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정 칼럼] 펜으로 쓰는 춤(20) - 여행, 아프리카, 카보 베르데
[김윤정 칼럼] 펜으로 쓰는 춤(20) - 여행, 아프리카, 카보 베르데
  • 김윤정 무용가
  • 승인 2022.04.24 2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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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보 베르데의 황량한 벌판 (사진=김윤정)
카보 베르데의 황량한 벌판 (사진=김윤정)

[더프리뷰=카보베르데] 여행. 여행은 설렘이다. 여행은 자기라는 실체를 잊고 다시 태어난 듯 새로운 시간과 공간이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움직이던 습관화된 의식들이 새로운 공기와 섞이는 순간 기분 좋게 자기부정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시간의 법칙과 공간의 법칙을 넘나들 수 있는 어떤 또 다른 세계를 만나는 것이다. 그리고 여행은 일상의 현실로부터 나를 떼어 놓을 수 있고, 그래서 가식 없는 자연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여행지에 따라서 물리적 거리를 넘어서는 순간 시간 여행이 되기도 한다. 여행지의 풍경에 따라 우리가 살고 있던 곳에서 익숙한 과거로 또는 미래로 온 듯한 기분 좋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최근 카보 베르데라는 섬나라들로 이루어진 아프리카에 다녀왔다. 나는 공연 투어와 여행으로 많은 나라들을 다녔지만 아프리카라는 땅은 처음 밟아본 것이다. 미지의 세계는 꼭 눈이 즐거워야 하는 것도 아니며 그 자체로 무한한 영감이다.

시인 류시화는 “내 생의 증거는 언제나 여행에 있었다. 살아 있음을 가장 잘 증명해 줄 수 있는 것은 여행이었다. 여행 중일 때 그 어느 때보다 나 자신일 수가 있었다.”라고 했다.

카보 베르데

나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 카보 베르데라는 나라에 대한 리서치를 조금 했는데 구글이나 다른 포털 사이트에서 보이는 ‘발견되었다‘라는 표현이 어딘가 부조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그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원주민)이 있는데 그 땅을 발견한 사람들이 마음대로 그 나라를 식민지로 삼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이 발견되었다고 표기된것을 보면서 우리는 아직도 어쩔 수 없이 서구 중심적인 관점으로 모든 것들이 돌아가고 구성 된 세상에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카보 베르데는 1456년 포르투갈에 의해 발견(?)되어 국왕의 개인 소유지로 삼았던 곳이다. 1963년 포르투갈 해외령이 된 후 1975년 7월 독립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연결 비행기도 리스본을 경유하게 되어 있었다. 카보 베르데는 서아프리카 북대서양에 위치하면서 15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구성된 나라다. 섬에서 섬으로 다니면서 그 섬마다 전혀 다른 풍경들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내가 기대했던 사자나 코끼리들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낮은 수심의 바다를 걸어 들어가서 아가 상어들이 수영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했다.

투명한 바다속의 아기상어 (사진=김윤정)
투명한 바다속의 아기상어 (사진=김윤정)

섬의 대부분 거리는 비포장 도로로 우리나라 70년대 느낌도 보였다. 관광사업이 주된 나라이니만큼 호텔 주변이나 풍경들이 다른 유럽하고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아 살짝 실망 아닌 실망을 했지만 야자수들과 적어도 20도가 넘는 습한 기온은 확실하게 달랐다. 그리고 소금광산 옆에 염도 높은 호수에 들어가 누워서 둥둥 떠다니며 관광객의 특권을 누리기도 했다. 수영을 하는 게 아니고 그저 편하게 물 위에 누워서 보는 하늘이라니 여행의 호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독일에서는 좀처럼 맛볼 수 없는 신선한 해산물 요리도 이번 여행의 즐거움이었다.

