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국립현대무용단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
[공연리뷰] 국립현대무용단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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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10.26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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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체적 현실, 깊어진 성찰, 성공적 업그레이드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 공연장면 (c)고흥균 (사진제공=KCNDC)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 공연장면 (c)고흥균 (사진제공=KNCDC)

[더프리뷰=서울] 김명현 무용평론가 = 지난 해 초연되었던 국립현대무용단 남정호 단장 안무의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10월 22-24일, 토월극장)가 한층 간결해진 구성, 선명한 메시지, 세련된 연출로 돌아왔다. 재공연될 때마다 약간의 변형이 가해지거나 업그레이드를 당연시하는 공연예술의 특성상 개선을 기대하긴 했지만 기대 이상의 발전을 보였다. 재공연이 된다고 해서 모든 작업들이 더 발전된 모습을 내놓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의 경우 하나의 작품이 레퍼토리로 발전하는 아주 성공적인 사례라 할 만큼 그 변화의 폭이 컸다. 초연 때 설정했던 무대 디자인이나 구성적 전개는 변함이 없었지만 그 안에 채워지는 움직임이나 메시지는 훨씬 간결해졌고 무엇보다 구체적이면서 동시대적 현실을 그려냈다.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는 기본적으로 마지막 생존자가 남을 때까지 계속되는 서바이벌 게임 형식을 취하고 있다. 낙오자가 발생하는 다양한 상황과 양상을 때론 조롱하듯, 때론 위로하듯, 때론 난폭하게, 때론 코믹하게 비극을 향한 과정을 보여준다. 우선 눈에 띄는 변화는 한 명씩 낙오될 때마다 무대 뒷벽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트러스트(thrust) 스크린에 영사되는 무용수들의 프로필이다. 초연 때는 이들의 개인적 면모를 부각시키려 이들의 취향이나, 꿈, 가치관 등을 보여주었었다. 그런 개인적 정보들을 없앤 활짝 웃는 얼굴은 윤리적 질문으로 내몰리던 관객을 해방시켰고, 암울한 현실을 환한 웃음에 대비시켜 더 무겁게 느껴지게 했다. 또한 무용수들의 개별적 정보로 인해 맥이 끊겼던 서바이벌 게임의 긴장감 있는 전개가 살아났다.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 공연장면 (c)고흥균 (사진제공=KNCDC)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 공연장면 (c)고흥균 (사진제공=KNCDC)

어떤 동질의 감정이나 입장을 강요하지 않는 담백해진 움직임 구성이나 동작도 눈에 띄었는데, 열중쉬어 자세와 피티 체조는 군대를 연상시키면서 우리 사회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전체주의적 사회 문화를 관통했다. 모든 출연진이 입고 있던 후드 티셔츠를 벗어 손에 손 잡고 원무를 돌면서 추는 공동체의 춤에서는 원이 상징하는 둥글고 부드러운 포용적 이미지가 아닌 배타적 조롱의 몸짓을 보았다. 짝짓기 게임에서 짝을 지은 사람들이 등을 맞대고 경계와 방어를 하는 모습은 전작에서는 선명하지 않았던 승자들의 불안이었다. 슬픔이나 분노 같은 감정의 직접적인 표현은 줄이고 벼, 억새풀, 꽃다발처럼 말아 든 카펫으로 이미지를 강화하여 관객이 그 해석에 깊이 개입할 수 있는 여백을 만들었다.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 공연장면 (c)고흥균 (사진제공=KNCDC)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 공연장면 (c)고흥균 (사진제공=KNCDC)

무엇보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으로 왕따, 배척, 실패, 상실을 암시했던 전작과 달리 구조적이고 사회적인 모순에 초점을 맞추는 구체성을 드러냈다. 장식이 화려한 복장을 하고 혼자서만 튀던 친구는 누명을 쓴 듯 십자가에 매달려 사라졌다. 영화 <오징어 게임>의 간수들처럼 검은 상하의에 모자를 깊게 눌러 쓴 사람들이 진행하는 짝짓기 게임에서는 늘 같은 한 명만 소외되었다. 합법적 게임처럼 보이는 몸싸움이 서로를 속고 속이는 야바위 게임이 되었고, 동료인 줄 알았던 사람들은 하나씩, 둘씩 한 명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고 공동체를 떠났다. 자리싸움의 장이었던 긴 벤치는 누군가에겐 계층에서 미끄러지는 미끄럼틀이 되고, 누군가에겐 아빠 찬스를 사용하는 지렛대가 되었고, 묘비석이 되기도 했다.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 공연장면 (c)고흥균 (사진제공=KNCDC)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 공연장면 (c)고흥균 (사진제공=KNCDC)

마지막 생존자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어쩌다 보니 살아남게 된 것이었다. 다만 전작에서 생존자가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승자에 가까웠다면 이번엔 오염된 환경 속에서 생존의 장을 마련하려 고통과 신음 속에 투쟁하는 개인이다.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는 사회가 만들어내는 오염된 환경은 누구에게나 죽음의 장인 것이다. 이런 디스토피아적인 결말은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전 인류적 재난상황을 통과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게끔 한다.

초연 때의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에서는 어떤 경직성 같은 것을 느꼈었다. 국가대표 무용단에서의 첫 창작이었기에 예술가가 느꼈을 부담감 같은 것이 보였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는 시도에 오히려 뭉뚱그려졌던 메시지를 재공연을 통해 주변적인 것들을 제거하고 주제의 핵심에 집중함으로써 전작의 미흡함을 날려 버렸다. 출연진 및 제작진과 많은 소통과 리서치가 있었음을 짐작케 하는 우수한 결과물이었다.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 공연장면 (c)고흥균 (사진제공=KNCDC)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 공연장면 (c)고흥균 (사진제공=KNC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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