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 초연
국립오페라단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 초연
  • 이시우 기자
  • 승인 2022.05.03 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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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디가 전하는 평화와 해방의 노래
'시칠리아의 저녁기도' 포스터(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시칠리아의 저녁기도' 포스터(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더프리뷰=서울] 이시우 기자 = 국립오페라단은 창단 60주년을 맞아 베르디의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를 6월 2일(목)부터 5일(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국내 초연으로 선보인다.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는 ‘시칠리아 만종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베르디의 역작이다. ‘신포니아’로 불리는 서곡과 주요 아리아들은 오페라 애호가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작품이지만 국내 무대에서 전막이 연주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칠리아 만종 사건’은 1282년 성당의 저녁기도 시간에 맞춰 시작된 시칠리아인들의 봉기를 말한다. 13세기 후반 시칠리아를 지배하고 있던 오스트리아의 프리드리히 공은 프랑스 영주 가문의 샤를 왕에 의해 살해당하고, 이후 프랑스의 강압적인 지배를 받게 된 시칠리아인은 프랑스에 대한 반감을 키워간다. 이런 가운데 프랑스 군인이 시칠리아 여인을 희롱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에 격분한 시칠리아인들은 수많은 프랑스 군인을 살해한다. 분노가 극에 달한 시칠리아인들은 성당의 저녁기도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에 맞춰 프랑스인들을 습격하고, 봉기는 시칠리아 전역으로 퍼져나간다.

인간의 심리와 갈등에 초점을 맞추는 베르디 중기의 첫 작품

이 작품은 외세에 억압받는 역사적 비극 속에 개인이 겪는 비극 또한 담았다. 베르디 전기 작품이 애국심을 자극하는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 이탈리아 통일운동) 오페라가 주를 이루었다면 중기부터는 인간의 심리묘사와 갈등을 그리게 되는데,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가 중기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라 볼 수 있다.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의 아리고는 프랑스의 영향 하에 있었던 시칠리아 정부에 대항하는 반정부파의 수장이다. 시칠리아 정부의 몽포르테 총독은 과거 시칠리아 연인을 사랑했지만 그녀는 그들 사이의 아들을 데리고 떠나버렸다. 그녀는 죽기 직전 그에게 편지를 남겨 반정부파의 지도자인 아리고가 그의 아들임을 밝힌다. 몽포르테 총독은 자신의 아들을 찾게 돼 기뻐하지만 아리고는 혼란에 빠진다. 한편 아리고의 연인 엘레나가 총독을 살해하려는 계획을 세워 감옥에 갇히게 되고 몽포르테는 아리고에게 자신을 아버지라 부르면 그녀를 살려주겠다고 약속한다. 아리고는 이를 수락하고 총독은 아리고와 엘레나의 결혼을 허락하며 프랑스와 시칠리아의 화합을 노래한다. 하지만 결혼식 당일, 저녁 종소리를 시작으로 피의 대참사가 벌어진다.

“거룩한 종소리가 혼인이 성사되었음을 알릴 것이고, 학살이 시작될 겁니다.

오 하느님! 내가 어느 편을 들어야 하나요?

날 불쌍히 여겨주세요. 내 영혼을 지탱하시고

괴로움을 가라앉혀 주세요!”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는 제1회 만국박람회를 준비하고 있던 프랑스로부터 위촉을 받아 1855년 초연된 작품이다. 만국박람회를 기념해 요청된 작품이기 때문에 프랑스의 화려하고 멋진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프랑스인을 압제자로 그리는 내용이기에 반응은 엇갈렸다. 하지만 베르디의 아름다운 음악과 평화에 대한 메시지로 여운이 남는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평을 얻었다. 이번 작품은 베르디의 의도의 연장선에서 보편적 의미의 차별과 평화를 풀어낼 예정이다. 연출가 파비오 체레사는 이번 작품을 통해 억압하는 프랑스인, 억압당하는 시칠리아인의 구도를 넘어서 타인을 억압의 도구로 삼는 특권층, 정치적 견해로 차별받는 사람 등 현재의 모습을 엿볼 수 있도록 힘쓸 예정이다.

우리나라에서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는 서곡과 주요 아리아로 알려져 있다. ‘신포니아’로 불리는 오페라의 서곡은 독립적인 관현악 작품으로 연주될 만큼 완성도가 높고,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 전반의 정서를 하나의 서곡에 녹여냈다는 점 때문에 온전한 하나의 곡으로서 인정받는다.

엘레나의 아리아 ‘고맙습니다, 친애하는 벗들이여’는 엘레나가 자신의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에게 화답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경쾌한 볼레로 리듬을 가진 이 곡은 결혼식이 가지는 화려함을 잘 표현한 곡으로 많은 소프라노의 사랑을 받아왔다. 또한 이 곡이 끝난 후에 대학살이 일어난다는 점에서 반전이 깃들어 있는 곡이다. 각각 독립적으로 연주되었던 곡들이 이번 무대를 통해서 유기적으로 연결된 거대한 오페라로 그려지기에 많은 오페라 애호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할 것이다.

시칠리아의 섬의 저녁기도 무대디자인(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시칠리아의 섬의 저녁기도 무대디자인(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다시 돌아온 <오를란도 핀토 파초>의 연출, 파비오 체레사

풍부한 음향을 그려내는 <나부코>의 지휘자 홍석원

이번 작품은 2016년 아시아 초연작이었던 국립오페라단 <오를란도 핀토 파초>를 연출한 파비오 체레사가 연출을 맡는다. 다소 생소한 바로크시대 오페라를 유쾌한 상상력과 유머 감각으로 해석해 호평을 받았던 그는 2016 인터내셔널 오페라 어워즈가 선정한 영 디렉터 상을 수상하며 촉망 받는 젊은 연출가로 급부상, 현재 세계 극장을 누비며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지휘자 홍석원은 지난해 국립오페라단의 <나부코>를 이끌며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젊은 거장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엘레나 역은 2011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우승을 거머쥐며 세계적인 성악가로 발돋움, 스위스 바젤극장 솔로이스트를 거쳐 2021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발탁된 소프라노 서선영, 그리고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활약하다 주역 오디션을 통해 발탁돼 2021년 국립오페라단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 역으로 데뷔한 소프라노 김성은이 맡는다. 아리고 역은 독일 베를린 도이치오퍼에서 한국인 최초 주역 테너로 11년간 활약한 테너 강요셉과 오스트리아 빈 폴크스오퍼의 간판스타 테너 국윤종이 맡아 열연을 펼칠 예정이다. 몽포르테 역은 바리톤 양준모, 한명원이 맡고 프로치다 역은 베이스 최웅조, 김대영이 맡는다.

이번 공연은 6월 4일(토) 오후 3시 국립오페라단의 온라인스트리밍 서비스인 크노마이오페라와 네이버TV에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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