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융합 토크 콘서트 ‘사랑이라는!’
[공연리뷰] 융합 토크 콘서트 ‘사랑이라는!’
  • 김기화 기자
  • 승인 2022.10.02 0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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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 토크 콘서트 ‘사랑이라는!’ 공연모습 (사진제공=(사)서울국제문화예술협회)

[더프리뷰=서울] 김기화 무용평론가 = ‘사랑’은 사람들의 일상에서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단어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모성의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자라고, 성장기에 친구와 연인을 통해 또 다른 사랑을 이해하며, 결혼 적령기에는 평생지기인 부부로 만나 사랑으로 가족을 일구며 삶을 풍요롭게 한다. 그렇다고 사랑이 늘 평화롭고 따뜻하지만은 않다. 사랑은 설렘 못지않게 인연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인내와 다투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예술가들이 사랑을 주제로 작품을 만들 때는 표현의 극대화를 위해 여러 가지 장치를 발동한다. 특히 공연예술의 경우 일련의 서사를 가지고 스토리텔링으로 미적 갈등을 유발하여 사랑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곤 한다. 관객은 미적 갈등을 유발하는 무대 위의 아이콘을 해석하여 코드, 즉 의미를 판단해야 한다. 이러한 예술적 아이콘과 코드를 발견하는 재미가 관객이 공연장을 찾는 계기가 되고는 하였다.

특히 1970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이러한 이성적 논리를 유발하는 작품으로 관객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 왔지만, 최근에는 긴 흐름의 이성적 판단 이외에도 대중을 위해 조금은 포괄적이지만 사람의 감성을 위로하는 편안하고 쉬운 흐름으로 공연을 제작하기도 한다.

지난 9월 24일(토) 강동아트센터 소극장에서는 <뮤직&비디오 아트 퍼포먼스, 사랑이란!>이 공연되어 잔잔한 감동으로 관객들에게 ‘사랑’의 따뜻함을 전해주었다. 공연은 네 명의 음악 연주자가 현장 실연(實演)으로 참여하였고, 비디오 댄스와 에니메이션 영상이 연주와 함께 무대에 투사되어 사랑의 정조(情調)를 융합적으로 표현하였다.

2005년부터 한국방송공사(KBS)의 교양 프로그램 <비타민>의 ‘위대한 밥상’ 코너에 출연하며 대중적 인지도를 갖고 있던 숙명여자대학교 한영실 교수의 친근하면서도 세련된 진행은 공연의 품격을 유지하면서도 유연하여 아름다운 ‘사랑’의 하모니에 동화되게 하였다.

‘토크 융합 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된 공연은 크게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다. 1장 사랑의 시작, 2장 기다림, 3장 그리움은 공연 주제인 사랑에 소(小)주제를 달아 장별로 연주곡을 달리하였다. 전반적으로 무대는 아담한 콘서트의 분위기로 시작되었다.

융합 토크 콘서트 ‘사랑이라는!’ 공연 중 대담 (사진제공=(사)서울국제문화예술협회)
융합 토크 콘서트 ‘사랑이라는!’ 공연 중 대담 (사진제공=(사)서울국제문화예술협회)

1장 ‘사랑의 시작’의 첫 번째 연주곡은 가곡 <마중>(허림 시, 윤학준 곡)이었다. 성악가 김민희(한국체대 공연예술학과 강사)의 풍부한 성량으로 표현된 노래 뒤에는 한국무용가 백현순(서울국제문화협회 이사장)의 춤 영상이 융합되며 사랑하는 이를 위한 마중의 미학을 부가하였다. 하와이 섬의 아름다운 풍광 너머로 자연과 교감하며 몸의 자유로운 감성을 일깨운 춤 영상이 음악과 함께 사랑의 시작을 알리면, 국악창작곡 <사랑의 춤>(박범훈 작곡)이 연주되었다. 가야금 연주자 박혜리나(중앙대학교 국악과 교수)와 대금 연주자 육지용(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강사)의 관현악 2중주는 사랑의 여정을 감미롭게 쏟아내었다. 박혜리나는 사랑의 여정을 시작한 여심을 호수와 같은 폭넓은 감성으로 표현하였다. 사랑을 위한 여성의 외유내강한 인고의 시간은 탄탄한 가야금의 연주기법으로 지속되었다. 그리고 육지용의 대금 연주는 사랑의 여정에서 벌어지는 하나하나의 추억을 담아내듯 긴밀한 사랑의 정감을 표현하였다. 이중주가 주고받는 사랑의 선율은 독주와 합주로 문답의 형식으로 변화되고, 이 대대적인 악기의 연주와 함께 영상으로 수묵담채화의 아름다운 꽃을 그림으로써 관객들의 시각에 맺히었다.

