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글로컬(Glocal)'의 대표적인 모델 '대전십무'
[공연리뷰] '글로컬(Glocal)'의 대표적인 모델 '대전십무'
  • 김혜라 공연평론가
  • 승인 2022.11.18 1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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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혜 '대전십무(大田十舞)' (사진제공=정은혜)
정은혜 '대전십무(大田十舞)' (사진제공=정은혜)

[더프리뷰=대전] 김혜라 무용평론가 = <대전십무(大田十舞)>는 대전의 자연환경과 역사성을 거시적인 시각으로 관망하면서도 지역에서 유래된 설화와 사람들의 삶을 춤으로 풀어낸 정은혜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정은혜는 한국 전통춤의 뿌리를 지키면서도 동시대의 문제와 호흡하며 지역성을 포괄하는 방향으로 춤을 추고 만들어 왔다. 27년째 대전에서 정은혜 민족무용단 예술감독으로, 교육자로 또한 안무가이자 춤꾼으로 활약하고 있는 그녀가 추구하는 작업의 방향성이 구현된 이 작품은 여러 해를 거듭하며 재공연될 만큼 대전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정은혜 '대전십무(大田十舞)' (사진제공=정은혜)
정은혜 '대전십무(大田十舞)' (사진제공=정은혜)

이를 증명하듯, 2022년 대전 세계지방정부연합(UCLG) 총회 기념공연으로 선보인 <대전십무>(10월 13일 대전청소년문화센터 대극장)는 단순 축하공연에만 머무르지 않고 변화를 모색하며 기존의 레퍼토리에 안주하지 않았다.

대전을 주제로 창작된 10편의 소품이 파노라마식으로 펼쳐진 <대전십무>는 역사와 시간을 거슬러 대장정을 떠나듯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아우르는 대서사적 흐름으로 구성되었다. ‘본향’ ‘갑천’ ‘계족산 판타지’ ‘취금헌무’ ‘대바라춤’ ‘한밭 규수춤’ ‘대전 양반춤’ ‘한밭 북춤’ ‘과학과 북의 만남’ ‘다시 본향’ 순으로 대전 지역의 명칭(갑천, 계족산, 한밭)과 유래이긴 하나, 춤에 담긴 의미는 보편적인 삶의 모습으로 한국인의 뿌리와 문화가 스며들어 있다. 전쟁과 사랑, 평화의 기원과 벽사진경, 유희와 해원, 위로와 미래를 상징하는 춤은 학춤과 바라춤, 양반춤, 산조 같은 전통춤의 형식과 적절한 현대적 극장의 판타지로 자연스럽게 서사가 마련된다. 특히 여러 모습으로 변주된 학춤이 전체 작품의 근간을 잡으면서도 해체적인 면모를 보이며 현대적인 이미지성을 확보한 것이 눈에 띄는 변화이다.

정은혜 '대전십무(大田十舞)' (사진제공=정은혜)
정은혜 '대전십무(大田十舞)' (사진제공=정은혜)

김천흥 선생께 전수받은 학춤을 토대로 정은혜는 2000년 초반부터 유성 지역 학춤 설화를 접목시킨 작품 <유성의 혼불>(2001)을 선보였고, 특히 학 탈과 의상을 직접 제작하며 학의 생태적인 습성부터 고서(古書)에 학과 관련된 이야기까지 수집해 왔다. <학춤의 역사적 생성과 미>란 책도 발간하며 오랜 기간 학춤을 연구해 온 학자다운 면모까지 보여 왔다. 비교적 최근에 선보였던 <날개, 학>(2021)도 냉전의 현장이자 학의 서식지인 비무장지대(DMZ)에서 벌어진 사건(철새평화타운에서 상처를 치료 받던 학 한 쌍을 방사했다. 암컷은 부상으로 날지 못했으나, 5개월 후 수컷이 다시 타운으로 찾아왔다)을 중심으로 분단의 아픔과 통일을 염원한 시의성 있는 창작 무용극으로 학춤을 변용하였다.

정은혜 '대전십무(大田十舞)' (사진제공=정은혜)
정은혜 '대전십무(大田十舞)' (사진제공=정은혜)

