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춘풍화무’의 깊고 짙은 춤들이 새 봄을 일으켰다
[공연리뷰] ‘춘풍화무’의 깊고 짙은 춤들이 새 봄을 일으켰다
  • 김영희 전통춤 이론가
  • 승인 2022.05.06 17:3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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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프리뷰=서울] 김영희 전통춤이론가 = 얼핏 ‘봄바람 꽃춤’을 떠올렸지만 ‘춘풍화무(春風化舞)’이다. 『악학궤범』 서문에 “舞所以行八風而成其和節”이라 했으니, 즉 춤은 팔풍(八風)을 행하고 절주(節奏)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라고 했다. 춤이란 여덟 가지 바람, 기운을 행함으로써 이루어지며, 장단과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춘풍화무(春風化舞)’는 춘풍(春風)이 무(舞)을 일으키며, 또한 춘풍으로 만들어낸 춤을 뜻한다. 봄 바람이 일렁이니 뭇 생명들이 일어나고, 생명들과 함께 일만 가지 춤의 기운도 일어난다.

임관규의 '강선영류 태평무'(©️옥상훈)
임관규의 '강선영류 태평무'(©️옥상훈)

4월 2일 서울 양재 M극장에서 달구벌입춤보존회와 윤미라무용단이 주관한 ‘춘풍화무(春風化舞)’ 공연이 있었고, 부제는 ‘2022 달구벌입춤과 함께하는 우리춤 첫 번째 춤판’이었다. <달구벌입춤>은 고 최희선(1929-2010)의 작품으로, 대구에서 활동했던 그가 남긴 대표작이다. 김수악(1926-2009)의 <교방굿거리춤>과 함께 경상도 여성 홀춤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춤이다. 큰 제자인 윤미라 교수(경희대)의 대표 레퍼토리이며, 제자들에게 빼놓지 않고 전승하고 있다.

장유경의 '선(扇)살풀이춤'(©️옥상훈)
장유경의 '선(扇)살풀이춤'(©️옥상훈)

프로그램은 최지원(경희대 겸임교수)을 중심으로 경희대 제자인 이화연, 이혜인, 한비야, 김미소가 춘 〈최희선류 입춤〉으로 시작되었다. 이어서 장유경(계명대 교수)의 입춤 〈입-입소리에 춤을 얹다〉, 임관규(비손무용단 대표)의 <한량무>, 윤미라의 이동안류 <진쇠춤>, 그리고 장유경의 <선(扇)살풀이춤>, 임관규의 <강선영류 태평무>, 마지막으로 윤미라의 최희선류 <달구벌 입춤>이 추어졌다.

장유경의 '입-입소리에 춤을 얹다' ©️옥상훈
장유경의 '입-입소리에 춤을 얹다' (©️옥상훈)

첫 작품 <최희선류 입춤>은 최희선의 수건춤, 입춤, 덧배기춤으로서의 특징들을 윤미라가 5인무로 구성한 춤이다. <달구벌 입춤>의 구성과 유사했으며, 화사하게 춤판을 열렸다. 그리고 장유경의 입춤 <입- 입소리에 춤을 얹다>가 이어졌다. 입소리는 구음(口音)을 의미하며, 장유경은 명창 고 김소희(1917-1995)의 구음에 맞춰 한 자락 춤춘 것이다. 음반이었지만 김소희 명창의 구성진 소리가 생생했다. 입춤이므로 入이든 立이든 첫번째 춤이라 할 수 있고, 구음에 얹은 장유경의 입춤이기도 했다. 겸하여 의상이 특이했다. 문양이 있는 흰 공단의 치마 저고리인데, 저고리 소매는 붕어소매(소매 배래의 곡선을 둥글게 살렸으며, 이매방 선생이 이를 붕어소매라 칭했다.)이며, 치마폭을 부풀리지 않고, 배만 약간 살렸다.

스승 이매방(1926-2015)이 오래전 손수 만들어주셨다는데, 손님을 맞으려 치장한 느낌이 아니다. 장유경은 손춤으로 춤을 시작해 중간에 짧은 수건을 꺼내 화려하지 않은 수건놀음을 했고, 자진모리에서 보여준 애드립은 장유경 특유의 맛을 구사했다. 다양한 춤 경험들이 배어있으며, 뻣뻣한 듯하면서 비정형의 곡선들이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초저녁 어스름한 때 어쩌다 춤이 발흥하여 한바탕 추고나니 사위가 어두워졌는데, 오래 묵었던 번민을 털고 심신이 홀가분해진 느낌이다.

