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프리뷰 칼럼] 재미있는 공연이야기 -19 메가뮤지컬(중) 메가뮤지컬과 스펙터클
[더프리뷰 칼럼] 재미있는 공연이야기 -19 메가뮤지컬(중) 메가뮤지컬과 스펙터클
  • 조복행 공연칼럼니스트
  • 승인 2020.10.02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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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20세기의 뮤지컬 제작자들은 뮤지컬의 가장 큰 과제를 ‘통합’(integration)으로 보았다. 각 요소들을 어떻게 적절히 통합할 것인가 하는 것인데, 이를 매체결합의 문제라고 부를 수 있겠다. 뮤지컬의 대중적 인기를 논할 때, 이야기가 흥미롭기 때문이라는 주장은 뮤지컬의 성격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말이다. 『라이온 킹』을 관람하는 이유가 햄릿이라는 희곡의 서사에 매료됐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차라리 재미있는 소설이나 영화를 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뮤지컬의 대중적 인기는 개별적 매체의 우수성, 이들 매체간의 조화로운 결합 그리고 이것이 창조해낸 유기적 총체성의 효과다.

뮤지컬은 오랜 기간의 시행착오를 거쳐서 매체와 기호들을 어떻게 결합하고 어떤 구조와 형식을 취할 것인가를 찾아 나가면서 발전된 연극이다. 감각적 효과를 어떻게 극대화할 것인가, 동시대적 문화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당대적 예술이다. 지금까지의 문명의 결과들을 어떻게 흡수하고, 타문화에 깃든 장점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혼종의 예술이다. 또한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상호예술적 예술이기도 하다. 과도한 칭송인가?

뮤지컬의 3대 요소는 연기, 음악, 춤이고 배우는 이 세 가지를 전부 잘 해내야 한다. 이를 삼위일체(triple threat)라고 부른다. 음악에 중점을 두는 오페라와는 다른 점이다. 조명, 음향, 세트 등의 무대기술 또한 복잡하다. 이들을 어떻게 조화롭게 결합할 것인가? 그래서 뮤지컬 제작은 어려운 일이고 어떤 연출자건 뮤지컬 이전에 작은 연극부터 시작하도록 권유를 받는 것이다. 모든 매체가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작자의 능력이다. 각자의 역할이 ‘ 빈 집에 몰래 들어오는 손님’ 같이, 마치 꿔다 놓은 보릿자루같은 역할에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각 매체들은 최고의 기량과 품질을 지녀야 한다. 우리가 뮤지컬을 라이브로 보려는 것은 잘 조직된 극적 전개, 삼위일체의 배우들, 스펙터클 때문이다.

매체의 결합을 가타리와 들뢰즈의 ‘ 배치’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가타리와 들뢰즈는 생명체를 포함한 세상의 개체들을 ‘기계’로 부르는데, 기계들은 독자적으로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개체들과의 접속, 연결, 분리등에 의해 성질이 바뀐다. 기계는 접속을 통하여 기능이 규정된다. 이 기계들이 접속하여 하나의 선이나 면, 공간을 이루면 이를 배치라고 말한다. 즉 존재나 개체는 다른 개체와의 결합과 배치, 그 관계에 의해 성격이 달라진다. ‘기능들의 재조직과 힘들의 재결집’이 이루어진다( 『천개의 고원』, 609). 매체의 결합은 이런 배치의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그리고 배치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각 매체의 성격을 이해해야 한다. 서사가 음악이나 춤과 결합될 때 또는 여기에 조명과 음향이 추가될 때 각 매체는 개별적 매체의 단순한 합이 아니다. 그들은 독자적으로 기능하기도 하지만 , 더 큰 효과를 산출한다. 게슈탈트 심리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커진다.

뮤지컬의 출발
뮤지컬의 모델은 1850년대에 시작된 유럽의 오페레타라고 한다. 그러나 뮤지컬이 오페레타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미국 뮤지컬의 발전과정은 유럽의 뮤지컬과는 달랐다. 유럽의 오페레타는 프랑스의 오페라 코미크나 독일의 징슈필을 모델로 한 것이다. 즉 음악이 이어지면서 레치타티보라고 부르는 대화체가 중간에 삽입되는 형식으로, 경쾌하고 대중적인 노래들이 주를 이룬다. 이런 점에서 오페레타는 이탈리아의 무거운 오페라와는 다르다. 그러나 오페레타는 음악을 통해서 서사를 전개하려고 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오페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대표적인 오페레타 작곡가인 오펜바흐의 경우는 오페라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오페레타는 1870년대 영국에서 판토마임, 벌레타, 뮤지컬 벌레스크 등의 음악극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반면 미국에서는 크게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1878년에 길버트와 설리번의 <H.M.S 피너포>와 1907년에 프란츠 레하르의 <메리 위도우>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의 반응은 시큰둥했고, 뮤지컬에 대한 영향도 제한적이었다. 그것은 미국의 뮤지컬은 보드빌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검은 마법사(사진=wiki commons)
검은 마법사(사진=wiki commons)

미국 뮤지컬의 기원은 1865년에 제작된 <검은 마법사(Black Crook)>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찬반이론이 있지만, 서사(파우스트와 유사한)가 있고 한 배우가 노래와 춤을 동시에 소화했다는 점에서 뮤지컬의 시초라고 보고 있다. 북 뮤지컬의 형식을 띠고 있었다. 이어서 이 작품과 유사한 여러 작품들이 등장한다. (이 작품의 제목이 어떤 책에는 <검은 갈고리>로, 어떤 책에는 <검은 옷을 입은 괴조>로 번역되어 있다. 필자는 <검은 마법사> 또는 더 정확하게는 <검은 곱추마술사>로 써야 한다고 보는데, 간편하게 검은 마법사로 표기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그 이유는 맨 뒷부분 참조) 그러나 이들 작품들이 바로 오늘날과 같은 근대적인 형식의 뮤지컬로 발전한 것은 아니다. 미국의 뮤지컬은 대중속에 산재해 있던 많은 대중문화, 특히 보드빌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미국에서 보드빌이 인기있는 오락이 되기 전에는 민스트럴 쇼, 벌레스크, 서커스 등의 버라이어티 쇼가 보드빌에 영향을 주었고, 보드빌은 그 후에 뮤지컬의 뿌리가 되었다. 미국의 뮤지컬은 다양한 형태의 버라이어티 쇼와 거기서 출발한 보드빌의 영향을 받아 성장해 왔음을 알 수 있다.

