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정 칼럼] 펜으로 쓰는 춤(24) - 방목한 아들의 성장기
[김윤정 칼럼] 펜으로 쓰는 춤(24) - 방목한 아들의 성장기
  • 김윤정 무용가
  • 승인 2022.11.05 15: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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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시내 (사진=김윤정)
베를린 시내 (사진=김윤정)

[더프리뷰=뒤셀도르프] 교육에 정답은 없다. 나도 자식을 키워봤고 네덜란드에서, 독일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느낀 것이 어떤 방식의 딱 떨어지는 교육법은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개개인의 타고난 유전적 성향과 각자의 다양한 가족적, 사회적 환경이 다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부모의 교육을 받고 자라도 형제들이 제각각 다르게 받아들이고 다른 성향으로 자라는 것처럼, 어떤 특정한 교육법이 모두에게 통하는 길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교육에 관한 성공담(?) 또는 일반화된 교육법에 관한 책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다만 나의 아들의 성장과정을 보면서 개인적인 경험과 주변을 보면서 느꼈던 이야기들을 해보려 한다.

내 부모님 세대와 지금 나처럼 중년인 사람들이 부모이던 세대, 그리고 요즘 젊은 부모들의 세대는 확실히 다르다. 늘 사회적 배경과 가치는 변하고 있고 시대에 따라 아이들이 선호하는 직업도 다양하게 변하고 있으니 말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요즘 초등학생들이 가장 되고 싶은 것이 유튜버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나도 친구 중에 인플루언서가 있어서 그런 일들을 살짝 들여다보기도 했었다.

그렇게 모두가 인터넷으로 돈을 버는 직업을 갖는다면 나중에 우리가 먹는 빵과 곡식은, 필요한 도구들은 누가 만들 것인가 하는 구세대적인(?) 의문이 들지만 늘 세상은 문제가 있어 보이고 심각해 보여도 어떻게든 난관을 헤쳐 나갔던 것 같다.

세대 간의 차이나 상황을 비교하고 말하는 것은 사실 그다지 의미가 없다. 우리 부모님들 세대는 먹고 살기 바쁜 시대였으므로 당신들이 하지 못한 공부를 자식들에게 시킬 수 있는 것만으로도 부모 역할을 하는 시대였다.

누군가는 요즘 세대를 그야말로 전쟁도 배고픔도 없는 황금기에 자라난 세대라고도 하고 또 누군가는 더욱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너무 힘든 세대라고도 한다.

요즘 사람들의 양육과 교육 방식을 보면 그야말로 아이들이 어떻게 놀고 어떻게 학습을 하는 것까지 프로그래밍하여 하루하루의 일정을 총 관리할 뿐만 아니라 부모는 친구라는 개념으로 모든 걸 함께 나누고 인생의 진로까지 함께해주려는 모습들을 본다. 아이들이 그저 심심하게(?) 있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스스로 놀거리를 찾고 생각할 틈조차 주지 않는다.

 

베를린 시내 카페에서 (사진=김윤정)
베를린 시내 카페에서 아들과 (사진제공=김윤정)

어찌 보면 그런 요즘 부모들이 참으로 이상적(?)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또 누군가는 우리 부모들이 거의 대부분 친구가 되어주지 않았어도 우리는 알아서 잘 컸다고 한다. 우리 세대에 훌륭하게 성장하거나 성공한 이들은 수없이 많다. 그런 걸 보면 교육은 이래야 한다는 정답은 역시나 없는 듯하다. 어디선가 봤는데 부모의 손을 완전히 떠나 혼자서 낯선 곳을 갔던 기억이 언제인가를 조사한 결과가 있었다. 놀랍게도 13 또는 14세(만 12, 13세)이다. 실제로 현대의 젊은이들이 그만큼 독립이 늦어지고 있다는 어느 연구를 보았다. 그러니까 신체가 어른이 되어도 실제로 독립된 어른이 되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이 그만큼 늦어졌다는 것이다.

