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의 워싱턴 키로프 발레 아카데미, 문 닫기로
통일교의 워싱턴 키로프 발레 아카데미, 문 닫기로
  • 이종찬 기자
  • 승인 2022.02.14 21: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재정난 악화로 오는 5월에 폐교
- 지난 30여 년간 일급 무용수들 다수 배출
키로프 발레 아카데미(출처=kirovacademydc.org)
키로프 발레 아카데미(출처=kirovacademydc.org)

[더프리뷰=서울] 이종찬 기자 = 워싱턴 D.C.에 있는 일급 발레학교인 키로프 발레 아카데미(The Kirov Academy of Ballet, 이하 아카데미)가 오는 5월 폐교하기로 결정했다고 최근 뉴욕 타임즈가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학부모들은 지난해 11월 이메일을 통해 학교가 문을 닫을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행정책임자인 파멜라 곤살레스는 이메일에서 “키로프를 사랑하는 만큼 재정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학교 당국은 재정난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하지 않았다.

아카데미의 교장 토마스 월쉬는 이메일을 통해 “이전과 같은 기금 조성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지난해 명백해졌다. 우리는 1년을 연장해 재학생과 교사, 교직원들을 순조롭게 격식을 갖춰 이양하려 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고 밝히면서 또한 “우리의 결정은 가벼이 내려진 것이 아니다. 우리는 아카데미를 사랑하며 이제까지 우리의 성취는 매우 자랑스러운 것이다”라고 전했다.

학교측은 카운셀러들을 고용해 재학생들의 전학을 도울 것이며 지난해 9월 취임한 예술감독 조안 보아다는 오는 6월 몇몇 학생을 데리고 보스턴 발레로 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록 스쿨, 샌프란시스코 발레, 워싱턴 발레 등에서 아카데미 학생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실시할 것이라고도 전했다.

1990년 설립된 키로프 아카데미는 사립학교로 운영됐지만 학교의 주요 관리자들이 통일교 재단과 밀접히 연관돼 있어 그간 통일교의 비영리 재단인 세계문화재단으로부터 오랫동안 지원을 받아왔다.

고 문선명 목사의 장녀인 타티아나 문이 2018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이사장직을 맡았다. 기숙학교 형태인 아카데미 재학생들의 등록금은 숙식비를 포함, 연간 약 5만6천 달러(한화 약 6천700만 원)이며 신입생은 좀 더 높다.

아카데미 졸업생들은 세계 정상급 무용단에서 활약하고 있다. 아메리칸 발레 씨어터(ABT)만 해도 멜라니 햄릭, 사샤 라데츠키, 그리고 동양인 최초의 ABT 수석무용수인 한국의 서희 등이 모두 키로프 아카데미 출신이다.

(c)Erin Babiano(출처=abt.org)
ABT에서 활동중인 한국의 서희(c)Erin Babiano(출처=abt.org)

키로프 아카데미는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학교의 훈련 시스템을 도입, 러시아 스타일의 발레를 훈련시키는 학교로서 그간 일급 무용수들의 주요 공급원 역할을 했다. 1999년 졸업생인 에반 맥키는 “비교적 짧은 세월 동안 뛰어난 무용수를 이토록 많이 배출한다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슈투트가르트 발레에서 13년간 활동했으며 2014년부터는 캐나다 국립발레단에서 수석 무용수로 활약하고 있다.

잉글리쉬 내셔널 발레와 ABT에서 주역으로 활동 중인 2004년 졸업생 브루클린 맥은 폐교 결정에 대해 “슬픈 소식”이라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키로프 발레단(현 마린스키 발레단) 무용수들과 아카데미 학생들이 함께 공연했던 시절을 회상했다. 키로프 아카데미와 키로프 발레단은 이제 더 이상 아무 관계가 없지만 당시 키로프 아카데미는 보석과도 같았으며 “이 나라에 그런 곳은 없었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메시아라고 칭하던 고 문선명 목사는 통일교를 창설한지 36년 만에 아카데미를 개설했다. 통일교의 종교활동은 합동결혼식, 비즈니스, 보수적 성향, 그리고 문 목사에 대한 헌신으로 유명하다.

문 목사의 발레에 대한 관심은 통일교의 사무장 역할을 맡았던 최측근 박보희와의 관계에서 비롯됐다. 1984년, 박보희의 딸 박훈숙은 발레리나로서 워싱턴발레와 순회공연 중이었으며 <지젤> 공연을 준비 중이었다. 박훈숙과 문 목사의 아들은 결혼할 예정이었으나 문 목사의 아들이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게 된다. 이후 미혼자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통일교의 가르침에 따라 박훈숙은 문 목사의 아들과 영혼 결혼식을 올렸다.

1984년 5월 문 목사는 유니버설발레단(Universal Ballet Company)을 설립했으며 박훈숙은 ‘줄리아 문’이라는 이름으로 발레단의 수석무용수가 된다. 그리고 6년 후, 문 목사는 키로프 아카데미를 설립했다.

아카데미의 첫 예술감독은 러시아 키로프 발레단의 예술감독 올레그 비노그라도프가 맡았다. 통일교는 산하 비영리 단체들을 통해 아카데미를 집중 지원하며 장학금을 지급했고 교사들에게도 인근에 주택단지를 제공하며 일급 교사들을 유치했다. 하지만 2008년 비노그라도프가 사망한 후 재단의 보조금은 줄어들었다. 서울에서 문선명, 박보희 일가가 유니버설 발레 아카데미를 개설하면서 워싱턴으로의 유학생 수도 줄어들었다.

2011-13년 예술감독이었던 마틴 프레드먼은 “그간 키로프 아카데미로 지원되는 금액은 중단됐고 이 문제에 신경도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카데미의 회계담당이었던 한국계 소피아 김이 150만 달러 횡령죄로 징역 3년6개월을 선고받은 뒤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최근 법원 제출 서류에서 소피아 김의 변호사 마크 홀은 그녀의 횡령금액이 60만 달러 이상 과도하게 판단됐다고 주장했다.

소피아 김은 이미 다른 통일교 관련 재단에서의 세금 사기혐의로 복역했었다. 그런데 줄리아 문과 그녀의 아버지는 소피아의 1심 판결에서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했으며 이유는 분명치 않지만 어쨌든 그녀는 2017년 석방된 후 키로프 아카데미에 다시 고용됐다.

현재 약 4천m2 넓이의 학교 부지는 주거단지로 예정되어 있으나 학교 건물을 개발사업자들에게 매각하는 것은 지역 및 연방의 관련법 때문에 매우 복잡해질 전망이다.

학교 건물의 미래도 불투명하다. 워싱턴 발레단의 한 대변인은 키로프 아카데미가 지난 가을 인수합병을 타진해 왔지만 협상은 진전을 보지 못했다고 전했다. 아카데미 근방에 있는 카톨릭대학(The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의 부총장 카르나 로조야는 아카데미 건물을 최근에야 봤다면서 “이 건물을 꼭 매입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전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