보드빌은 원래 프랑스에서 시작된 것으로 프랑스에서는 오늘날의 시트콤과 유사한 코미디 극이었다. 유명한 사라 베르나르(Sarah Bernhardt)도 출연할만큼 당시의 프랑스인들에게는 매우 인기있는 오락이었다. 보드빌은 19세기 후반에 미국에 도입되었고, 1880년 경부터 50여년 동안 미국 최고의 인기 오락이 되었다. 미국에는 19세기 중후반부터 살롱 콘서트, 기형쇼(freak show), 와일드 웨스트, 서커스 등이 유행했는데 보드빌은 이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자라나 마침내 미국 ‘쇼 비지니스의 심장’ 이 되었다.

보드빌은 콘서트 살롱(concert saloon)에서 시작되었는데, 이는 영국의 뮤직 홀과 유사한 형식의 극장이었다. 춤, 아크로바틱, 저글링, 자전거 묘기 등이 등장하는 버라이어티 쇼였다. 당시 유명했던 야구스타, 오페라 가수, 연극배우, 댄서, 뮤지컬 코미디 스타 등도 출연하였다. 보드빌은 상류층을 위한 빅 타임, 노동자 계층을 위한 스몰 타임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이는 곧 소비자의 경제력과 취향에 따라 공연을 나눈 것으로 보드빌의 조직적인 성격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1920년대까지 영화는 원시적인 기술수준에 머물러 있었고 보드빌은 영화보다 더 인기있는 오락이었다.

보드빌은 ‘개별 공연들이 결합되어 완성된 하나의 엔터테인먼트’로서, 15분 정도 내외의 노래. 춤. 아크로바틱. 저글링 등 다양한 오락을 각각 다른 출연자들이 공연하는 형식이었다. 독립된 공연을 합쳐놓은 옴니버스식의 쇼였던 것이다. 개별 공연들은 자체적으로 완결되는 자기목적적(autotelic) 성격을 지니고 있었고, 이들 공연들이 모여서 커다란 전체를 이루는 것이었다. 보드빌 경영자들은 대중들의 반응에 민감해서 대중들의 외면을 받는 공연은 냉혹하게 하차시켰다. 출연자들은 대중들의 기호를 만족시키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했고, 이는 곧 공연의 질적 향상으로 이어졌다. 보드빌의 인기는 빠른 움직임과 지루하지 않도록 구성한 짧은 퍼포먼스때문이었다. 관객들은 자주 변하는 무대, 자극적인 퍼포먼스에 환호했다. 반면에 출연자들은 대단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끝없는 경쟁속에서 언제 출연이 중단될지 모르는 불안감에 쌓여 있었고, 대중의 기호를 만족시키기 위해 늘 노력해야 했다.

보드빌 극장은 초기에는 매우 혼란스럽고 무질서한 공간이었는데, 토니 패스터(Tony Pastor)가 브로드웨이에 새로운 극장을 건립하면서 관람질서를 통제하기 시작하였다. 흡연과 음주를 금지하였고 소란스런 관극행위도 통제하였다.

보드빌 스타들은 보드빌이 쇠퇴하면서 뮤지컬, 영화, 텔레비전 등으로도 진출하여 미국 대중문화의 뿌리를 이루었다. 뮤지컬은 보드빌의 강한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15-20분 정도의 짧은 공연으로 구성된 보드빌을 모방한 초기 뮤지컬이 빈약한 스토리라인과 플롯을 지녔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사라 베르나르(사진=wiki commons)
사라 베르나르(사진=wiki commons)

 

북 뮤지컬
그러나 버라이어티 쇼에 불과하던 보드빌에 점점 이야기적 요소가 도입되었고, 보드빌의 영향을 받은 뮤지컬에도 드라마적 요소가 삽입되기 시작한다. 그 전의 뮤지컬들은 각 요소들간의 통일성이 없이 잡다하게 섞어놓은 오락이었는데 점점 오늘날과 같은 형식으로 진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어서 뮤지컬 코미디와 북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등장하였다. 북 뮤지컬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노래와 춤이 결합한 형태다. 음악은 서사에 비해서는 이차적이기는 하였지만 극적 움직임을 다이나믹하고 우아하게 이끌어갔으며 관객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역할을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표현을 빌자면 언어에 장식을 다는 것이었다. 뮤지컬이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920년대부터다. 이 때부터 서사(book)를 중심으로 한 통합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대본이 먼저 쓰여지고 여기에 노래와 춤이 결합되는 형식이었다. 이를 북 뮤지컬이라고 부른다. 1927년의 위대한 뮤지컬 <쇼 보트>는 북 뮤지컬의 기원이 되었다. 1920년대에 뮤지컬 넘버는 점점 중요해졌다. 이 시대부터 스타음악(star scores)이 출현하기 시작했고, 유명한 뮤지컬 넘버는 뮤지컬의 인기를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북 뮤지컬의 대표적인 작가는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이다. 이른바 뮤지컬의 황금시대를 이끈 두 작가는 <오클라호마>, <캐러셀>, <왕과 나>, <남태평양>등의 명작을 남겼다. 1943년 <오클라호마>, 1945년의 <캐러셀, Carousel> 은 뮤지컬 황금시대를 여는 역사적 작품으로 남아 있다. 타임지는 1999년에 20세기를 정리하면서 <캐러셀>을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뮤지컬로 선정하였다. 이들 작품들을 통해 뮤지컬의 미래를 예견할 수 있었다.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사진=theatregold.com)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사진=theatregold.com)

 

컨셉트 뮤지컬
1960년대부터 뮤지컬에 새로운 징후가 타나난다. 구성요소들간의 통합이 강화되고 시각적 표현을 중시하는 안무가 겸 연출가의 개념이 등장하고 그림이나 영상요소가 중요시된다. 반면 서사는 점점 약화된다.

