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항아리를 보며 빚어낸 ‘단절된 전통’의 미장센
달항아리를 보며 빚어낸 ‘단절된 전통’의 미장센
  • 김선영 무용가
  • 승인 2019.02.21 11: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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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보따리춤> 여정은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
퇴색되어 가는 것들의 뭉클함에 숙연해지는 내 마음

[더프리뷰=서울] 김선영 무용가 = 창작의 자유는 저절로 얻어지지 않고 돈으로 살 수도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오늘도 나는 미지의 세계에 첫 발을 디딘 내 스스로에게 감사하고 대견한 마음이다.

그래서 정말 내가 믿는 내 자신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수많은 기회와 인연들이 만들어낸 이 우연을 '운명'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나의 보따리 여행은 미약하나마 행운처럼 찾아온 사건이었고, 많은 우연들이 반복되어 필연처럼 감사하게 시작한 작업이었다.

이탈리아 공연 포스터 (사진제공=김선영 무용가)
이탈리아 공연 포스터 (사진제공=김선영 무용가)

무용가에게 하나의 작품이란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많은 열정을 보태 만들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혼자만의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지극히 개인적인 몸짓이 해외 관계자의 관심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떨리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문을 두드린 유럽 공연. 비록 소박한 문화원 공연이었지만, 그 무대의 크고 작음을 떠나 유럽에서 내 작품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도전한 무대였기에 와도 좋다는 답장 메일을 받을 때까지 내 마음은 매일매일 ‘떨림 진행 중’을 유지했다. 그리고 마침내 긍정적인 답장이 온 순간부터는 그 떨림이 설렘으로 바뀌었고 내 마음 속 설렘은 수없이 반복되는 나 혼자만의 시뮬레이션으로 정상 상태로 돌아갈 줄을 모르고 있었다. 소심하고 그릇이 작다고 평소 내 스스로를 평가했던 나의 태도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모습이기도 하다.

<보따리> 연작은 2017년 2월을 시작으로 한국에서의 공연을 이미 네 차례나 마쳤음에도 공연을 준비할 때마다 나는 설렌다. 그만큼 내가 <보따리> 연작에 쏟는 애정은 각별하다. 아마 <보따리>라는 이미지가 주는 의미가 너무 커서 그럴 것이다.

파리 한국문화원에서는 2019년 1월 25일 공연이 이뤄졌다. 프랑스 방문은 이번이 네 번째지만 오로지 나만의 작품으로는 처음이라 각오가 남달랐다. 무대감독의 수많은 전화와 적극적인 문의를 통해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무대를 밟는 순간 <보따리> 공연 여행은 시작되었다.

파리에서 <보따리> 연작은 총 3부로 진행되었다. 1부<오래된 찰나> 2부<정신의 흔적> 3부<보따리 : 무브먼트>로, 이어진 로마 한국문화원 공연에서는 1부<정신의 흔적> 2부<보따리 : 무브먼트>로 끝을 맺는 공연이었다.

<정신의 흔적>은 다른 작품에서 흰 색 보따리를 이었던 것과는 달리 검은 색 보따리를 이고 한 작품이다. 작품상 더 많은 보따리를 원했지만 무대공간상의 문제로 결국 네 개의 보따리를 갖고 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나약함’을 다룬 작품이다. 나는 10대 중반부터 줄곧 느껴왔던 것, 그래서 언제나 초조했던 나와 내 삶을 위해 요란스럽게 발버둥 칠 줄도 모르는 나약함과 도덕적인 나약함, 의식의 나약함, 그리고 정신의 나약함에서 스스로 벗어나고자 만든 작품이다.

<보따리 : 무브먼트>는 올해 5월 프랑스 낭트 한국의 봄 축제와, 그리고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시댄스)의 플랫폼을 통해 6월 이탈리아에서 한 번 더 공연하게 될 작품으로 2018년 2월 초연 때 “소재 선정과 이를 풀어내는 방식에 있어서 기존의 틀을 깬 참신하고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과한 평을 받았던 작품이다.

<보따리 : 무브먼트>는 버선발로 그려내는 ‘숨의 길’을 장단을 통해 시각화하고 한국 고유의 정서를 정중동에 의지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고자 한 작품으로 장단의 무한한 변주를 주제로 한다. 덤덤하게 이어나가는 동작의 흔적들은 시작도 끝도 없다. 전통적인 장단 속에 만들어진 즉흥은 전통의 원리를 만난다. 무질서한 ‘선으로 흐르는 흔적’이다.

그래서 <보따리 : 무브먼트>는 매번 다르다. 즉흥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그림과 춤이 매번 다르고, 같은 작품이지만 매번 다른 춤인 작품이다. 기품 있는 느림을 지향하는 동시에 관습화된 동작이 아닌, 억지로 강요되지 않는 즉흥 춤을 추구한다. 즉흥은 내 맘 속 춤의 함성이 터질 듯 강하고 하염없이 부드러운 순간들을 즐기는 춤이다. 한과 허무를 춤으로 토해낼 만큼 높은 경지라고 스스로 말할 순 없지만 공연 이후 조용히 밀려오는 카르타시스를 내 스스로 매번 느끼며 흐믓해 하고 좋아하는 작품이다.

