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예술의전당, 오페라로 소통과 공감을 꿈꾸다
[공연리뷰] 예술의전당, 오페라로 소통과 공감을 꿈꾸다
  • 한혜원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2.11.10 0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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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C 오페라 갈라
2022 SAC Opera Gala (사진제공=예술의전당)

[더프리뷰=서울] 한혜원 음악칼럼니스트 = 지난 10월 21일부터 23일까지 사흘간, 예술의전당에서는 성대한 오페라 갈라 축제가 열렸다. 앞으로 해마다 예술의전당이 직접 기획하고 제작해서 올릴 오페라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KBS 교향악단 (사진제공=예술의전당)
KBS 교향악단 (사진제공=예술의전당)

첫날 오프닝 나이트는 전형적인 갈라 공연으로 인기있는 명곡들을 모아 축제 분위기를 조성했으며, 둘째 날은 모차르트 오페라 하이라이트로, 마지막 날은 스페셜 갈라로 마련되었다. 21, 23일은 부퍼탈 심포니와 코펜하겐 필하모닉 상임 지휘자 출신 토시유키 카미오카가 KBS교향악단을, 22일은 동부 독일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게르트 헤르클로츠가 코리안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다양한 단체들의 합류로 더 풍성한 축제를 꾀하고자 한 시도로 보인다.

 

지휘자 토시유키 카미오카 (사진제공=예술의전당)
지휘자 토시유키 카미오카 (사진제공=예술의전당)

첫날 무대는 비제의 <카르멘> 서곡으로 포문을 열었다. 호기로운 카미오카의 지휘는 절도 있게 템포를 이끌었고, 소프라노 황수미·서선영, 메조 소프라노 김정미, 테너 김우경·신상근·백석종, 바리톤 이동환의 노래로 <라 보엠> <카르멘> <투란도트>의 명곡들을 들을 수 있었다. 성악가들은 최고의 기량을 보여줬으나, 노이 오페라 코러스가 많이 아쉬웠다. 특히 테너 파트는 거의 날 것 같은 소리를 냈다.

 

마술피리 (사진제공=예술의전당)
'마술피리' (사진제공=예술의전당)

둘째 날은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돈 조반니> <피가로의 결혼>의 대표적 장면들이, 마지막 날은 <토스카> 2막과 <리골레토> 3막, 그리고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가 공연되었다. 두 날 무대는 최근 광주시립오페라단의 메타버스 게임 형식 오페라 <마술피리>로 화제를 모은 정선영이 연출을 맡았다.

 

소프라노 황수미 (사진제공=예술의전당)
소프라노 황수미 (사진제공=예술의전당)

소프라노 황수미는 모차르트의 세 작품 모두에 출연했는데, 전혀 다른 세 캐릭터를 소화해내 갈채를 받았다. 기품있는 파미나와 복수심에 차오른 돈나 안나, 그리고 해맑은 수잔나의 캐릭터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모차르트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상징적인 장면들로 구성되다 보니 <마술피리>에서는 파파게노가 열일했다. ‘나는야 새잡이’ ‘사랑을 느끼는 남자들은’ ‘파파파’까지, 역시 <마술피리>의 최고 인기 캐릭터는 파파게노 같다. 바리톤 김경천이 어리숙하면서 사랑스러운 연기를 맛깔스럽게 해냈다.

추상적인 그림으로 표현된 무대 배경은 영상과 조명에 의해 전환되었다. 환상적이면서도 주제를 명징히 드러내는 상징적인 요소였다.

<돈 조반니>에서는 돈 조반니의 만찬에 기사장의 석상이 나타난 장면이 강렬했다. 2층 발코니석에서 가수가 노래해 객석 전체에 퍼지는 효과를 연출했다. 베이스 이준석의 위엄있는 소리는 최후의 심판처럼 울려 퍼졌다. 합창이 없었는데도 합창이 들리는 듯한 오케스트라의 효과도 신기했다. 조명으로 심리의 변화를 묘사한 점도 좋았다.

 

피가로의 결혼 (사진제공=예술의전당)
'피가로의 결혼' (사진제공=예술의전당)

<피가로의 결혼>은 저음가수들의 깨방정을 볼 수 있었다. 베이스 최웅조가 피가로를,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이 알마비바 백작을 맡은 것. 묵직한 피가로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케루비노의 손진희, 안토니오의 이준석, 백작부인의 홍주영도 제 역할을 잘 살렸다. 모두의 코믹 DNA가 한껏 펼쳐진 명품 오페라 한 편을 볼 수 있었다.

마지막 날은 스페셜 갈라로, 오페라의 한 막을 보여주는 특별한 구성을 선택했다. <토스카> 2막은 그 자체로 기승전결을 담고 있고, <리골레토> 3막 역시 극적 효과가 큰 장면이다.

<토스카> 2막의 히로인은 소프라노 서선영이었다. 늘 진지하게 캐릭터에 몰입하여 감동을 주는 성악가다. 노래와 기도만 하며 살아온 귀족여인 토스카가 연인을 위해 기밀을 누설하고, 그를 살리기 위해 스카르피아와 거래를 하고, 용기를 쥐어짜내 그를 살해한 후 탈출을 감행하는 2막은 터질 듯한 긴장과 안타까움으로 가득찼다. 스카르피아의 최기돈과 카바라도시의 백석종도 열연을 펼쳤다.

그리고 <리골레토>. 소프라노 강혜정의 끊어질 듯 이어가는 섬세한 표현력도 대단했지만, 질다의 주검 앞에 리골레토가 ‘저주!’를 울부짖을 때 무대가 아래로 하강하는 엔딩이 충격을 더했다. 비통한 지옥으로 청중도 함께 추락하는 느낌이었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사진제공=예술의전당)
'리골레토' (사진제공=예술의전당)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역시 완성도 높은 무대를 보여주었다. 투리두의 백석종은 최근 런던에서 요나스 카우프만 대신 투리두를 맡아 호평을 받았다. 몇 년 전까지 바리톤으로 활동했다는 전력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미성의 테너였다. 이번 갈라를 통해 국내 무대에 본격 데뷔한 백석종의 활약이 기대된다.

알피오를 맡은 사무엘 윤은 씬 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많지 않은 등장 씬마다 싸늘한 카리스마로 무대를 제압했다.

무대는 계단을 적극 활용했고 배경의 컬러로 등장인물의 심리를 표현했다. 계단에 펼쳐 선 사람들이 부르는 부활절 교회의 합창은 엄숙하고 아름다웠다. 연출자는 “부활절 기도와 합창에서 예술의전당의 새로운 출발에 대한 기대와 염원을 담아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잘 차려진 잔칫상이었다. 초대받은 손님들이 충분히 만족할 만한 축제였다. 잘 만든 오페라는 관객의 공감과 사랑을 받을 것이라는 희망을 본 공연이었다. 예술의전당이 지향하는 새로운 목표에 뜨거운 응원과 격려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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