- 텍스트로부터의 해방
연극의 중심은 언어다. 텍스트는 연극의 기둥이었고 이를 정확하게 재현하는 것이 연극의 사명이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텍스트 중심적 사유에 사로잡혀 있었다. 텍스트는 문학이며, 문학은 인류의 정신을 고양하는 고급예술이다. 따라서 이야기와 언어로 구성된 진지한 연극 또는 정통연극(legitimate theatre), 대본을 정확히 재현하는 언어극은 연극의 모범이었다. 텍스트 중심적 사고에 젖어있던 이들에게 텍스트로부터 이탈한 연극은 순수연극도 아니고 고급연극도 아니었다. 불순물로 가득한 대중연극일 뿐이었다. 그러나 드라마 연극은 대중의 감성으로부터 점점 멀어져가고 있었다. 두 세 시간동안 한 자리에 앉아서 배우들의 말을 듣고 있는 것은 크나큰 고통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연극의 표현방법을 미메시스와 디에게시스(Diegesis)로 구분했다. 미메시스는 신체적 행위나 연기를 통해 대상을 재현하는 것이고 디에게시스는 말로써 표현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연극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연극이 디에게시스와는 다른 미메시스를 수단으로 생겨났음에도 불구하고 연극은 완결된 허구적 우주, 즉 디에게시스의 우주에서 시작되었다는 이념이 계속 전승되어 왔다(레만, 『포스트 드라마의 연극』, 184). 텍스트 연극의 전통에 길들여진 청중들이 무엇보다도 언어기호를 탈권력화하고, 그에 따른 탈심리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레만, 175). 텍스트에 나타난 이야기를 정확하게 재현하고, 작가의 의도를 포착하는 것. 그것이 연극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그러나 텍스트의 해석, 작가의 숨은 의도를 찾아내는 일은 어렵고 지루하며 많은 지적 노력이 필요하다. 드라마 즉 대본은 문학의 한 갈래로서, 연극은 문학의 시녀 역할을 담당해왔다. 여기서 정전(canon)의 개념이 탄생한다. 세익스피어, 몰리에르, 괴테 등 대가들의 작품은 연극의 모델이 되었다. 이들 작품은 지속적으로 공연되어 왔고 가장 모범적인 드라마 작품으로 추앙되어 왔다. 그래서 전통연극은 문학의 시녀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어서 해석과 극적 재현을 거부하는 연극들이 등장한다. 즉각적 지각과 반응을 유도하는 감각적 연극, 스펙터클의 연극들이 관객들에게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연극이다. 빛, 공간, 색, 그림, 영상, 소리, 움직임과 같은 시각적 요소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영화를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한스 티즈 레만은 이들을 포스트 드라마 연극이라고 부른다. 포스트 드라마 연극에서는 로고스 중심의 위계가 해체되고 드라마의 로고스나 언어 이외의 다른 요소들이 지배적 역할을 하게 된다. 그것은 청각적 차원보다 시각적 차원에 더욱 잘 적용된다. 텍스트가 규제하던 곳에는 시각적 연극이 다양하게 도입된다. 시각적 연극은 배타적이거나 단순히 시각적으로 조직된 극작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텍스트에 종속되지 않았기에 자유롭게 자신의 논리를 발전시킥 수 있는 연극이다. 연극은 이미 오래전 다른 예술들이 관철시켰던 심미적 전개를 따라잡고 있다. 조형예술, 음악, 문학에서 유래된 개념이 포스트드라마 연극을 특징짓는데 사용된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사진이나 영화처럼 복제되는 매체의 영향아래 연극은 자신의 특수성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우리 시대 중요한 연극작품은 종종 조형예술을 배경으로 눈에 띠는 성취를 이룬다.

- 서사에서 스펙터클로
1960년대에 컨셉트 뮤지컬이 등장한다. ‘무대개념’에 기초하여 이야기보다는 컨셉트나 모양과 톤을 중시하는 뮤지컬이다. 여기서 무대개념은 어떤 개념을 중심으로 무대를 어떻게 시각적 공간으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말한다. 이야기의 전개보다는 시각적이고 스펙터클한 연극, 즉 서사보다는 무대를 중시하고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이며 비재현적 무대를 만드는 것이다. 사실적 재현의 굴레에서 벗어나 무대를 역동적인 이미지로 장식하는 것이 뮤지컬 연출가의 임무가 되었다. 연출가는 무대디자인, 춤, 조명, 동작 등을 통합하여 독특한 시각적 효과를 창출하는 감독이 되어야 한다. 마치 영화감독과도 유사한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이야기를 선형적인 방식으로 재현하던 전통적 연극 대신에 구성요소를 총체적으로 결합하여 관객의 시선을 끄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는 레뷔나 버라이어티 쇼에서 보여주던 시각적이고 총체적인 쇼와 유사한 방식이었다. 시간예술로서의 연극을 공간예술적 성격을 강화한 연극이 되는 것이다. 공간을 조화롭게 구성하는 것, 이것이 중요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서사를 도외시하는 것은 아니다. 컨셉트 뮤지컬에서는 서사는 작품을 이끌어가는 기둥이었다. 컨셉트 뮤지컬을 주도한 연출가는 해롤드 프린스였고 작곡가는 앤드류 로이드 웨버였다.

뮤지컬 캐러셀(사진=pinterest.com)
뮤지컬 캐러셀(사진=pinterest.com)

컨셉트 뮤지컬은 당시로서는 아방가르드적 뮤지컬이었다. 해롤드 프린스는 컨셉트 뮤지컬과 메가뮤지컬의 창시자이다. 그는 팝 친화적인 음악속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을 선호하였다. 웨버는 극적 전개나 심리묘사와 같은 전통적 연극방식에서 벗어나 팝이나 락과 같은 대중적인 음악을 사용하여 이야기를 전개하는 회화적 방식을 택하였다. 서사보다는 시각적 효과, 플롯보다는 주제나 이념을 강조한다. 텍스트 중심적 연극으로부터 스타일의 연극, 시각적 연극으로 이행한 것이다. 이는 영상과 이미지 시대의 문화트렌드를 반영하는 것으로 포스트모던적 변화에 속한다. 뮤지컬은 대중의 기호의 변화, 문화의 변화를 따라가면서 변해가는 장르다. 컨셉트 뮤지컬은 전통적 뮤지컬과 메가뮤지컬 사이에 위치하면서 이 둘을 매개한다.

스티븐 손드하임은 컨셉트 뮤지컬의 개척자이고, 연출겸 안무가였던 밥 포시와 프로듀서 겸 연출가였더 해롤드 프린스 역시 컨셉트 뮤지컬 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다. 컨셉트 뮤지컬이 등장한 배경에는 당시의 사회적 상황이 있다. 1960년대의 학생운동, 베트남 전쟁 등 혼란스런 사회적 조건속에서 이들을 표현할 음악극이 필요했던 것이다. 스타일, 메시지, 주제의 은유적 표현 등이 플롯보다 우선했다. 구조는 선형적이거나 일관성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이 중에서도 가장 큰 특징은 주제였다. 영- 거버는 이렇게 말했다. ‘ 뮤지컬 코미디에는 주제가 없었고, 레뷔에는 흩어진 뮤지컬 넘버와 극적 행동을 통합하기 위해 주제를 사용했으며 통합뮤지컬에서는 주제를 포함하였다. 반면 컨셉트 뮤지컬에서는 주제를 구체화하였다’ .

