림> 성승정 <춤이 된 카메라, 롤 앤 액션>

[더프리뷰=서울] 김혜라 춤비평가 = 지난 2년여 팬데믹 시기 무용에서 영상과의 협업은 필수 불가결한 조건으로 자리매김했다. 비대면 온라인 상황에서 라이브 공연의 대안으로 영상을 송출하며 협업했던 흐름은 다양한 방식으로 약진하였고 동시에 댄스필름도 재조명되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비롯하여 공공기관의 지원에도 힘입은 바 있고 무엇보다 예술가들의 생존의지와 열정으로 자양분을 갖춰 짧은 시기 급격한 변화를 수용해낸 것이다. 올 해 들어 전면 대면으로 복귀한 무대공연은 다시 활기를 찾고 있으나 댄스필름도 나름의 방향성을 잡고 성장하고 있다. 작년에 이어 <아르코댄스필름 A to Z>는 흥미로운 댄스필름 작업들을 지속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코로나19로 혼란을 겪으며 새로운 공연물의 향유와 확장이라는 생존방식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기획이 <아르코댄스필름 A to Z> 사업이다. 라이브 공연과는 다르게 온라인에서 작업을 언제나 볼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 변화하는 시대에 공연예술의 향방을 모색하고자 마련한 장이다. 지난 6월 28일부터 7월 8일까지 소개된 세션(Session)1에서는 창작자들의 개성이 발휘된 다양한 댄스필름 형태를 선보였다. 그중 주목되는 작업으로 정훈목의 <우라가노(Uragano)>는 영화 기법으로도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고, 김주빈의 <댄스필름 새다림>은 기존 무대공연을 필름형식으로 새롭게 재구성했으며, 성승정의 <춤이 된 카메라, 롤 앤 액션>은 공연제작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다채로운 댄스필름을 볼 수 있었다.

(https://theater.arko.or.kr/pages/bridge/dancefilm.aspx 현재도 관람가능)

 

정훈목 '우라가노' 댄스필름(사진제공=아르코댄스필름 A to Z)
정훈목 '우라가노' 댄스필름(사진제공=아르코댄스필름 A to Z)

정훈목의 댄스필름 <우라가노>(15분 11초)는 여성 댄서(Eliana Stragapede)의 무의식 세계를 집중력 있게 펼쳐 보인다. ‘우라가노’는 이탈리아어로 ‘허리케인’이란 뜻으로 극장에서 느끼는 에너지와는 다른 영상미와 긴장감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작품에서는 한 인간의 일그러진 기억을 파편화된 이미지로 충돌시키며 속도감 있게 그리고 있다. 여성이 홀로 해안에 쓰러져 있는 첫 장면부터 댄서의 정신세계로 줌 인되는 카메라의 시선에 흡수되어 따라가게 된다. 연속적으로 제시되는 나체의 댄서가 바닥으로 침잠하는 장면, 콘크리트 폐허 건물에서 취하는 일그러진 몸짓, 순간적으로 처연하게 자연을 응시하는 시선 그리고 엘리베이터 내부 같이 일련의 일관된 갇힌 공간에서 진행되는 이미지는 댄서의 고립된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 특히 자욱한 연기가 깔린 답답한 분위기에서 벗은 육체의 앙상한 목뼈와 갈비뼈를 줌인하며 댄서의 요동치는 심상을 적나라하게 반영한다.

급격한 장면전환, 댄서가 갑작스럽게 사각 엘리베이터 공간에 떨어진다. 기존의 벽이 바닥으로 보이는 앵글을 뒤튼 샷은 현실의 물리적인 공간(엘리베이터)이 아니라 무의식의 어느 지점에서 방황하고 있는 한 여성을 보여 준다. 댄서의 몸이 좌우 평행으로 서있는 장면(누워있는)을 비롯하여 공간의 위, 아래, 옆면에 밀착된 움직임은 이질적인 공간적 이미지를 생성시키며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에 신체를 확장시키거나 뒤틀린 몸짓도 비정상적인 공간에서 부유하는 몸 덩어리로 인지하게 되며 필름이 아니면 불가능한 이미지를 연출한다. 일관되게 주지시키는 무의식의 세계는 파편적인 이미지 컷들의 병렬과 중첩으로 적절히 몽환적으로 각인된다. 다시 댄서는 엘리베이터 안에 갇혔다 사라지고 콘크리트 폐허 건물에서도 사라지고 만다. 허리케인이 휩쓸고 가버린 듯 모든 것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댄서의 몸을 통해 전달되는 신음이 영상의 이미지로 나아가 통제 받는 한 인간의 무의식의 세계가 필름을 통해 확장되어 강렬하게 전달된다. 인상적이다. 벨기에 피핑톰 무용단의 댄서이자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정훈목의 <우라가노>는 ‘헐리우드 국제 골든 에이지 페스티벌’에서 수상(Best Dance Short, Best Sci-fi)하였다.