소금 호수에서 (사진=김윤정)

황량해 보이는 들판, 그리고 거대한 바위처럼 보이는 높은 산등성이에 드문드문 시멘트 집들이 보이고 빨래를 널고 있는 아낙들, 그 곁에서 노니는 아이들, 거리에는 주인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어딘지 배고파 보이는 동물들이 거닐고 있었다. 그리고 씨앗 한 톨 싹트지 않을 것처럼 메말라 있는 들판 위에 가끔씩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 나올 법한 앙상한 나무가 보였다. 그러고 보니 그 황량한 들판과 메마른 나무는 딱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무대처럼 보였다. 카보 베르데는 누가 봐도 한눈에 물이 귀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의외로 호텔의 물은 매끄러웠는데 증류수를 쓰기 때문이라고 했다. 바닷가에서 뛰어들며 천진하게 노는 아이들의 피부가 저녁의 지는 햇살에 섞여 반짝이고 있었고 파도 소리와 아이들의 웃는 소리가 너무나 평화로워 보이기도 했다. 나는 늘 가난한 나라들을 가면 한때는 불쌍하다는 단순한 연민이 있었는데 언젠가부터는 그들의 삶을 자본주의에 물든 잣대로 함부로 동정을 하는 것도 얼마나 편협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바닷가의 아이들 (사진=김윤정)
바닷가의 아이들 (사진=김윤정)

함께 여행하던 미국인 친구가 섬을 떠나기 전에 PCR 검사를 받아야 해서 현지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보건소 같은 곳으로 안내되었다. 나는 잠시 그 친구가 검사를 받는 동안 운전을 해준 카보 베르데인 청년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가 먼저 한국은 우크라이나-러시아전을 어떻게 보느냐, 독일은 어떠냐고 물어왔다. 나는 원인은 상관없이 온 세상이 전쟁을 먼저 시작한 러시아가 지탄을 받고 있으며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의문이 든다고 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오로지 자국의 이익을 위해 그 많은 전쟁을 일으킬 때는 왜 세상은 지금처럼 지탄을 하지 않았을까도 생각해본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자연스레 팬데믹의 이슈가 어느덧 러시아 전쟁으로 바뀌어 있다는 것에 동감하면서 한 치 앞을 알 수 없게 돌아가는 세상 이야기들을 나눴다. 그러면서 의외로 생각이 통하는 우리의 짧은 대화가 신기해서 또는 기특(?)하다는 생각에 너는 어떻게 그렇게 온 미디어가 떠드는 이슈들에 함몰되지 않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냐고 물으니 자신은 되도록 미디어를 보지 않고 생각을 많이 한다고 했다. 언젠가부터 미디어에 우리가 조종 당하는 것 같아서 되도록 다양한 창구로 정보를 보고 또는 그런 걸 보고 영향 받기보다는 스스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조금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 청년을 보면서 나는 ”악이란 뿔 달린 악마처럼 별스럽고 괴이한 존재가 아니며, 사랑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우리 가운데 있다. 그리고 파시즘의 광기로든 뭐든 우리에게 악을 행하도록 계기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멈추게 할 방법은 ’생각‘하는 것 뿐이다.”라고 했던 독일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를 떠올렸다.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카보 베르데의 작은 섬과 섬을 오가며, 해가 뜨고 지면서 달이 뜨고 지면서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을 보면서 마치 처음 보는 태양처럼, 달처럼, 별처럼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그 순간들을 기억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그리고 비극적인 사건들의 역사 속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은 사람들, 진화하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아프리카

아프리카는 우리에게 가장 선입견이 많은 곳 중 하나일 것이다. 아프리카에는 5개의 다른 인종과 55개국이나 되는 나라들이 있다. 나는 카보 베르데라는 나라보다는 아프리카를 처음 가본다는 것에 의미를 더 두게 되었었는데, 나라 이름을 떠올리기보다는 아프리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으로 뭔가 더욱 머나먼 새로운 땅을 밟는 느낌이 들었던 것은 왜일까?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 사람으로서는 별로 기분 좋은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우리에게 한국이 어느 나라인지는 중요하지도 않고 그저 아시아인이라고 부른다면 어떨까?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을 것이다.