 

스티븐 손드하임(1930- )(사진=stageagent.com)
스티븐 손드하임(1930- )(사진=stageagent.com)

컨셉트 뮤지컬은 메가 뮤지컬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둘 사이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하기가 어려운 경우도 많다. 캣츠는 컨셉트 뮤지컬로 분류하기도 하고 메가뮤지컬로 분류하기도 한다. 그것은 둘 다 시각적 효과나 스펙터클에 중점을 두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구분하는 기준은 메가뮤지컬은 점점 서사가 약화되고, 극의 구조와 주제만이 아니라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공연외적인 측면에서도 더욱 ‘ 거대한’ 것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서사의 약화다. 이야기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익숙한 것들이다. 오즈의 마법사의 이야기도, 캣츠의 허황된 스토리도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다. 이야기는 오히려 노래와 춤과 무대세트의 화려한 조합의 뒤편에 위치한다. 이야기는 덜 중요하다. 고양이들이 나와서 풀어나가는 황당한 이야기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메가뮤지컬과 스펙터클
컨셉트 뮤지컬에 이어 메가뮤지컬이 등장한다. 디지털의 발달은 문화의 생산과 소비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하였다. 메가뮤지컬은 이런 문화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었다. 실재와 현실의 혼종, 경계의 소멸, 판타지 등은 현대문화의 특징이자 디지털 기술이 창출한 변화다. 메가뮤지컬은 단순히 연극의 미학적 형식의 변화가 아니라 장차 20세기가 맞이할 문화적 경향을 선취한 것이었다.

메가뮤지컬은 컨셉트 뮤지컬이 더욱 진전된 것이다. 이야기는 더욱 약화되고 이 자리에 회화적 공간구성과 스펙터클이 들어섰다. 메가뮤지컬은 영국인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주도한 것이다. 메가뮤지컬 이전의 영국 뮤지컬은 평범한 수준이었다. 1970년대까지의 영국 뮤지컬은 투박한 가사와 구닥다리 악보, 약한 플롯 등으로 가득한 이류였다. 물론 몇몇 작품들은 미국을 비롯한 외국에 수출하기도 했지만 연이어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비평가들은 영국 뮤지컬을 미국 뮤지컬보다 열등한 뮤지컬로 보았다. 뮤지컬은 미국이 창조한 장르였던 것이다(『Megamusical』, 83). 그런데 웨버가 브로드웨이에 혁명을 일으킨다. 영국의 비평가 쉐리단 몰리는 <슈퍼스타>와 <에비타>는 불과 일주일 동안에 석기시대를 왕정복고시대로 변화시킨 것과 같다고 말하였다. 웨버에게는 팀 라이스라는 동행자가 있었다. 그들은 미국 뮤지컬을 알고 있었는데, 초기 미국 뮤지컬에서 중단과 재개의 노래스타일(stop and sing style)보다 팝음악과 오페라에 더 관심이 있었다. 그들은 뮤지컬의 모든 영향을 분석하고 필요한 요소들을 재조직하여 메가뮤지컬을 만들었다. 영국침공이 시작된 것이다.

오페라의 유령 로고(사진=
오페라의 유령 로고(사진=theatremania.com)

캣츠와 오페라의 유령은 대서양을 넘어 미국으로 수출되기 시작하였고, 런던은 가장 위대한 뮤지컬의 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웨버는 오히려 미국의 뮤지컬 관계자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미국 뮤지컬 산업을 영국의 이름없는 작곡가가 부활시켰다는 건 미국인들에게는 매우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 웨버에 대한 브로드웨이의 분노는 대단하였다. 캣츠나 오페라의 유령에 관객이 쇄도하자 메가뮤지컬이 연극을 질식시키고 있고 스펙터클하지 못한 연극은 경쟁이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비판하였다. 음악 중심적 전개는 심리묘사나 극적 전개, 이야기 등을 소홀히 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영국산 메가뮤지컬은 오직 돈에만 관심이 있을 뿐 연극에는 관심이 없다는 비판도 있었고, ‘외국악마’라고 부르는 평론가도 있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고 있다는 강한 분노와 적개심이 들끓었다. 그러나 메가뮤지컬의 성공을 냉정하게 분석하는 평론도 등장하였다.

- 주도매체의 변화
웨버는 음악을 우선하였다. 멜로디를 만들어놓고 여기에 가사를 입히는 방식이었고 , 따라서 음악이 다른 매체보다 선행되거나 중시된 것이다. 음악이 극의 중추가 된다. 필자는 어떤 예술의 중추를 이루는 매체를 주도매체라고 부르는데, 웨버는 주도매체를 서사에서 음악으로 바꾼 것이다(필자는 『뮤지컬의 상호매체성과 혼종의 미학』에서 이를 극을 시종일관 이끌어 간다는 의미에서 ‘동일매체성’이라고 불렀는데 주도매체성이라는 표현이 더 의미를 명확하게 전달할 것 같다).

주도매체가 필요한 이유는 그것이 전체의 흐름을 통제하면서 극을 이끌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조직에서건 조직을 지배하는 관리자가 있듯이 뮤지컬에도 주도하는 매체가 있어야 한다. 마치 음악에서 여러 작은 요소들이 하나의 주성부를 감싸는 호모포니와 같은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건 웨버가 택한 성 스루(sung-through)다. 노래로 극을 이끌어가는 방식으로 오페라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웨버의 뮤지컬을 팝 음악과 오페라가 결합되었다고 하여 팝페라라고 부르기도 한다. 웨버가 성 스루 방식을 택한 것은 극의 전개 도중에 대화가 끼어들면 극의 흐름이 중단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오페라의 레치타티보와 유사한 형식의 대화체를 싫어했던 것이다. 레치타티보는 음악도 아니고 대사도 아닌 애매한 노래형식의 대사로, 반주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반주가 없는 레치타티보(recitativo secca)도 있는데 이런 레치타티보는 건조하다. 징슈필에서의 대화체 역시 노래 사이에 삽입되는 것으로 역시 극의 흐름을 중단시킬 수 있다. 웨버는 이와 같은 노래의 중단과 재개(stop and sing style)형식이 극의 흐름을 방해한다고 보았다. 오히려 성 스루가 극의 흐름과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본 것이었다.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의 뮤지컬은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 음악과 춤을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이들이 플롯의 전개를 이끌어갔다. 반면 웨버의 뮤지컬은 이야기가 약화되고 시각적 스펙터클에 의존함으로써 오히려 잘 짜여진 통합뮤지컬의 요소들을 분해시키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웨버의 성 스루 방식은 이후 브로드웨이 뮤지컬에서 하나의 트렌드를 형성한다. 서사에서 음악으로 주도매체가 교체된 것이다. 서사는 음악화되고 음악은 시각화되기 시작한다. 대신 서사는 약해진다. 뮤지컬 넘버는 극의 전개를 돕고 극의 이념과 감정을 표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이는 극 속에서 자율적 성격을 지닐 정도로 중요한 역할로 변한다. 이런 식으로 점점 뮤지컬은 음악화되어 나갔다

이런 경향은 197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뮤지컬 넘버는 노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대화되기 시작한다. 즉 넘버가 춤과 연기와 조화를 이룬다. 넘버는 사사와 적대적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사의 진행을 매끄럽게 하며 춤과 함께 무대를 보다 역동적이고 균형잡힌 방향으로 이끌었다. 서사가 점점 음악화되기 시작한다.

