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정 칼럼] 펜으로 쓰는 춤(23) - 당신은 사랑하고 있나요?
[김윤정 칼럼] 펜으로 쓰는 춤(23) - 당신은 사랑하고 있나요?
  • 김윤정 무용가
  • 승인 2022.08.22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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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거리 벽화 (사진=김윤정)

[더프리뷰=뒤셀도르프] 사랑에 관한 단상들을 쓰기로 하고 매일 아침 루틴인 나의 참새 방앗간 카페로 간다. 그리고 참고하려고 가져온 ‘사랑’에 관한 책들을 읽다보면 글 한 줄 쓰지 못하고 시간이 다 가버린다. 이토록 사랑에 관한 이야기들이 다양하게 펼쳐지고 분석되고 있다는 것이 놀랍고, 더 놀라운 것은 그렇게 다양한 담론들이 있지만, 여전히 사랑에 관한 정의는 어렵다는 것이다.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프랑스 작가, 1915-1980)는 “사랑의 담론은 일종의 유폐된 출구이다.”라고 말한다.

 

상하이 거리 (사진제공=김윤정)
상하이 거리 (사진=김윤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끊임없이 이야기되고 있고 예술의 주제가 되고 있는 것은 사랑이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표현방식으로 다양한 작품을 창조하고 남겼지만 여전히 그들도 절절한 사랑의 갈구를 표현한다. 크리스티앙 보뱅(Christian Bobin, 프랑스 작가, 1951-)은 <작은 파티 드레스>라는 책에서 “사랑 밖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사랑 안에서는 할 수 없는 것들뿐이다. 예술은 사랑하는 삶의 찌꺼기에 불과하며, 사랑하는 삶만이 유일한 삶이다. 위대하다든지 시인이라든지 문학이라는 것도 무의미한 말이다.”라고 표현한다.

가끔 나는 이런 극단적인 표현이 가슴 속에 박힐 때가 있는데 점점 그렇게 극단적인 감정이나 생각들이 사라져 가고 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내가 표현하기에는 부담스러운데 누군가의 글을 통해서 대리만족을 하는 기분이랄까? 점점 불투명하고 진실은 요원해지는 세상에서 아주 명확하게 ‘그렇다’라고 말하는 문장은 힘이 있다.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어도 말이다.

 

베를린 신호등 (사진제공=김윤정)
베를린의 신호등 (사진=김윤정)

언젠가 친구가 들려준 말이 생각난다. 그 친구가 소르본 대학에서 철학 강의를 듣던 시절, 키가 작고 배도 불룩 나온, 나이도 꽤나 드신 철학 교수님이 있었는데 그분이 입만 열면 그러니까 강의를 시작하면 너무 섹시해서 사랑에 빠질 것 같다고 했다. 아니 그 순간만큼은 사랑에 빠진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 강의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너무나 이해가 가는, 공감이 되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이것은 여자들의 특성일지도 모르겠다. 여자들은 관능적인 사랑이 아니어도 사랑에 빠질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내가 남자가 아니므로 남자들도 그렇다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나는 반박할 수는 없다.

이렇듯 사랑의 대상은 다양하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인간을 좋아하지 않은 탓에 한 장소를 대상으로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폭풍우 같은 남녀의 사랑보다는 어떤 장소에 사랑에 빠지고 그 대상 속으로 사라지고 싶은 마음은 얼마나 멋진 환상인가? 이렇게 모든 사랑하는 것에는 매혹하는 그 무엇이 있는 것이다. 심지어 사랑은 우리가 원하는 줄도 몰랐던 것들을 깨닫게 해주기도 한다.

 

집 마당에 핀 장미 (사진제공=김윤정)
집 마당에 핀 장미 (사진=김윤정)

사랑에 빠지고 싶다거나 사랑하고 싶다는 감정은 결국 다시 말해 무언가에 매혹되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벅차고 설레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 순간들이야말로 내가 살아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게 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는 그것이 어떤 호르몬의 작용으로 정상 기능이 마비되는 순간이라고도 하지만 세상은 너무 현실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규칙으로 둘러싸여 있어 그토록 아름답고 혼미한 순간들이 찾아온다면 누가 과연 거부할 수 있을까? 어떤 매혹에 빠져드는 황홀함이 예고 없이 내 인생으로 저벅저벅 걸어올 때, 그것은 충분히 빠져들 가치가 있는 것이다. 세상을 통틀어 하나밖에 없는 언어로 하나뿐인 남자가 하나뿐인 여자를 부르듯이 말이다. 인생에 그런 순간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롤랑 바르트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내 욕망에 꼭 들어맞는 이미지를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우연과 놀라운 우연의 일치가 (그리고 어쩌면 얼마나 많은 탐색이) 필요했던가! 바로 거기에 내가 결코 그 열쇠를 알지 못하는 수수께끼가 있다. 왜 나는 그런 사람을 원하는 걸까? 내가 원하는 것은 바로 내 욕망이며, 사랑의 대상은 단지 그 도구에 불과하다.”라고도 한다. 어떤 과장됨이 느껴지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느 정도는 공감이 가기도 한다.

 

서울 거리 (사진제공=김윤정)
서울 거리 (사진=김윤정)

언어에는 적합하지 않은 사랑

언어로는 존재하지 않는 앎과 감정이 분명 존재한다. 그런데 사실 사랑은 언어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언어로 표현될 수 밖에 없다. 무언가가 알려지려면 말해야만 하고, 또 그것은 일단 말해진 이상 일시적이나마 진실이 되는 것이다.

