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올 한해를 마무리하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 국립심포니의 '천지창조'
[공연리뷰] 올 한해를 마무리하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 국립심포니의 '천지창조'
  • 김준형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2.12.19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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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더프리뷰=서울] 김준형 음악칼럼니스트 = 해마다 베토벤의 <교향곡 제 9번 '합창'>으로 향하는 콘서트 고어에게 이것은 하나의 의식이다. 이 과정을 통해 비로소 한해를 마무리한다. 물론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와 차이콥스키의 발레 <호두까기인형>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예술감독 다비드 라일란트는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는 그 어떤 작품보다 연말을 장식하는 작품으로 깊은 전통을 갖고 있다고 강조한다. 어떤 시대의 마지막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의미한다면서 한해를 마무리하는 12월에 세상의 시작을 노래하는 <천지장조>를 연주하는 것이 아이러니 같이 느껴질 수 있지만 그것이 바로 세상의 이치와 맞닿아 있다는 이야기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천지창조' (사진제공=국립심포니)

고전주의의 틀을 벗어나 낭만으로의 새로운 길을 개척한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은 형식적으로도 진취적일 뿐 아니라 자유, 평등, 박애 그리고 인류애를 찬양하는 내용으로 그의 숭고한 이상이 담겨 있다. 이에 비해 하이든은 창조주에 대한 경배와 찬양을 이 작품에 담고자 했다. 그 어느 때보다 경건하게, 하루하루 기도하며 이 작품을 써내려갔고, 그 결과 초연 당시부터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음악사의 걸작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이날 오페라와 발레는 물론이고 굵직한 극음악 무대에서 오랫동안 잔뼈가 굵은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관록의 연주 역량이 최고조로 발휘된 연주를 들은 것은 큰 기쁨이었다. 게다가 독일 등 유럽 정상의 무대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솔리스트들의 눈부신 연주와 어우러져 더욱 강렬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상임지휘자 라일란트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함께 세상이 만들어지는 장면을 너무나 생생하고 극적으로 그려냈다. 개시부부터 압도적인 거대한 울림을 만들며 연주의 흐름을 장악했다. 빛이 생겨난 감격을 노래하는 장면에선 서울모테트 합창단과 함께 환희에 찬 연주를 했고, 바다와 하늘과 땅에서 갖가지 생명의 탄생을 그린 대목에서 목관악기를 비롯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솔리스트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천지창조'에서 테너 김재형, 소프라노 황수미, 베이스 전승현, 서울모테트합창단 (사진제공=국립심포니)

가브리엘과 이브, 1인2역으로 출연한 소프라노 황수미는 확신에 차면서도 청아한 음성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물론 부분적으로 섬세하고 가냘픈 효과를 주었다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교과서적인 발성 등 기능적으로 흠잡을 데 없었으며, 표현에 있어서 여타 무대에서의 연주보다 훨씬 맑고 밝게 노래하여, 종교작품의 성스러움과 극음악의 연출 효과를 동시에 맛보게 하였다. 이글거리는 태양과 같은 음성을 가진 테너 김재형은 천사 우리엘로 분했다. 음성 그 자체로 충분히 황홀했지만 절정에 달한 연주력을 선보였다. 특히 낮과 밤, 해와 달의 창조를 노래한 대목에서 톤을 절묘하고 미묘하게 변화시키며 묘사한 부분은 환상적이었다. 우리에게는 바이로이트를 호령했던 바그네리안으로 알려져 있는 베이스 전승현은 캄머쟁어로서의 면모가 눈부셨다. 그가 연주한 라파엘과 아담은 기능적인 면을 넘어서 압도적이고 웅장한 음성으로 남다른 존재감을 보여줬고 탁월한 극적 효과를 자아냈다. 이들의 삼중창은 저마다의 개성으로 극명한 대조의 미학을 보여준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연말 음악에 하나의 훌륭한 선택지를 더해준 라일란트 예술감독과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참신한 발상과 훌륭한 솔리스트를 기용한 기획력이 연주의 완성도를 넘어선 감동을 안겨주었다. 이제 우리 무대의 수준은 가히 세계적이다. 이제 남다른 차별화를 통해 청중과 호흡해야 할 시점이다. 내년은 과연 어떤 진용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지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라일란트의 선택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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