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찬란한 음향, 아름다운 프로그램, 압도적 명연
[공연리뷰] 찬란한 음향, 아름다운 프로그램, 압도적 명연
  • 김준형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3.06.01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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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천아트센터 개관 페스티벌 - 필리프 헤레베허 & 샹젤리제 오케스트라
필리프 헤레베허 & 샹젤리제 오케스트라 공연 (사진제공=부천아트센터)

[더프리뷰=서울] 김준형 음악칼럼니스트 = 2023년 5월 20일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 대한민국 클래식 콘서트홀 가운데 음향적으로 가장 진보했다는 부천아트센터의 개관 기념 연주로 혁신의 상징과도 같은 베토벤 <교향곡 제3번 ‘영웅’>과 모차르트 교향곡의 정점에 있다는 <제41번 ‘주피터’>는 안성맞춤이었다. 6년만의 샹젤리제 오케스트라 내한 연주회를 준비하면서 "모차르트와 베토벤을 대표하는 최고의 작품으로 긍정과 희망의 정서를 담아, 인간 승리라는 용기를 안겨준다"라며 헤레베허가 선정한 작품이다.

정신과 전문의 출신의 헤레베허가 1991년 창단, 지금까지 이끌고 있는 시대악기 연주 단체인 샹젤리제 오케스트라는 당대의 악기를 고스란히 재현한 악기로 연주한다. 현악기에는 양과 염소의 거트로 만든 현을 사용하고, 금속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나무로 만들어 옻칠을 한 목관 악기를 불고, 밸브가 없어 조작하기 어려운 금관 악기를 사용한다. 소박하면서도 청아한, 그리고 스며드는 듯한 음색이 매력이다. “작곡가 당대의 악기와 활로 만드는 소리는 가볍고 투명하다. 문법이 다른 음악 언어다.”라고 헤레베허는 차이점을 짚어준다.

고전적 형식미와 천재적인 선율미의 조화가 정점에 이른 <주피터>로 연주회를 시작했다. 헤레베허는 인터뷰를 통해 “오페라를 작곡하며 발전시킨 극에 대한 재능과 대위법에 대한 재능이 결합해 탄생했다. 마지막 악장의 대위법과 푸가를 들어보면 그 천재성을 알 수 있다”라며 깊은 애정을 표한 바 있다. 고전적 형식의 완성을 꾀하면서 동시에 그 형식의 창조적 파괴를 이뤄 나가는 모차르트의 독창성이 드러난 제1악장에서 헤레베허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유유히 흘러가는 악상에서 밀고 당기면서 잔재미를 주었다. 시대악기의 질박한 음색을 통해 이런 떨림이 객석으로 효과적으로 전달되었고, 연주회의 시작부터 음향적 쾌감을 느낀 대목이었다. 부천아트센터의 탁월한 음향적 효과로 연주의 우수함이 배가되었다. 우아한 제2악장을 템포의 전환과 신선한 악센트로 급진적인 면을 부각시켜 나간 점이 흥미로웠다. 목관앙상블의 아름다움에 취한 제3악장을 지나 마치 정교한 톱니바퀴가 돌아가듯 고전적 형식미의 엄격함이 두드러진 마지막 악장에서 시대악기 음색의 미감으로 신선함을 더한 더할 나위 없는 해석이었다.

필리프 헤레베허 & 샹젤리제 오케스트라 공연 장면 (사진제공=부천아트센터)

후반부는 <영웅>이었다. 맹렬한 기세로 서두부터 전단원의 몰입과 집중을 통해 강력한 연주를 예고한 헤레베허의 리드는 발전부의 복잡한 대위법적 전개를 선명하고 명쾌하게 제시하며 탄력과 박진감으로 전개했다. 거트현의 찰지고 유연한 음색이 흐르는 듯한 유장한 기운을 더 했다. 재현부와 종결부를 향해 달려가면서 리듬과 악센트 그리고 음색의 미묘한 변화를 조절하며 하늘을 찌를 듯한 클라이맥스로 쾌속질주를 했다. 비탄을 승화시킨 용틀임과도 같은 제2악장은 피날레의 환희에 찬 장엄한 사운드의 스펙트럼이 장관을 이뤘다. 활기로 가득한 스케르초 악장은 내추럴 호른의 활약이 훌륭했으나, 목관 앙상블의 기민한 호흡이 놀라웠다. 다루기 쉽지 않은 시대악기로 이렇게 아름다운 연주를 들을 줄이야. 마지막 악장은 파괴력 넘치는 총주로 시작하여 이내 느슨하면서 유연하게 유지되는 긴장감 속에서 현과 관의 어울림이 조화로웠다. 발전부의 열정적인 행진에서 플룻을 필두로 피어오르듯 솟아나는 목관 악기의 연주가 다시금 경탄스러웠고, 힘찬 마무리가 장쾌했다. 여유롭게 그리고 무심한 듯 끌고나간 헤레베허의 손끝에서 이렇게 조화로우면서 장대한 <에로이카>가 탄생할 줄 몰랐다.

필리프 헤레베러 & 샹젤리제 오케스트라 공연 장면 (사진제공=부천아트센터)

이런 세계적인 찬란한 음향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부천아트센터가 1995년 처음 기본 계획을 마련한 이래 28년간 노력의 산물이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끈질긴 애정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콘서트홀의 음향은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와 영국을 대표하는 바비컨 센터, 퐁피두 센터를 설계한 세계적인 영국 애럽사의 작품이다.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나카지마 타테오가 진두지휘했다. 빈야드와 슈박스의 장점을 고루 채용하였고, 게다가 음향적 특성을 조절할 수 있는 6개의 대형 음향반사판이 구비되었다. 찬란한 음향을 자랑하는 데이비스 홀(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홈그라운드)에서 듣고 감탄했었는데 이제 국내에서도 접할 수 있다. 연주장 내의 벽을 덮을 수 있는 전동 음향 커튼과 배너 시스템도 갖췄다. 만반의 준비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4,576개의 파이프와 63개의 스톱, 4단 건반, 2대의 콘솔로 이루어진 캐나다 카사방 프레르 제작 파이프오르간의 위용이 대단하다. 이런 완벽한 하드웨어가 치밀한 기획과 맞물려 대한민국 클래식 음악의 중심으로 아름답게 꽃피길 기원한다.

필리프 헤레베허 & 샹젤리제 오케스트라 포스터 (사진제공=부천아트센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비평활성화 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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