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연출가 호드리게스의 첫 내한공연 ‘소프루(Sopro)’
세계적 연출가 호드리게스의 첫 내한공연 ‘소프루(Sopro)’
  • 이시우 기자
  • 승인 2022.06.07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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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 해외초청작, 극장에 깃든 기억 담아내
'소프루' 포스터(사진제공=국립극장)

[더프리뷰=서울] 이시우 기자 = 국립극장은 6월 17일(금)부터 19일(일)까지 포르투갈 출신의 세계적인 연출가 티아구 호드리게스(Tiago Rodriguese)의 연극 <소프루(Sopro)>를 달오름극장에서 선보인다. 최근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 차기 예술감독으로 선정되며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는 호드리게스의 작품이 한국에서 공연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소프루>는 그의 대표작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배우에게 대사나 동작 등을 일러주는 ‘프롬프터(Prompter)’의 존재에 빗대어 극장과 무대 뒤 수많은 삶, 나아가 잊혀 가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포르투갈 도나 마리아 2세 국립극장(Teatro Nacional D. Maria II)이 제작해 2017년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초연한 이후 파리가을축제, 더블린축제, 빈축제 등 세계적인 공연예술축제와 유수의 극장에서 꾸준히 공연됐다.

‘소프루(Sopro)’는 포르투갈어로 ‘숨‧호흡’을 뜻한다. 작품은 제목 그대로 극장이라는 공간에 깃든 숨결에 귀를 기울이며, 40년 넘게 포르투갈에서 현역 프롬프터로 살아 온 크리스티나 비달(Cristina Vidal)을 무대에 등장시킨다. 프롬프터 박스나 무대 옆에서 나와 처음으로 관객에게 모습을 드러낸 그녀는 인생의 절반 이상을 보낸 극장에서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작품은 크리스티나 개인의 이야기와 몰리에르, 장 라신, 안톤 체호프 등 유럽 고전희곡의 서사가 교차하며 허구와 실재, 연극과 현실이 경계를 허물고 서로 스며든다.

‘소프루’ 공연 사진 ©Christophe Raynaud de Lage

티아구 호드리게스는 40대 중반의 젊은 거장이다. 배우로 연극 활동을 처음 시작한 후, 작가 겸 연출가로 활약하며 포르투갈 연극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았다. 2003년 공동 창단한 극단 문두 페르파이투(Mundo Perfeito)의 작품들이 세계 무대에 초청받으며 이름을 알렸다. 이후 2015년부터 2021년까지 포르투갈 도나 마리아 2세 국립극장의 예술감독을 맡아 연극을 통한 도시와 국가 간 가교 역할을 해 왔으며, 특유의 문학적 상상력과 시적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전 세계 관객과 평단을 사로잡았다.

예술과 기억을 통해 사회적‧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유럽의 인문주의적 전통에 경의를 표하는 티아구 호드리게스의 예술관은 <소프루>에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는 크리스티나 비달의 초상을 통해 빠르게 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점차 잊혀 가는 존재와 오랜 문화유산을 기억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호드리게스는 “크리스티나의 이야기를 통해 극장의 가려진 곳에서 일하는 분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라며 “지금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누구나 목소리를 내고 ‘나’에 대해 말하는 시대지만 그 속에서도 ‘나’만을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들, 드러나지 않은 채 타인을 위해 일하며 행복과 의미를 찾는 이들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라고 밝혔다.

‘소프루’ 공연 사진 ©Filipe Ferreira

소프루>는 삶과 예술에 대한 예찬이자 녹록지 않은 현실에서도 무대를 만들어가는 이들에게 바치는 오마주로, 마치 호흡처럼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들을 돌아보게 한다. 또한 한국 관객에게 다소 낯선 포르투갈 예술과 연극의 진면모를 확인할 귀한 기회가 될 것이다. 포르투갈어로 공연되며 한국어 자막이 제공된다. 6월 18일(토) 공연 후에는 크리스티나 비달 등 출연 배우가 무대에 올라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가진다. 예매와 문의는 국립극장 홈페이지.

공연 자세히 보기

연출가 티아구 호드리게스 ©Filipe Ferreira
연출가 티아구 호드리게스 ©Filipe Ferreira

그의 작업은 연극의 전통적인 협업 방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연극을 활용해 기록물을 다루고 사회‧역사적 현상에 대한 자각을 일깨운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은 호드리게스는 2018년 유럽연극상(Europe Prize) ‘새로운 극적 현실(New Theatrical Realities)’ 부문의 15회 수상자로 선정됐으며, 프랑스 문예 기사 작위를 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의 차기 예술감독으로 선정되어 오는 9월부터 임기를 시작하는 등 세계를 무대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티아구 호드리게스는 독보적인 행보로 포르투갈 연극의 새 지평을 확장한 인물이기도 하다. 아홉 살 소녀의 시선으로 포르투갈의 긴축재정 시절을 조망한 <기린 생애의 슬픔과 기쁨>(2011), 살라자르 파시즘 정권의 검열을 그린 <무릎 아래 세 손가락>(2012) 등 그의 작품은 연극을 통해 사회·정치적 담론을 깊이 있게 사유하고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아낸다.

호드리게스는 지극히 개인적인 실제 이야기와 고전의 보편적인 서사를 엮어 유럽의 문학적 전통을 재해석하는 작업으로도 주목받았다.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2014), <보바리>(2016), <그녀가 죽는 방식>(2017)과 함께 그의 대표 레퍼토리로 손꼽히는 일인극 <기억하며>(2013)는 10명의 관객을 무대에 소환해 셰익스피어 소네트를 함께 습득한다. 호드리게스의 할머니가 겪은 이야기를 독일·러시아·미국 소설가의 글과 뒤섞는 과정을 통해 시와 기억, 자유에 찬가를 보내는 이 작품은, 어떤 외부의 권위도 사람의 내면에 자리 잡은 인간성이나 기억을 앗아갈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번에 내한하는 <소프루>는 티아구 호드리게스의 대표작으로 2017년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초연돼 관객과 평단을 사로잡았다. 초연 당시 “연극과 연극을 창조하는 이들에 대한 강렬한 헌사”(르 피가로), “솟아나는 생명력을 뽐내며 아름다움과 지성을 선보이는 뛰어난 공연”(르 몽드) 등의 극찬을 받았다. 동시대 공연예술계의 최전선에 있는 호드리게스의 작품 세계와 포르투갈 연극의 진면모를 느낄 귀한 기회다.

처음으로 관객에게 모습을 드러낸 프롬프터

연극과 연극을 창조하는 이들에게 바치는 장대한 헌사

티아구 호드리게스는 <소프루>를 통해 연극이라는 유산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유럽의 문화적 쇠퇴에 저항하는 메시지를 던진다. <소프루>에서는 배우의 목소리와 음악은 한 발 뒤로 물러나고 극장 자체의 숨결이 전면에 드러나는 가운데, 위대한 고전이 다시 깨어나고 영웅들이 소환되기도 한다. 뛰어난 작가들과 극의 생명력을 펼쳐놓음으로써 연극과 극장을 지켜가야 할 이유를 환유적인 유머와 멜랑콜리로 풀어낸 것이다.

티아구 호드리게스는 “유럽의 고전과 연극적 유산이 녹아있어 작품이 다소 낯설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핵심은 기억하는 것이 곧 저항이자 삶의 행위라는 것이다.”라며 “여러 장벽을 넘어 한국 관객에게도 작품의 메시지가 전해지기를 바란다.”라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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