융합 토크 콘서트 ‘사랑이라는!’ 공연모습 (사진제공=(사)서울국제문화예술협회)

2장 ‘기다림’은 대중가요 <인연>(이선희 작사·작곡)과 가곡 <시간에 기대어>(최진 작시·작곡)로 연주되었다. <인연>은 가야금, 대금·소금, 신디사이저의 3중주로 가사 없이 선율을 중심으로 연주되었다. 연주와 함께 에니메이션(도깨비정원 제작) 여자 캐릭터의 눈망울이 영상으로 투사되며 진행되었다. 여자의 눈망울이 다시 바다로 전환되면, 그 바다 안에 여자의 신체가 부유하듯 떠 있고, 다시 비가 오면 여인의 몸은 초감각적인 떨림으로 반응을 한다. 신디사이저의 기본 선율과 가야금의 내밀한 속삼임이 깊은 의식의 세계를 표현하고, 그 사이사이 울림을 준 대금의 고요함이 소금의 청명함으로 고조되며 음악이 여운을 남기며 마무리된다. 여자 캐릭터가 다시 처음의 검은 눈망울을 응시하며 영상이 끝난다. 영상과 연주의 융합은 인연의 바다를 건너며 느끼는 내면에 자리한 사랑을 애잔하게 전달하였다.

김민희의 <시간에 기대어>는 본격적으로 춤 영상과 콜라보(collaboration)되어 사랑과 기다림에 대한 동양 사람의 철학과 정서를 보여주었다. 잔잔한 성음으로 노래를 시작하면 영상은 마치 하나의 서사를 이어가듯 짤막한 상황이 변화하며 무한한 기다림을 보여준다. 인도의 고산지대에서 촬영한 백현순 안무의 춤 영상이 압축되어 이미지를 구성한다. 대자연의 고산지대 협곡을 지나며 길 떠난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 영상이 가슴에 울렁임을 남긴다. 비손-척박한 땅 위의 생존-죽음-기원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일련의 장면들이 인도 고산(高山)의 험준한 지대와 그 길을 끊임없이 찾으며 기다림을 이어가고 결국 풍장(風葬)을 상징하듯 기다림의 몸은 사라지고 빈 옷만이 남고, 다시 그 영혼이 신을 향해 만남을 기원하면 춤 영상이 끝난다. 아름다운 성악의 소리 너머에 슬픔과 희망의 경계를 묘하게 남기며 곡이 마무리된다.

3장 그리움에서는 2중주 <가락지의 꿈>(비단 디지털 싱글)과 춤 <천년의 침묵>이 진행되었다. <가락지의 꿈>은 여성 5인조 퓨전국악팀 비단(VIDAN)의 곡으로 논개의 손에 낀 가락지로 해석되며 이루지 못한 여성으로서의 꿈을 표현한 곡이다. 대금과 신디사이저의 2중주에서 육지용은 가사의 멜로디로 주선율을 구성하고, 고만석은 신디사이저를 현악기의 음색과 연주곡의 역사적·공간적 상황을 묵직하게 표현하였다. 곡의 분위기는 흰 복식을 입고 논개를 기리는 의례의 분위기와 강을 역류하여 배에 몸을 누인 여자들의 귀환으로 영상을 채워 한층 장엄하였다. 연주와 춤 영상으로 그리움은 가슴 저린 감성을 불러일으키며 애잔하게 전해지었다.

다시 공연은 한영실의 진행으로 반전되었다. 관객을 무대로 등장시켜 사랑의 마음을 춤으로 출 것을 독려하여 남자 관객이 현장 실연으로 춤을 추었다. 무용을 전공한 윤시훈(한양대학교 무용학과 졸업)이 국악 퓨전 명상곡 <천년의 침묵>에 맞추어 가슴 아픈 사랑과 그 사랑을 끊임없이 담고 살아가는 마음을 즉흥춤으로 선보였다. 관객들의 박수로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뒤이어 무대로 불러들인 관객이 함께 참가하며 유쾌한 관객과의 소통으로 분위기가 고조되자 김희진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이번 공연의 대 주제 ‘사랑’의 감성은 관객과 공유되며 공연은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이번 공연은 서울국제문화예술협회의 아트&테크놀로지 댄스 페스티벌(Art&Technology Dance Festival)의 하나로 기획되었다. 서울국제문화예술협회 이사장 백현순은 순수예술의 장르 고유성을 확장하여 대중성을 통해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는 공연을 꾸준하게 개발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였다. 예술가 개개인이 극복하기 어려운 관극문화의 개선을 위해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을 결합하고, 예술장르 간 융합과 관극을 위한 해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예술 토크 콘서트’로 확장해 갈 것을 약속하였다. 쉬우면서도 일상의 지친 삶을 위로하는 공연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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