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뜨겁게 연소된 러시안 나잇!
[공연리뷰] 뜨겁게 연소된 러시안 나잇!
  • 김준형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3.04.24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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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신익과 심포니 송 '마스터즈 시리즈 IV'
함신익 오케스트라·심포니 송 포스터 (사진제공=함신익 오케스트라)

[더프리뷰=서울] 김준형 음악칼럼니스트 = 2023년 4월 13일 롯데콘서트홀. 함신익의 분투는 계속된다. KBS교향악단 이후 어떤 상황에서라도 최상의 음악을 관객에게 선사하겠다는 함신익의 굳건한 의지는 계속되고 있다. 심포니 송이라는 비교적 신예 연주자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와 함께, 끝없는 연단 속에서 믿어지지 않는 완성도의 예술을 보여주고 있다. 가장 놀라운 점은 그 정교한 합주력이다. 개개인 악단원의 정교한 연주는 물론이거니와, 오케스트라가 놀라운 합주를 하고 있다.

이날은 '러시안 나이트'로, 연주회장에서 흔히 접할 수 없는 어려운 명곡을 감상할 수 있는 멋진 기회를 얻었다.

스트라빈스키의 <현을 위한 협주곡>은 명지휘자 파울 자허의 바젤 캄머오케스트라 창단 20주년 기념작으로 위촉받았던 작품으로 신고전주의 작풍이 잘 드러난 명작이다. 함신익이 완전히 장악한 심포니 송의 현악 앙상블 합주력과 작품의 다채로운 악상이 돋보였다. 빠르게 연주한 첫 악장에 부여한 운동감과 감칠맛나는 리듬감이 훌륭했고, 앙상블로부터 색채의 변화를 뽑아낸 지휘자의 해석이 멋졌다. 첫 악장의 기조를 이어 나가며 제2악장의 선율미를 유려하게 재현했고, 역동적으로 마무리한 마지막 악장이 장쾌했다.

이날의 메인 디쉬였던 차이코프스키의 ‘운명’ 교향곡인 제5번은 유장한 템포와 높은 밀도의 합주를 바탕으로 작품에 담긴 격정적 심상을 함축적으로 제시했다. 마치 오토 클렘페러나 레너드 번스타인의 거장적 해석을 마주한 듯했다. 유달리 화려한 금관의 포효에 포커스를 둔 연출을 보여준 함신익의 연주는 특히 안정적인 연주를 들려준 호른 섹션의 호연과 아름답고 따스한 목관의 앙상블에 힘입은 바 컸다.

함신익 오케스트라·심포니 송 연주 장면 (사진제공=함신익 오케스트라)

이번 '마스터즈 시리즈'는 라흐마니노프 탄생 150주년을 맞이해 그의 작품번호 1번이라는 각별한 의미를 담은 명곡,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을 연주하였다. 학생 시절인 1890년에 쓰기 시작하여 이듬해에 완성, 초연 당시부터 갈채를 받은 작품이다. 1917년 <피아노 협주곡 제4번>을 작곡하면서 함께 개작을 하여 과감한 수술을 감행한다. 수 많은 화려한 피아노 독주곡에서 발휘되었던 고난도 테크닉과 복잡한 화성이 반영된 제3악장은 물론이고 오케스트레이션 부분도 보강되었다. 라흐마니노프의 인생을 관통하는 ‘시작과 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작품으로, 이 각별한 작품을 위해 심포니 송은 러시아의 피아니스트 에카테리나 리트빈체바를 초청하였다.

팡파르를 방불케 하는 금관의 포효로 화려하게 포문을 열고, 이어 전개되는 오케스트라의 우람한 연주를 배경으로 리트빈체바의 정교하고 시적인 전개가 무척 매혹적이었다. 특히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을 관통하는 종소리를 너무나도 명징하게 매력적인 고음으로 들려주는 대목은 그녀의 깊은 음악성을 느끼게 했다. 광포한 카덴차에서도 정연하고 순도높은 교과서적 연주를 들려주었다. 두번째 악장에선 담담하면서 적절한 러시안 특유의 레가토가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낭만성을 더했다. 그윽하고 안정된 호른을 필두로 한 관현악과 시적인 피아니즘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뤘다. 스피디한 난곡을 너무나 자연스럽고 여유있게 소화하면서 은빛의 투명한 고음의 음색이 돋보인 마지막 악장을 마무리한 그녀의 연주에 갈채가 쏟아졌다.

최근 일리야 라쉬코프스키, 세르게이 타라소프 등 국내 대학에서 후학을 육성하는 훌륭한 러시아 피아니스트들의 강력한 라흐마니노프 연주를 들을 기회가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날 리트빈체바의 연주는 이들과 다른 각도에서 작곡가를 조망한 아주 진귀한 기회였다.

함신익 오케스트라·심포니 송 연주 모습 (사진제공=함신익 오케스트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비평활성화 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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