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모니터] ‘혼족’들에게 전하는 담백하고 편안한 위로
[공연모니터] ‘혼족’들에게 전하는 담백하고 편안한 위로
  • 김리하 무용가
  • 승인 2022.10.11 15: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가영의 ‘빨래방’ (7월 1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빨래방 공연현장 (사진제공=안겸)
'빨래방' 공연현장 © 류진욱

[더프리뷰=서울] 김리하 현대무용가 = 작품의 제목이 어딘가 친숙하다. 낯설지 않다.

‘혼족’에 대한 이야기. 혼족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공간이 빨래방인가? 혼술도 혼밥도 아닌 빨래방인가? 라는 물음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 그곳에 들어오는 이들도, 들고 오는 것들도 다양하지만 기억 속에 그 공간 속 사람들의 표정은 그다지 즐거워 보이진 않았다.

이 작품은 그곳에 오가는 많은 이들 중 ‘혼자 사는 여자’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분홍색 벽에 매달려 있는 세탁기, 체스판을 떠올리게 하는 바닥, 초록색 2인용 벤치, 그리고 작고 반짝이는 샹들리에, 감각적이고 화려한 공간의 구성이 <빨래방>이란 제목과 멀게 도회적이다. 조명이 꺼지고 캄캄한 눈앞에 건조기 돌아가는 소리일까, 빨래방이란 공간에 가면 쉽게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연신 스피커를 뚫고 나온다.

 

원피스를 입은 여자 (사진제공=안겸)
'빨래방' 공연현장 © 류진욱

조명과 함께 화려한 원피스 형태의 수영복을 입은 출연자가 등장한다. 카트를 끌며 공간을 반복적으로 걸어 다니는 모습이, 그리고 출연자의 표정이 입고 있는 옷과 상반되게 무료해 보인다. 익숙한 듯 빨래를 세탁기 안에 집어넣은 뒤 여전히 무료하고 약간은 심심한 상태로 초록색 벤치에 앉아 세탁이 다 되길 기다리는 빨래방의 풍경을 연상하게 한다.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앉아있던 출연자가 일어나 카트 위에 놓여 있던 화분을 분리한다. 그 작은 화분에 대한 의문이 풀리던 지점이었다. 화분은 그릇이 되었고 가루세제 통에 담겨있던 것들을 그릇에 붓는다. 세제가 아닌 시리얼이었다. 그다음 섬유 유연제 통을 집어 든다. 분홍색 액체가 든 통을 그릇에 부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딸기 맛 우유 시리얼’이 되었다. 빨래방이란 공간에 있기에 당연하게 생각했던 세탁 용품이 자연스럽게 일상적인 것들로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초록색 벤치에 앉아 그것들을 무미건조하게 씹어 삼키는 일관성 있는 무료한 표정이 왠지 모르게 빨래방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또는 표정이라, 객석에 앉아있는 또 다른 혼족에게 웃음이 새어 나오게 했다.

 

'빨래방' 공연현장 (사진제공=안겸)
'빨래방' 공연현장 © 류진욱

다시 일어난 출연자가 그릇을 내려놓고 스위치를 향해 걸어간다. 스위치를 누르자 샹들리에가 내려오고 그곳에 막대사탕들이 꽂혀 있다. 막대사탕 하나를 집어 또다시 먹는다. 이 또한 무료해 보이고 의미 없음의 연속이지만 어색하거나 낯설지 않다.

막대사탕을 얼마 먹지 않고 화분에 다시 꽂은 뒤 자리에서 일어난다. 출연자의 춤이 시작된다. 춤이라기보다 동작의 나열 또는 반복에 가까운 움직임 형태에 가까웠지만 그 움직임들은 반복되고 특별한 것 없는 일상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담백한 움직임으로 다가왔다.

자신의 일상을 몸으로 표현하기를 마친 출연자가 무대 하수 위쪽에 있던 문으로 걸어가 문을 열고 들어간다. 들어감과 동시에 실시간으로 하수 옆 벽면에 현재 상황이 비추어진다. 작은 방의 형태로 꾸며진 그 공간은 ‘혼자 사는 여자’의 개인 공간으로 연출된다. 침대 위에 누워서 핸드폰을 만지다 잠이 든다. 그러자 영상에서는 바다가 흘러나온다.

