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과 베트남 에피소드-2] 탄록을 만나기 위한 기다림
[춤과 베트남 에피소드-2] 탄록을 만나기 위한 기다림
  • 임선영 무용가
  • 승인 2022.12.02 08: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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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프리뷰=서울] 임선영 현대무용가 = 탄록(Tan Loc)을 만나기 위한 나의 기다림은 상상 이상의 인내가 필요한 시간이었다. 2018년 베트남 입국 후, 나는 그와의 만남을 위한 4개월의 기다림을 통해 이방인과 사회, 유대관계에 관한 몇 가지 사유를 건질 수 있었다. 한국을 떠나기 전인 2017년 12월 말, 꼭 인사를 드리고 싶었던 선생님들을 뵙고 싶어 바쁘게 움직였다. 장승헌 선생님을 만나 인사를 드렸을 때 “어디든 할 일이 있다, 즐겁게 다녀오라”는 말씀과 함께 김성용 씨가 베트남에서 작업 경험이 있으니 한번 만나고 떠나라는 선생님의 조언을 들었다.

김성용 씨에게 나의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고 탄록의 연락처를 건네받았다.

그리고 그의 이메일 주소로 메일을 전송하고 나는 베트남으로 떠났다.

그러나 회신은 오지 않았다. 매일 이메일을 체크하며 오늘은 왔을까? 내일은 올까? 오매불망 기다리는 연애편지처럼 그의 메일을 기다렸다.

한 달이 두 달이 되고, 두 달이 석 달이 되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 4개월이 지나도 연락이 없는 그를 찾아 인터넷 웹 서핑을 하며 그의 무용단을 찾았다. 한국을 떠났으니 더 이상 기댈 수 있는 사람도 없었고, 스스로 움직여야 했다. 분명 호치민 도시에 사람은 많은데 내가 말을 하고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은 가족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내 안에 숨겨진 주체적 의지를 끌어올려 원하는 것을 찾고 만들어 나가야 했다. 운 좋게 그의 무용단에서 일본 무용수 타츠미 치카(Chika Tatsumi)가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 그녀는 영어가 될 것이라는 확신과 함께 그녀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나의 간략한 소개와 함께 미스터 탄록을 만나고 싶다고... 그녀에게서 무용단 연습 시간과 장소를 알려주며 그를 만날 수 있길 바란다는 답장이 왔다.

(사진제공=임선영)
탄록 (사진제공=임선영)

호치민 시내의 중심가 디스트릭트 1(District 1)에서 멀리 떨어진 디스트릭트 5(District 5)는 외국인들의 왕래가 적은 곳이었다. 그러나 난 무조건 가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그 주소를 찾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를 만났다. 그는 왜소하지만 단단한 몸과 반듯하고 선량한 눈빛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었다. 매우 사무적인 태도로 메일에 답을 못해 미안했다며, 연습이 끝나고 다시 이야기하자고 했다.

탄록의 연습실 (사진제공=임선영)

시멘트 공간에 여기저기 볏짚과 의상이 걸려 있었고, 15명 남짓한 베트남 젊은이들이 모여 행사를 연습하고 있었다. 일상복 차림에 윗도리를 벗은 젊은 남자들이 땀을 흘리며 어리숙하게 동작을 배우면서 웃고 떠든다. 내가 늘 마주하던 연습실의 환경과 너무 다른 이 공간은 해석이 불가한 엉뚱한 세계처럼 보였다.

연습이 끝난 후 탄록과 짧은 인사를 나누었고 며칠 후 우리는 만나 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대화 내내 그는 조용히 상대를 살피며 타인과의 교류를 진중하게 타진하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사유의 움직임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그의 회신을 기다리는 4개월 동안 내가 한국인이며, 한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무용을 전공했으며 국가 지원금을 받으며 작업했다는 자신감으로 그에게 무조건적으로 환영 받을 권리를 주장한 것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이 낯선 나라에서 외국인에 불과했으며, 나는 그에게 증명된 어떠한 것도 없는 사람, 완전한 이방인이었다. 상대방에 대한 알아나감을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을 통해 상대의 고유성이나 그 사람에 관한 인상을 갖게 되어 서로 간의 관계가 열린다는 것을 간과했었다. 진정한 관계를 위해 사람을 알아가는 시간을 느긋하게 기다리며 마주해야 한다는 것을.....

