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라흐 헤스트' - 생의 마지막 순간에 되돌아보는 삶과 예술
뮤지컬 '라흐 헤스트' - 생의 마지막 순간에 되돌아보는 삶과 예술
  • 김영일 기자
  • 승인 2022.09.13 1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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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김환기의 아내였던 김향안 이야기
뮤지컬 '라흐 헤스트' (사진제공=홍컴퍼니)

[더프리뷰=서울] 김영일 기자 = 뮤지컬 <라흐 헤스트>가 지난 9월 6일 대학로 드림아트센터에서 개막, 오는 11월 13일까지 공연된다. 열렬히 사랑하고 쓰고 그렸던 삶. 당대 최고의 예술가였던 두 남자와 함께했던 여인, 그러면서도 자신만의 예술을 향해 나아갔던 김향안(金鄕岸, 1916-2004)의 이야기이다.

2004년 2월 29일, 생의 마지막 순간에 향안은 수첩을 거꾸로 한 장씩 한 장씩 넘긴다. 남편 김환기를 떠나보낸 1974년의 기억부터 그녀의 시간은 거슬러 가고, 시인 이상을 낙랑파라에서 처음 만났던 1936년으로 돌아간다. 역순으로 교차되는 서사 속에서 향안이 인생을 살아가며 선택했던 모든 순간들을 비춰주고 그로 인해 자신의 빛을 만들었음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그려내 감동과 위로를 선사한다.

예술가와 사랑에 빠져 아프고 위태로웠던 순간에도 용기 있는 선택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향안은 인생의 골목 골목마다 일어났던 일들이 결국 자신을 빛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사람은 가도 예술은 남아(Les gens partent, mais l’art reste 레 장 파르트, 메 라르 레스트) 이상과 함께했던, 그리고 환기와 함께했던 모든 순간을 지나 스스로가 예술이 되었음을 깨닫는다.

지난 2020년 치열한 경쟁을 뚫고 CJ문화재단 스테이지업 최종 선정작으로 당선된 홍컴퍼니 제작 <라흐 헤스트>는 김향안의 글 한 구절을 제목으로 차용해 그녀가 걸어온 사랑과 예술의 길을 조명한다. 또한 곳곳에 인용된 이상의 싯귀로 문학성을 더해 완성도를 높였다.

김향안은 본명이 변동림(卞東琳)으로 191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양화가 구본웅(具本雄)의 계모인 변동숙(卞東淑)의 이복동생으로,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경기여고)를 거쳐 이화여자전문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1930년대 중반부터 문학활동을 시작, 1936년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상(李箱)과 결혼했다.

그러나 결혼 3개월 만에 이상이 일본으로 건너가 1934년 4월 도쿄에서 폐결핵으로 사망한 뒤 1944년 서양화가 김환기(金煥基)와 재혼했다. 1955년 김환기와 함께 프랑스 유학길에 올라 파리에서 미술평론을 공부했고 1964년 미국 뉴욕으로 건너간 이후 줄곧 거기에서 살았다.

1974년 김환기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남편의 유작과 유품을 돌보는 한편, 환기재단을 설립(1978년)해 김환기의 예술을 알리는 데 힘썼다. 1992년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환기미술관을 설립했다. 사설 개인 기념미술관으로는 국내 최초이다저서로는 수필집 <파리> <우리끼리의 얘기> <카페와 참종이>, 그리고 김환기의 전기인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가 있다.

이번 공연에서 김향안 역에는 이지숙과 제이민이 더블 캐스팅됐다. 향안을 만나면서 세계적인 화가로 성장하는 김환기 역은 박영수와 이준혁, 양지원이 연기한다. 이상과 사랑에 빠지는 향안의 20세 시절인 변동림 역은 임찬민, 김주연, 최지혜가 맡고, 동림의 연인인 자유로운 영혼 이상 역은 안지환, 임진섭이 연기한다.

김향안과 김환기, 변동림과 이상의 시간이 역순으로 교차되는 독특한 형식으로 재구성되면서 서로 다른 시대에서 각자의 사랑과 아픔, 예술을 만들어가는 네 캐릭터의 다양한 매력이 빈틈없이 채워진다.

생의 마지막 순간, 인생의 기로에서 용기있게 선택했던 모든 순간들이 모여 자신의 빛을 만들었음을 깨달아가는 향안의 여정이 짙은 여운과 위로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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