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모니터] 떠도는 유사 의사소통을 가로지르는 신체의 절규, 이남영의 '이음-다가서다'
[공연모니터] 떠도는 유사 의사소통을 가로지르는 신체의 절규, 이남영의 '이음-다가서다'
  • 나수진 무용이론가
  • 승인 2023.02.27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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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프리뷰=서울] 나수진 무용이론가 = "채팅창에서 지금 막 대화를 나눈 그는 실체일까, 허상일까?" "내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단 그녀는 인간일까? 혹시 <Her>라는 영화 속 인공지능(AI)은 아닐까?" 초연결시대 첨단기술은 이처럼 주체와 대상의 관계, 대상 간의 관계를 어지럽게 흐트러트렸다. 안무가 이남영은 이러한 초연결 호모 모빌리언스 시대의 인간 실존과 관계의 균열을 <이음-다가서다>(2022년 12월 17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로 풀어냈다.

이 공연은 저마다의 이유로 고독한 동시대 사람들의 공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해 보였다. 이남영은 무트댄스의 현대화를 선도하는 안무가이다. 그는 2019년에 독립단체인 LNYdance를 창설하고 대표이자 안무가, 무용수로서 1인 3역을 해왔다. <이음-다가서다>는 그런 그의 치열한 고민과 고군분투가 낳은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연말 제32회 서울국제안무페스티벌(SCF)에 오른 이 작품은 2022년 4월에 초연한 1시간 분량의 작품을 20분 분량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그런 만큼 구성과 메시지가 더욱 명료해지고 더욱 강렬해진 인상을 준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우리 모두는 선택의 여지없이 초연결사회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사람들은 타인과 직접 만나기보다는 스마트폰이라는 문을 열고 들어가 SNS라는 공간에서 만나고 소통한다. 0과 1로 이루어진 공간에서의 소통은 어느 한 방향이 접속을 끊는 순간 더 이상 소통의 가능성이 사라지고, 양방향인 것처럼 보이는 소통의 형식은 익명성과 결합하면서 일방적인 단절의 가능성을 더 증가시킨다. 이것은 소통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빈약하고 위태로운 형식과 내용을 가진 유사 의사소통일지도 모른다. “번영은 비참을 동반한다는 명제를 잊어서는 안 된다.”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SNS는 혁신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관계의 균열을 가져온다. 종일 스마트폰을 통해 SNS에 접속해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서 수많은 사람과 활발히 소통하지만, 정작 바로 옆에 있는 사람과의 거리는 무한히 멀다. 그 어떤 시대보다 쉽게 이어질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래서 누구와도 이어져 있지 않은 시대이다. 이남영은 <이음-다가서다>에서 이러한 가상의 세상과 현실 세계를 오가며 혼란스러워하는 현대인의 고립과 외로움, 불안과 고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남영 안무'이음-다가서다' (사진=Rachel Na)
이남영 안무 '이음-다가서다' (사진=Rachel Na)

우선 20분 내내 공연장에 흐르는 음산한 음악과 특수 조명은 이러한 주제의식을 표출한다. 어둠을 가르는 여덟 개의 빔 조명과 쇤베르크의 실험적인 연주를 연상시키는 불협화음, 날카로운 쇳조각이 서로 부딪히는 듯한 전자음은 사람의 심장박동이나 호흡, 눈빛 대신 전파, 자판 소리, 단말기 빛이 인간, 특히 ‘관계’를 지배하는 현실을 상징하는 듯하다. 무대 양쪽에 설치된 빔 조명이 쏘아대는 하얀 빛줄기는 무대를 가로지르며 공간을 이리저리 분리하거나 무대 양쪽을 연결한다. 이는 마치 SNS라는 허구의 세상과 현실 공간이 구분되거나 연결되면서 혼돈을 빚어내는 현상을 보여준다. 각색되고 보정된 SNS 속 세상은 현실과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인 동시에 또 다른 페르소나를 불러일으키는 공간이다. 이러한 모순은 끊임없이 인간의 내면에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이를 시각화하려는 듯 한 무용수가 무대 중앙에 등장해 내면의 고통이 신체화된 듯한 움직임을 이어간다. 한 손으로 가슴을 쓸어 올리거나 입을 막고, 부르르 떨리는 손을 잡아당기는 몸짓으로 내면의 갈등과 번뇌, 고통을 표현한다. 이는 연결된 듯 연결되지 않은 나와 에고, 세상과 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고통받는 현대인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남영 안무'이음-다가서다' (사진=Rachel Na)
이남영 안무 '이음-다가서다' (사진=Rachel Na)

