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나림의 프리즘] 비비안 마이어, 셀피의 원조가 된 은둔자
[선나림의 프리즘] 비비안 마이어, 셀피의 원조가 된 은둔자
  • 선나림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9.02 14: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롤라이플렉스의 장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15만 장의 필름
뉴욕공공도서관(1954년경), 시카고(1960년), 시카고(1971년)©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뉴욕공공도서관(1954년경), 시카고(1960년), 시카고(1971년)
©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더프리뷰=서울] 선나림 칼럼니스트 = '미스터리한 천재 사진가' 등 많은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비비안 마이어(Vivian Maier)의 사진전이 8월 4일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그라운드시소 성수에서 개막했다.

비비안 마이어 전시회로는 최대 규모로 기획된 이번 전시는 프랑스 파리 뤽상부르 뮤지엄, 이탈리아 토리노 왕립박물관으로 이어진 유럽 투어 이후, 아시아 투어의 첫 번째 장소로 한국을 찾았다.

비비안 마이어가 직접 인화한 빈티지 작품과 미공개작을 포함한 270여 점의 사진, 그녀가 사용했던 카메라 및 소품, 영상, 오디오 자료 등을 만나볼 수 있다. 비비안 마이어의 시그니처로 불리는 셀프 포트레이트도 포함되어 있다.

비비안 마이어는 사진 역사상 ‘발견’에 가까운 가장 충격적인 데뷔를 한 사진가다. 무명이었다가 사후에 평가받는 예술가들이 한둘이 아니지만, 그녀는 스스로 무명을 선택했다. 평생을 보모로 일하며 15만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생전에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녀의 이름과 작품은 동네의 작은 경매장에서 우연히 사진을 낙찰받은 존 말루프에 의해 공개되면서 세상에 알려졌고, 대중과 미디어는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전문가들도 이 무명의 거리 사진가를 거장들과 비교하기 시작했고, 그녀에 대한 서적과 다큐멘터리가 쏟아져 나왔다.

그녀의 사진은 말 그대로 소셜 미디어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며, 전문가들로부터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로버트 프랭크, 헬렌 레빗, 다이앤 아버스 등 ‘세계적인 사진작가들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거장’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전 세계에 비비안 마이어 열풍을 일으킨 것은 물론, 매스컴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그녀의 사진에는 위트, 사랑, 빈곤, 우울, 죽음의 이미지가 섞여 있고, 거리에서 만난 수많은 인물들의 다양한 표정이 살아 있으며 색을 다루게 되면서 인종 문제 등의 부조화를 더 강렬히 표현하였다.

뉴욕(1953년)  ©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뉴욕(1953년) ©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세상 속의 나’보다 ‘뷰 파인더 속의 나’를 더 사랑한 비비안 마이어

미국 뉴욕 출생으로, 유년 시절 동안 미국과 프랑스를 오고 가며 살았던 그녀는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면서 여러 가정에서 보모로 일했다. 비밀스러운 그녀의 삶은 2007년 역사책에 쓰일 과거 거리의 사진을 찾기 위해 경매장을 찾은 아마추어 역사학자 존 말루프에게 인화되지 않은 필름 수십만 장이 들어있는 상자가 발견되면서 세상으로 나오게 됐다.

매혹적인 미장센의 대가 토드 헤인스 감독은 영화 <캐럴>을 제작할 때 비비안 사진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고백했고 뉴욕 타임스의 로버타 스미스는 “20세기 위대한 거리 사진작가들의 판테온에 새롭게 추대될 만하다”라고 언급했다.

자신의 삶을 철저하게 숨겨온 그녀는 아이로니컬하게도 셀피(Selfie)의 원조, 셀카의 여신으로 불린다. 그녀의 비밀스러운 삶을 생각하지 않고 보더라도 비비안 마이어의 셀프 포트레이트(self-portrait)는 마음을 잡아끈다. 세련된 구도는 미감을 자극하고, 생생한 피사체는 무언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캐나다(1955년) ©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캐나다(1955년) ©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보모였던 그녀는 '카메라를 든 메리 포핀스’

비비안의 작품 가운데 사진작가로서 본인을 강하게 은유하는 특별한 사진 한 장이 있다. 작은 소녀와 다 자란 어른의 모습을 동시에 드러내는 한 아이의 사진이다. 사진 속에서 아이는 커다란 남성용 시계를 차고 팔짱을 낀 채 당돌한 표정으로 사진작가를 쳐다본다.

자신감 넘치는 태도는 아이의 것이 아니라 어른의 것이다. 하지만 부드러운 곱슬머리, 더러운 얼굴, 눈물이 맺힌 눈, 작은 티셔츠는 아이의 것이다. 아이가 보내는 상반된 신호 때문에 사람들은 시선을 돌리지 못하고 아이를 쳐다본다.

비비안이 우리에게 보내는 신호도 그렇다. 불안하고 힘들었던 어린 시절에 형성됐고, 훗날 정체성 문제, 정신질환, 보상심리가 만들어낸 변덕이 더해져 심화된 복잡한 성격 때문에 비비안은 자신의 진짜 재능과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 보일 수 없었다. 그 때문에 형성된 팽팽한 긴장감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동시에 끌어당긴다.

©선나림
©선나림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사진이 찍히는 대상을 독점하는 것이다. 즉, 세상과 특별한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다“ - 수전 손택 <사진에 관하여 On Photography>

정신질환은 비비안의 이야기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그저 보조 역할을 할 뿐이다. 정신질환이 주제 면에서 그녀의 작품과 자화상 사진에 영향을 미친 건 거의 확실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비비안에게 사진은 그저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세상에 참여할 수 있게 해주는 촉진제였다.

그녀는 거리의 쇼윈도나 유리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자주 찍었다. 사진 속의 자신의 모습을 여러 개의 레이어 속에 숨기기도 했다. 자신의 삶을 철저하게 숨겨온 그녀가 셀피(Selfie)의 원조로, 셀카의 여신으로 불리게 된 것은 아이러니다.

분명한 것은, 사진은 비비안 마이어에게 세상과 이어지는 중요한 연결고리였고, 비비안이 원할 때면 언제라도 세상으로 들어가 자신이 있어야 할 정당한 위치를 요구했다. ‘과거를 빼앗긴 사람들이 가장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게 된다’는 수전 손택의 말은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그녀의 열정은 강박에 머무르지 않았고 사진을 통해 자신이 살아가고픈 삶을 살았다.

비비안 마이어의 신비로운 수수께끼를 들여볼 수 있는 이번 서울 전시는 8월 4일부터 11월 13일까지 그라운드시소 성수에서 <우연히, 웨스앤더슨> 전시의 후속 전시로 진행중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