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겨울밤을 밝히는 촛불처럼 - 조수미와 토마스 햄슨
[공연리뷰] 겨울밤을 밝히는 촛불처럼 - 조수미와 토마스 햄슨
  • 한혜원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3.02.20 22: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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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미 공연 모습 (사진제공=에스비유)

[더프리뷰=서울] 한혜원 음악칼럼니스트 = 지난 12월은 조수미의 달이었다. 전국을 다니며 10회 이상 무대에 선 것. 놀랍게도 무대마다 다른 레퍼토리들을 다양한 뮤지션들과 함께 선보였다. 조수미의 팬들에게는 아주 만족스러운 겨울이었을 것이다.

12월 22일, 롯데콘서트홀에서는 조수미와 바리톤 토마스 햄슨 듀오 콘서트가 열렸다. 1부는 햄슨이, 2부는 조수미가 각각 주인공인 무대였다. 반주는 피아니스트 윤홍천이 맡았다.

토마스 햄슨은 슈베르트의 <백조의 노래> 중 6곡, 그리고 말러의 <젊은 날의 노래> 중 4곡,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 중 2곡을 불렀다.

햄슨의 소리는 오랫동안 단단히 뿌리내린 나무를 연상하게 했다. 굵어진 나무의 줄기에서 잎새가 돋아났다. 하이네와 슈베르트의 걸출한 가곡들은 햄슨의 소리로 꽃처럼 피어났다. ‘바닷가에서’는 힘을 뺀 맑은 울림으로 슬픔을 노래했고, ‘도플갱어’에서는 두려움과 불안을, ‘아틀라스’에서는 참담한 비극의 무게를 표현했다. 말러의 ‘스트라스부르의 성채’나 ‘파수꾼의 밤의 노래’ 역시 한 편의 서사시였다.

햄슨은 엄숙하고 진지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가곡과 가곡 사이에 박수 치는 이들에게 손을 뻗어 만류하기도 했다.

조수미와 토마스 햄슨 (사진제공=에스비유)

2부는 조수미의 차례였다. 윤홍천과 더불어 마르코 소시아스(기타), 크리스티안 킴(바이올린), 김예현(오보에)과 무대에 올랐다.

조수미의 앨범 <ONLY BACH>(2014)에 수록된 바흐의 칸타타들을 불렀다. 조수미의 특기인 정확한 음정과 정교한 리듬은 바흐의 음악에서 더욱 돋보였다. 단지 기타와 바이올린 반주만으로 진행하느라 볼륨을 줄여서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

피아노와는 드뷔시의 곡들을, 바이올린과 기타와 피아노와는 엠마누엘 샤브리에의 <스페인 광시곡>을 불렀다. 연말 공연장에서 듣기 힘든 곡들이었고, 무대를 준비한 정성이 느껴졌다. 드레스 어깨 부분이 흘러내렸으나 당황하지 않고 상황을 유쾌하게 연출한 해프닝도 조수미다웠다.

앙코르로는 조수미가 직접 피아노를 치면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불렀다. 신기하게 캐럴을 부르니 분위기가 환해졌다. 이어서 토마스 햄슨과 함께 레하르의 <메리 위도우>에 나오는 이중창 ‘입술은 침묵하고’를 불렀다. 아주 다정하게 춤을 추면서,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진 연기를 하며 불렀는데, 객석에도 그들의 즐거움과 사랑스러움이 전해져 모두 웃으며 음악을 즐겼다.

공연장을 나서니 강추위가 몰아쳤지만, 아름다운 음악의 여운이 따뜻하게 나를 감쌌다. 성냥팔이 소녀가 성냥 하나로 환상을 보았듯이. 음악이 있어서 살 만한 세상이구나.

조수미는 지난 수십 년 동안 팬층을 확장해왔다. 프로페셔널한 성악가이자 소탈하고 열정적인 그녀의 모습이 TV 다큐나 예능 프로그램에도 많이 비추어졌다. 평소 클래식 공연장을 찾지 않더라도 조수미의 무대만은 보고 싶어서 발걸음하는 이들이 많을 터이다. 그래서인지 이날 객석에서는 평소 클래식 공연장에서 보기 어려운 청중의 행동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연주회 도중 몰래 녹음이나 녹화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객석에서 카메라 불빛이 보였다. 월드클래스 스타의 팬들이 점차 클래식 공연장 문화와 매너를 따라주기를 바라본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비평활성화 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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