낚시하는 사람들 (사진=김윤정)
낚시하는 사람들 (사진=김윤정)

아프리카처럼 오랜 시간 비극적인 역사를 견딘 대륙도 드물 것이다. 14세기 후반부터 아프리카 흑인을 노예로 만든 유럽인들, 그중에 벨기에가 아프리카 사람들을 고무농장에서 노동착취를 하면서 할당량을 못하면 손목을 자른다든지 했던 이야기는 유명하다. 15세기 시작된 노예무역, 18세기 이후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주의로 인해 아프리카를 영구 노예화해야겠다 해서 시작된 정신적 노예화 작업은 유럽 한복판의 인종 전시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그들이 백인보다 열등하다는 가설을 세워놓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저질렀던 잔인한 실험들은 너무나 비극적이다.

어느 미국 역사학자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전, 아프리카인들은 이미 그들만의 항해술로 대서양을 왕래하고 아메리카의 땅에 살고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스스로 문명을 발전시키던 아프리카에 불행의 씨앗이 퍼진 건 서구 열강과의 만남 이후였다. 노예무역으로 수많은 아프리카인들이 목숨을 잃고 터전을 빼앗기고 약탈당하는 끊임없는 침략을 당했다. 아프리카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하여, 제국주의 열강이 만든 식민지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 하나의 대륙이 되자는 '범아프리카주의’ 운동이 있었지만 그 꿈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식민지 국가들이 떠나면서 자신들의 꼭두각시를 지도자로 세우거나, 서구 열강이 멋대로 나눠 놓은 국경선 때문에 민족 간의 갈등과 내전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 대한 이미지는 대부분 서구에 의해 조작된 것이다.

아무리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려고 해도 이미 듣고 보아온 아프리카에 대한 선입견을 지운다는 것은 어쩐지 불가능해 보였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들 중에 아프리카를 있는 그대로 느끼고 본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장 그르니에, 섬

나는 여행을 떠날 때면 책꽂이의 책들을 훑어보다가 그 순간에 즉흥적으로 손이 가는 책을 한 권 들고 가는 버릇이 있는데 이번 여행에는 장 그르니에의 <섬>이란 책을 들고 갔다. 사실 이번 여행에서는 책을 읽을 만큼 여유가 있지는 않았지만 여행의 마지막 날 비행기를 갈아타야 하는 리스본에서 한나절을 보내며 책을 볼 여유가 있었다. 물론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책이었지만 다시 새롭게 다가오는 문장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서 도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그것은 거의 불가능하므로), 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해서 여행을 하는 것이다.

Saal 섬의 비치 (사진=김윤정)
Sal 섬의 비치 (사진=김윤정)

한 인간이 태어나서, 그리고 죽을 때까지 거쳐야 하는 이 광막한 고독이라고 하는 것 속에는 어떤 특별한 의미를 지닌 장소들과 순간들이 있기 마련인 것이다. 그 장소, 그 순간에 우리가 바라본 어떤 풍경의 모습은 우리에게 커다란 영향을 준다. 마치 오랫동안 잊고 있던 친구를 마주 보면 깜짝 놀라듯이 어떤 미지의 도시를 마주하고서 깜짝 놀랄 때, 우리가 바라보게 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가장 진실한 모습이다.”

“여행을 한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산을 하나 넘으면 또 산이 나오고, 들판을 가로질러 가도 또 들판이 나오고 있고, 사막을 지나가도 또 사막이 있으리. 나는 영원히 그 여행을 끝내지는 못할 것이고, 마침내 나는 나의 둘시네아(Dulcinea)를 그 어느 곳에서도 찾지 못하리니. 그러므로 어느 누군가가 말하듯이, 이 좁다란 공간 안에 그 오래고 긴 희망을 가두어 두어야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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