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산 자를 위한 씻김 무가(巫歌), 그 신명(神明)의 노래
[공연리뷰] 산 자를 위한 씻김 무가(巫歌), 그 신명(神明)의 노래
  • 더프리뷰
  • 승인 2023.03.29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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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순단 공연 포스터 (사진제공=서울남산국악당)

“송순단 파이팅!”

[더프리뷰=서울] 박혜영 충청북도 문화재전문위원 = 서울남산국악당 마당에서 외치던 팬들의 함성이 귓가에 쟁쟁하다. 팬클럽이 응원하는 단골. 대중가수 송가인을 낳은 엄마로도 이름난 무당, 송순단. 굿의 사도(使徒)이면서 대중의 사랑을 받는 그녀가 2020년 1집 음반 <송순단 무가>를 발매한 이래 삼 년 만에 다시 <무가 Ⅱ>를 녹음했다. 무가 음반을 발매한 기념 공연이라기에, 으레 굿을 선뵈는 공연 형식의 무대가 연출되는 줄로만 알았다. 굿인 줄 몰랐지만, 가서 보니 굿이었다. 송가인의 팬클럽은 송순단의 팬클럽이자 단골손님이 되었다. 제석님 전에 명복을 발원(發願)하고 예를 올리는 광경이 영락없는 굿청(굿廳)이었다. 세상을 떠난 망자(亡者), 조상을 모시는 씻김의 형식을 갖추었지만, 산 자를 위한 축원과 자손들의 안녕을 바라는 목적으로 이뤄진 굿이었다. 더욱이 굿을 주재하는 단골이 곧 굿을 의뢰한 재가집이 되어서 특별한 무대였다.

이 날 극장에서 진도씻김굿(국가무형문화재 제72호)의 <안당> <초가망석> <손님굿> <제석거리> <액막음> <고풀이> <씻김거리> <희설> <길닦음>이 연행되었다. 객석에 앉아 굿을 보면서도 무녀와 충분히 교감할 수 있었던 까닭은 제상과 악사들의 자리를 살짝 방향을 틀어 비껴놓은 덕분이었다. 무녀가 관객을 등지지 않고 한 발짝만 슬쩍 몸을 틀어도 주변을 살피며 굿판을 이끌어갈 수 있었다. 관객들이 시주를 하고 자손들이 신령님께 절을 올리거나 조상의 혼백을 모시는 장면들은 무대 안팎이 곧 굿의 현장임을 실감케 했다.

현고학생(顯考學生) 은진송씨신위(恩津宋氏神位) 현비유인(顯妣孺人) 의령여씨신위(宜寧余氏神位)

송순단의 부모님, 아버지 은진 송씨와 어머니 의령 여씨를 위패에 모신 제상이 진설되었다. <무가 Ⅱ>의 무대는 마치 송순단의 집에서 펼쳐지는 것처럼 진도와 서울의 시공간이 공명하는 마당이 펼쳐졌다. 신을 울리고 마음을 울리고 공명하는 바람과 울림, 공명하는 굿이 씻김굿이라며 친절한 해설을 도맡았던 사회자 이윤선은 송순단의 이웃, 돌담 옆집 길은리 삼촌이다. 남도 민속의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학자이자 장단에도 일가견 있는 그가 남도 말맛까지 보태어 구성진 판을 일구었다. 모정(母情)의 소리에 아쟁을 타던 아들과 그 벗들의 바라지, 객석에 함께한 며느리와 손자들, 곁을 지키던 남편과 딸, 일가친척과 지인들, 팬을 자처한 손님들까지, 귀한 걸음으로 시주를 하며 합장하던 이들의 마음이 모인 씻김 소리판. 이 날의 굿은 신보다 굿의 세계로 안내하는 사람이 돋보이는 굿이었다.

“오늘 이 자리 슬픈 자리가 아니라 좋은 자리로 빕니다.”