뮤지컬 남태평양(사진=
뮤지컬 남태평양(사진=theatremania.com)

스펙터클
이렇게 메가뮤지컬이 탄생한다. 메가뮤지컬은 코카콜라나 맥도널드와 같은 글로벌한 명사가 되었고 ‘반드시 보아야 하는’ 보편적 문화가 되었다. 메가뮤지컬이라는 용어는 1980년대 후반부터 사용되기 시작했지만 1971년에 제작된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첫 작품으로 본다. 그리고 앤드류 로이드 웨버와 카메론 매킨토쉬는 메가뮤지컬의 창시자이자 뮤지컬 산업을 혁신한 제작자가 되었다. 메가뮤지컬의 특징은 스펙터클이다. 그러나 스펙터클은 무대의 화려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메가는 크다는 뜻인데 무엇이 크다는 것인가?

- 글로벌 유통
제시카 스턴펠드는 메가뮤지컬의 특징을 플롯, 음악, 흥행(유통), 비평가의 부정적 비평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관객의 환호를 든다(『Megamusical』, 2-4). 먼 과거를 배경으로, 글로벌한 관객과 관련이 있는 보편적이고 광범위한 이슈를 다룬다. 내용은 멜로드라마적이고 규모는 거대하다. 게다가 많은 제작비가 소요된다. 또한 세계화 시대에 걸맞게 해외순회공연이나 글로벌 라이센싱이 중요한 수익원이 되었다. 작은 규모의 소매점이 어느날 커다란 백화점으로, 급기야는 다국적의 글로벌 기업으로 변신하였다. 세계 각국에서 러브콜이 왔고, 그럴수록 프로듀서들은 자신들의 작품에 흠집을 내는 일을 통제했다. 무명의 앤드류 로이드 웨버와 카메론 매킨토쉬는 일약 세계적인 음악인이자 임프레사리오가 되었다. 예술적 성취보다는 상업적 성공에 무게를 두는 홍보와 마케팅도 또 하나의 특징이다.

메가뮤지컬 이전의 뮤지컬은 해외순회공연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메가뮤지컬을 기점으로 해외공연은 뮤지컬의 ‘의례’가 되었다. 글로벌한 프랜차이즈를 통해 세계 각국에 수출되고 있다. ‘무자비한 복제(ruthless cloning)’가 이루어지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복제를 허용하지는 않는다. 원작의 형식을 표준화하여 복제작품을 통제한다. 이를 어떤 학자는 맥연극(Mctheatre)이라고 부른다. 맥도널드는 세계의 모든 프랜차이즈 점포에 경영, 판매, 맛 등을 표준화한 글로벌 기업으로 유명하다. 이를 맥도널드화(Macdonaldization)라고 부르는데, 메가뮤지컬도 맥도널드처럼 표준화된 작품을 제작한다는 것이다. 해외에서의 메가뮤지컬도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 못지 않게 롱런이 이루어지고 있다.

메가뮤지컬은 또한 처음으로 텔레비전 광고를 실시한다. <슈퍼스타>에서부터 TV광고가 시작되는데, 본격적으로 확대된 것은 <캣츠>에서부터다.

메가뮤지컬은 뮤지컬 산업 나아가서는 공연산업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글로벌한 산업이 되었고,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는 관광의 메카가 되었으며 뮤지컬 제작자들은 거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다. 과거의 공연산업은 경제적 관점에서는 큰 수익성이 없는 산업이었지만 지금은 거대 기업들도 참여하는 시장이 되었다. 바로 세계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기업 디즈니다. 물론 아직은 미국, 영국 등 일부지역에 한한 현상이기는 하지만.

오페라의 유령(사진=pinterest.com)
오페라의 유령(사진=pinterest.com)

- 영화적 편집
스티븐 스필버그와 앤드류 로이드 웨버는 매우 친한 사이였다. 영화와 공연에서 크게 성공한 두 사람은 오랜 교분을 쌓아왔고, 대중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제작하려는 공통된 신념이 있었다. 스필버그는 웨버에게 영화적 제작방식의 도입을 권유하였다. 1970년대에 들어와 무대기술은 새로운 국면에 진입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장면들을 조화시키는 몽타주적 작업이 등장한 것이다.

뮤지컬 넘버도 파편화 또는 몽타주의 기반이 된다. 캣츠에서는 많은 장면전환이 일어난다. 트레버 넌은 캣츠에서 39번의 장면전환을 시도하였다. 이는 3분 30초당 한 번꼴로, 거의 영화와 같은 빈번한 몽타주 기법이다. 일종의 짜깁기 (patchwork)기술로 포스트모던 문화의 특징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장면들을 조화시킴으로써 관객들의 감각을 지속적으로 자극하는 것이다. 또한 장면이 끝날 때 다음 장면을 예상하게 하는 장면을 도입하여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는 드라마에서 즐겨 사용하는 클리프행어(cliffhanger)의 기법이다.

대중문화가 순수예술과 다른 차이중의 하나는 이 몽타주 기법, 파노라마적 쇼이다. 뮤지컬은 보드빌의 옴니버스 식쇼에서 출발했다고 말한 바 있지만 대중문화는 이렇게 짧은 길이의 단편들을 많이 사용한다. 대표적으로 대중가요들을 보면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판타스마고리아(phantasmagoria)와 같은 다채로움이 연극의 흥미를 북돋운다.

- 시각적 연극
오페라의 유령에서 30만 개의 유리구슬로 제작한 500kg의 샹들리에와 돛단배 , 미스 사이공의 헬리콥터의 이착륙, 라이온 킹에서 무대밑에서 올라오는 프라이드 록, 캣츠에서 플라잉 장비를 활용한 등퇴장과 관객석까지 설치된 오색찬란한 전구 등은 메가뮤지컬에서 잘 알려진 스펙터클이다. 심지어 브로드웨이 캣츠공연에서는 그리자벨라의 승천장면을 극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천정을 뚫기까지 하였다. 스펙터클은 거대하고 신기한 것들이다. 메가뮤지컬은 블록버스터 영화와 유사하다. 스티븐 스필버그나 루카스가 사용하는 판타지와 스펙터클은 컴퓨터 그래픽, 디지털 기술등의 하이테크 기술을 사용한다. 인간의 신체로 재현할 수 없는 동작들을 전부 컴퓨터로 만든다. 메가뮤지컬 역시 최대한 기술의 도움을 받는다. 증폭된 웅장한 음악, 거대한 스케일, 판타지, 영웅적 인물 등. 사실과 판타지, 시뮬라크르 사이의 경계가 희미해졌다. 현대인들은 스펙터클한 것들, 그림이나 이미지를 실제보다 더 선호한다. 메가뮤지컬들은 현대인들의 이런 경향들을 파고들었다.

