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마사 그레이엄 댄스 컴퍼니(Martha Graham Dance Company)
[공연리뷰] 마사 그레이엄 댄스 컴퍼니(Martha Graham Dance Company)
  • 하영신 무용평론가
  • 승인 2023.05.07 18:37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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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 유산을 짊어진 무용단의 동시대적 행보

커머셜 화랑들과 각종 부티크와 레스토랑들의 거리 첼시, 뉴욕 맨해튼 아트 씬의 현재적 주소지다. 1982년에 개관한 첼시의 터줏대감 조이스 씨어터(The Joyce Theatre)는 472석 규모의 무용전문극장으로 타 대륙과 자국 내 생성중인 춤들을 불러 세우는 미국 컨템퍼러리댄스계의 메카지만 해마다 프로그램에는 마사 그레이엄, 트리샤 브라운(Trisha Brown), 호세 리몽(Jose Limon) 등 미국 모던댄스를 일궈낸 거장들이 설립한 무용단들의 공연이 포함되어 있다. 올 해 마사 그레이엄 댄스 컴퍼니는 아흔 일곱 번째 생일을 자축하며 5편의 고전 레퍼토리와 1편의 헌정작 그리고 2편의 제작 신작을 포함한 총 3편의 컨템퍼러리댄스 작품을 선보였다.

 

 

마사 그레이엄 댄스 컴퍼니 2023 시즌 포스터 ⓒ Hibbard Nash
마사 그레이엄 댄스 컴퍼니 2023 시즌 리플릿 ⓒ Hibbard Nash

[더프리뷰=뉴욕] 하영신 무용평론가 = 3년 후면 꽉 찬 1백주년을 맞는 마사 그레이엄 댄스 컴퍼니. 무용예술사에서 마사 그레이엄의 이름은 여전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 유럽의 마리 비그만(Mary Wigman)과 미국의 이사도라 던컨(Isadora Duncan)에 의해 점화된 춤의 모더니즘 불꽃은 양차대전의 참화에 사그라질 수도 있었다. ‘구대륙 문화전통에 대한 미국의 패권의식이 있었든 없었든, 아무튼 세계의 무용예술 공연이 지체를 겪던 그 시절을 견인해온 이는 마사 그레이엄이었다. 모든 ‘post-’연속성으로부터 차이를 생성하는 법이듯, 유럽의 클래식발레로부터 극()적 요소를 물려 안았을지언정 그녀의 춤은 그 면모와 에너지 내역 여러 국면에서 발레와 대척점을 이루었다.

수축과 이완(contract and release)’이라 축약되는 그녀의 춤 메소드는 사지(四肢)에 국한되었던 클래식발레의 표현 한도를 몸통으로부터 출발하는 근원적인 움직임으로 확장시켰다. 존 마틴(John Martin)을 위시한 자국 평론가들의 지지를 받아 모던댄스'라는 시대적 명찰을 수여받고(한 지역의 예술가에게 시대를 구분하는 수식어가 부과됨으로써 이후의 무용예술은 단락짓기에 혼란을 겪는다. 예를 들어 장르 분화와 매체 본질 구현에 천착하는 모더니즘 예술의 특성으로부터 움직임 자체의 사유와 구가를 자신들의 이념으로 삼았던 저드슨 그룹(Judson Group)의 예술의지는 역시 자국의 평론가 샐리 베인즈(Sally Banes)에 의해 포스트모던댄스라 호칭되었다. 이제 세계 예술무용계는 병치(juxtaposition)나 융복합 등 포스트모더니티의 성향을 담지한 춤을 컨템퍼러리댄스라 부른다. 다행히 실시간으로 교통하며 다변화한 것들이 출몰하는 가운데 명명(命名) 능력의 한계치 혹은 특정(特定)의 무의미함에 부대끼며 동시대적 특질로 출현하는 것들을 당대의 예술로 통칭하는 예술환경 일반에 부합하기는 한다. 그런데, ‘이후의 예술그리고 차후의 무용예술은 뭐라 분별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궁금하기는 하다.) 당대의 정전(定典, canon)으로 등극한 그녀의 춤은 아이로니컬하게도 머스 커닝엄(Merce Cunningham), 저드슨 그룹 등 자국 무용예술가들의 도전을 받으며 그 또한 테크닉이라 부정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고유한 테크닉, 작가가 누군가들에게도 유용할 자신만의 방법과 양식을 구해내는 일은 실로 대단한 과업의 성취 아닌가. ‘테크닉이든 메소드든 춤의 무브먼트가 춤적 무브먼트로 감지되는 데에는 그를 춤으로 성립시키는 어떤 테크닉, 어떤 메소드의 작동이 반드시 있기 마련인 것이다. 필자는 너무도 해체적이어서, 춤이라 선언하지만 춤의 카테고리로 품을 수 없는 작품들을 만날 때마다 마사 그레이엄의 전언을 되새겨보곤 한다. “테크닉은 우리 몸을 자유롭게 한다.”

