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모니터] 코리아 ‘K’를 춤으로 그려내는 방법 - ‘코리아그라피’
[공연모니터] 코리아 ‘K’를 춤으로 그려내는 방법 - ‘코리아그라피’
  • 김수인 무용이론가
  • 승인 2023.02.06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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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그라피' 단체사진 (사진제공=
'코리아그라피' 공연 커튼콜 (c)혜강신귀만 (사진제공=무용역사기록학회)

[더프리뷰=서울] 김수인 무용이론가 = <코리아그라피>는 무용역사기록학회(이사장 최해리)가 ‘리서치 기반 콘텐츠’로 개발한 일련의 프로젝트와 연속선상에서 이루어진 공연이다. 서울남산국악당과 공동사업으로 1월 27과 28일 서울남산국악당에서 공개된 <코리아그라피>는 한국적 미(美)에 대한 안무적 탐색이었다. 안무에 최준명 김수현 차수정 성윤선 염현주 유정숙 남수정 문진수 서정숙 이주희가 참가했고, 협연에 이성순 고현경 강희수 이진우 서정금 이선희 백현호 김보라 황민왕 김영일이 함께했다. 그리고 기획 및 예술감독 최해리, 연출 정혜정, 협력연출 김홍기, 음악감독 유인상, 반주 전통음악그룹 판이 이들의 공연을 뒷받침했다. 한국춤과 전통예술의 고수들이 풍성하게 펼쳐낸 <코리아그라피>를 읽는 키워드는 세 가지이다. 리서치, 그리고 코리아와 그라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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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숙 '흰 그늘' (c)혜강신귀만 (사진제공=무용역사기록학회)

리서치: 공연과 탐색 사이

한국춤, 특히 전통춤은 컨템퍼러리댄스가 강조하는 리서치나 개념적 접근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코리아그라피>에서 한국무용가들은 ‘리서치’를 어떻게 해석하였을까? 서울남산국악당이라는 극장 공간은 흔히 컨템퍼러리댄스가 강조하는 탐색 과정보다는 완성된 결과 발표에 강조점이 주어진 느낌을 준다. 그러나 리서치가 컨템퍼러리댄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가능성 또한 보여주었다. <코리아그라피>는 소리와 음악을 창작의 근거로 놓는 전통적 춤문법을 심화 분석해서 우리 소리를 구음, 산조, 판소리, 신민요, 북으로 나눈 후 소리의 특성에 따라 구음심무, 겹겹산조, 춤춤발림, 음풍농짓, 박동이라는 다섯 항목을 제시하였다. 안무가들은 자신의 춤에 적합한 항목을 선택한 후 전통 음악과 춤이 합체될 수 있는 다양한 접근법과 방법론을 탐구하였다. 춤춤발림에 해당하는 김수현의 <박씨전, 추어지다>와 남수정의 <섬섬>은 판소리의 구성요소인 발림이라는 제스처를 춤으로 확장하고 판소리의 서사를 춤으로 구현하거나 해석하는 방식을 보여주었다. 겹겹산조에 해당하는 유정숙의 <그 너머의 봄>은 거문고산조의 구성을 해체하고 재배열하여 안무자가 발견하는 새로운 봄의 리듬을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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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박씨전, 추어지다' (c)혜강신귀만 (사진제공=무용역사기록학회)

코리아: K와 결합하는 춤

<코리아그라피>는 한국을 뜻하는 코리아(Korea)와 안무를 뜻하는 코레오그라피(choreography)를 결합한 조어이다. 전작이라고 할 수 있는 무용역사기록학회의 도큐먼트 리서치 퍼포먼스 <Reconnect History: Here I am>과 비교해볼 때 한국춤으로만 구성했다는 차이점이 눈에 띈다. 기획 글에서도 드러나듯 <코리아그라피>는 ‘한국다움’을 중심으로 한국춤의 고유한 창작을 차별화하고자 하였다. 한국다움이란 무엇인가? 초국가적 공동체를 번성케 하는 오늘날의 글로벌 경제체제에서 ‘우리춤’ ‘우리소리’가 지칭하는 ‘우리’는 누구인가? MZ세대와 ‘라떼’ 세대를 구별하고, 젠더갈등으로 남녀가 대립하고, 수저계급론으로 분열하는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묶는 고리는 무엇인가? <코리아그라피>는 한국다움을 전통예술에서 찾지만 근대 신민요춤으로까지 시야를 확장하여 공동체의 소속감과 연속성을 강조한다. 전통예술에 기반하였지만 그것을 박제하듯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창작을 꾀한다는 점에서 <코리아그라피>는 한국춤이 동시대성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을 탐색한다. 겹겹산조에 해당하는 차수정의 <내 마음의 사유>는 김홍도의 그림을 영감의 출발점으로 삼아 전통에 기반했지만 그 속에는 없는 춤을 새롭게 채워 넣었다. 음풍농짓에 해당하는 최준명의 <춤의 향기가 만리를 넘다>는 전통과 현대 사이에 위치한 근대무용가 배구자와 황무봉을 소환하여 오늘날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댄스드라마를 펼쳐 보였다. 박동에 해당하는 이주희의 <적벽화전>은 전통 판소리 <적벽대전>의 대목을 열세 개의 북으로 구현하는 가운데 현대의 치열한 삶과 공명하는, 힘 있는 울림을 전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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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희 '적벽화전' (c)혜강신귀만 (사진제공=무용역사기록학회)

그라피: 춤을 짓는 원동력은 소리

안무, 즉 코레오그라피에서 그라피는 ‘그리기’ 혹은 ‘쓰기’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프랑스의 바로크 댄스와 함께 탄생한 것으로 알려진 이 단어가 함의한 것은 “종이 위에 기호로 기록하는 것”이었다. 당시의 그라피는 공간적 디자인에 치중하였다. 그러나 <코리아그라피>의 그라피는 공간이 아닌 시간을 직조하는 듯하였다. ‘우리 소리, 추어지다’라는 부제가 나타내듯이 <코리아그라피>의 또 다른 주인공은 소리와 음악이었다. 무용가들이 실시간으로 음악가들과 교감하며 추어내는 춤은 현장감을 극대화하여, ‘지금. 여기. 살아있음’을 생생하게 느끼게 하였다. 장단이 만들어내는 시간의 다양한 형태를 빚어내는 가운데 춤은 유아독존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과 함께 서로에게 기대어 그 불안정한 현재를 조명한다. 박동에 해당하는 성윤선과 염현주의 <지음, 지음, 지음>은 서로 다른 북의 리듬이 어떻게 공존하며 대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구음심무에 해당하는 문진수의 <음유재인>과 서정숙의 <흰 그늘>은 춤을 자아내는 구음과 구음을 촉발하는 춤 사이의 교감을 통해 춤을 감상하는 새로운 리터러시, 즉 시간을 읽어내는 리터러시를 일깨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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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진수 '음유재인' (c)혜강신귀만 (사진제공=무용역사기록학회)

한국춤을 그려내는 방법을 탐색하는 <코리아그라피>는 리서치, 코리아, 그라피에 대한 여러 질문을 떠올리게 하는 공연이었다. 전통의 수행 속에 녹아있는 지식을 리서치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코리아그라피>가 한 번의 공연으로 사라지는 이벤트가 아니라 후속 연구와 또 다른 리서치 프로젝트로 이어지길 바란다. 

'코리아그라피' 단체사진 (사진제공=무용역사기록학회)
'코리아그라피' 출연진 기념촬영 (c)혜강신귀만 (사진제공=무용역사기록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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