공연은 솔로에서 3인무, 9인무로 점증적으로 몸집을 키우면서 주제의식의 스케일 또한 개인에서 집단으로, 더 나아가 온 세계로 확장된다. 개개인의 내적 갈등 또한 시대의 고민으로 확장된다. 무용수들은 새까만 어둠을 관통하는 빛줄기 사이를 오가며 고통스러운 듯 불안한 듯 좀비 같은 기괴한 몸짓으로 불안과 혼란스러움을 호소한다. 한데 합쳐지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애타게 찾아 헤매지만, 이들은 이리저리 정신없이 배회하는 빛줄기처럼 의미 없이 만나고 흩어지기를 반복할 뿐이다. 몸짓 혹은 몸부림이 관계의 진전이나 진정한 연합을 이루지 못한 채 끝이 남으로써 불안과 무기력만 더욱 가중된다.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점차 무용수들 개개인의 독특한 동작보다 서로 겹치고 어우러지는 동작 위주의 안무로 흘러간다. 특히 서로 신체 일부를 맞부딪치면서 또 다른 하나의 형체를 만들어내는 군무가 눈길을 끈다. 개인적인 신체성과 움직임을 압도하는 집단적인 움직임이 서로 다른 개체 간의 부조화 속에 또 다른 질서와 조화를 만들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처럼 탁월한 안무 테크닉과 무용수들의 역량이야말로 이 공연의 주제의식을 직설적으로 피력하는 주요 기재(器材)다. 흰색이라는 통일성 속에 다양한 변형을 시도한 의상이나 머리 스타일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 특히 흐르는 듯한 재질의 의상과 자연스럽게 흩날리는 머리카락이 무용수들의 호흡에 따른 필연적이고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충실히 보조해준다.

이번 무대의 클라이맥스는 단연 샤우팅 기법으로 작품의 메시지를 날카롭게 전달하는 동시에 감정적 울림을 주는 장면이다. 갑자기 한 무용수가 무대 앞을 가로질러 가면서 절규에 가까운 대사를 반복적으로 토해낸다. 바로 “넌 왜 내 손을 잡지 못해? 왜? 왜?” “함께, 순간, 물, 바람, 기억” “나는 존재하고 있어. 집중해, 생각해.”라는 말이다. 감정을 이입함에 따라 이 말을 되뇌는 무용수는 나 자신일 수도, 내 곁에 선 타인일 수도 있다. 무용수의 춤사위와 고통스러운 절규가 흰 의상과 중첩되면서 한국 특유의 정서인 ‘한’을 연상시키고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전율하게 한다.

이남영 안무'이음-다가서다' (사진=Rachel Na)
이남영 안무 '이음-다가서다' (사진=Rachel Na)

이남영의 가장 큰 강점은 현 사회의 문제의식을 세련된 표현방식으로 풀어내는 탁월한 안목이다. "초연결사회 속에서 우리는 늘 타인과의 친밀한 관계를 갈망하면서도 진정으로 함께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고통, 군중 속에서 개성이 사라지고 개인의 권리를 침해당할 수 있다는 공포감, 무리에서 멀어지면 타인에게 영영 잊히거나 흐름에서 뒤처질 것만 같은 두려움에 쫓긴다. 출구와 답이 없는 이 카오스 속에서 불안감과 혼란스러움이 시시각각 크고 작은 폭발을 일으킨다." 

이남영의 작품은 바로 이러한 초연결사회의 단상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작품은 고독한 현대 사회에서도 ‘관계’는 모두에게 절대적이며 절실함을 새삼 자각하게 한다. 특히 이번 작품의 주요 오브제인 조명과 불협화음은 탈인간화로 사회가 삭막해지고 서로 다른 양상 간의 대립과 다툼이 일어나는 현상을 잘 나타냈다. 특히 양쪽 끝에서 곧게 뻗어 나와 가로로 단조롭게 뻗어나가던 조명들이 공연 후반부로 갈수록 서로 자주 맞물리면서 '이음'이라는 제목의 의미를 구현함으로써 주제의식을 명료하게 드러낸다. 무대를 가로지르며 흔들리는 빛줄기는 나의 욕망과 욕심, 나의 현재와 미래, 나와 타인의 관계, 나와 세상과의 관계를 쉼 없이 뒤흔든다. 무대 위 무용수들을 환한 공간 또는 새까만 어둠 속에 가두거나 끊임없이 자극하는 이 빛줄기는 가장 밀접한 자기 자신에서 타인으로, 더 나아가 세상으로 점점 확장되는 양상으로 구현된다.

이남영은 자신의 뿌리인 무트댄스의 독특한 감각과 움직임을 기반으로 동시대성을 입히는 작업에 앞장서 온 안무가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남영의 작품은 풍부한 사유의 기회를 제공하고 자극한다. 이번 작품 또한 관객들 저마다 다양한 이미지를 떠올리고, 자기만의 해석과 서사를 그리며 한편의 스토리를 그려볼 만한 작품이었다. 혹자는 ‘이남영의 작품에 그의 스승이자 뿌리인 김영희 무트댄스, 그 이상의 새로움이 없다, 구태의연하다.’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남영에게 무트의 기재가 다른 안무가들과 자신을 차별화하고 구별하는 하나의 예술적 자산임은 확실해 보인다. 제목에 표방한 작품 주제와 같이 이러한 무트의 탄탄한 움직임 메소드를 기반으로 꾸준히 새로움을 추구하려는 노력이 이남영의 작품에서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남영의 작품세계는 스승인 김영희의 세계와의 통섭의 가능성과 함께 시대를 가로지르고자 하는 작가적 고집을 드러낸다. 인간의 호흡이 무트댄스의 주요 기제(機制)이듯 시대와 함께 호흡하는 행위 또한 무용의 진화와 생존에 필수적이다. 그가 무트 춤의 근원을 잊지 않으면서 동시대성을 추구하고자 기울이는 노력이 더 많은 이들에게 가 닿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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