MGDC 2023 시즌 포스터 ⓒ Hibbard Nash
MGDC2023 시즌 리플릿 ⓒ Hibbard Nash

전후(戰後세계 무용예술의 재개는 마사 그레이엄 테크닉 이식과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국의 로빈 하워드(Robin Howard, 더플레이스(The Place) 극장 설립자로 영국 컨템퍼러리댄스의 아버지로 불림)가 그레이엄과의 직접적인 교류를 시작함으로써, 독일의 피나 바우쉬(Pina Bausch)가 뉴욕을 수학함으로써, 유럽 대륙에서도 전격적으로 클래식발레와는 다른 춤의 세계가 펼쳐지기 시작하였다(물론 라반(Rudolf von Laban)과 같은 이들 역시 새로운 춤에 관한 소신을 들고 유럽의 상황을 견디고 있었다). 우리나라로 말할 것 같으면, 지금에 와서는 한국무용·발레·현대무용의 삼분법을 타파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우리 전통춤이나 서양의 전통춤인 발레와는 다른 새로운 춤의 전격적인 전개는 1960년대에 이화여대가 출범시킨 학제 안에 마사 그레이엄 테크닉이 소위 현대무용이라는 카테고리로 자리 잡으면서 시작되었다. 발레만큼이나 완고한 테크닉이지만 마사 그레이엄이 간척하여 넓혀놓은 그 춤의 지형으로부터 오늘의 거침없고 개별적인 춤들은 솟아오르고 있는 것 아닐까.

오늘, 뉴욕, 그레이엄 재연의 의미

조이스 씨어터의 공연은 보통 1주일 단위 스케줄로 운영된다. 그러나 마사 그레이엄 댄스 컴퍼니의 경우엔 항시 2주 정도(올 해는 418일부터 30일까지)를 할애하여 다양한 구성으로 선을 보인다. 프로그램 A·B·C·D로 나눠진 정규 프로그램과 갈라(Gala Program)와 패밀리 마티네(Family Matinee) 등으로 나누어 4-5편의 그레이엄 레퍼토리와 2-3편의 제작 신작, 1편 정도의 타 작가 작품으로 구성하는데, 그 해의 선정작들을 다 관람하려면 중복되는 작품들의 관람을 감안하고 큐레이팅된 프로그램을 다 섭렵해야 한다. 필자와 같은 경우에야 그 부담을 자청할 수밖에 없지만 애호가의 경우 그 선택이 쉬운 편이다. 한 프로그램 당 대개 3편으로 구성되는데, 마사 그레이엄의 고정팬인 경우 그레이엄 레퍼토리 2편이 편성된 프로그램을 선택하면 된다. 조이스에서의 러닝이든 타극장에서의 기획이든 마사 그레이엄의 올드팬 층은 여전히 그녀를 방문하고 열렬한 기립박수를 보낸다. 대략 20여 년 전 카네기홀에서였던가, <Cave of the Heart>를 포함한 대표 레퍼토리만으로 구성된 공연을 관람한 적 있었는데 교과서적 역사를 확인한다는 심경으로 오케스트라석을 예약했다가 영화감독 우디 앨런(Woody Allen)을 비롯한 유명인사들에 둘러싸여 관람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날처럼 오늘의 극장에서도 그녀는 여전히 사랑받고 있었다.

