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니즘의 소중함, 프리엘의 '루나자에서 춤을'
휴머니즘의 소중함, 프리엘의 '루나자에서 춤을'
  • 이시우 기자
  • 승인 2022.10.30 0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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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자에서 춤을’ 포스터 (사진제공=종이로 만든 배)
‘루나자에서 춤을’ 포스터 (사진제공=종이로 만든 배)

[더프리뷰=서울] 이시우 기자 = 20세기 후반 가장 위대한 영어권 극작가로 평가 받는 ‘아일랜드의 체호프’ 브라이언 프리엘의 대표작 <루나자에서 춤을>을 극단 종이로 만든 배가 무대에 올린다. 작품은 가부장적 문화가 팽배한 1936년 전후 아일랜드의 한적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부모가 죽고 집을 지키기 위해 결혼하지 않고 모여 사는 다섯 자매의 비극적이고 아픈 삶을 따뜻하고 깊이 있게 그려낸다.

다섯 자매는 가부장적 금기에 맞서면서도 산업화로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가난한 일상을 살아간다. 어느 날 해마다 열리는 이교도들의 추수감사제인 루나자 축제가 시작되자, 다섯 자매는 부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루나자 음악에 맞춰 자신들만의 춤을 춘다. 고달프고 틀에 박힌 일상과 운명에서 벗어나려는 욕망과, 자신들의 최고의 순간들을 떠올리며 자유와 해방을 꿈꾸면서. 이 과정에서 잊을 수 없는 여운의 춤과 음악으로 휴머니즘의 소중함을 풀어낸다.

안톤 체호프의 영향을 깊게 받은 프리엘 특유의 시적 언어와 신화적 상상력이 절묘하게 결합된 이 작품은, 문학성과 함께 작품의 주제를 폭발적으로 보여주는 광란의 춤, 환상과 현실이 교차되며 어우러지는 마법의 순간을 음악으로 풀어내기도 한다. 개발과 파괴가 상식과 선으로 받들어지는 현대사회에서 이 작품은 과거와 오래된 미래를 공존하게 하며, 휴머니즘의 소중함을 축제의 속삭임처럼 잊을 수 없는 여운으로 각인시킨다.

오는 11월 4일(금)부터 11월 13일(일)까지 여행자 극장. 예매는 플레이티켓.

시놉시스

한 가족이 마치 오래된 그림처럼 정지해 있다. 그 가족의 유일한 후손인 마이클이 회상을 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사생아인 마이클과 아프리카로 선교활동을 떠난 큰 오빠, 그리고 다섯 자매로 구성된 아일랜드의 한 가정.

지금은 이 고장의 전통적인 춤축제인 추수감사절 루나자 축제 기간이다. 자매들은 루나자 축제에 참가하고 싶다. 그러나 엄격한 기독교 신자인 맏언니 케이트의 반대, 아프리카 제의에 감화돼 이교도로 낙인찍힌 오빠, 가난이라는 생활의 굴레 때문에 축제에 어울리지 못한다. 축제가 진행되는 발리벡을 추억하다가 다섯 자매는 벗어나고 싶은 자신의 운명과 자신들의 최고의 순간을 떠올리며 부엌에서 자기들끼리 춤의 축제를 벌인다.

얼마 전 아프리카로 선교를 떠났다가 오히려 그곳의 생활과 종교에 깊이 감화되어 돌아온 큰오빠 잭은 변화한 고향과 자신의 삶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세월은 흘러 공장이 들어서고, 아그네스, 로즈에게는 자신의 생계수단인 뜨개질 일거리가 떨어진다. 그리고 케이트는 오빠 잭의 이교도적인 모습 때문에 다니던 학교에서 쫓겨난다. 결국 생존을 위해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외지 혹은 고향에서 늙고 병들어 죽음을 맞이한다.

가족의 죽음을 회상하면서 마이클은 어머니와 이모들이 루나자 축제 기간에 춤을 추던 부엌과 아름다운 옛날 음악이 흘러나오던 라디오 마르코니, 일곱 살 때 처음 본 자신의 아버지 게리 에반스, 그리고 온 가족이 야외에 모여 행복한 저녁식사를 하며 바라보던 붉은 노을을 떠올린다. 마이클은 그 순간을 마법의 춤이라고 기억하며, 아마도 자신은 온 가족의 행복과 사랑이 충만한 그 순간 때문에 삶을 살아가고 인생을 사랑하는 것이리라 믿는다.

극단 종이로 만든 배는 오락 이상의 가치 있는 무대를 선보이려고 노력한다. 당대, 구석진 곳, 소수자의 목소리에 빛을 비춘다. 연극은 자본주의를 거슬러 오르는 행동이며, 무대는 배우예술로 당대의 모순과 투쟁하는 현장이라고 믿는다. 대표작으로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다 같이 기억하기 위한 무대 <내 아이에게>, 전 세계 인권운동가들의 목소리에 빛을 비춘 아리엘 도르프만의 한국 초연작 <권력에 맞서 진실을 외쳐라!>, 가부장적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공포와 불안을 다룬 두 작품, 김나연 작가의 <코카와 트리스 그리고 노비아의 첫날밤>과 백성호 작가의 <403호 아가씨는 누가 죽였을까>, 그리고 입체낭독공연의 효시 <박완서의 그리움을 위하여>, 아이를 잃은 부모들이 슬픔의 교수대에서 부르는 애가, 다비드 그로스만의 세계 초연작 <시간밖으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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