모든 뮤지컬은 ‘큰 심장과 스펙터클’을 추구해왔다. 기술적 혁신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배우들의 의상이 중요한 스펙터클이었다. 미국 뮤지컬의 기원이라고 불리우는 <검은 마법사>는 5시간 반의 긴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당시로서는 경이적인 기록인 474회의 롱런을 하였다. 발레 걸들의 섹시한 다리와 다리가 드러나도록 입은 의상이 성공요인이었다. 관객들의 관음증을 자극하였던 것이다. 또한 바위동굴이 동화속의 왕실로 변하는 장면도 있었는데, 이 스펙터클 역시 관심을 끌었다. 전체 제작예산의 42%를 세트제작에 썼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스펙터클을 강조한 작품이었다. <폴리즈> 시리즈를 제작한 플로렌즈 지그펠드(1867-1932)도 관음증을 최대한 이용하였다. 누드에 가까운 의상이나 섹시한 신체를 드러내도록 스펙터클을 창조하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무대기술이 발전하면서 공연의 스펙터클은 기술이 주도하게 된다. 무대가 캔버스와 같아졌다. 연출과 세트 디자이너, 무대기술팀은 여기에 그림을 그려넣는다. 단순히 세트의 아름다운 장식만이 아니다. 유동하는 음악과 그림의 결합, 컴퓨터로 제어하는 장면전환, 최신 음향기술로 증폭해내는 오케스트라와 거대한 사운드, 증폭된 노래, 화려한 세트 등이 무대위에서 펼쳐진다.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보다는 스펙터클과 판타지를 창조한다. 메가뮤지컬은 우리의 시각과 청각, 촉각을 최대한 자극한다. 무대는 회화적 유기체(Pictorial Organism)가 되고 있다.

한스 티즈 레만은 포스트 드라마 연극을 시각적 연극으로 규정한다. 그는 고대 그리스 연극을 전연극적(predramatic)인 것으로, 라신느의 연극을 연극적인 것으로 로버트 윌슨의 시각적 연극을 포스트드라마적 연극으로 구분한다. 로버트 윌슨은 텍스트에 종속된 서양의 전통연극을 파시스트라고 부른다. 그는 관객의 총체적 감각을 자극하여 그들을 텍스트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하였다. 언어와 음성중심적 무대에서 무한한 이미지를 생성하는 시각적 연극으로 변화시키고자 하였다.

이러한 관점은 비단 연극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서커스에서도 시각적 연극의 개념이 도입된다. 태양의 서커스의 <오>를 제작한 프랑코 드라고네 역시 자신의 공연을 시각적 연극(Visual Theatre)이라고 말한다. 극장 전체를 감싸는 음악, 출연자들이 무대위에서 벌이는 현란한 퍼포먼스, 수시로 변하는 세트와 장면들 모두가 압도적인 스펙터클이다.

 

미스 사이공(사진=mayflower.org.uk)
미스 사이공(사진=mayflower.org.uk)

- 하이퍼스페이스로서의 극장
레싱은 예술을 공간예술과 시간연극으로 구분했고, 연극은 시간예술이라고 했지만 공간예술적 성격도 강해지고 있다. 연극은 시간만을 점유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고 있고, 그 배치도 중요해지고 있다. 애초부터 공간예술로서의 성격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18세기 이후에 극장은 점점 커졌고 무대 역시 커져서, 스펙터클한 무대가 관객을 유인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공간의 적정한 구성과 배치는 서사의 전개에 필요하고, 그 장식은 관객에 대한 배려이기도 했다.

프레데릭 제임슨은 현대의 기술발전이 창조한 화려한 공간, 포스트모더니즘의 공간을 ‘ 하이퍼스페이스’라고 부른다(『Logic of Late Capitalism』, 38).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 건축기술은 거대한 몰입감을 부여한다. 한 두 개의 건축물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하이퍼스페이스가 되었다. 이미 벤야민은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19세기의 파리를 ‘판타스마고리아의 우주’라 불렀다. 백화점, 간판들, 쇼핑몰, 건물, 상품들은 모두 현기증을 일으키는 판타스마고리아다. 오늘날의 도시는 거대한 판타스마고리아, 거대한 하이퍼스페이스가 되었다. 극장은 공연을 위한 도시속의 작은 판타스마고리아다. 극장에는 우리의 지각을 총체적으로 자극하는 농축된 판타스마고리아가 있다. 첨단의 시청각 기술, 화려한 안무와 아름다운 노래, 역동적인 움직임들이 담겨있다. 공연은 수공업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기술집약적이고 기술의존적 예술이다. 그로토프스키는 배우와 관객만 있으면 공연이 가능하다는 ‘가난한 연극’을 주장했지만 관객들은 시각과 청각, 촉각을 즐겁게 해주는 부유한(?) 공연, 스펙터클한 공연을 원한다. 빠른 무대전환, 조명기술의 개발, 보다 또렷하고 큰 소리를 전달하고 싶어한 극장경영자들의 희망은 극장의 역사와 함께 지속되어 왔다.

제임슨은 우리는 아직 하이퍼공간에 대한 지각습관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고 말한다. 극장에는 어지러울 정도의 고도화된 시각기술과 청각기술이 도입되고 있다. 제임슨의 주장이 나온 이후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그보다는 현대인들이 하이퍼스페이스에 너무 익숙해져서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랫동안 하나의 사물을 접하면 무감각해지는 것처럼 우리는 첨단기술에 오랫동안 노출되면서 오히려 하이퍼스페이스를 의식하고 있지 않는지도 모른다.