<오래된 찰나>는 내 <보따리> 연작의 첫 번째 작품으로 영상작업과 함께했다. 2017년 3월 몸(MOMM)지에서 박성혜 평론가는 “영상과 만나 현대적으로 표현되어 보니 그 춤마저 미니멀하게 보인다. 동정도 없고 다른 색이 전혀 없는 흰색으로만 표현된 단순한 디자인의 의상과 그보다도 더 단순한 원형의 춤사위는 더 이상 오래된 춤이 아니라 미니멀한 현대춤이다”라고 평했다.

<오래된 찰나>에서 나는 나의 ‘춤보따리’를 말하고자 했다. 무엇이든 다 쌀 수 있는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내 춤 흔적을 회상하며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깨져버린 내 춤에 대한 잔상의 미련스런 집착 같은 이야기다. 무용이라는 존재 자체에 묶여 있는 감정적 좌절감과 무력함. 움직이지도 끄덕도 하지 않는 미동의 상대에 대해 끊임없이 일방적으로 구애하는 나의 미련함이 무대와 영상을 떠돌고, 영상이 실제로 춤을 추는 듯한 모습으로 그 상태에서 정지와 움직이는 순간과 흐름을 통하여 영상 속의 무용수와 무대에서의 무용수가 서로를 자극하며 이야기하는 방식의 작품이다.

이번 프랑스(1월 25일 파리 한국문화원)와 이탈리아(1월 30일 로마 한국문화원)에서의 <보따리> 공연 여정은 매우 좋았다. 내 춤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따뜻한 시선은 오래 갔고, 열광하는 박수는 없었지만 잔잔한 박수는 그칠 줄 모르고 이어졌다. 그네들의 잔잔한 미소와 좋아하는 표정만으로도 나는 내 공연이 성공했다는 것을 알았다. 무엇보다 기뻤던 것은 나 혼자만의 작품으로 하는 첫 공연이었기에 그 의미가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자랑스러웠다. 공연 중 어느 순간 "나는 실패했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관객들이 너무 조용해서 공연 중에 내가 관객의 눈치를 볼 정도였으니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픈 심정이 들만큼 관객들은 전혀 동요나 미동도 없이 오직 내 발길만 응시하고 있었다. 너무 숨죽이며 보고 있는 관객들의 부담에서 벗어나고자 나는 더 진중하고 열정적으로 춤을 추었다.

그렇게 오랜 침묵 속에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이 내 작품에 매우 흥미로워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눈물이 날만큼 고마웠다. 관객들은 무대를 떠나지 않았고 <보따리 : 무브먼트>를 통해 그려진 무대 바닥의 그림과 나를 번갈아 보면서 무척 경이로워하는 모습이었다. 끊임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며 공연 동안의 조용함은 사라졌고 작품에 대한 진지한 의견도 들을 수 있었다. 그들에겐 참으로 낯선 공연이 아닐 수 없었을 텐데, 남의 문화를 존중해주고 숨죽이며 집중해준 관객의 마음이 고맙게 다가와 요란한 셔터 소리와 대화 소리는 나에겐 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음악 소리처럼 행복하게 들려왔다. 그렇게 성공적으로 공연이 끝나고 나는 스스로 나에게 보따리 춤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보따리> 연작은 나에겐 ‘잘려진 전통’이 열어놓은 미장센이다. 퇴색되어 가는 전통적 이미지나 물건들을 보면 나는 내 어머니를 본 듯 가슴이 뭉클해진다.

보따리의 모티브는 달항아리였다. 아무것도 없는 그저 하얗고 둥그런 달항아리, 어쩜 저렇게 뭐가 없이 밋밋할까 싶을 만큼 온통 여백인 그 달항아리가 어느 날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왔고 그 달항아리를 사랑하게 됐다. 그렇게 달항아리만 보면 가슴이 뭉클하고 가슴이 뛰었고 저며 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게 다가오는 달항아리의 에너지. 무(無), 여백, 영롱하게 아름다운 흰 빛깔. 그리고 알게 된 달항아리의 숨겨진 비밀. 그것은 이 세상의 모든 도자기중에서 유일하게 두 개의 반원을 빚어 하나로 합쳐서 완성한다는 것이었다. 마치 전통과 현대를 둘로 합쳐 내가 하나의 보따리춤을 만든 것처럼...

나는 앞으로 내가 하는 보따리 춤 작업들을 개별화된 레퍼토리들의 연작으로 한국 고유의 정서와 전통춤과 음악을 기반으로 춤, 음악, 미디어 등 다양하고 새로운 언어로 시도하고 변용하고자 한다. 나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주제화하고, 전통과 현대를 다뤄 ‘전통적 컨템포퍼리’로 대중에게 쉽고,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내 춤을 통해 전해주고 싶다. 그래서 “전통을 너무 내 세운다, 전통춤 계승에 치중한다”고 말들을 해도 나는 전통을 존중한다. 내 남은 춤 인생을 걸고라도 전통을 지키고 그렇게 지킨 전통을 바탕으로 달항아리같은 보따리춤을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누구나 함께 멈추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감상, 즐겁게 가능한 아름다움, 신나게 대화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눈에 보이는 외관만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의 본질적인 구조와 통찰을 통해 현대와 소통하고자 한다.

아무리 귀한 것도 언젠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현실에서 내 보따리춤이 오래도록 회자될 수 있도록 할 것이고 점점 더 무력해지는 전통이 모든 예술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내 생각을 담아 신성하고, 전통적이고, 촌스런 옛날 방식을 고집하며 나는 내 보따리를 이고 이 세상 그 어디라도 가서 춤을 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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