 

김주빈 '댄스 필름 새다림' 댄스필름(사진제공=아르코댄스필름 A to Z)
김주빈 '댄스 필름 새다림' 댄스필름(사진제공=아르코댄스필름 A to Z)

주빈 컴퍼니의 댄서이자 안무자인 김주빈의 <댄스필름 새다림>(16분 51초)은 <새다림>이라는 무대 공연에서 호평을 받은 작품을 댄스필름 형식에 맞게 재구성한 것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사자탈인 ‘맹구’의 시각이 카메라의 시선과 동행하며 작품의 스토리텔링이 더욱 밀도 있게 전달된다. 사자탈 맹구는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버려지는 처치 곤란한 신세로 그려진다. 맹구의 시선과 마음을 의인화한 장면이 중첩될 때마다 댄서인 김주빈이 맹구의 심정을 살풀이로 표현한다. 파도 소리도 바위에 부딪치는 물보라의 현란한 움직임도 춤으로 느껴질 만큼 장면의 이음새가 자연스러워 장소의 맥락과 쓸쓸한 정서가 영상을 통해 잘 구현된다. 청정한 숲에 환생한 듯한 맹구는 개소리, 양소리, 고양이 소리를 내며 이름 없이 사라진 누군가의 몸짓을 대변한다는 인상이다. 다시 냇가로 휩쓸려온 맹구는 고비 고비 넘어 강을 지나 바다에 도달한다. 맹구(댄서)는 마침내 스스로를 돌보는 위무(慰撫)의 춤을 경건하게 춘다.

<댄스필름 새다림>은 혹독한 맹구의 현실과 이상적인 해방의 이미지를 대비시키는 장면 전환이 반복적으로 진행될수록 스토리가 촘촘하게 맥락을 쌓아간다. 맹구의 입장에서 카메라 워크를 구성한 작품은 맹구의 캐릭터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메타포로 설정하여 무대공연과는 다른 드라마틱한 감흥을 주었다.

 

성승정 '춤이 된 카메라, 롤 앤 액션' 댄스필름(사진제공=아르코댄스필름 A to Z)
성승정 '춤이 된 카메라, 롤 앤 액션' 댄스필름
(사진제공=아르코댄스필름 A to Z)

선인장베개 단체의 안무가인 성승정의 <춤이 된 카메라, 롤 앤 액션>(21분25초)은 댄스필름을 찍는 제작 과정과 공연 현장을 다큐멘터리로 담아낸 작품이다. 공연장의 모든 스태프와 관객까지도 퍼포머가 되는 셈이다. 기존의 피나 바우쉬나 마기 마랭을 비롯한 여러 안무가들이 실제 작업과정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든 작품과 유사한 방식이나 이 작품의 차별점은 영상을 공연화하겠다는 안무가의 역발상으로 접근한 점이라 하겠다. 따라서 기존 댄스필름에서 볼 수 있는 편집 내지는 극적 조작이 없이 일반 무대공연 같은 정속도로 진행된다. 무엇보다 작품에 출현하는 스태프, 댄서, 관객들보다 오히려 카메라를 찍는 카메라의 활동적인 동선과 다양한 장면을 조율하는 상황을 보다보면 ‘춤이 된 카메라, 롤 인 액션’라는 제목이 어느 정도 설득력 있어 보인다. 영상을 공연화하겠다는 당찬 안무가의 의지가 명확하게 와 닿지는 않았지만 카메라의 역동적인 동선이 안무의 일부로 작동하며 퍼포머 같은 역할(role)로 인식된 점이 가능성으로 보였다.

댄스필름은 현장 무대공연과는 다른 차원인 상상의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구현할 수 있다. 물론 무대 현장과 댄스필름은 춤을 소재로 한다는 공통점 이외에는 다른 장르이지만 팬데믹 시기 이 둘은 공생관계로 서로의 가치와 장단점을 재인지시켰다. 움직이는 순간 사라져 버리는 춤이 시간의 절대적인 지배를 받는 운명이라면 시간을 축적하여 축소와 확장을 꾀하기도 하는 댄스필름은 무대 현장과는 다른 상상력으로 앞으로도 관람객과 접속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