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음악이 보이는 스토리텔링의 마력
[공연리뷰] 음악이 보이는 스토리텔링의 마력
  • 한혜원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2.05.21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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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일·마르쿠스 하둘라 듀오 리사이틀 ‘시인의 사랑’
김세일 마르쿠스 하둘라 듀오 리사이틀(제공=   )
김세일 마르쿠스 하둘라 듀오 리사이틀(제공=목프로덕션)

[더프리뷰=서울] 한혜원 음악 칼럼니스트 = 지난 5월 12일 예술의전당 IBK홀. 테너 김세일과 피아니스트 마르쿠스 하둘라의 듀오 리사이틀이 공연되었다. 2020년에 나온 앨범 <시인의 사랑>의 곡들로 이루어진 무대였다. 당시 앨범 발매 리사이틀을 앞두고 팬데믹으로 취소된 지 2년 만에 열린 리사이틀이다.

<리더 크라이스 Op. 24> 연가곡으로 무대를 열었다. 물오른 꽃봉오리처럼 터지는 하이네의 시어(詩語)는 슈만의 선율을 타고 김세일의 목소리에 실려 객석으로 번졌다. 상처 입은 남자는 목수에게 관을 짜달라고 부탁하고, 여인에게 작별을 고하며 뱃사람을 따라 항구로 간다. 청중은 아름답고 슬픈 사랑의 전설 한 편을 음미했다.

김세일은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다. 이어진 슈만의 발라드 <벨사살>과 <두 사람의 척탄병>에서도 그 진가가 드러났다.

구약성경 다니엘서 5장의 이야기인 <벨사살>. 긴박감 있게 두드리는 피아노 위로 김세일은 드라마를 펼쳤다. 벨사살 왕이 베푸는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누군가의 손가락이 나타나 벽에 알 수 없는 글씨를 쓰는 장면이 그려졌다. 김세일과 하둘라의 피아노는 호흡을 같이하며 드라마를 이끌어갔다. 정확한 딕션 역시 최고의 에반겔리스트다웠다. 곡이 끝난 후에도 객석은 긴장감을 풀 수 없었다.

<두 사람의 척탄병>은 러시아에 패하고 퇴각하는 프랑스 병사들의 이야기다. 긴장감과 변화를 주며 두 병사의 대화를 이끌어가는 김세일의 스토리텔링은 탁월했다. 나폴레옹을 영웅으로 생각한 하이네와 슈만의 음악은 <라 마르세예즈>의 선율로 격정적으로 치닫다가 패잔병들을 처연히 묘사하는 피아노로 마무리된다. 하둘라의 피아노는 김세일의 스토리텔링을 끊임없이 이어나갔다.

김세일 마르쿠스 하둘라 듀오 리사이틀(제공=목프로덕션)
김세일 마르쿠스 하둘라 듀오 리사이틀(제공=목프로덕션)

<시인의 사랑> 연가곡. 이날 공연된 모든 곡들은 1840년, 슈만이 클라라와 결혼하던 해에 나온 명작들이다. 오랜 법정 공방 끝에 마침내 클라라와 결혼을 해낸 슈만은 사랑과 안정감에 충만해 100여 곡의 가곡을 완성하기에 이른다. 슈만이 경험했던 모든 감정, 사랑과 불안과 슬픔과 열정이 <시인의 사랑>에 담겨있다. 김세일의 노래는 몰아치는 사랑에 휘청거리는 시인을 저절로 상상하게 했다. 그리움과 벅차오름, 예견되는 슬픔, 사랑하는 여인의 결혼식. 명료한 발성과 다양한 컬러의 음색, 그리고 꿈결 같이 흐르다가도 심박소리처럼 달리는 피아노가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음악을 완성해갔다.

청중은 진지하게 집중할 수 있었다. 깊게 뿌리내린 나무처럼 흔들리지 않는 호흡과 분명한 딕션, 그리고 섬세한 표정으로 만들어낸 김세일의 음악은, 청중을 듣는 데 머물지 않고 보게 했다. 가사 외에 어떤 그림도 영상도 없었건만 하이네와 슈만이 전하는 이야기를 볼 수 있던 무대였다. 진한 공감과 여운 뒤에는 하둘라의 피아노가 있었다. 마지막 앙코르곡 <헌정>에서 환희에 찬 슈만의 탄성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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