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김치앤칩스의 ‘Collective Behaviour’
[공연리뷰] 김치앤칩스의 ‘Collective Behaviour’
  • 김미영 무용평론가
  • 승인 2022.02.27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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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ctive Beahviour'
김치앤칩스 'Collective Beahviour' (c)Jason Alami

[더프리뷰=서울] 김미영 무용평론가 = 작년 가을 국립현대미술관 마당에 물안개를 일으키던 설치물을 만났었다. 푸른 잔디와 파란 하늘 아래 설치된 99개의 자동거울은 스스로 태양의 궤도를 따라 방향을 바꾸며 빛을 받아 뿜어지는 물안개 사이로 그림을 만들었다. 햇빛과 바람이라는 우연의 요소가 작가의 계산된 필연의 요소와 만나는 찰나의 순간을 기다리다 보면 마침내 천사 머리 위의 고리처럼 동그란 광륜을 만날 수 있는 작품은 김치앤칩스(KIMCHI and CHIPS)라는 낯선 단체의 <HALO>라는 작품이었다. 발전한 과학기술의 힘으로 초자연적인 것을 보여주는 이들의 작업 ‘Drawing in the air’ 시리즈 중 하나라는 것과 세계 곳곳에서의 수상과 전시경력 등으로 화려한 세계적인 미디어아트 작가라는 것은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시각예술을 전공한 손미미(한국)와 물리학을 전공한 엘리엇 우즈(Elliot Woods, 영국) 두 작가는 김치앤칩스라는 독특한 이름으로 2009년 활동을 시작했다. 엘리엇 우즈가 이미지와 실재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에 집중한다면 손미미는 불교철학을 바탕으로 예술과 기술, 자연과 과학의 탐구로 사람과 사물의 관계 안에서 주로 영감을 발견한다고 하니 이들의 작업이 손에 잡히지 않고 찰나의 순간에 나타났다 사라져버리는 춤과 만난 것은 어쩌면 필연의 과정이었을 것이다.

김치앤칩스, 'Collective Beahviour' (c)Jason Alami
김치앤칩스 'Collective Beahviour' (c)Jason Alami

지난 1월 21일(금)과 22일(토) 서강대학교 메리홀 대극장에서 공연된 이들의 첫 번째 현대무용작품 <Collective Behaviour>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덴마크 예술청 후원으로 제작되었다. 이번 작품은 덴마크 안무가 시몬 비뢰드(Simone Wierød)와 사운드 디자이너 팀 판두로(Tim Panduro)가 협업한 것으로 2019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쇼케이스를 진행한 바 있다. 집단행동을 뜻하는 <Collective Behaviour>는 세 무용수의 움직임이 작가의 의도된 빛을 통해 무대에 설치된 거울에 다양하게 비추어 보이며 진행된다. 깜깜한 무대에 소리가 먼저 등장하고 이후 랜턴의 불빛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혼자 움직이는 것 같던 랜턴은 무용수가 비추는 각도와 움직임 조절에 의해 랜턴만 있는 듯하다가 무용수 신체의 일부를 보여주기도 하고 객석 쪽으로 돌려 관객을 비추기도 한다. 이 장면은 이후 전보람, 전우상, 송윤주 세 명의 무용수들이 보여줄 움직임의 함축과도 같다. 조명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보여지는 무용수가 정해지는데 이는 관객이 볼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대신 보여주는 것을 볼 수밖에 없도록 하며 개인의 선택과 자유의지를 빼앗는다. 인간이 모든 것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대로 세상이 돌아가는가? 그렇지 않다. 인간의 애씀 너머에 있는 어떤 것과 만나야 볼 수 있는 것이 지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본 <HALO>를 생각나게 한다.