사랑에는 또한 이율배반적인 것이 공존한다. 마치 사랑은 없고 사랑의 증거만 있다는 말처럼 사랑은 아이러니컬함으로 가득하다. 외롭다는 걸 모르면 사랑이 가능할까? 아니면 내가 외롭지 않고 완전할 때 진정한 사랑이 보이는 것일까?

나는 언젠가 <완벽한 사랑>이라는 작품을 공연한 적이 있는데 그때 공연에서 다양한 장면들의 대사 가운데 이런 텍스트를 이용했었다.

A: 우리 사이에 거리를 좁히려면 한 발을 내디뎌야 해.

B: 나를 잡으려면 너부터 단단히 붙들어. 더 단단히!

A: 지금 난 너 때문에 행복해. 넌?

B: 난 이미 행복해. 그래서 널 사랑할 수 있지.

A: 네가 있어서 외롭지 않아. 넌?

B: 내가 외롭지 않아야 네가 보여.

A: 좀 슬퍼 보이네?

B: 외로우니까.

A: 내가 이렇게 네 곁에 있는데 뭐가 외로운데?

B: 너는 나에게 단어로 말하고 나는 널 느낌으로 바라보니까.

뤼스 이리가레 (Luce Irigaray, 벨기에 철학가, 1930- )는 말로 이루어진 사랑을 실존적으로 타자화되어 있는 우리 관계 속으로 어떻게 가져올 것인가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타자에게 자신의 얘기를 하면서도 그에게 자신의 진리를 강요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또한 타자의 말을 듣고 그 속에서 자신의 세계가 움직여 온 것과는 다른 의미를 알아낼 수 있는 능력도. 소통하기 위해서 말은 항상 타자에게로 향해야 하며, 말해야 했던 것을 말할 수 없었던 상태로 스스로에게 돌아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타자는 더 이상 타자가 아닐 것이며 주체는 자율적인 지위를 상실할 것이다. 전달 불가능한 것이 항상 남아 있는 이러한 소통을 통해 그것이 전달하는 의미는 더 깊고 풍부해진다.“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도 말한다. “한 인간이 수행하도록 요청되는 예술작품은 우선 그 고유한 개별성 속에서 자신을 꽃피우는 일이다. 그러려면 아직 알려지지 않은 공간과 시간의 일굼이 우선해야 한다. 그리하여 인간이 자신과 타자에의 친근함을 찾는 것은 거리를 극복함으로써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 안에 머물 수 있는 능력, 자신을 둘러싼 것들과 다르게 자신의 자율성 속에서 존재하는 능력을 통해서, 또한 이것이 생겨나는 데 있어서 타자의 역할을 인식하면서 동시에 자신으로부터 일어나 나아갈 수 있는 능력을 통해서이다.”

 

베를린 거리에서 (사진제공=김윤정)
베를린 거리에서 (사진=김윤정)

사이의 친밀함

빌헬름 폰 훔볼트는 <언어로의 도상>에서 단어의 최고의 규칙은 사물의 전유가 아니라 사물을 사물 그대로 놓아두는 데 있다고 말한다. 즉 타자에게 말을 하면서도 어떻게 타자를 타자로 놓아둘 것인가의 문제, 더 나아가 어떻게 타자가 타자로서 존재하고 계속 그렇게 남아 있도록 북돋아줄 것인가 말이다. 한쪽이나 다른 한쪽의 내밀함을 침해하지 않고 자유로운 공간을 지킴으로써 ‘사이의 친밀함(intimacy-between)'이 생겨나도록 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니까 친밀함은 따로 거주할 것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사물들은 자체의 의미가 있다기 보다 내가 의미를 부여할 때 살아나고 소중해지고 가치가 살아난다. 하물며 인간은 말할 것도 없다. 누군가 내게 의미를 주고 관심을 줄 때 그 가치는 더욱 살아난다. 역으로 나 자신의 가치가 모두에게 의미 있는 것이 아니므로 사랑 받는 나 자신도 오직 그 한 사람에게 어떤 특별한 에너지를 주는 것이다. 단 한 존재를 바라보고 그 존재의 찬사를 받는 사랑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

 

아들의 어린 시절 (사진제공=김윤정)
아들의 어린 시절 (사진=김윤정)

사랑에 빠진 사람들과 사랑을 찾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건배를 들고 싶은 여름날 저녁이다.

마지막으로 예술가들이 말하는 사랑에 관한 한 줄의 문장들로 맺는다.

-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자기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볼 때 가장 가치 있는 단 하나의 질문은 나는 누군가를 얼마나 사랑했는가? 하는 것이다. (리차드 바크)

- 무엇이 우리의 삶을 증명할 것인가? 작품인가? 예술인가? 이름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오직 사랑만이 우리를 증명해줄 뿐이다. (알베르카)

- 내가 지나온 모든 길은 곧 당신에게로 향한 길이었다. 내가 거쳐온 수많은 여행은 당신을 찾기 위한 여행이었다. 내가 길을 잃고 헤맬 때조차도 나는 당신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당신을 발견했을 때 나는 알게 되었다. 당신 역시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달랄루딘 루미)

- 나의 전 생애는 당신에게 귀 기울이는 것이다. (뮤리엘 루카이저)

나는 작가 미상의 이 문장이 가장 와 닿는다. - “당신을 스쳐 지나가면 난 모든 걸 스쳐 지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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