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시기, 멈추지 않았던 비대면 국제교류 춤작업을 기억하며(3)
팬데믹 시기, 멈추지 않았던 비대면 국제교류 춤작업을 기억하며(3)
  • 김혜라 공연평론가
  • 승인 2022.12.26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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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랄리 아이과데 '승화'

비대면의 제약, 협업으로만 지속 가능성
 

국립현대무용단 '그후 1년' 포스터. (사진출처=국립현대무용단)
국립현대무용단 '그후 1년' 포스터. (사진제공=국립현대무용단)

랄리 아이과데와 한국인 무용수들의 워크숍 과정을 담은 <승화>

[더프리뷰=서울] 김혜라 춤비평가 = 국립현대무용단(이하 국현) 주최로 스페인 안무가 랄리 아이과데(이하 랄리)와 한국인 무용수들이 함께 작업한 <승화>도 비대면 필름으로 전환되었다. 이 작품에 참여했던 정철인 무용수와 함께 안무가 없이 진행된 작업의 경험담을, 국현의 이상 프로듀서와는 온라인 창작과정에서 실무진으로서 겪은 소회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승화>는 안무가 랄리와 국내 무용수 8명(권요한 류진욱 서동솔 손지민 유재성 이대호 정재원 정철인)이 참여해 원격 현대무용 워크숍 현장을 국현 처음으로 시도한 온라인 작업이다. 2020년 발생한 코로나 19로 인해 취소와 연기로 이어지며 결국 안무가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본인의 작업실에서, 무용수들은 서울에 있는 국현 연습실에서 실시간 화상회의 시스템을 통해 서로가 만났다.

정철인은 워크숍 과정 촬영에 대해 필름화를 하는 것인지 본격적인 댄스필름인지 정확한 정보 없이 참여했다며, 무용수로서 불안정한 상황에서 참여하게 된 경로를 짚어 보았다. 결과적으로 워크숍을 하며 많은 움직임과 무용수들의 리서치가 잘 반영되지 못한 결과물에 아쉬움을 드러내며, 서로가 첫 경험이다 보니 기관이나 무용수나 안무자나 모두 명확한 방향성을 잡을 수 없었을 것이라 진단했다. 그럼에도 정철인은 이미 2020년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시댄스)에서 온라인 창작 경험이 있었기에 댄스필름 방식이 본인에게는 새로운 기회로 느껴졌고, 약간의 혼란 외에는 흥미로운 시간이었다고 했다.

국립현대무용단-랄리 아이과데 원격 워크숍 현장 ⓒAiden Hwang
국립현대무용단과 랄리 아이과데 원격 워크숍 ⓒAiden Hwang

안무가의 의도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며 춤춘 시간

정철인은 온라인에서 안무가가 지시한 동작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어려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안무가보다 무용수가 더 좋은 무브먼트와 아이디어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경험이 긍정적인 성과라 했다. 물론 실제로 만나서 작업할 때보다 두 배의 시간이 소요되고 실제보다는 긴장감이 떨어졌으나, 안무가가 자발적인 움직임을 요청했을 때, 무용수들끼리 영상을 찍어 공유하며 논의하는 방식이 서로 간 의견과 안무를 구상하는 데 좋은 방식이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안무가의 의도를 재현하기 보다는 무용수가 더욱 적극적으로 해석하게 된 상황이 온라인 작업에서의 예상치 못했던 경험인 셈이다.

이를테면, 안무가가 어떤 상황을 제안하면 무용수들끼리 “안무가 입장이라면 이걸 조금 더 괜찮아 할 것 같아... 이 동작은 이렇게 변형시키면 더 좋을 것 같아”하면서 만들었던 적도 많았다고 한다.

비대면 안무의 제약

이상 국현 피디는 랄리의 작업은 사실상 완성되지 못한 경우여서 댄스필름으로 전환을 했고, 이후의 작업에서 여러 어려움과 보완점도 발견했다고 했다. 예를 들면, 퀵 스위 분 안무 <마지막 인형>의 경우는 무용수 오디션부터 온라인으로 진행하며 무용수들이 대면에서는 한 마디 감정교류로 되는 일이 온라인에서는 감정적으로 서로 교류가 어려우니 예민해지고 때론 안무가 스타일이 다를 땐 어떤 움직임인지 텍스처를 화면에서 보기가 어려웠던 문제점을 지적했다. 시모지마 레이사 안무 <닥쳐 자궁> 경우는 안무가가 한국에 2주간 격리하며 온라인으로 작업하는 동안에는 사실 이뤄진 게 거의 없이 무용수들의 스타일만 파악하며 사전 리서치 작업 정도만 할 수 있었다. 안무자에 따라, 특히 시모지마 레이사 같이 무용수와 함께 만들기를 선호하는 경우는 온라인 작업이 더 이상은 어렵다고 판단했고, 심지어 아이디어를 교류하는 과정조차도 비대면에서는 한계가 엄청 많았다고 토로했다.  
 

시모지마 레이사 안무 ‘닥쳐 자궁’ 대면 연습 (사진제공=국립현대무용단)
시모지마 레이사 안무 ‘닥쳐 자궁’ 대면 연습 (사진제공=국립현대무용단)

피디의 입장에서 비대면 공동창작은 많은 부분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일례로 의상이나 조명 같은 디테일도 꼼꼼하게 안무가의 스타일대로 할 수가 없다. 반면, 곽아람 국현 팀장은 기획자 입장에서 비대면이 유용한 측면이 많다고 했다. 대면에서 할 수 없는 불편한 얘기들을 할 때가 편한 측면이고, 반면 큰 스크린 설비 같은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국립이 아니고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시설만 갖춰진다면 효율적인 부분이 많고, 내용을 명확하게 주고받을 수 있어 사람 눈치 안보고 집중할 수 있다고 했다.