집안의 가신(家神)에게 굿을 하는 연유를 아뢰는 <안당> (c)나승열 (사진제공=서울남산국악당, (주)나우판코리아)

집안의 조상(祖上)과 가신(家神)에게 누구네 집에서 어떤 연유로 언제 어디에서 굿을 벌이는지 아뢰는 <안당>을 시작으로 <초가망석> <손님굿> <제석거리> <액막음>이 연행되었다. 송순단의 가족들이 촛불을 밝히고 향을 피우자 향내음이 극장을 채웠다. 굿문을 열어 신과 망자를 청해 모셔오는 <초가망석>이 이어진다. 지전을 나부끼는 송순단의 춤사위가 맵시 있고 단아하다. 천연두와 홍역 같은 병액을 몰고 오는 손님을 모시는 <손님굿>에서 굿판에 찾아든 여러 손님까지 아울러 단골이 굿대접을 한다. 손님의 근본을 풀이하고서 온갖 액살귀(縊殺鬼)를 막아달라 빌고 자손의 발복(發福)을 청한다. 흰 장삼을 입고 고깔을 쓴 무당이 등장하니 <제석굿>이 펼쳐진다. 복덕과 재수를 비는 굿이다. 단골은 제석님네 근본을 풀고 염불하여 시주를 받다가 명당을 잡아 집터를 잡고 노적과 업을 청하며 재복(財福)을 빈다. 마음으로 제석님 전에 쌓인 노적(露積)을 받으라는 단골의 축원에 모두를 위한 박수세례가 쏟아진다. 건어물을 들고 군웅을 모셔 집안에 찾아드는 악령을 막아내고서 동서남북과 중앙으로 쌀을 뿌리며 액을 막는 과정이 굿의 전반부에 해당했다.

좋은 자리로 비는 굿이라며 감회에 젖은 송순단이 자식 자랑을 곁들인다. 잔칫날처럼 자손들의 장기 자랑도 펼쳐졌다. 판소리 한 대목과 천둥벼락 같은 사물 소리가 무대를 환기시켰다. 임현빈의 창을 듣고 있자니 공양미 삼백 석을 부처님께 시주하고 인당수에 몸을 던지러 가던 가여운 심 낭자 넋이 아니라, 눈 뜬 아비와 상봉하여 눈물겹도록 벅찬 심청의 넋이 떠올랐다.

쑥물로 해갈하고 향물로 해갈하야 밝은 정성 씻김 받아 나오소사

쌀알을 뿌려 액을 막고 넋을 부르며 저승문을 여는 단골 (c)나승열 (사진제공=서울남산국악당, 나우판코리아)

굿의 후반부에는 <고풀이> <씻김거리> <희설> <길닦음>이 연행되었다. 자리에 망자의 옷을 놓고 말아, 염을 하듯이 일곱 매듭으로 묶어 말아서 영대(靈代)를 세우고, 그 위에 넋주발과 누룩, 솥뚜껑을 얹어 상투를 튼 망자의 영육(靈肉)을 형상화하는데, 이것이 영돈말이다. 이윽고 망자의 근심을 소멸시키고 맺힌 한을 풀 듯 <고풀이>를 한다. <씻김거리>가 시작되자 “넋이 넋이 넋이로다. 이 넋이 뉘 넋이요”라며 무녀가 엇모리 장단에 넋의 정체를 탐문한다. 흘림 장단에 '석가여래 공덕으로 아버님 전 뼈를 빌고 어머님 전에 살을 빌려 제석궁의 몸을 타고 칠성님 전에 명을 타야 이날 일시 탄생한 망자’를 불러낸다. 단골이 지전을 나부끼다가 신칼로 솥뚜껑을 두드리며 무가를 부르는 사이, 쑥물로 씻어 잡귀잡신을 막아내고, 향물로 저승과 이승을 잇고, 맑은 물로 정화하여 부정(不淨)한 모든 것을 털어낸다. 저승문을 열러 가자는 소리에 살아생전 망자의 눈물 젖은 한을 이슬 털듯 씻어내고서 쌀알을 흩뿌리며 액살을 흩쳐낸다.