위에서 나는 성공한 이들이 수없이 많다고 했는데 나는 성공이란 단어를 쓸 때마다 사실 조심스럽다. 성공의 정의나 의미는 너무나 주관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공이라고 하면 으레 떠올리는 프레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느 누군가 또는 대다수가 말하는 성공이라는 것과 비교하게 됨으로써 그런 카테고리에 들어가지 못하면 낙오자처럼 인식하고, 멀쩡한 젊은 사람들이 불행해진다. 그런데 사실 나는 이제서야 내 인생의 주제는 무엇일까를 찾기 시작하는데 우리는 얼마나 “너는 할 수 있다“라는 반(半)폭력적인 조언으로 젊은 사람들을 밀어 붙이고 부모들의 바람을 아이들에게 심고 싶어 하는가? 심지어 어린아이들에게조차 말이다. 그런데 나 자신도 아이를 교육하면서 그런 오류에 잠시 빠지기도 했었다. 내면에서 은근히 아들이 예술가가 되기보다는 좀 더 안정적인 직업을 갖는 삶을 살면 어떨까 하고, 아들 앞에서 말을 한 적은 없었지만, 잠시나마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성적표에 예민하던 때도 있었다. 지나고 보면 참으로 어리석은 순간이었다.

 

서울 리움 뮤지엄에서 (사진=김윤정)
유진이. 서울 리움 뮤지엄에서 (사진=김윤정)

사실 우리 모두가 자식들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교육을 시키지만 과연 그 성공의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는 성공이라는 개념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요즘처럼 치열한 경쟁의 시대에 젊은이들에게 희망이 없다고 하는데 그 관점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학과목에 행복이란? 자기 인생의 주제를 찾아가는 여정이란? 뭐 이런 과목이 있으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세상은 우리가 그것을 인지하고 인식하는 대로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면 어떨까? 그래서 인생을 각자의 방식으로 과정을 즐기면서 행복하게 독립적으로 살 수 있는 길이 무한하게 다양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면 어떨까?

“인생은 폭풍우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균형을 잡을 것인가이며 무엇을 보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느끼는가이다. 영혼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외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류시화)

나는 독일로 유학을 간다고 했을 때 주변에 나를 아끼는 스승님들로부터 우리나라는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와야 그 학위를 더 인정받을 수 있으니 잘 생각해 보라는 조언을 들었었다. 그러니까 그 시절 유학을 간다는 것은 학위를 받고 돌아와서 교수가 되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적인 것들이 내 부모와 스승님들에게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내가 미국에서 박사학위까지 밟고 돌아와서 한국에서 교수가 되어 안정적인 삶을 살았다면 내가 살아온 이 값진 모험의 시간들은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나의 이 위태로운 삶을 소중하게 사랑하면서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어떤 안정적인 삶과도 바꾸고 싶지 않다.

 

코로나 직전 콘서트 리허설 중인 유진 (사진=김윤정)
코로나 직전 콘서트 리허설 중인 유진. (사진=김윤정)

베를린에서 음악을 하는 아들

김나지움에서 아비투어(대학입학 자격시험)를 마치고 갭이어(Gap year,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기 전 1년 간 해외에서 경험을 쌓는 기간) 기간에 세상을 떠돌다가 돌아와 대학을 들어간 아들이 어느 날 대학을 그만두고 음악을 하겠다고 선언을 했다. 나는 공연으로, 또 아들은 교환학생으로 서로 자주 떨어져 지냈었지만 그렇게 아들이 막상 자기의 길을 가겠다고 떠나는 날은 복잡미묘한 감정들이 교차했다. 독일에서는 “대학을 가기 위해 집을 떠나는 아이들과의 작별이 슬프지만 더 슬픈 건 그 아이들이 다시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니까 대학생이 되면 일단 성인으로서 독립의 길을 간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담담한 듯해도 심란해 하는 나의 마음을 눈치 챈 아들이 어른스럽게 나를 위로한다는 말이 재미있었다. 자기 친구들 중에 부모님 집을 나와 독립한 친구가 하는 말이 가족과 따로 살게 되면서 비로소 진짜 가족이 되었다는 것이다. 함께 살 때는 서로 스트레스 받고 짜증도 내고 하던 관계가 떨어져 살면서 서로 애틋하게 되었고 오히려 만나면 더 제대로 대화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나는 가끔 아들이 있는 베를린을 방문하고 아들도 크리스마스 때나 집에 오는데 거리가 멀다보니 정말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그렇게 만나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더욱 애틋하고 대화도 더 심도 있게, 더 많이 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들을 만나면 온 세상을 떠돌면서 공연을 다니던 나의 이십대 시절을 떠올리며 베를린 한복판에서 아들과 아들 친구들이 사는 모습을 관찰하는 재미가 있었다. 아들은 동베를린 프리드리히스하인(Friedrichshain)이라는 동네에 살고 있었는데 일단 옛날식 건물이어서 천장이 무지 높고 낡은 나무 바닥에 커다란 창문 밖으로 오래된 나무들이 보여 분위기는 아주 좋았다. 스튜디오를 겸한 아들의 집은 젊은이들의 꿈과 열정 그리고 그들이 추구하는 지성과 자유가 역동적으로 꿈틀대고 있었고 그 한복판에 끼어들어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했다. 흐트러지고 지저분한 먼지조차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과 햇살과 뒤섞이어 그냥 누구라도 시인이 될 것 같았고 굶어 죽어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하고 사랑과 낭만을 위해 목숨을 바쳐도 좋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베를린이라는 도시도 어딘가 정리되고 딱딱한 독일의 다른 도시들에 비하면 거의 아나히 같은 자유분방한 분위기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어느 무시점(無視點)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듯했다.