비대면 교류의 전망

이상 피디는 100% 온라인으로 작업을 해서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건 조금 힘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피력하며 보수적으로 철저하게 계획을 잡고 무용수들과 충분하게 협의가 된다면 나은 결과물이 나올 것이라 했다. 더불어 국현 내부적으로 온라인 교류의 필요성에 대해 느끼고 온라인 리허설에 대한 매뉴얼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실무자 입장에서 서로 충분히 공유가 되길 바란다는 것이다. 정철인은 만약 이런 경우로 작업을 하게 된다면, 온라인 비대면에 맞는 연출가를 섭외하거나 이에 맞는 안무 방법을 도입해야 한다면서,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면 온라인으로도 가능해질 것으로 예측했다.

춤이라는 것이 ‘접촉’을 통해서 이루어지나, 이 경우는 ‘접속’을 통해서 했다. 대면 공연을 기반으로 했던 방식이 갑자기 온라인 진행으로 급선회해서 모두가 좌충우돌했으나 미래에는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안무 방식이 나타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상상을 하며, 온라인 안무와 교류는 안무가만이 아니라 영상감독과의 협업만으로도 가능하고 새로운 시도 자체만으로 유연하게 받아들여진다면 지속 가능하지 않겠냐는 중론을 모았다. 더불어 어려운 시기 좋은 경험을 했다는 데는 공감했다.

정철인은 멜랑콜리 댄스 컴퍼니에서 김민영 피디와 메타버스 이벤트를 진행하며 플랫폼 속 여러 움직임을 합쳐서 안무를 비슷하게 재현해보며 “이건 가짜가 아닌 새로운 세상이다”라는 생각을 했고, 이렇게 안무도 하고 온라인에서 관객과 대화를 하며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필자는 이들 세 가지 사례에서 감독, 안무가, 무용수, 기획자의 입장을 면면히 들으며 아래와 같은 쟁점들을 진단할 수 있었다. 제롬 벨과 김윤진의 <갈라> 교류에서는 협업과정에서 상호간 역할구분 인식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예술가의 철학에 준한 국제교류인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는 점, 더불어 결과 중심보다 과정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국제교류로 방향성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권혁과 아델 고의 <공존> 작업에서는 감각적 교감 없이 텍스트로 소통하는 어려움을 인지하며 창작자의 스타일이 맞는 경우에는 긍정적인 작품 생산이 가능하다는 점과 온라인에서도 기대 이상의 새로운 감성을 발견하며 창작의 지평이 넓어질 수 있다는 점이었다.

랄리 아이과데의 <승화>에서는 비대면의 제약에서도 무용수들이 적극적인 해석으로 긍정적으로  안무가의 의도를 곱씹어 보며 동작을 변형시킨 점과, 반면 경제성과 기술력 준비 부족으로 의사소통에서 어려움이 노출되어 완전한 작품을 만들기는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연출가와 영상 전문가, 안무가와 무용수들이 적극적인 협업으로 임하면 지속가능한 프로젝트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우리의 리서치에 대한 제언을 이종호 서울세계무용축제 예술감독께 들어 보았다. 이 감독은

“비대면 공동창작의 미래를 묻는다면, 코로나19 종식 이후에도 당연히 지속되고 발전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는 분명 기술적으로 진일보한 방법이며, 낯선 기술을 폐기하기 보단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모색하는 것이 인류의 공통된 발전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많은 이들의 경험이 수집되고 공유되어야 한다.

<갈라>의 사례를 보면서, 축제 프로그래밍에 있어 초청작품이 향후 한국에 남길 영향에 대해서도 숙고해봐야 한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게 되었다. 과거 우리 현대무용의 전반적 수준이 범상하던 시절에는 서구의 우수한 작품을 데려다 보여준다는 점만으로도 의미 있었으나 이제는 외국작품의 소개(그것이 단순한 초청이건 한국 예술가와의 협업이건)가 우리 무용계, 예술계, 나아가서는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사전에 고려해봐야 한다는, 어쩌면 당연한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됐다. 또한 시댄스 역시 외국 무용가와 한국 무용가들 간의 매칭 프로젝트를 꾸준히 해왔기에, 국립현대무용단의 사례에서 유의미한 조언을 얻을 수 있었다.

1990년대 말부터 꾸준히 국제공동창작을 진행해온 경험에 비추어 개인적인 제언을 남기고자 한다. 최근 그린 모빌리티, 비대면 창작, 레지던시, 국제공동창작이 대유행이다. 레지던시를 거치지 않거나 국제공동제작이 아니면 대접 받기 어려울 지경이 되어 버렸다. 그 속에 담긴 환경 등 글로벌 이슈들, 다른 문화에 대한 존중, 새로운 영상시대에 대한 대비 등 다양한 철학적, 정치적 고찰과 배려에 열렬한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이러한 기조를 획일적으로 요구하거나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주최기관과 참여 예술가, 그리고 나라와 지역마다 재정적, 지리적, 문화적 사정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예술가 개개인의 가치관과 지향점이 제각기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공동창작이 예술적으로 최선의 결과를 보장하리란 법이 없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과정 중심적 트렌드는 오늘날 대유행이고 당연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한정된 시간과 재원으로 최선의 결과를 보장하기 위한 합리적 전략도 필요한 것 아닌가 한다. 코로나19라는 제약이 사라진 후, 비대면 공동창작과 그린 모빌리티가 환경의 억제 때문이 아닌, 자발적이고 다원적인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길 기대한다”라는 의견을 주었다.

정철인은 멜랑콜리 댄스 컴퍼니 안무가이자 무용수이다. <초인>을 안무했고, <위버멘쉬> 댄스필름을 제작하며 안무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다.

이상은 국립현대무용단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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