이와 같이 학춤에 천착한 일련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이번 <대전십무>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변화는 학의 외형이 해체되는 과정이었다. 초반부에는 학 탈만이 등장하고 중반부에는 학의 날개와 몸통으로, 후반부에는 깃털의 상징성으로 구성된 춤은 단조로울 수 있는 10개의 소품을 탯줄로 연결하여 숨 쉬게 한다고 해야 할까. 마치 신물이라는 신화적 판타지를 거슬러 학에 투영된 인고의 삶으로, 그리고 한 없이 가벼워진 깃털로 이를 테면 신화적 가상성에서 실존적인 현실의 삶으로 나아가 본향인 정신세계로 이어지는 경로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첫 장면에서부터 정은혜는 원형의 조명 밖 의자에 앉아 옴니버스 식으로 펼쳐지는 소품을 제3자의 시선으로 응시하고 마무리도 동일하게 한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삶을 관통하는 안무가의 관록이 작품의 큰 줄기로 짚어진다. 본향에서 시작해서 본향으로 마무리되는 한국적인 자연관과 춤 세계관이 전체 작품에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부분적으로 소품을 살펴보자. 한국창작춤에서 무대공간을 적극 활용하는 연출은 안무가들이 주로 쓰는 문법으로, 이 작품에서도 유사한 경향이 짚어진다. 전통춤 동작이 현대적인 이미지로 보이기 위한 ‘극적 표현’ 개발이 그것으로, 시각적 형태감으로 표현적 형식미를 획득하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취금헌무’나 ‘양반춤’에서 양반의 기품이 응축된 춤을 중심으로 군무진이 원형 바닥에서 에너지를 확장시키는 스타일이 대표적이다. 농묵(濃墨)에서 담묵(淡墨)으로 흩뿌려진 붓놀림의 흔적 위에서 춤도 시지각적 확산과 질감을 동일하게 펼치면서 모던하고 입체적인 미감을 확보하는 것도 그러하다. 또한 갓을 쓰고 검정 슈트를 입은 군무진의 형상도 남성무의 호방한 기력이 배가되는 에너지로 극장의 판타지와 합을 맞춰 외연을 넓혔다.

정은혜 '대전십무(大田十舞)' (사진제공=정은혜)
정은혜 '대전십무(大田十舞)' (사진제공=정은혜)

시대적인 감각을 취하면서도 전통춤의 정신과 상징성을 고수한 소품도 기억할 만하다. ‘대바라춤’이 그것으로 바라춤의 경건과 축원의 의미가 형상적 정갈함과 중후한 무게감으로 깊숙하게 울린다. 또한 가장 파격적인 장면은 ‘호연재를 그리다’의 듀엣이다. 의상부터 학의 목이 꺾인 채 몸통과 날개만을 걸치고 추는 춤은 학을 빗댄 춤꾼의 내적 갈등과 고뇌이며 동시에 고고한 외형 이면에서 현대인의 초상을 대입해 볼 여지도 있었다. 일련의 10개의 소품은 프로시니엄 무대에서 과감하게 공간을 축소해서 원형 조명 공간에서 펼쳐진다. 마치 지구의 형상일 수도 있고, 시계추가 돌아가는 시간성과 태극의 원형으로도 해석할 만한 영상 오브제이다. 원형의 조명 아래에서 각각의 소품들은 저마다의 서사로 독립성을 유지하되 전체적으로는 부분적 통합을 이뤄내며 광폭의 시간성(역사성)을 수용한다.

정은혜 '대전십무(大田十舞)' (사진제공=정은혜)
정은혜 '대전십무(大田十舞)' (사진제공=정은혜)

반면, 많은 한국창작춤에서 ‘현대’를 표명하는 방식으로 의상에 할애하는 부분도 발견된다. 과거와 현대의 시공간성과 현존을 외형적으로 어필하려는 것으로 이해되나, 각각의 소품에서 거의 전통복장과 슈트와 드레스를 겹쳐 입거나 교차적으로 입은 모습이 작품의 의미와 깊이를 오히려 희석시켰다. 이 작품이 과거부터 현재의 시간으로 구성된 만큼 전통복장과 천의 질감이 무겁지 않은 세련된 오늘의 복장으로 확연하게 구분 짓는 방법도 고려해 볼 만하다. 덧붙여 팬데믹을 극복하려는 의도로 추는 북춤에서 의사 가운을 입은 부분도 동일하게 단순한 접근이다. 또한 과학기술을 선도하는 대전의 이미지를 로봇 인간 춤으로 천진하게 형상화하여 대중에게는 친숙할 수 있으나, 필자는 이 부분이 기술적인 도움을 받거나 영상 클립을 활용하여 진보적으로 접근하면 더욱 설득력이 있겠다 싶다.

<대전십무>가 매번 변화를 모색하며 발전하는 미덕을 갖춘 만큼 지역의 소재와 전통춤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시대적 공감대에 적확한 현대적 문법을 더 개발한다면 글로컬(Glocal)한 모델로 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서사와 서정성, 한국적 정신과 문화적 상징성 그리고 지역 설화의 친근성과 공동체적 결속력이 포괄적으로 수용된 작품이 과거의 유산을 진취적으로 해체하여(학춤의 변주 같이) 오늘의 감성으로 매개되길 기대한다. 동시대는 그야말로 글로컬한 시대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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