 

아들 집 (사진=김윤정)
아들 집에서 (사진=김윤정)

베를린 시내는 방을 구한다는 게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처럼 힘든 곳이다. 처음 아들이 베를린에서 오랫동안 집을 구하지 못하고 떠돌고 있을 때 큰 음악 레이블 회사를 운영하시는 부모님이 아파트를 사줬다는 친구의 집에 방을 하나 빌려 집세를 내면서 몇 달간 있었을 때였다. 나는 “그 친구는 아직 이십대인데 벌써 자기 집이 있는 거네?“라고 했더니만 “그래도 난 그 친구가 좀 안된 것 같아. 그 친구의 정체성은 아직은 그냥 부잣집 아들이야. 나는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음악으로 내 인생을 찾아가고 있는 내 자신이 자랑스러워.”라고 말하는, 그리고 진심으로 그렇게 느끼고 있는 아들이 대견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들은 이야기이지만 베를린에 처음 도착해서 일이 년은 돈이 없어 굶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자신의 음악으로 집세를 내고 갖고 싶은 것들을 사고 가끔은 여친에게 멋진 저녁도 사줄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나는 깜짝 놀라 굶을 만큼이었을 때 당연히 엄마한테 이야기를 했어야지 왜 그랬어? 했더니 “엄마 내가 그럴 때 굶어 보고 가난해 보지 또 언제 그럴 수 있었겠어?”라고 한다. 내가 늘 강조하듯이 인생은 과정이다. 열정을 다해 즐기고 사랑하면서 건강하게 자신의 삶을 즐길 만큼만 독립적으로 살 수 있다면 그 이상의 성공이 있을까?

 

김윤정의 Inter-View 1.5 (c) 옥상훈
김윤정 'Inter-View 1.5' (c) 옥상훈

일하는 엄마

내 스스로 평가할 때 솔직히 나는 그다지 이상적인 엄마는 아니었다. 아이가 한창 엄마를 필요로 할 때 유난히 공연들이 많았고 해외연수에, 강의에 집을 많이 비워야 했다.

먼 길을 떠나야 하는 날이 오면 아이가 집 문을 열 때 엄마가 안에 없다는 느낌이 너무 이상하다고 말하던 그 아릿한 순간에도 어린 아들에게 알아듣거나 말거나 “미안해! 그런데 엄마가 즐겁게 일하고 행복해야 엄마의 행복을 너에게 줄 수가 있어”라고 했었다. 그리고 집을 떠나면 아이 걱정은 뒤로 한 채 내 일들을 했었고 그리고 몇 달 만에 집에 돌아오면 물론 그 시간 만큼은 아들에게 집중하는 시간이었다. 이상적인 엄마의 상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인들이 어떻게 아들이 그렇게 일찍 자기 길을 찾고 잘 컸느냐는 말에는 내가 바빠서 방목한 덕분이라고 농담반 진담반 하곤 했는데, 사실 스스로 제대로 하지 않으면 자신을 책임져 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 면들이 분명히 일조를 했을 것이라고, 나는 스스로 나의 죄책감에 변명을 찾는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물론 나는 운이 좋았다. 집을 자주 비워야 했기에 아이를 때로는 엄마에게, 때로는 독일 친구들에게 맡기고 다녀야 했는데 모두들 나의 일을 이해해주고 도와준 덕분이라는 감사함을 잊지 않으려 한다.

