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서울시향, 코파친스카야의 쇼스타코비치
[공연리뷰] 서울시향, 코파친스카야의 쇼스타코비치
  • 박제성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3.03.27 16: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휘 잉고 메츠마허, 바이올린 협연 파트리샤 코파친스카야
-3월 10-11일 롯데콘서트홀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협주곡 1번, 브루크너 교향곡 5번
서울시향 연주자 정기공연 사진(사진제공=)
서울시향과 코파친스카야 협연 무대 (사진제공=서울시향)

[더프리뷰=서울] 박제성 음악칼럼니스트 = 결론부터 말하자면, 서울시향으로부터 페널티 없는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었던 세 번째 연주회. 로줴스트벤스키의 쇼스타코비치 8번과 정명훈의 말러 9번에 이은 잉고 메츠마허의 브루크너 <교향곡 5번>이 그것으로, 이번 공연이 특히 감명 깊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로는 연주력 측면으로, 작년 10월 브루크너 3번의 실망스러운 연주까지 서울시향의 브루크너가 연주력에 있어서 항상 만족스럽지 못했던 것이 현실. 그런데 이번 공연에서는 과감히 외국 객원 수석들을 섭외하여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한 브루크너의 디테일과 앙상블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두 번째로는 예술적 측면으로서, 오케스트라의 정확하면서도 기민한 연주력을 바탕으로 지휘자 메츠마허의 의도가 거의 손상되지 않고 온전히 전달되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몇몇 선택받은 브루크네리안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경지까지는 기대하지 않더라도 메츠마허의 여전히 신선한 아이디어와 노련함에서 기인한 브루크너적인 사운드 블렌딩은 청중을 새로운 감상의 차원으로 고양시키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개인적으로 브루크너 교향곡 5번 해석에서 주목했던 부분은 다음과 같다. 1악장과 4악장에 등장하는 전혀 다른 성격과 표현에 의한 세 개의 주제와 여기에서 기인하는 드라마적인 의미에서의 흐름 및 구성의 안정성, 이 거대한 음향 구조물에서 추진력과 분위기의 에너지 역할을 하는 스타카토와 피치카토의 향연이 주는 잠언적 상징성, 성부의 음향 조탁 및 발전부에 대한 새롭고 다양한 의미부여 가능성, 그리고 저 영광스러운 푸가에서 비롯하는 - 베토벤 후기 소나타적인 의미에 있어서 - 일종의 종교적 체험에 준하는 음악적인 고양감이다.

물론 게네랄파우제나7 클라이맥스의 마이크로적인 디테일과 매크로적인 효과, 브루크너 이디엄에 의한 숭고한 음색이나 음향의 수렴과 발산은 서울시향의 현재 상황에서 최고의 수준을 발휘하기는 어려운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메츠마허 연주에서는 위에 언급한 주목할 포인트들을 모두 적확하게 짚어내었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더불어 오랜만에 맛볼 수 있었던 서울시향과 지휘자 사이의 신뢰와 교감, 그리고 객원 수석들의 믿을 수 없는 연주력과 기존 수석들의 놀라운 활약은 음악적인 완성도 차원을 넘어서서 음악회 자체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던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우선 메츠마허는 악장들의 세 주제로부터 각기 다른 성격을 부여하여 극적인 대비와 발전부에서 사용될 때의 재료적인 강조를 거칠지 않지만 뚜렷하게 각인되는 방식을 이끌어냈다. 성스럽고 부드러운 첫 주제들, 매끄럽게 선율과 대선율들을 감아올린 두 번째 주제들, 그리고 복합적인 에너지와 표현력을 발산하는 세 번째 주제들을 다듬어내며 1악장과 4악장에서 7-8분여에 달하는 제시부에서 이미 스펙터클한 드라마를 완성해낸 것이다. 여기서 메츠마허는 각 주제들을 너무 늘어뜨리거나 통속적으로 만들지 않고 프레이징들의 마지막에 섬세한 리타르단도나 귀를 잡아끄는 아첼레란도 같은 양념을 더하여 자신만의 개성 혹은 흐름에 극장적인 탄력을 보여준 것 또한 흥미로웠다. 다만 스타카토와 피치카토의 효과는 현악부의 능력이 지휘자의 의도에 살짝 못 미치는 감이 있기도 했는데, 각 현악 파트가 딱 떨어지지 못하고 앞자리에서 뒤로 갈수록, 다른 파트로 옮겨갈수록 조금 늘어지는 탓에 음이 끝난 다음의 빈 공간이 주는 환기적인 효과가 다소 무뎌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츠마허는 제시부 이후 발전부에서 각 질료들을 적절히 강조하며 연료를 분사하는 듯한 추진력으로 사용, 덩어리진 음향을 지양하고 다면체적인 입체감을 부여하여 푸가적인 난해한 느낌을 보다 브루크너적인 광채로 전환시키는 데에 성공을 거두었다.