넋은 넋반에 오르시고 혼은 혼반에 오르시고 신은 신상에 오르소사

육신을 떠난 망자가 저승으로 가는 길에 지옥을 면하고 극락에 가길 비는 <희설> (C)나승열 (사진제공=서울남산국악당, 나우판코리아)

행기(밥그릇)에 종이로 형상화한 망자의 넋과 노잣돈이 넣은 것이 넋주발이다. 영돈을 풀고 넋주발을 여니 정성껏 씻긴 망자의 혼백이 단골에게 이끌려 나온다. 넋이 자손의 곁을 맴돌며 어르고 휘어감아 머리 위에 내려앉는다. 무녀가 한 손에 신칼(혼을 맞이하는 영력을 지닌 칼)과 지전(紙錢, 저승에서 망자가 쓸 한지로 만든 엽전 모양의 돈)을 들고서 자손의 머리를 쓰다듬듯 넋을 훑어 올린다. “원한이 져서 한 번에 안 올라오신다.”는 단골의 말에 눈을 뗄 수가 없다. 주춤거리던 넋이 하얗게 안겨 떠오르는 찰나, 신의 존재를 의심치 못할 신앙의 세계에 들어서게 된다.

가자서라 가자서라 좋은 세상을 가자서라

이승의 생(生)을 다한 망자의 혼백이 자손을 만나 한을 풀고 여한 없이 저승사자를 따라 나설 때 <희설>이 구연된다. 송순단이 사설을 읊으면서 극락세계로 가는 관문을 두드리듯 징을 울린다. <회심곡>을 연상시키는 사설로 육신(肉身)을 떠난 망자의 삶을 위로하며 사자(使者)를 따라나선 길에, 지옥을 면하고 염불로 양식을 삼아 자손에게 명복을 주고 가라고 인도한다. 이어서 망자가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가는 길을 닦는다. 넋당석(망자가 저승으로 타고 가는 배)을 타고 길베에 떠내려가면서 다시 만나고픈 마음을 간직한 채 하직(下直)하는 조상님네와 마음껏 흠향하고 극락세계로 돌아가시라는 무당의 정성에 감응(感應)한 단골댁들. 인심 가득 시주하는 손길 덕에 저승 길 떠나는 노잣돈도 넉넉하다. 삶과 죽음의 샛길을 닦는 <길닦음>으로 염불공덕(念佛功德)을 짓고 극락왕생(極樂往生)을 빌며 인도하는 것으로 굿이 갈무리되었다.

넋당석에 망자를 위한 쌀과 옷가지를 담고 넋을 앉혀 모시고서,
무명 천 위로 지전을 나부끼며 인도하고, 정주를 울리면서 저승길을 닦는 <길닦음>. 죽은 이의 혼백이 넋당석을 타고 시주 받은 노잣돈이 놓인 길베를 건너 극락세계로 넘어가는 과정. (c)나승열 (사진제공=서울남산국악당, 나우판코리아)