무용예술의 모더니즘을 본격적으로 전개시킨 마사 그레이엄의 대표작 Cave of the Heart의 한 장면. ⓒ Melissa Sherwood
무용예술의 모더니즘을 본격적으로 전개시킨 마사 그레이엄의 대표작 'Cave of the Heart'의 한 장면. ⓒ Melissa Sherwood

마사 그레이엄 댄스 컴퍼니는 <Heretic>(1929) <Lamentation>(1930) <Primitive Mysteries>(1931) <Satyric Festival Song>(1932) <Ekstasis>(1933년 작품을 Virginie Mécène가 고증) <Frontier>(1935) <Panorama>(1935) <Chronicle>(1936) <Spectre-1914>(1936) <Steps in the Street>(1936) <Deep Song>(1937) <Immediate Tragedy>(1937, 현 무용단 예술감독 Janet Eilber가 고증) <Every Soul Is a Circus>(1939) <El Penitente)(1940) <Deaths and Entrances>(1943) <Appalachian Spring>(1944) <Herodiade>(1944) <Cave of the Heart>(1946) <Dark Meadow>(1946) <Night Journey>(1947) <Errand into the Maze>(1947) <Diversion of Angels>(1948) <Clytemnestra>(1958) <Embattled Garden>(1958) <Phaedra>(1962) <Secular Games>(1962) <Acts of Light>(1981) <Ritual to the Sun>(1981) <The Rite of Spring>(1984) <Maple Leaf Rag>(1990) 등 초기 솔로작으로부터 특유의 춤 어휘와 작가적 시선의 진척을 확인해줄 수 있는 전 생애에 걸친 레퍼토리를 보유하고 있다. 올 해 조이스 무대에서는 <Cave of the Heart> <Dark Meadow Suite> 등 대표작을 위시하여 50년대 작 <Embattled Garden>과 초기작 <Every Soul Is a Circus> 등의 레퍼토리가 펼쳐졌다.

MGDC2023 Every Soul Is a Circus ⓒ Melissa Sherwood
MGDC2023 'Every Soul Is a Circus' ⓒ Melissa Sherwood

1939년 초연 당시 에릭 호킨스(Erick Hawkins), 머스 커닝엄 등 무용사에서 꾸준히 호명되는 무용가들을 출연진으로 품고 있었던 작품 <Every Soul Is a Circus>코미디 발레(comedic ballet)’로 기술된다. 9명의 등장인물과 12개의 씨퀀스로 이루어진 30분 분량의 이 작품은 그레이엄이 맡았던 여주인공의 내적 욕망, 'star turn', 만인으로부터의 주목을 욕구하는 어리석은 욕망의 우스꽝스러운 상황 전개를 그리고 있다. 20세기 초의 문화적 아이콘들, 발레계에 모더니즘 혁신을 불러일으켰던 발레 뤼스(Les Ballets Russes)나 자국 내 보드빌(vaudeville) 등으로부터의 형식적·정서적인 연관성이 유추되는 작품이었다.

이런 식으로, 마사 그레이엄의 유작들을 관람하는 건, 필자로서는 과거를 방문해보는 일이다. 공연예술의 본령적 가치인 공감소통을 성취하기엔 솔직히 나의 몸이 이미 다른 영역대에 있음이 항상 먼저 확인된다. 그리스 비극 <메데이아(Medea)>로부터의 <Cave of the Heart>나 아담의 전처인 릴리스(Lilith)를 등장시키는 히브리 신화 속 에덴의 풍경으로부터 건설된 <Embattled Garden>에서 보여지는, 곤경과 갈등으로부터 해결로 나아가는 인물 군상의 정서와 행동양식은 내가 지닌 감응계의 바깥을 가리킨다. 나는 철저히 과거의 사람들, 과거의 상황들, 과거의 춤에 대한 목격자다. 그 관람은 확실히 오늘의 춤작품들로부터 만끽하게 되는 직접적인 정동(情動, affect)과는 다른 기제를 작동시킨다. 그러나 저 멀리 20여 년 전 최초의 경험으로부터 누적되는 관람은 마사 그레이엄이라는 예술가, 그가 살았던 시대, 그 시대를 사로잡았던 예술과 이념에 나의 몸으로 접근 가능하게 해준다.

MGDC2023 Cave of the Heart ⓒ Melissa Sherwood
MGDC2023 'Cave of the Heart' ⓒ Melissa Sherwood
MGDC2023 Embattled Garden ⓒ Brian Pollock
MGDC2023 'Embattled Garden' ⓒ Brian Pollock

엄격하게 관리된 안무적 유산으로부터 어떤 역사성을 재현해내는 마사 그레이엄 댄스 컴퍼니 무용수들의 춤들은 그레이엄의 모던댄스가 왜 그리고 얼마나 클래식발레와의 다름을 지향했는지, 장식성과 재현욕구로부터 어떻게 원천성과 상징의욕(상당수 작품에서 동행한 미술가 이사무 노구치(Isamu Noguchi)의 무대세트와 더불어 성취된 모더니즘 미감!)으로 이행해갔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문헌의 기억보다 막강한, 힘이 센 현장적 기억의 재점화는 1946년의 작품 <The Dark Meadow>의 장면들을 발췌한 <The Dark Meadow Suite>(2016)의 앙상블로부터 마침내 다성(多聲, polyphony)적이고 추상적인 현재적 미학관과의 접점의 발견으로 이어진다.