윤미라의 이동안류 '진쇠춤' (©️옥상훈)
윤미라의 '이동안류 진쇠춤' (©️옥상훈)

그리고 윤미라의 <진쇠춤>을 오랜만에 독무로 보았다. 5인무 구성이 아닌 홀춤으로 보니 윤미라의 이 춤이 더 잘 보였다. 경기재인청 출신 이동안(1906-1995)의 춤으로서, 부정놀이, 반서림, 엇중모리, 올림채, 진쇠장단, 경상도엇굿거리, 넘김채, 터벌림, 자진굿거리 등의 경기도 가락들로 진행된다. 이동안이 입었던 구군복(舊軍服)의 남자 의상이 아닌 굿판 무녀의 무복(巫服)을 변형한 의상은 무대에 맞게 윤미라의 미감을 짙게 가미했고, 바지가 아닌 치마를 입으면서 독자적인 스타일을 만들었다. 의상에 따라 당연히 춤의 인상이 달라지는 터, 우아(優雅)하고 미려(美麗)한 진쇠춤을 풀어냈고, 꽹과리채의 채발림은 장단을 잘 타고 넘으며 멋을 냈다. 그렇게 초반에 이 춤의 격식을 갖추어 정성껏 춘 후, 후반 자진굿거리에서 장단의 흥이 더욱 고조됐고, 윤미라의 춤도 신명이 올랐다. 어느 때보다 훨씬 편안하고 유연했으며, 관객들의 호응을 불러냈다. 기운이 상승하고 교감하는 보기 좋은 춤판이었다.

임관규의 '한량무'(©️옥상훈)
임관규의 '한량무'(©️옥상훈)

중년 이상 남성 춤꾼으로서 입지가 탄탄한 임관규의 <한량무>도 그날의 춤판을 풍성하게 했다. 그는 한량무를 자신의 스타일로 구축했고, 2020년 11월 대구에서 열렸던 최희선 추모공연에서도 공연했다. 구성의 포인트는 과감하지 않으나, 여러 스승에게 배운 춤사위 중 구성진 대목들을 결합해 자연스럽게 소화했다. 그렇게 다양한 춤사위들을 펼치다가 잡아채는 대목에서는 눈매도 호흡도 선연해진다. 그런데 그 날 M극장 공연에서 그의 호흡은 더욱 여유 있고 살아있었다. 봄을 여는 공연이면서, 관객과 시선을 주고받는 소극장 춤판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섬세하면서도 묵직한 인상이 그 연륜의 중후한 멋으로 배어나왔다.

윤미라의 최희선류 '달구벌입춤'(©️옥상훈)
윤미라의 '최희선류 달구벌입춤'(©️옥상훈)

마지막 춤은 윤미라의 최희선류 <달구벌 입춤>으로 독무로 추었다. 그의 <달구벌 입춤>을 2020년 대구에서 행한 최희선 추모 공연에서 언급한 바 있다. 손춤, 수건춤에서 서서히 멋을 내고, 소고를 들자 감칠맛나게 소고 놀음을 추더니, 마지막 굿거리 대목에서 입으로 수건을 물어올리는 장면은 20세기 중반 수건춤의 한 구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리고 윤미라는 다소 마른 외모지만 장단을 쩡! 하고 먹었다가 풀어내는 경상도 덧배기의 특징과 중심을 잡고 무심히 떨어뜨리는 손사위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대구의 대극장 공연에서 기려(綺麗), 즉 곱고 아름다운 표현이 거듭 깊어지는 느낌이었다면, 그날 소극장 공연에서는 무르익어 통달하고 편안했다. 그렇게 공연이 끝났고, 관객은 오랜만에 깊고 짙은 춤판을 보았다.

윤미라 교수는 올해 <달구벌 입춤>에 집중하고 시리즈 공연을 펼친다 한다. <달구벌 입춤>과 아울러 어떤 춤들이 춤판에 같이할지 궁금하며, 저마다의 멋이 관객에게 다양한 흥취와 인상을 남기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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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헌 2022-06-14 22:33:47
지난 주 2회차는 양성옥 선생과 한혜경 선생이 초대되어 양성옥님은 태평무와 명가 입춤, 그리고 한해경님은 살풀이춤 (이매방 류) 십이체장고춤을 추시고 주관춤꾼인 윤미라님은 이동안류 진쇠춤과 달구벌 입춤을 추었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