 

'빨래방' 공연현장 (사진제공=안겸)
'빨래방' 공연현장 © 류진욱

출연자 4명이 하와이를 연상케 하는 복장으로 등장한다. 역시나 예상대로 훌라춤을 춘다. 잠이 든 여자의 환상이었을까 아니면 반복되는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이었을까. 훌라춤을 추는 4명의 무용수는 행복이 가득한 표정으로 연신 몸을 흔든다. 마치 그 모습이 환상 속에 있는 듯했다. 훌라춤을 다 춘 무용수가 들어가자, 다시 여자가 긴 다림질 판을 들고 나온다. 다림질 판을 펴고 수건을 갠다. 정리한 수건을 카트 안에 채워 넣고 자리에 앉는다. 무료한 표정으로 화분에 꽂아 뒀던 사탕을 다시 먹는다. 세탁기 문을 열자 스팀이 뿜어져 나온다. 현실로 돌아왔음을 알리듯이.

화려한 원피스를 입은 출연자가 움직임을 다시 한 번 이어간다. 움직임이 주는 단순하고 일정한 운율이 화려한 복장과 카트 위의 꽃 그리고 세트의 도회적인 분위기에 비해 투박하고 강렬하지 않다. 의도한 움직임의 연출이라 확신한 순간이었지만, 시작부터 일정한 흐름의 전환과 예상되는 전개가 지루해지기 시작하는 시점이었다.

 

'빨래방' 공연현장 (사진제공=안겸)
'빨래방' 공연현장 © 류진욱

움직임을 마친 여자가 자리에 앉는다. 지친 듯 잠이 든 채로 하수 벽면에 영상이 나오기 시작한다. 무대에 있던 여자의 일상이다. 매일 같은 표정으로 입고 있는 옷이 계절을 알려주며 빨래방으로 가는 하루 끝의 풍경이다. 빨래를 세탁기에 넣는 장면으로 영상은 끝난다. 조명과 영상이 꺼지고 켜지며 머리부터 발까지 앉아있는 테이블과 의자를 모두 하얗게 치장한 남자가 무대에 있다. 카트로 걸어가 섬유 유연제 통을 집어 컵에 붓는다. 그리곤 의자에 앉으면 공연이 끝이 난다. 마무리가 확실하지 않은 탓에 관객들의 박수가 늦었다. 불확실하게 마무리하려는 연출자의 의도였다면 모를까, 관객들의 늦은 박수가 연출자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확실한 순간이 되어 작품 중 가장 아쉬운 부분이었다.

 

'빨래방' 공연현장 (사진제공=안겸)
'빨래방' 공연현장 © 류진욱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이 공존하는 빨래방의 공간성을 통해 삶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과 개인의 시간에 대해 상상해 본다”는 연출자의 의도를 잘 파악할 수 있는 공연이었다. 무용공연이라기 보다는 한편의 짧은 독립영화 또는 단편영화를 본 듯했다. 잘 만들어진 필름이 실연하고 있는 무대의 타이밍에 맞춰 적절하게 활용되었고, 출연자의 일관성 있는 표정이 단연 일품이었다.

빨래방이란 공간에서 일어나는 또는 일어났던 상상 그리고 현실 속의 이야기가 50분이라는 시간 동안 편안했다. 순간 스치는 찌푸림도 있었지만 그것 또한 평범한 시간 속에 있는 지나갈 에피소드라 생각하면 크게 거슬리지 않고 지나갈 수 있다 생각한다.

시작 전에 느낀 세트의 도회적인 분위기와 엉뚱한 아이디어로 공감을 일으키는 오브제의 활용이 이제는 모므로움직임연구소 연출자의 취향을 확실히 드러낸 작품이라 생각한다. 두 차례 출연자의 솔로 움직임과 훌라춤 그리고 상황을 뚜렷하게 인지할 수 있는 영상 그리고 토막 내어 보면 쉬운 조각들이 무용공연이라는 장르로 합쳐져 다가왔을 때, 이 작품은 연출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힘을 발휘하는 듯하다.

 

'빨래방' 공연현장 (사진제공=안겸)
'빨래방' 공연현장 © 류진욱

어딘가 모르게 쓸쓸하고 외로운 출연자의 표정이 여전히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동네 빨래방에 가면 분명히 있을 것 같은 그 표정이, 또는 그 일상이. 그녀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아닌 ‘혼족’들에게 전하는 담백하고 편안한 위로일지도.

김리하 무용가
김리하 무용가
faustina42930@gmail.com
세종대 현대무용 전공. 대구시립무용단 무용수로 활동했다. 실연하는 순간의 매력도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그 순간을 기록하고 전달하는 일에도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다른기사 보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