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핫 참관기-1] 북유럽 다섯 나라의 핫한 춤들
[아이스핫 참관기-1] 북유럽 다섯 나라의 핫한 춤들
  • 손인영
  • 승인 2024.04.06 23: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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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슬로 오페라극장 (사진=손인영)

[더프리뷰=오슬로] 손인영 무용가/전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 지난 2월 13일, 암스테르담을 거쳐 도착한 오슬로(Oslo)는 눈의 도시였다. 유럽 무용계의 흐름을 보기 위해 긴 시간 한달음에 달려왔다.

유럽의 무용계는 인근 국가들이 연합해서 또는 자신들 나라만의 무용 작품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댄스 플랫폼(Dance Platform)을 통해 세계 무용계의 추세를 변화시키고 있다. 격년으로 열리는 유럽의 플랫폼들은 올해는 일정을 서로 연결해 펼쳐졌다.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등 발트 3개국이 연합한 발틱 댄스 플랫폼(2월 10-12일), 노르딕 국가들의 아이스 핫(14-17일), 독일 탄츠 플랫폼(21-25일), 스위스 컨템퍼러리 댄스 데이즈(2월 28-3월 3일)가 잇따라 열렸다. 무용 작품을 찾는 전 세계의 축제감독과 극장감독들에게는 짧은 기간에 많은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선호도가 높아 보였다. 필자는 발틱 댄스 플랫폼을 제외한 3개 플랫폼을 참관했다.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아이슬란드의 가장 핫한 작품들을 선별해 보여준 아이스 핫(ICE HOT)은 올해 일곱 번째로 개최되었다. 공연뿐 아니라 세미나, 워크숍, 피칭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서 노르딕 국가들의 무용예술을 진단하고 세계 무용계에 도전장을 내미는 중요한 행사였다.

올해는 크고 작은 극장에서 21개 작품이 공연되었고, 피칭 세션인 ‘More and More’는 하루에 6개씩 18개 단체가 프리젠테이션을 했으며. 7개의 세미나와 4개의 워크숍이 열렸다. 공연이나 세션을 포함한 프로그램 편성에는 노르딕 국가들 간의 형평성을 고려한 양보와 타협이 있었다.

극장을 오가는 무용관계자들 (사진제공=손인영)
극장을 오가는 델리게이트들 (사진=손인영)

‘아이스 핫’은 핫했다. 전체적인 공연 분위기는 실험적이고 열정적이었으며, 성 소수자나 이민자들까지 배려했고, 테크놀로지의 접목까지 폭넓게 펼쳐졌다. 37개국에서 찾아온 329명의 델리게이트와 189명의 무용예술가들로 극장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동아시아인들은 많지 않았다. 홍콩과 한국인 외에는 보이지 않았다. 주로 노르딕 국가와 유럽의 관계자들이 많았지만, 아프리카, 남미, 캐나다와 미국의 관계자들도 제법 보였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아이스 핫은, 유럽의 춤 경향이 늘 그렇듯, 의미 없는 춤의 나열에는 인색하고 예술로서의 춤에 초점을 두었다. 댄스 씨어터적이며, 텍스트 위주의 공연과 추상적 의미 전달에 집중하며, 콘셉트가 명확했다.

첫날인 2월 14일 첫 프로그램으로 노르딕 국가 간의 문화협력과 지원에 관한 세미나가 있었다. 노르딕 국가의 문화예술 부문 공무원들이 무용과 관련해서 어떤 지원과 협력들이 있는지에 대해 얘기했다. 일종의 네트워크의 현장이었다.

세미나가 끝나자 다과와 더불어 자유로운 대화가 이루어졌다. 자연적으로 동양인들이 눈이 들어왔다. 홍콩서 온 분들과 대화하고 오슬로에서 활동하는 안무가, 덴마크 문화부 공무원과도 대화를 나눴다. 첫날부터 주최 측은 네트워킹을 유도했다.

오후 4시 공연이 시작되었다. 매일 5-6개 정도의 공연이 열리고 관객들은 일정을 정해 공연을 관람하는데, 모든 공연을 보려면 거의 하루에 4개 작품 정도를 봐야 했다.

