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나림의 프리즘] 어느 수집 왕가의 초대
[선나림의 프리즘] 어느 수집 왕가의 초대
  • 선나림 칼럼니스트
  • 승인 2022.11.30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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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선나림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선나림

매혹의 명화를 모으다, 예술의 도시 빈

[더프리뷰=서울] 선나림 칼럼니스트 = 지난 10월, 국립중앙박물관은 빈 미술사박물관과 함께 한국과 오스트리아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는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특별전을 개막했다. 지난 고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에 이어 이번엔 <어느 수집 왕가의 초대>가 열린 것이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최고 전성기를 이끈 유일한 여성 통치자 마리아 테레지아는 왕실 회화 수집품을 슈탈부르크에서 벨베데레 궁전으로 이전시켰는데, 이 궁전 미술관이 빈 미술사박물관의 시초가 된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프라하, 스페인, 브뤼셀 등 유럽 각지에서 예술품을 600년에 걸쳐 수집하였고 이를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으로 이전하였다. 총 5부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예술품 수집의 역사를 다루며 왕가가 일군 예술의 도시, 19세기 빈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 디에고 벨라스케스, 1656년경, 캔버스에 유화, 105.0 x 88.0cm, ©빈미술사박물관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 디에고 벨라스케스, 1656년경, 캔버스에 유화, 105.0 x 88.0cm, ©빈미술사박물관

피카소의 롤 모델, 벨라스케스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스페인의 궁정화가로서 평생 그의 활동 무대는 왕궁 근처였다. 그는 자연주의적인 종교화를 발전시켰는데, 여기에서 인물은 이상적인 유형이라기보다는 현실 인간의 초상에 가깝게 그렸으며 유연하고 두터운 붓질로 독자적인 양식과 사실주의를 보여주었다. 바로크의 많은 화가 중 특히 카라바조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주었던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기법을 사용했지만, 자연스러움과 단순함을 추구했던 그는 르네상스의 전통에서 출발하여 루벤스 및 베르니니와는 반대 방향으로 그의 양식을 발전시켰다. 검은 배경이 되는 부분은 입체감을 주기 위해 묽게 칠하고 밝은 부분은 납이 함유된 흰색 염료를 주성분으로 두텁게 채색함으로써 특별한 원근법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은 입체감을 갖게 되는데, 이런 바탕의 작업은 세밀한 질감의 표현을 극대화해주는 그만의 기법으로 구축된다.

벨라스케스처럼 위대한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꾼 파블로 피카소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 대한 습작>이라는 제목으로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44번이나 변형하며 그리고 연구하였고, 이러한 벨라스케스의 영향력은 후일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로부터 생생히 부활한다. 흥미롭게도 특별전 포스터인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는 벨라스케스의 또 다른 작품 <시녀들>에서도 같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선나림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선나림

시대의 얼굴, 또는 위세 초상화의 비밀

벨라스케스는 레오폴드 1세와 혼인이 예정된 마르가리타 공주를 그녀의 두 살 때 모습, <분홍 가운을 입은 마르가리타>를 시작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연령 별로 그렸다. 그녀의 정혼자 레오폴드 1세는 어머니의 친동생이자 아버지의 사촌동생이다. 그녀의 초상화는 신부를 궁금해하는 시댁의 요청에 따라 보내지기 시작한 그림이었다. 벨라스케스는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 공주의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모습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흰 드레스를 입은 초상화 속의 새침한 표정의 금발 소녀는 훗날 신성로마제국의 황후가 되어, 22세에 순수 혈통을 사랑한 왕가의 희생양으로 단명하게 되는 마르가리타 테레사의 5세 때 모습이다. 또한 바로크의 거장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걸작 중 하나인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는 프랑스 음악가 모리스 라벨의 곡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의 모티브가 되었다. 

이번 전시의 초상화에서는 인물의 턱이 도드라짐을 흔히 볼 수 있다. 당시 순수 혈통을 지키기 위한 근친혼으로 합스부르크의 왕족들은 이유 모를 단명을 맞거나 부정교합이 심한 주걱턱이거나 정신질환을 앓았다. 펠리페 4세의 막내아들이자 미치광이 왕으로 알려진 카를로스 2세는 근친혼으로 인한 유전병의 최대 피해자로 유명하다. 예술에 탁월한 안목을 가진 황제로 평가받는 루돌프 2세는 "오스트리아여, 전쟁은 남이 하도록 하라. 대신 결혼을 하라!"라는 강령 아래 근친혼을 독려하여 강력한 왕조를 영원히 꿈꾸었다. 이 왕조의 최대 업보인 '합스부르크 턱'은 초상화를 통해서 여실히 알 수 있다. 턱을 보완하기 위한 목의 화려한 러프와 궁정화가로서 그들의 초상을 미화시킨 벨라스케스의 노력으로는 감출 수 없는 역사다. 군주가 위엄을 나타내는 '위세 초상화'를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작년에 매우 인상적이었던 국립중앙박물관의 특별전 <시대의 얼굴>의 연작 느낌이라 그 여운을 더한다.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선나림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선나림
'주피터와 머큐리를 대접하는 필레몬과 바우키스', 피터르 파울 루벤스, 1620-25년경, 캔버스에 유화, 153.5 x 187.0cm, ©빈미술사박물관
'주피터와 머큐리를 대접하는 필레몬과 바우키스', 피터르 파울 루벤스, 1620-25년경, 캔버스에 유화, 153.5 x 187.0cm, ©빈미술사박물관

세계를 지배한 합스부르크의 교훈, 보데곤(bodegón)

합스부르크 왕가가 부상한 데에는 이른바 '포틴브라스 효과'의 영향을 부인할 수 없다. 그들은 세계를 통치할 운명이라는 신념을 굳건히 간직했고, 최초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세웠다. 제국이 보여준 지배의 힘은 전시된 '갑옷'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었다. 그 외에 낭만주의 화가인 들라크루아가 '회화의 호메로스'라고 극찬한 바로크의 왕자 피터르 루벤스의 <주피터와 머큐리를 대접하는 필레몬과 바우키스>도 흥미로웠다. 이 작품은 가난한 노부부 필레몬과 바우키스에게 따뜻한 환대를 받은 신이 한 날 한 시에 죽는 소원을 들어준다는 은총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밖에도  '꽃의 브뤼헐'의 작품에서는  죽은 자연, 즉 보데곤(bodegón)이 상징하는 '인생의 덧없음'이라는 애절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예술이 곧 힘이자 지식이고 권력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순탄하지 않은 역사 속에서도 예술품 수집을 이어왔다. 이것은 물리적 힘보다 문화와 예술 역량이 더 높게 평가되는 오늘날, 합스부르크의 유산이 새롭게 조명되는 이유이다.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은 내년 3월 1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다. 개막 한 달 만에 7만 관람객을 돌파한, 실로 문화예술계의 뜨거운 감자가 아닐 수 없다. 

싸늘한 겨울의 문턱, 합스부르크 왕가가 열정으로 지켜낸 예술의 감동이 열어주는 세계로 빠져보는 건 어떨까?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선나림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선나림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선나림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선나림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선나림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선나림
'마리아 크리스티나 대공의 약혼 축하연', 요한 키를 아우어바흐, 1773년, 캔버스에 유화, 225.0 x 190.0cm, ©빈미술사박물관
'마리아 크리스티나 대공의 약혼 축하연', 요한 키를 아우어바흐, 1773년, 캔버스에 유화, 225.0 x 190.0cm, ©빈미술사박물관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선나림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선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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