이 세상을 살아올 제 무슨 공덕을 쌓았던가

송순단은 진도 지산면 길은리 태생이다. 어머니 여금순의 신기를 이어받아 스물여덟 살부터 신병을 앓다가 서른한 살에 신내림을 받았다. 일찍이 세상을 뜬 친정어머니를 몸주신으로 섬기며 신어머니 오보살을 따라 굿판을 다니다가 "남의 조상 앞에서 굿을 하려면 떳떳하게 해야겠다"는 신념으로 1992년에 씻김굿 전수생이 되었다. 진도씻김굿보존회에서 활동했던 김대례(1935-2011)와 정숙자(1939-2001), 이완순(1942-1995)은 친인척 관계였다. 무계(巫系)를 잇는 세습의 과정에서 굿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도 일가를 이룬 결연관계에서 이루어졌다. 한 집안 사람도 아니고 별다른 혈연관계도 없던 송순단은 이완순에게서 굿을 이어받았다. 굿판에서 들은 사설을 적어 싱크대에 붙여놓고 보고, 카세트로 녹음한 무가를 잠결에도 듣고 외웠다. 억겁의 노력 끝에 무업(巫業)을 계승하고 진도의 단골판을 지키는 세습무(世襲巫)로 거듭났다. 그녀가 2001년 진도씻김굿보존회의 전수교육조교(현 전승교육사)로 인정받기까지 삶의 여정을 어찌 말로 다하랴. 조규창, 조성재, 조은심 세 아이의 어머니로 살아온 무녀가, 자식 같은 무가 음반을 낳기까지 무려 삼십 여년이 되는 세월이 흘렀다.

사람 사는 이치를 담은 굿, 정성 어린 마음을 보시하다

주름진 소릿길을 되새기는 꿈 같은 순간. 오늘 씻김 무대는 아들과 딸이 뜻을 모아 마련한 공연이기도 하다. 신의 핏줄로 생을 마감한 조상을 모시고 살아남은 자손들이 연 굿문. 오늘 이 굿은 누구를 위한 걸까? 이름난 트로트 가수로 자란 외동딸에게 행여 누가 될까봐 더 이상 점사(占辭)를 보지 않는 영매(靈媒). 그렇다 해도 내려앉은 몸주신(무당이 되도록 인도하여 영력(靈力)의 세계로 이끄는 주신(主神))은 여전히 각별한 신으로 자리해 계실 터이니, 고이 모신 숨은 진적(만신(萬神)이 섬기는 신령을 감사히 대접하고 몸주신의 신명을 풀고 축원하는 굿) 이었을까? 객석과 마주한 무대가 신당(神堂)과 다르겠지만, 그런다고 신이 왕림하지 않는 것은 아닐테니 말이다.

남녘의 세습무들이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만 굿소리를 내지는 않는다. 집안의 가신(家神)을 섬기기도 하고, 날을 받아 재수소망을 빌거나, 뭍이 아닌 바다에서 신의 영험(靈驗)을 청하며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기도 한다. 무가의 쓰임도 그만큼 각양각색이다. 그러니 어쩌면 오늘의 <무가Ⅱ> 무대는 슬프지만은 않은 씻김, 죽은 조상을 기리며 은덕에 보답하는 자손들의 신명풀이일지도 모르겠다. 더 나은 삶을 향해 거듭나기 위해 묵은 삶에서 벗어나고자 씻어내는 자리, 한 서린 세월이 풀어지듯 뼈 아픈 신명에 기댄 위로의 노래. 그 무가에 한없이 빠져들어 살맛나는 굿판이었다. 박수 가득한 객석을 향해 덕담을 건네며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무당의 마음 보시(布施)가 심금(心琴)을 울렸다.

“여기 오신 여러분을 위해 박수칩시다. 기도 많이 하겠습니다.”

굿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마음을 나누며 서로에게 보내는 박수갈채 (c)나승열 (사진제공=서울남산국악당, 나우판코리아)

삶이란, 살아내는 일이라는 게, 누구나 제 몫만큼 감내해야 하는 인고의 길이다.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답게 사람 노릇하고 사람대접 받으며 산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아서 신을 모셔와 청하는지도 모르겠다. 한평생 굿소리로 삭혀온 예인 송순단의 속 깊은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함께한 모든 이들, 세상 만민에게 신의 가호가 깃들기를 두 손 모아 빈다.

*필자 박혜영은 연희 실기와 민속학 이론을 전공하고, 유네스코 국제문화정책을 전공했다. 문화재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무형유산 관련 영상을 만들고 글을 짓는 작가로서 삶을 지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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