댄스 하우스 건물외관 (사진제공=손인영)
오슬로 댄스 하우스(Dansens Hus) 건물 외관 (사진=손인영)

첫 공연은 춤 전용 극장인 댄스 하우스(Dansens Hus)의 블랙박스 극장에서 열렸다. 하랄드 베하리(Harald Beharie)의 솔로 공연 <Batty Bwoy(베티 브로이)>가 첫 작품이었다. 이 작품을 개막작으로 선정한 주최 측의 의도는 공연이 끝난 후에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만큼 공연은 강렬했다.

베하리 (사진제공=손인영)
베하리(Harald Beharie)의 솔로 공연 <Batty Bwoy(베티 브로이)> (사진제공=손인영)

베하리는 자메이카 출신으로 노르웨이에서 활동하는 무용가다. 소수자에 대한 배려는 유럽에서 중요하게 인식되며, 특히 퀴어에 대한 관심은 팽팽하다. 이 작품의 제목은 퀴어를 뜻하며 자메이카의 속어라고 한다.

<베티 브로이>는 성별을 무시함과 동시에 동물과 인간의 중간 정도에서 폭발적인 에너지를 구사하는 실험적인 작품이었다. 블랙박스의 관객석은 객석 사이에서 무용수가 움직일 수 있도록 배치했다. 디자인이 독특한 빨간 탁자 앞에서 긴 머리를 바닥에 늘어뜨리고 옷을 벗은 베하리는 자신의 몸에 침을 뱉고 바닥을 핥기도 하고, 미친 듯이 긴 머리를 원형으로 돌리며 객석 사이를 달리고 넘어지며 헉헉거렸다.

베하리(Harald Beharie)의 솔로 공연 <Batty Bwoy(베티 브로이)> (사진제공=손인영)

공연 중반이 지날 때 쯤 긴 가발을 벗은 베하리의 몸은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완전한 자유의 모습이었다. 처절하게 자신을 학대함으로써 스스로 해방된 신체가 되어 인간의 가장 원형적/성적인 자세로 강렬하게 자신의 매력을 보이고, 완전히 벗은 가장 순수한 모습으로 관객을 주시하며 천천히 걸었다.

노르웨이에서 여러 상을 받은 작품답게 이번 아이스 핫의 가장 획기적인 공연이었다. 폭발적인 에너지와 거침없는 그의 연기는 섬뜩할 정도였다. 공연이 끝나자 관객들은 환호와 박수갈채를 퍼부었다.

실라 (사진제공=손인영)
사라 아비아자 하메켄(Sarah Aviaja Hammeken)의 <실라(SILA)> (사진제공=손인영)

같은 날 밤에 공연된 그린란드계의 덴마크 안무자 사라 아비아자 하메켄(Sarah Aviaja Hammeken)의 <실라(SILA)>는 그린란드 신화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작품으로 세 무용수의 춤이 돋보였던 작품이다. 거대한 그물이 무대 전체를 장악하고 그 사이를 미끄러지듯 넘나들며 춤을 추는 무용수들의 흐름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유럽 무용계에서 춤은 늘 그렇듯 특별히 환영받지 못했다.

https://www.icehotnordicdance.com/event/aviaja/

소냐 린드포스(Sonya Lindfors)의 <한 방울(One Drop)> (사진제공=손인영)

첫날 마지막 공연인 <한 방울(One Drop)>은 흑인들의 인권옹호에 앞장서는 핀란드 안무가 소냐 린드포스(Sonya Lindfors)의 작품이다. <One Drop>의 의미는 흑인의 피 한 방울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내용이었다. 흑인에 대한 차별, 자본주의와 근대화에 이견을 내며 백인 우월성에 대한 문제를 다루었는데,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소냐 린드포스는 전 세계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출신 예술가들로 구성된 워킹그룹과의 협업을 통해 작품을 만들었다.

작품은 레게 음악으로 시작하고 무용수들은 다양한 색깔과 디자인의 의상을 입고 규칙이나 질서가 전혀 없는 몸짓들을 이어간다. 독백을 통해 의미를 전달하거나, 싸움판이 벌어지거나, 국적 없는 춤(행위에 가까운)이 벌어지기도 한다. 춤, 노래, 연기가 난무하며 서구의 문화와 제도에 대한 비판적인 언어와 흑인 예술가들이 서구제도에 적응할 때 직면하는 어려움을 표현하기도 한다.