이상은 마사 그레이엄의 시대를 살지 않았던 필자의 관람 내역이다. 여느 때처럼 그레이엄의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열렬한 호응이 나의 관람에 감응의 강도를 보태어준다. 극장은 대류하는 기억의 공간, 공동체라는 단어가 육화(肉化)하는 순간을 창출하는, 특별한 장소임을 새삼 느낀다. 한편으로 유명(有名) 무용단으로 편성되지 못한 우리 무용계, 레퍼토리를 보전하지 않는 기관 춤단체, 과거와 절연된 우리의 젊은 작가들(이상은 각별히 현대무용계열의 상황이다. 다른 범주들의 춤에선 오히려 반대급부를 우려한다)을 생각해보게 된다. 문화예술이 그저 부유하는 트렌드의 순환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면, 다양성들의 뿌리가 깊어야 할 텐데.

기억의 재생산, 그레이엄으로부터 촉발된 신작들

올 시즌에 소개된 마사 그레이엄 댄스 컴퍼니의 신작들은 재공연된 <Canticle for Innocent Comedians><Cave> 그리고 초연작 두 편 <Cortege 2023> <Get Up, My Daughter> 등 총 네 편이다. 마사 그레이엄 댄스 컴퍼니의 신작 발굴 전략은 두 방향성을 가리키고 있는 듯하다. 우선은 영국의 호페쉬 셱터(Hofesh Shechter)에게 의뢰하여 만든 <Cave>의 경우와 같이 세계적 명망의 작가들에게 그레이엄으로부터의 키워드를 품은 작품의 제작을 요청하는 경우. 다른 하나는 자국의 촉망받는 신예 안무가들에게 그레이엄의 유산을 기입하고 현재형으로 불러내는 방식이다.

작년 초연에 이어 재공연된 <Cave>부터 살펴볼 것 같으면, 우선 11명 컴퍼니 단원들의 경계 없는 기량에 놀라게 된다.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지만 이스라엘 혈통의 안무가답게 테크닉의 정량을 한껏 벗어나 끊임없이 연속하며 점층(漸層점강(漸强), 마침내 일원론적 몸의 신명으로 치닫는 군무에 일가견이 있는 호페쉬 안무의 특유함을 그레이엄의 단원들은 유감없이 소화해내었다. <Cave of the Heart>라는 대표작 타이틀에서 짐작 가능하듯, 마사 그레이엄의 캐릭터들은 그 시절의 사람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어떤 고난, 역경을 관통하여 나아가는 자들이었다. 지금도 인간에게 주어진 생의 원리는 그 때와 다름없건만, 한 치의 빈틈없이 설계된 지금의 문명세계는 그레이엄의 시절처럼 신화나 서부개척사의 인용에 기대어 해답과 방도를 구하기에는 너무도 교묘하고 치밀하다. 자연 앞에서의 무력감 같은 것을 품고 사는 존재들인 것이다, 동시대의 젊은 세대라면 더욱이. 그러므로 현재형 예술의 순간들은 발목 잡은 일상으로부터의 초월의지를 실현시켜주는 엑스터시의 시공간이기도 하다. 레이브와 트랜스의, 오늘날 클럽의 풍경을 닮은 호페쉬의 동굴로서 그레이엄의 동굴이 다시 사유되었다.