서울시향 공연 (사진제공=서울시향)

이번 연주회의 일등공신을 꼽는다면 주저없이 목관 수석들을 지명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난 브루크너 3번 때에도 홀로 돋보였던 클라리넷 수석을 위시하여 오보에와 플루트, 바순 수석들은 유럽의 여느 악단을 능가할 정도의 음량과 색채, 심지 곧은 호흡과 정교한 뉘앙스를 발산하며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존재감을 선사해 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객원 호른과 객원 금관 주자들의 활약에 힘입은 중요 클라이맥스 부분들의 비할 바 없는 금빛 폭포수 음향, 그리고 마지막 피날레에서 터져나온 금관의 십자포화도 이번 연주회를 성공으로 이끈 견인차이지만, 섬세한 음색과 질감이 높은 분자감, 날렵한 리듬감과 세련된 타격감으로 오케스트라 사운드와 멋지게 배합되되 주도하지 않으며 대단히 자연스러운 브루크너 음향을 빛내는 데에 일조한 객원 팀파니 수석의 역할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한편 해석적인 측면에 있어서 푸가 부분들의 새로움이야말로 메츠마허와 악단의 실력을 보여준 결정타였다. 특히 4악장에서 제시부가 끝난 뒤 등장하는 '드레스덴 아멘'의 새로운 짧은 주제부터가 이날의 하이라이트였다. 발전부가 진행될수록 각 주제들이 자유롭게 변형, 선율과 대선율 성부가 긴밀하되 주도권을 확실하게 하는 대화를 하며 브루크너의 푸가 장면들이 주제의 부산물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구조적 주도권을 쥐고 있는 중요한 극적 장치로 설계한 메츠마허의 혜안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더불어 브루크너 음악에서 자칫 실패하기 쉬운 리듬감이라는 요소를 교묘하게 재단해낸 메츠마허의 능력 또한 높이 살 만하다. 넘실거리되 지나치지 않고 적정 볼륨을 넘지 않으면서도 도드라지며 각 파트들의 현악적 표현에 자신만의 단호한 어조를 실은 리듬의 향연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2악장에서 고급스런 서스펜션을 장착한 듯한 유장한 리듬도 훌륭했지만 개인적으로는 3악장의 랜틀러 리듬에 환호를 지를 뻔했을 정도. 지나치게 엄숙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촌스럽지도 않은, 다른 연주회에서는 미처 접할 수 없었던 멋진 랜틀러 리듬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순서가 바뀌었지만 1부에서 연주한 코파친스카야의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 협주곡 1번>도 무척 고무적이었다. 어떻게 보면 브루크너보다 더 대중적으로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중요한 포인트로서, 처음 한국에 선을 보인 코파친스카야가 맨발로 펄쩍펄쩍 뛰고 악장을 노려보는 등등의 다양한 표현력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그녀는 어떤 포지션이나 어떤 액션에서도 오른손과 활이 현과 엄격한 각도를 유지하며 대단히 균질한 톤과 촘촘한 볼륨의 그러데이션을 보여주며 놀라운 연주력 또한 선보인 탓에 음악이 진행될수록 그녀의 연주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2악장에서 쇼스타코비치 <현악 4중주 8번> 2악장 주제를 연상시키는 짧은 음악적 질료를 다른 연주자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강조하는 모습도 매우 신선했고, 3악장 후반부 카덴차에서는 한 편의 심리극으로서의 모노 드라마를 보는 듯한 예민하면서도 고양된 감정선을 보여주어 찬탄을 자아냈다. 객원 수석과 지휘자 섭외에 더하여 협연자 섭외까지 완벽한 연주회였다.

서울시향 정기공연 포스터(사진제공=)
서울시향 공연 포스터(사진제공=서울시향)

 

Lotte Concert Hall, 11 March 2023

Shostakovich: Violin Concerto No.1 in A minor Op.77

Bruckner: Symphony No.5 in B flat major

Patricia Kopatchinskaja

Seoul Philharmonic Orchestea

Ingo Metzmacher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비평활성화 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