소냐 린드포스(Sonya Lindfors)의 <한 방울(One Drop)> (사진제공=손인영)

작품은 추상적이고 유머러스하며, 다양한 표현방식의 창의적 접근을 통해 안무가의 의도를 명확하게 전달하고자 반복과 반어법을 빌렸다. 백인에 대한 흑인의 반항이었으나 관객석은 백인으로 가득했으니 약간은 아이로니컬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흑인들 간의 진한 사랑이 느껴지던 무대였다. 백인에 의해 세계의 추세가 변화되어 가는 것에 대한 반감은 흑인이나 동양인이나 마찬가지다.

https://www.icehotnordicdance.com/event/sonya-lindfors/

<more and more> (사진제공=손인영)

다음날. 오전부터 ‘More and More’를 찾았다. 앞으로 사흘에 걸쳐 모두 18명의 안무가 또는 그룹의 피칭 세션이 준비되어 있었다. 안무가들의 작품세계에 대한 설명과 영상이 투사되고 질의응답이 뒤따랐는데, 영상이 너무 짧아 안무가들의 작업을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객석은 빈 자리가 없었다. 유럽의 크고 작은 극장의 관계자들과 전 세계에서 온 게스트들 모두가 프리젠테이션을 즐기고 있는 듯 보였다.

유튜버 공연장릭세넨(Riksscenen) (사진제공=손인영)
공연장 릭세넨(Riksscenen) (사진제공=손인영)

네번째 공연으로 누라 하눌라(Noora Hannula)라는 안무가가 이끄는 노르딕 비스트(Nordic Beasts) 무용단의 <유튜버(The Youtuber)>를 보았다. 덴마크에서 주로 활동하는 이 무용단은 최근 디지털 시대를 반영하는 주제에 집중하며 연구하고 있다.

이 작품 또한 유튜버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핀란드의 숲으로 둘러싸인 외딴곳에 들어가서 실험하는 내용이다. 한 무용수가 실종되면서 공포스러운 미스터리로 변해버리는 터무니없고 황당한 댄스 씨어터 공연이었다.

노르딕 비스트(Nordic Beasts)무용단의 <유튜버(The Youtuber)> (사진제공=손인영)

핸드폰으로 촬영한 영상이 무대에 바로 투사되며, 다양한 연기와 춤을 통해 이야기가 이어졌는데 아이스 핫 공연 중 그나마 춤이 돋보였던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였다.

5명의 젊은 무용수들이 출연하는 이 작품은 스토리가 있는 댄스 씨어터 작품이라 추상성이 약하고 내용이 쉬워 가족공연에 적합할 듯했다. 유튜버 촬영용 핸드폰은 손에서 손으로 전달되고 줌인 또는 줌아웃되면서 신체의 한 부위를 비추기도 하고 무대 전체를 보여주기도 했다. 춤은 유연하고 창의적이었으며 황당무계한 내용은 웃음을 유발하기도 했다. 무용수들의 연기력과 춤이 뛰어나서 댄스 씨어터의 진면목을 보는 듯했다.

https://www.icehotnordicdance.com/event/the-nordic-beasts/

아담 세이드 타히르와 아미다 세이드 타히르(Adam Scid Tahir & Amina Scid Tahir)의 <Several attempts at braiding my way home> (사진제공=손인영)

이어 같은 극장(릭세넨)에서 스웨덴에서 활동하는 아담 세이드 타히르와 아미다 세이드 타히르(Adam Scid Tahir & Amina Scid Tahir)의 작품 <Several attempts at braiding my way home>이 공연되었는데, 이 제목은 번역하기 까다로운 뉘앙스가 있다. ‘집으로 가는 몇 번의 땋기 시도’라는 솔로 작품으로 아담 세이드는 나무와 비슷한 느낌의 무대장치 앞에서 머리를 땋기 시작했다. 그 행위는 한참 동안 지속한다. 머리를 땋는다는 것은 흑인들에게는 일종의 그리움에 대한 표현이라고 한다. 흑인 조상 기억하기, 그리고 몸에서부터 시작하는 머리카락에 의미를 부여하는 아담 세이드는 땋은 머리를 나무와 연결해 바닥에 길게 늘어뜨린 뒤, 무대 상수 쪽으로 가서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빗는 행위를 긴 시간 하고 스카프로 머리를 단정히 묶은 다음 춤을 추기 시작했다.