 

MGDC2023 CAVE(Hofesh Shechter) ⓒ Brian Pollock
MGDC2023 'Cave'(Hofesh Shechter) ⓒ Brian Pollock

<Canticle for Innocent Comedians>는 뉴욕을 기반으로 무용과 뮤지컬 무대를 종횡무진하고 있는 안무가 소냐 타예(Sonya Tayeh, 브로드웨이 뮤지컬 <물랭 루주 Moulin Rouge>의 안무로 토니상(Tony award)을 수상한 바 있다)의 주재 하에 알레인 댄스(Alleyne Dance), 로버트 코언(Sir Robert Cohan), 젠 프리먼(Jenn Freeman), 줄리아노 누녜스(Juliano Nuñes), 미카엘라 테일러(Micaela Taylor), 유엔 인(Yue Yin) 등 촉망받는 신예 안무가들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비녜트(vignette: 특정 순간의 묘사나 통찰에 초점을 맞춘 짧은 단편들의 모음집) 형식의 작품으로 1952년 그레이엄 동명작에 대한 재해석 작업이다. 태양, 대지, 바람, , , , 별 그리고 죽음으로 일련하는 이 자연에 대한 송가는 그레이엄의 의 대목을 포함한다. 그레이엄 작품 세계에서도 이례적인 작업이기도 하거니와, 원작의 경험이 없는 상태로서는 재해석의 역량보다는 헌정작으로서의 의미로 감지되는 연행이었다. 역시 2022년의 초연작을 재공연한 작품이다.

 

MGDC2023 Canticle for Innocent Comedians ⓒ Brian Pollock
MGDC2023 'Canticle for Innocent Comedians' ⓒ Brian Pollock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듀오 안무가 그룹 바예&아사(Baye & Asa : Amadi Baye Washington and Sam Asa Pratt)의 초연작 <Cortege 2023>은 그레이엄의 1967년작 <Cortege of Eagles>를 오늘의 시공간으로 불러들인다. 뱃사공 카론(Charon)을 중심인물로 트로이제국의 몰락을 그린 원작의 대서사로부터 항해와 분란과 난파의 명징한 장면들을 축출, 무릎을 꿇고 대각선으로 일렬한 무용수들에게 덮여 있던 천이 거두어지는 장면으로부터 소요와 쟁투와 생존의 춤들을 만발시킨 후 다시 정렬한 무용수들에게 천을 덮어씌우며 바예와 아사는 다시 만연하는, 어쩌면 순환하는 역사의 마디로서의 파국적 조짐을 환기한다. 원작과의 개연성이 명확하게 간파되는 만큼 이야기의 이미지적 전개와 그에 실린 춤들로부터 어떤 고유함을 발견하기는 힘든 범작이었다.

MGDC2023 Cortege 2023(Baye & Asa) ⓒ Steven Pisano
MGDC2023 'Cortege 2023'(Baye & Asa) ⓒ Steven Pisano
MGDC2023 Get Up, My Daughter(Annie Rigney) ⓒ Steven Pisano
MGDC2023 'Get Up, My Daughter'(Annie Rigney) ⓒ Steven Pisano

반면 애니 리그니(Annie Rigney)의 초연작 <Get Up, My Daughter>는 인간 마사 그레이엄, 과거를 살아낸 한 여성 예술가의 내면으로 잠입, 슬픔과 분노를 공유함으로써 통시적 연대를 이룩해낸다. 장음계와 단음계가 병존(竝存)하며 토속성과 아방가르드적 감성을 동시에 아우르는 생경하고도 충혈적인 불가리아 여성 합창곡이 시종(始終)을 이끌며 춤의 서사에 합세하지만 여느 작품들의 경우처럼 음악의 단순한 번안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은 오하드 나하린(Ohad Naharin)의 메소드인 가가(Gaga)를 전수한 리그니의 강렬한 춤 어휘 때문이다. 중력을 거스르려는 탈존적 욕망의 춤들을 인간적이고 심리적인 반경으로 불러들인 그레이엄으로부터 나아와 리그니는 그레이엄의 핵심 주제어였던 시대여성의 삶, 그러나 여전히 분절적 이미지의 배치와 구성이었던 그레이엄의 모더니즘 춤을 연속하고 강화된 물리적 특질로서의 춤사위로 전환함으로써 고스란히 생()의 단면을 전사(轉寫)하는 컨템퍼러리댄스의 층위로 끌어올렸다. 이 작품에는 마사 그레이엄 혹은 리그니 혹은 우리의 그녀들이 이라 호명하는 여성 주체가 등장하는데 그 역할을 우리나라의 무용수 안소영이 맡아 실존을 함축한 열연을 펼쳐 보였다. 그녀와의 인터뷰를 첨부함으로써 마사 그레이엄의 2023년 시즌 소개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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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진 2023-05-08 12:09:06
좋은 평론 감사드립니다. 한국에서 볼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김현정 2023-05-08 11:41:39
한국에서도 볼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