특성이 다른 거울을 배치한 공간 사이에서 빛을 조작하며 보여준 이번 작품은 설치에 안무적 요소, 음향과 조명이 융합되며 관객을 현실과 가상의 세상으로 인도한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거울의 사용으로 나타나는 무수히 많은 복제된 무용수였다. 전면에 세로로 긴 직사각형의 검은 벽이 두 개, 중간에 일부는 반사되고 일부는 투과되는 하프거울이 셋, 맨 뒤에 전체를 아우르는 가로 길이의 거울이 배치되고 무용수들은 이 사이를 오가며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무용수가 어디에 위치하고 빛을 어떻게 주느냐에 따라 무용수 뒤에 있는 거울에 무용수의 뒷모습이 거울에 그대로 맺히기도 하고 때로는 무용수의 정면을 보여주기도 하고 때로는 무용수의 뒤로 수많은 상이 줄지어 맺히기도 하는 너무나 신비로운 모습이었다.

김치앤칩스, 'Collective Beahviour' (c)Jason Alami
김치앤칩스 'Collective Beahviour' (c)Jason Alami

빛과 거울의 사용은 전혀 새로운 가상의 현실을 만나게 했다. 때로는 고립된 좁은 공간을 만드는가 하면 이내 무대 저 끝까지 펼쳐지는 무한한 공간으로 확장되기도 하고 음향과 거울에 비치는 상의 흐트러짐으로 시간에 변형을 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움직임과 음향이 고조될수록 무용수의 실체와 허상 속에서 무엇이 실체이고 무엇이 허상인지 혼란도 깊어질 즈음 빛의 이동에 따라 무용수 뒤로 길게 줄지은 허상들이 포물선으로 움직이며 막바지를 향해 달려간다.

중간중간 무용수가 순간이동하는 것처럼 암전이 이루어질 때에야 비로소 눈에 보이는 빛의 잔상이나 한 줄로 길게 서서 빛의 조작에 따라 마치 무리지어 움직이는 군중들이 착시효과일 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빠져들게 되는 기이한 경험을 통해 현실과 가상, 개인과 공동체 사이에서 작품의 제목이 된 집단행동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때때로 집단 안에서 개개인의 개성이 무시되기고 하고 개인의 이성이 간데없이 사라져 공동의 이윤을 좇아 맹목적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분명 각각의 실체를 가진 개인이 모인 공동체임에도 잘못된 이념을 좇을 때면 마치 유령이 된 것처럼 실존의 무게를 잃기도 한다. 어떤 것이 진짜일까? 어느 것도 진짜라고도 가짜라고도 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 무용수가 객석을 향해 선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묻는 것 같다.

김치앤칩스, 'Collective Beahviour' (c)Jason Alami
김치앤칩스 'Collective Beahviour' (c)Jason Alami

공연 이외에도 이번 작품에 눈의 띄는 것이 더 있다. 무료공연으로 진행하며 수익을 위해 이들의 영상을 대체불가토큰(NFT)으로 판매한 것이다.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에게 우선권을 주었는데 공연 후 길게 선 줄에서 무언가 다른 세상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줄에 선 사람들이 모두 10만원이었던 NFT를 구매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나 낯선 풍경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김치앤칩스의 NFT는 자체 제작한 플랫폼 ‘Toi Toi Toi’에 의해 유통될 예정이며 에너지 절약형 클레이튼(Klaytn) 블록체인으로 유지된다고 한다. NFT의 판매수익금은 부족했던 제작비와 다음 공연을 위한 예비 예산으로 사용되고, 이 플랫폼은 공연 창작자들에게 좀 더 안정된 창작활동을 할 수 있도록 차후 공유할 예정이라고 하니 무용계 안에서 이런 과정들이 성공한다면 지원금에만 의지하지 않고도 수익을 내며 예술활동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리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Collective Beahviour' 워크숍 모습 (c)Jason Alami
'Collective Beahviour' 워크숍 모습 (c)Jason Alami

이들이 공유하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그들만의 철칙이 있다는데 바로 전시회가 끝나면 전시와 작품 노하우를 모두 공개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홈페이지에 가면 그간에 진행한 작품들의 프로세스부터 장비 테스트 결과까지 누구나 볼 수 있다. 자신들의 방법들이 노출될까 전전긍긍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공개하며 더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참 여러 가지로 그동안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깨닫게 해주는 공연이었다.

'Collective Beahviour' 워크숍 모습 (c)Jason Al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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