유연한 춤이라기보다는 어떤 의미를 내포한 움직임들이 차곡차곡 포개지듯 발전적으로 이루어졌으며 나중에는 자유로운 춤으로 변화되었다.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았으며 의미를 해석하기도 쉽지 않았다.

http://https://www.icehotnordicdance.com/event/adam-seid-tahir-amina-seid-tahir/

필립 베를린(Philip Berlin)의 <시나리오(Le Scenario)> (사진제공=손인영)

필립 베를린(Philip Berlin)의 <르 시나리오(Le Scenario)>가 오페라 발레 극장에서 공연되었다. 아이스 핫에 선택되려면 독특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불문율이라도 있는 것인지, 이 작품 또한 상당히 독특했다. 발레에 기본을 둔 이 작품은 전통적인 발레 작품과는 판이했다. 펑크 스타일의 다소 화려한 의상과 쉼 없이 점프를 하는 춤이 필립 베를린의 안무 스타일이었다. 즐겁고 경쾌한 느낌의 음악과 지속해서 뛰면서 무대를 가로지르거나 회전하는 춤 스타일은 본 적이 없는 생경한 것이었고 전체적으로 무용수들은 의미보다 춤에 집중했다. 다섯 명의 남성 무용수가 사슴처럼 방향을 수시로 바꾸고 공간을 뛰어다니며 무대를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는 이 작품은 경쾌하고 아름다웠다.

아이슬란드 댄스 컴퍼니의 <로미오와 줄리엣> (사진제공=손인영)

밤에는 아이슬란드의 대표 무용단인 아이슬란드 댄스 컴퍼니의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이 공연되었다. 이 작품은 에르나 오마르스도티르(Erna Ómarsdóttir) 예술감독의 안무로 셰익스피어 원작과는 완전히 다르게 해석한 작품으로, 아일랜드의 강인함과 원시적 공포감이 느껴졌다.

1부와 2부로 나뉘는데 1부는 발랄하고 흥겹고 유치하기까지 했으나 2부에서는 본격적인 호러와 광폭한 장면들, 또는 창의적이며 흥미로운 장면들이 시종일관 무대를 채웠다. 10명의 무용수에 의해 2시간 동안 열정적으로 펼쳐졌는데, 그 에너지가 대단했다. 마치 북유럽의 무적함대를 보듯 거침이 없었고, 피비린내 나는 난투극과 증오가 난무했다.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Sergei Prokofiev)의 음악은 상처로 가득한 무대를 더 강렬하게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움직임이 대형무대의 화려한 뮤지컬을 보듯 펼쳐져 있었고, 아일랜드의 전통적 정서에 다양한 색감을 과감하게 입힌 듯했다.

http://https://www.icehotnordicdance.com/event/iceland-dance-company/

로미오와 줄리엣의 공연장 배룸 문화센터(Baerum Kulturhus) (사진제공=손인영)

15일 마지막 순서에 편성된 공연은 아이슬란드의 안무가 로비사 오스크 군나르스도티르(Lovisa Osk Gunnarsdottir)의 <출혈이 멈출 때(When the bleeding stops)>였다.

로비사 오스크 군나르스도티르(Lovisa Osk Gunnarsdottir)의 <출혈이 멈출 때(When the bleeding stops)> (사진제공=손인영)

이 작품은 안무가의 개인적인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안무가는 네 살 때 춤을 시작했고, 아일랜드 댄스 컴퍼니에 소속된 촉망받는 무용수였고, 전 세계를 투어하며 세상을 다 가진 듯했으나 상처를 입고 나이 들고 노화가 오면서 절망적이었다고 말하며 춤을 추었다. 결국 절망은 지역 주민들과 더불어 춤을 추면서 삶의 자축으로 승화했다는 내용인데, 안무자의 솔로에 이어 일반인 여성들의 자기 이야기들이 솔직하게 영상으로 보였다. 영상의 여자들은 움직이기 어려운 노인부터 젊은 여자까지 제각각이고 그들이 느끼는 몸과 춤에 관한 생각들을 이야기했다. 결국, 춤은 누구나 즐길 수 있고 출 수 있으며 춤은 기분을 좋게 한다는 내용이었다.

영상에서 각자 자기 나름의 즉흥 춤을 추었는데 누구로부터 배운 적이 없는 스스로의 춤이었음에도 그 자체가 즐거운 유희였다. 마지막에 모든 무용수가 양팔을 벌리고 반원으로 서 있는 장면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각자의 즉흥 춤이 벌어졌는데 객석은 흥으로 가득 찼다.

로비사 오스크 군나르스도티르(Lovisa Osk Gunnarsdottir)의 <출혈이 멈출 때(When the bleeding stops)> (사진제공=손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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