 

어린시절 (사진=김윤정)
어린 시절의 유진. (사진=김윤정)

아들의 성장기

나는 아이가 어린 시절부터 친구들이 집에 와서 함께 놀다가 누가 울거나 잠시 싸움이 벌어져도 되도록 살짝 누군가 크게 다친 정도인지 아닌지만 들여다보고 모른 척하고 내버려 두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아이들 사이에서도 다 해결이 된다. 한동안 울고 난리를 치다가 어느덧 다시 함께 놀고 있는 것이다. 되도록 아이들 세계에 끼어들지 않으면 알아서 자기들끼리 해결을 하고 자연스럽게 제자리를 찾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아이가 학교에서 부당한 일을 당했다고 말할 때는 네가 커서 세상에 나가면 진짜 세상은 그보다 훨씬 더 부당한 일들이 많을 거라고 했다. 그런데 부당함은 반대로 자기가 이익을 볼 때는 상대가 받는 부당함은 보이지 않을 때가 있으니 조심해야 하고 때로는 그 부당함을 인정하기도 해야 하고 또 맞서 싸워야 할 때도 있다고 했었다. 아이가 중학교 시절 미국에 교환학생으로 가 있을 때는 호스트 마마로부터 수학 성적이 떨어졌기 때문에 당분간 하교 후 외출금지를 당했다며 자기는 미국에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 온 게 아니고 넓게 친구들도 사귀고 미국을 알기 위해 왔으니 호스트 마마에게 이야기를 해달라고 도움을 요청했을 때도 나는 네가 처한 상황과 시간과 공간 안에서는 네가 스스로 소통하고 해결해야 한다고 부드럽게, 단호하게 사랑을 담아 이야기해주었었다. 결국 아이는 스스로 소통해야 해결된다는 것을 일찌기 배우고 깨달았을 것이다. 그리고 물론 나는 후에 미국 호스트 마마에게 어떻게 두 사람이 슬기롭게 해결을 했는지를 들었다. 그녀는 아주 친절하고 사랑이 넘치는 미국의 중산층 워킹 맘 이었다.

그리고 아이는 독일에 있는 일본초등학교를 다니다 인문학교(김나지움)로 들어가면서 독일어 문법을 따로 공부해야 했고, 김나지움에 가서도 방과 후에는 일본어 학교까지 다녀야 했다. 그때도 국적이 각기 다른 아빠 엄마의 자식으로 태어나 외국에서 살게 된 것은 너의 운명이고 그럼으로 해서 학교도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더 복잡하게 다니게 된 것은 너의 특별한 운명이니 받아들이고 그 특별함을 장점으로 키워야 한다고도 했었다. 갭 이어를 하는 동안 호주에서 직업 소개사로부터 사기를 당했다면서 억울해 하는 아들에게 사기를 당하면 네 안에 그 사기성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해서 그 순간은 아이를 열 받게(?) 했었다. 아이는 정식으로 일을 찾는 절차보다는 좀 더 쉽고 빠르게 이익을 보려다가 당했음을 깨달으면서 결국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는 그 상대방을 탓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 안에서 문제점을 찾게 되었을 것이다.

 

네덜란드 로이문트에서 (사진=김윤정)
네덜란드 로이문트에서 (사진제공=김윤정)

언제나 나의 상황과 주변 사람들은 내 자신의 거울이기도 하다고 나는 이야기해왔다.

가끔 주변 지인들이 아들이 그렇게 여러 개의 언어를 하고 일찍 자기 길을 찾고 독립적으로 커서 좋겠다고 한다. 그런데 나에게 가장 감사한 건 무엇보다 아들의 정신이 건강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길을 잃고 헤매거나 실패를 해도 정신이 건강하면 언제고 일어날 힘을 얻게 되지만 정신이 나약하거나 병들면 그것이야말로 더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강인한 정신은 무조건 네 편이라는 맹목적인 사랑과 지지보다는 스스로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하며 그 길은 아주 다양하고 끝 없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자신을 만나고 바라보기를 즐기며 꿈을 꾸고 행복하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아들이 너무 감사하다. 단단한 물질조차도 에너지로 되어 있기에 믿음이란 것이 가장 센 에너지라며 자신을 믿고 자신의 정체성을 늘 배우는 사람이라는 것에 두게 되면 실패를 해도 자존감을 잃지 않고 늘 발전하게 된다고 말하는 아들, 넌 내 인생의 최고의 작품이며 스승이고 거울이고 사랑이며 선물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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