스펙터클 비판
메가뮤지컬을 비판하는 비평가들은 서사의 쇠퇴와 스펙터클의 부상을 매우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스펙터클이 서사를 추방하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서사대신 스펙터클로 창의성 부족을 모면하려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드라마의 기둥인 서사가 사라지면 그건 연극성을 상실한 것이라고 본다. 어떤 비평가는 캣츠를 레뷔와 컨셉트 뮤지컬을 합성한 것 같다고도 말한다. 실제로 캣츠는 서사보다 노래와 춤이 지배하는 쇼적인 경향이 매우 강하다. 메가뮤지컬은 유머와 위트가 부족하고, 지나치게 스펙터클에 치중함으로써 드라마적 성격이 약화되며 심리묘사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한스 티즈 레만 역시 이런 입장에 서 있다. 그는 드보르의 스펙터클의 사회의 개념에서 연극화된 사회라는 개념을 추출해낸다. 스펙터클이 만든 사회는 수동적인 시민을 형성한다고 비판한다. ‘뉴스를 통해 사건을 분리하는 것이 결국 의사소통행위를 텅 비게 하는 것’ 이고 ‘ 언어와 소통의 미디어 속에서 타자와 연결되어 그들과의 약속에 책임을 감수하는 의식은 정보를 교환하는 소통을 위해 후퇴한다’. 미디어는 주어진 기호를 정보로 변환하고 그것이 습관적으로 반복됨으로써 기호를 보내는 행위가 언어의 미디어를 통해 연결된 상황속에서 결국 송신자와 수신자 모두가 함께 포함되는 느낌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종종 개탄하는 허구와 실재가 융합하는 이유다. 시민은 수동적 관객쪽으로 가까워진다. 다시 말하면 지각과 행동, 전달받은 전언과 그에 대한 대답의 봉합이 해체되는 것이다. 우리는 스펙터클 속에 존재한다. 그 속에서 우리는 연극의 나쁜 전통을 그저 바라볼 수 있을 뿐이다. 겉보기에 실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미지는 실제적인 것을 넌지시 암시하는데 그것은 이미지를 순종적으로 그리고 부드럽고 심약하게 보이게 만든다 (레만 498-499).

뮤지컬 스파이더맨(사진=
뮤지컬 스파이더맨(사진=pinterest.cl)

스펙터클은 독자적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스펙터클은 음악의 흐름과 이야기의 전개에 봉사한다. 헬리콥터의 이착륙이나 떨어지는 샹들리에가 <미스 사이공>과 <오페라의 유령>의 성공에서 중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 스펙터클들이 작품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아니다. 스펙터클은 다른 매체와 조화를 이루고, 적절한 시기에 등장할 때 더욱 돋보인다. 스펙터클은 반드시 큰 것만이 아니다. 작은 볼거리도 자주 등장한다. 관객들이 이를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관객들이 오로지 시각적 스펙터클 때문에 감동을 받는 것도 아니다. 레미제라블의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들이 흐느껴 우는 것은 시각적 화려함 때문이 아니다. 오페라의 유령에서 <밤의 음악>을 부를 때 관객이 얼어붙는 것은 시각적 스펙터클 때문이 아니다. 스펙터클은 음악에도 존재한다. 아름답고 장엄한 멜로디 자체가 관객들을 감동시키는 스펙터클이다. 청각적 스펙터클. 메가뮤지컬이 진지한 플롯이나 극적 전개에 대한 고민없이 스펙터클에만 의존한다는 비판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과도한 스펙터클은 관객을 불편하게 한다. 많은 매체들이 혼란스럽게 결합되고 스펙터클이 많아지만 관객의 감각은 현기증을 느끼게 된다. 필자는 800억 원을 투입하고도 실패한 뮤지컬, <스파이더 맨>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무대위를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플라잉들이 매우 불편하였다. 이런 현상을 다감각적 현기증(Multisensory Vertigo)라고 부른다.

스펙터클의 현대성
기 드보르의 『스펙터클의 사회』 이후, 스펙터클에 대한 강한 부정적 관념이 형성되어 왔다. 그의 스펙터클은 미디어 자체, 미디어에서 파생되는 영상, 자본주의적 생산방식과 상품, 미디어가 생성해내는 사회적 관계라는 뜻을 지닌다. 그리고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이미지, 진짜와 가짜가 혼합된 가상현실 등을 말한다. 이것이 기 드로브가 비판하는 스펙터클이다. 그러나 그가 말한 스펙터클은 주로 미디어와 현대 자본주의가 초래한 이미지 중심의 사회, 가짜가 판치는 사회를 말한다.

그랜드 캐년(사진=civitatis.com)
그랜드 캐년(사진=civitatis.com)

공연예술은 스펙터클과 함께 발전해 왔다. 공연에 드보르식 의미를 그대로 대입할 수는 없다. 스펙터클을 보다 확장된 개념으로 보아야 하고 부정적인 측면과 함께 긍정적인 측면도 같이 살펴보아야 한다. 스펙터클은 본래 가치중립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스펙터클은 반드시 시각적 볼거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필자는 스펙터클을 다섯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로 드보르가 말하는 비판적 의미에서의 미디어다. 두 번째로는 가치중립적인 입장에서의 거대한 ‘볼거리’를 말한다. 여기에는 자연적인 볼거리와 인공적인 볼거리 모두가 포함된다. 칸트는 거대한 자연을 ‘숭고’라는 개념으로 파악하였다. 히말라야나 그랜드 캐년을 보면 우리는 숭고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박람회나 올림픽과 같이 인간이 만든 거대한 메가이벤트 역시 숭고를 느끼게 하다. 세 번째로는 새롭고 특이한 볼거리를 말한다. 규모가 작더라도 인간의 감각을 자극하는 특이한 볼거리, 음악 등이 이에 해당한다. 네 번째로는 공연예술에서의 시각적 효과와 관객에 대한 영향이다. 공연은 구술적이고 신체적인 예술일 뿐만 아니라 시각적인 예술이기도 하다. 극장의 프로시니움 무대는 영상화(Picturization))된 공간이다. 무대는 각종 스펙터클이 집적되어 있는 시각적 공간이다. 관객들은 스펙터클을 보려고 찾아들었고, 공연 제작자들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스펙터클을 활용하여 이를 돌파하려고 하였다. 다섯 번째로는 스펙터클이 구성하는 사회적 관계다. 스펙터클은 관객들의 시각적 욕망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권력의 수단이 되기도 하고, 과시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유베날의 빵과 서커스는 바로 권력의 수단, 통치의 도구로 이용되는 스펙터클을 말한다.

