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순수한 상상으로 끌어올린 상생의 바다 - 신은주무용단 '작은 물고기 소녀 까무'
[공연리뷰] 순수한 상상으로 끌어올린 상생의 바다 - 신은주무용단 '작은 물고기 소녀 까무'
  • 노영재 무용평론가
  • 승인 2023.05.26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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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프리뷰=부산] 노영재 무용평론가 = 다채로운 가족행사로 가득한 5월을 맞아 신은주무용단이 <작은 물고기 소녀 까무>라는 어린이 청소년 무용극을 부산 금정문화회관 금빛누리홀(3일)과 국립해양박물관 대강당(5일)에서 선보였다.

40분 분량의 신작으로, 우선 이 작품의 탄생 배경이 흥미롭다. <작은 물고기 소녀 까무>의 모태는 다름아닌 신은주무용단이 2019년부터 3년에 걸쳐 작업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중장기 프로젝트 <내안의 물고기>이다. 고생물학자 닐 슈빈의 진화론적 시각을 담은 저서 <내안의 물고기>를 춤의 언어로 재현한 전작은 부산지역의 역사를 간직한 공간에서 자연과 인간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던져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 <내안의 물고기>는 하나의 결과물로 끝나지 않고 공연을 관람했던 관객들의 요청을 받아 축약된 버전으로 학교 순회공연을 이어가며 중장기 프로젝트의 다양한 경험들을 지역사회와 공유하는 데 힘을 쏟았다.

신은주 무용단 (사진-이호형)
신은주무용단 '작은 물고기 소녀 까무' (사진=이호형)

이번 <작은 물고기 소녀 까무>는 앞서 찾아가는 학교 무용의 축약 버전을 올해 5월을 맞아 일종의 스핀오프 작품으로 제작된 성과물이라 할 수 있다. 원작 <내안의 물고기>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해 내면을 성찰하는 자연의 여정을 탐구하였다면 이 작품은 진화론적 가설은 유지하되 작가 하영식의 글을 바탕으로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다가가기 쉬운 무용극으로 새롭게 창작되었다.

신은주 무용단 (사진-이호형)
신은주무용단 '작은 물고기 소녀 까무' (사진=이호형)

물고기와 소통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까무라는 소녀와 돌고래 밍키를 통해 환경 파괴의 심각성을 알리고 자연과의 화해를 도모한다는 작품의 기획 의도는 간단하지만 명료하다. 무용극이라는 형식에 충실하여 극의 구성은 총 3막으로 구성되었으며, 육지의 까무가 바닷속 밍키를 만나 오염된 바다의 실태를 목격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공연답게 낯설거나 복잡한 내용은 아니지만 ‘어린이 무용극’이라는 관점에서 좀 더 들여다보면 많은 부분에서 예술적 섬세함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신은주 무용단 (사진-이호형)
신은주무용단 '작은 물고기 소녀 까무' (사진=이호형)

먼저 작품 서두의 주 공간인 바닷속 세상을 애니메이션과 영상으로 처리하는 데 있어 무대뿐만 아니라 객석의 일부까지 연장한 부분이 눈길을 끌었다. 흔히 볼 수 있는 뒷배경막 위주의 액자형 설정에 그치지 않고 양쪽 윙과 객석 벽면까지 색감이 뛰어난 영상이 둘러싸면서 시작부터 호기심과 환상을 자극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영상 속 어떤 생명체가 있는지 확인하고픈 아이들의 무한한 호기심은 객석의 즉각적인 질문과 대화로 확인되었고 그러한 아이들의 자유로운 웅성거림이 미소짓게 하였다.

신은주 무용단 (사진-이호형)
신은주무용단 '작은 물고기 소녀 까무' (사진=이호형)
신은주 무용단 (사진-이호형)
신은주무용단 '작은 물고기 소녀 까무' (사진=이호형)

작품 전개는 춤과 연극적 요소가 적절히 분배되어 환경에 관한 메시지를 정확히 전달하였고, 그 과정에서 까무와 밍키의 또렷하면서도 리듬감 있는 대화는 객석의 집중력을 높여주었다. 해양 생명체를 의인화한 움직임은 특히 어린이 관객을 염두에 둘 때 자칫 안이하거나 진부한 움직임으로 흘러갈 수도 있는데 이 공연에서 춤은 극과 동등하게 예술로서 제 몫을 충분히 해내고 있었다. 무용수들은 단순한 모방에서 벗어나 해양 생물들이 지닌 움직임의 특성을 디테일하게 담아내었고 솔로와 군무의 형식을 적절히 분배하여 다양한 리듬과 동선을 보여줌으로써 바닷속의 역동성을 효과적으로 그려내는 데 중점을 두는 듯했다. 공연 중 객석의 어린이를 무대 위에 올려 함께 바다를 정화하는 극적인 참여, 객석에서 움직이는 해양 생물체의 몸짓은 전통적인 극장 공간에서 시각적인 체험 그 이상의 효과와 상상력을 전하고자 한 의도가 분명해 보였다. 다만 어린이 관객의 폭발적 호응에 비해 체험 참여 인원이 너무 적었던 점은 아쉬운 부분이나, 극장 환경에서 예측할 수 없는 변수와 안전을 염두에 두어야 하기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것으로 이해되었다.

 

신은주 무용단 (사진-이호형)
신은주무용단 '작은 물고기 소녀 까무' (사진=이호형)

서두의 영상만큼이나 작품 전체에서 눈에 띄는 것은 부드러우면서도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 파스텔 색감의 조명과 의상의 조화였다. 수영모와 흡사한 모자에 반짝이는 비늘 느낌의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은 한편으론 인어공주를 연상시켰고, 몸의 곡선이 은은히 드러나는 이 군무 의상은 확장된 움직임과 유연한 흐름을 시각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의상 디자인과 제작을 맡은 수미 아츠코는 전체적으로 파스텔 색상의 톤과 문양을 다채롭게 이용함으로써 심연 속 무궁무진한 생명체에 대한 상상력을 불어넣은 것 같았다. 작품 후반부엔 정화된 바다를 의미하며 흰 천을 무대 천장에서 길게 늘어뜨리는데, 훌륭한 질감의 천 그 자체가 그려내는 동선 또한 흥미로웠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연출의 중요성을 실감케 하였다.

신은주 무용단 (사진-이호형)
신은주무용단 '작은 물고기 소녀 까무' (사진=이호형)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환경보호는 오늘날 가장 중요한 화두이자 미래세대를 위한 필수적 실천으로 떠올랐다. 특히 바다 오염의 문제는 해양도시 부산에선 더욱 민감하고 절실하게 다가온다. <작은 물고기 소녀 까무>는 놓칠 수 없는 이 시급한 현안을 명확한 눈높이 메시지로 무리 없이 전달하였다. 어린이 무용극은 기존의 동화나 발레를 기반으로 하여 호응을 얻은 작품도 많지만, 이 공연은 지역적 특성과 시사 현안을 주제로 잡고 내실 있게 구성한 연출이 돋보인 작품이었다. 이러한 바탕에는 전작 <내안의 물고기>가 이룬 지역과의 교감과 해양에 대한 광범위한 현장 리서치가 탄탄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렇게 하나의 길고 긴 작업은 공유와 확장을 통해 새로운 작업을 만들고 또 지속가능한 예술로 거듭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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