이것이 내가 낯선 땅 베트남에서 베트남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인으로의 가능성을 열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인 것을 왜 몰랐었을까?

그래서 나는 탄록을 만나기 위해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나의 대화는 진지했고, 진솔한 활동의지의 표현이 통했는지 그는 나에게 주 1회의 컨템퍼러리 댄스 수업 기회를 주었다. 평범한 날들 사이사이에 주어진 그 하루는 나에게 특별한 날이 되었다. 새벽 5시면 활동이 시작되는 베트남의 아침은 나의 활기찬 아침이 되어주었다. 무용수를 위한 기초적인 움직임과 함께 움직임의 어휘를 다양하게 할 수 있도록 무용수 몸으로 시작되는 움직임과 공간의 관계, 움직임과 관절의 역할, 몸의 정렬과 변형 등에 대한 다양한 챕터들로 움직임 수업을 계획하고 운영하였다. 그간 기다림에 차오른 에너지를 수업시간마다 남김없이 소진하였다. 기회가 되면 그의 작품을 보러 다녔고, 그 중 감동받은 작품 중 하나인 <The Mist>에 대한 리뷰를 2019년 국립극장 월간지 <미르>에 ’과거와 현재의 조화로운 만남‘이라는 제목으로 기고하기도 했다.

(사진제공=임선영)
탄록 (사진제공=임선영)

탄록은 일본 카와사키와 도쿄, 독일 베를린에서 무용교육을 받았으며, 여러 나라에서 많은 공연 경험을 가진 덕분인지 모든 일에 능수능란했다. 그는 춤에 있어 자기질서가 확고했으며, 무용단 운영 및 무용단 단원들이 안무를 하는 경우에 있어 올바른 창작 방향을 제시하였다. 안무를 할 때 무분별하게 동작을 카피하거나 어디서 본 듯한 작품을 자기 것처럼 만드는 행동에 대해서는 강하게 훈육하였다. 탄록 또한 자신만의 온전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집중하는 듯했다. 비록 춤추는 환경은 열악(연습실에 쥐가 멋대로 돌아다녀 짧은 연습복을 입으면 항상 온몸이 간지러웠던 나는 늘 긴 팔, 긴 반지를 입고 수업과 연습을 했다)했지만 그의 춤에 대한 생각을 들으며 무용수들과 지내는 동안 나의 마음은 늘 충만했다.

(사진제공=임선영)
호치민시의 거리 (사진제공=임선영)

대부분의 무용수들은 이벤트(모터쇼, 기업행사) 참가 등으로 돈을 벌었다. 또 작품을 만들 때에는 정부 검열에 대비하여 내용이나 형식을 짤 때 신중해야 한다. 지난 [에피소드-1]에서 이야기했듯이 나 역시 작품에 대한 현장검열 때문에 공연을 포기한 적도 있었다.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의 척박한 환경에서 예술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며 무용단체의 예술감독이자 안무가로서 보이지 않는 힘과 투쟁하는 사람, 많은 공연과 떠나고 찾아오는 무용수들과의 인연을 거친 결과물로 존재하는 사람, 내가 존경하는 베트남 사람, 응위옌 탄록(Nguyen Tan Loc)을 기억한다.

임선영 무용가
임선영 무용가
sunyounglim@hotmail.com
이대 무용과 졸업. 2018년 아르코 국제레지던시 선정.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있으며 현재는 베트남 아라베스크무용단 초빙안무가로 활동 중이다.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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