드보르가 말하는 스펙터클은 대중을 스펙터클의 화려함에 함몰시키고, 비판의식을 마비시키는 마약과도 같은 존재로서 시민정신을 점점 약화시켜 마침내 체제에 순응하는 수동적 시민으로 만들고 만다는 정치성을 말한다. 레만 역시 공연에서의 스펙터클이 관객을 수동적으로 만든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레만의 주장처럼 오늘날의 관객들이 스펙터클에 마취되어 수동적 관객에 머물러 있는가? 관객들은 오히려 점점 능동적으로 바뀌고 있는 것은 아닌가? 미디어가 펼쳐놓은 스펙터클에 관객들은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BTS의 <아미>에서 찾을 수 있다. 그들의 능동성은 단순히 공연에 참여하는 것만이 아니다. 공연 이외의 시간에도 그들은 BTS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갖는다. 소셜 미디어는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그들이 만날 수 있는 가상의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가상공동체’를 만든다. 이 공동체내에서 그들은 자유롭게 스스로의 생각과 기분을 전파하는데, 이는 거대한 ‘감정공동체’로 발전한다. 소셜 미디어는 디지털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 이는 그들의 모든 콘서트에 그대로 투영된다. 가상공간만이 아니다. 공연장에서도 관객들은 배우들의 연기와 스펙터클에 열중한다. 팬덤 현상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관객들은 과거보다 훨씬 능동적으로 변했고 그 변화는 글로벌한 양상으로 바뀌었다. 이는 SNS의 영향으로, SNS는 관객들의 수동성을 능동성으로 바꾸었다. 오늘날의 공연관객들은 모든 정보를 순식간에 알 수 있고 사소한 정보까지도 입수할 수 있으며 이들은 바로 행동으로 옮긴다. 행동의 원천, 능동성의 시작은 정보와 네트워크다. 인간은 세상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넓혀갈수록 자의식이 강해진다. 막스 베버가 말한 합리화의 과정이 점점 진전되고 있는 것이다. 사회의 합리화는 신과 자연에 대해 품어왔던 경외감과 숭고의 감정을 약화시키고, 대신 사람이 만들어내는 스펙터클에 대한 경외감은 커지고 있다. 벤야민은 이렇게 말한다. “ 일찍이 호메로스 시대에 올림포스 신들의 구경거리였던 인류가 이제 그 스스로의 스펙터클이 되었다.”

뮤지컬의 유연성
뮤지컬은 바야흐로 ‘ 어떤 주제도 소화할 수 있고, 어떤 형식도 취할 수 있는 예술’이라고 평가되기 시작했다. 이건 무슨 말일까? 다른 예술장르들은 주제를 다루거나 형식을 취하는 데 제약이 있는 것일까? 여기서 다시 각 예술장르의 한계를 논의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예술을 매체적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문학이나 무용이나 음악 등 모든 장르들은 표현의 한계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각 예술장르가 사용하고 있는 매체의 한계에 기인한다. 그러나 뮤지컬은 이들 장르보다는 주제와 표현의 폭이 넓다. 그건 바로 뮤지컬의 유연성과 다매체성, 그리고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매체성을 확장하려는 포용성에 기인한다. 뮤지컬의 유연성은 대중친화적 오락에서 비롯된다. 대중의 기호에 맞는 형식을 부단히 실험해 왔고 지금에 이른 것이다. 오페라처럼 정해진 형식과 규칙을 오랫동안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취향에 맞게 지속적인 변화를 추구한 것이다. 이건 뮤지컬의 가장 큰 특성이자 장점이다. 대부분의 예술들은 매체의 한계안에 구속되어 있다. 소설이나 시는 문자라는 매체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고, 조각은 돌과 나무의 틀을 벗어날 수 없다. 뮤지컬과 비교되는 오페라는 16세기 말에 형성된 매체성이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탈리아어로 된 가사를 그대로 사용하며 벨칸토 창법으로 노래해야 한다. 노래가 중심이 되다 보니 성악가와 등장인물간의 불균형이 심각하다. 대본의 정확한 재현은 필수적이다. 물론 최근에 레지 테아터(Regie Theatre)라고 하여 배경과 등장인물등을 바꾸는 연출이 있지만, 사실 들어보면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그런지 어색한 경우가 많다. 오페라도 오히려 영화적인 연출, 스펙터클을 사용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노래보다 성악가의 외모를 중시한다거나 화려한 세트등을 강조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뮤지컬도 매체의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다른 장르보다 다매체적이고 유연한 표현방식을 사용한다. 뮤지컬은 대중의 기호나 동시대의 문화를 반영하는 유연성을 지닌다. 필자는 이를 ‘당대적 예술’이라고 표현한다. 시대의 흐름을 좇아가면서 팝, 발라드, 재즈, 락 등을 삽입한다. 최근에 브로드웨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해밀턴>은 힙합과 랩을 사용한다. 린 마누엘 미란다가 제작한 이 작품에는 오늘날 청소년들이 선호하는 힙합, 랩, 힙합 댄스등이 사용되고 있다. <해밀턴> 관객들은 청소년들의 하위문화였던 힙합에 열광한다. 이처럼 뮤지컬에는 동시대의 예술과 문화를 바로 반영하는 유연성과 ‘동시대성’이 있다. 이는 뮤지컬의 커다란 장점으로, 뮤지컬이 대중과 늘 함께 하는 예술임을 의미한다. 반면 순수예술은 이미 형성된 틀과 형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직성을 지닌다. 뮤지컬은 대중의 취향을 반영하는 연극을 지향한다. 뮤지컬은 지속적인 변화의 길을 걷고 있으며 이것이 문화의 생명력이다.

* 검은 마법사 (Black Crook)에 대하여
미국 최초의 뮤지컬로 알려져 있는 이 작품의 제목이 어떤 연극사에는 <검은 갈고리>로 , 어떤 책에서는 <검은 옷의 괴조>로 번역되어 있다. 그런데 필자는 <검은 마법사> 또는 정확하게는 <검은 곱추마법사>로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간편하게 <검은 마법사>가 좋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그 줄거리와 블랙 크룩의 연원을 보면 알 수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무대는 1600년대 독일. 괴테의 파우스트와 베버의 마탄의 사수등에서 줄거리 차용. 부유한 볼펜슈타인 백작은 아미나라는 마을 처녀와 결혼하고 싶어한다. 아미나의 계모인 바바라의 도움으로 아미나의 약혼녀인 가난한 예술가, 로돌프를 허초그(Herzog)의 계략에 빠지게 한다. 허초그는 등이 굽은 검은 마법사(주술사 또는 연금술사)다. 그는 악마 자미엘과 계약을 맺는다. 만약 그가 매년 자미엘에게 순진한 영혼을 제공하면 그는 영생할 것이라는. 한편 허초그는 로돌포에게 백작으로부터 아미나를 구하려면 부(富)를 찾아야 한다고 하면서 로돌포를 자살에 이르게 하는 계략을 꾸민다. 순진한 로돌포는 무시무시한 운명에 이끌려 이를 감행하지만, 마침내 감춰진 보물을 찾고 비둘기의 생명을 구한다. 비둘기는 스탈락타라는 인간의 형상으로 변하여 황금왕국의 여왕이 된다. 그녀는 그녀의 생명을 구해준 댓가로 로돌포를 동화의 나라로 데려가 사랑하는 아미나와 재결합하게 해 준다. 그리고 군대를 동원하여 백작과 악의 무리들을 물리치고 허초그를 지옥에 빠뜨린다. 로돌포와 아미나는 행복한 삶을 산다.

이 뮤지컬의 제목은 갈고리나 괴조와 같은 사물이나 조류가 아니라 등이 굽은, 허초그라는 검은 곱추마법사 (crook- backed master of black magic) 라는 등장인물에서 비롯된 것이다.

검은 마법사(사진=youtube.com)
검은 마법사(사진=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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