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논객의 춤시선-18] ‘단오지향’, 지역 관광브랜드 제작공연의 성공사례
[낭만논객의 춤시선-18] ‘단오지향’, 지역 관광브랜드 제작공연의 성공사례
  • 장승헌 공연기획자
  • 승인 2023.07.06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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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이야기 속 인물들의 개성 넘치는 연기, 풍성한 볼거리와 미장센

[더프리뷰=강릉] 장승헌 공연기획자 = 지난 6월 2일과 4일 강릉아트센터 대극장 무대에서 초연된 <단오지향>은 이미 기획 단계에서부터 문화예술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필자 역시 호기심과 함께 지역 브랜드 공연의 제작 시스템 구축에 대한 일말의 불안함을 가지고 있기도 했지만 신작 초연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감으로 강릉행 기차에 올랐다. 평창 동계올림픽에 즈음해 건립된 강릉아트센터는 개관 시즌부터 다양한 공연장르를 소개하고 행사들을 진행해 오면서 영동지역의 대표 문화예술기관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이를 상징하듯 공연장 입구에 들어서니 ‘강릉은 극장이다’라는 상징구호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강릉지역은 경포대와 바다, 안목 해변, 오죽헌과 함께 커피 마니아들이 성지로 여기는 전망 좋은 카페, 그리고 강릉순두부와 옥수수, 감자 등 먹거리가 풍부한 관광지로 꼽힌다. 때문에 오히려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변방으로 인식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근래 강릉아트센터를 중심으로 문화예술이 대중 속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6월 1일 강원특별자치도 승격과 함께 세계합창대회(7월 3-13일) 개최 등으로 ‘문화도시’로 탈바꿈하고 있으며 여기에 2024년 청소년 동계올림픽 준비까지 하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관광거점도시 육성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5월 25일부터 6월 14일까지 3주간에 걸쳐 ‘2023 강릉관광브랜드 공연-프레페스티벌’ 공모 선정작 5편이 실내외 공간을 통해 차례로 선보였다. 이 기획사업은 지난해부터 시작되었지만, 얼마전 발생한 대형 산불사고로 위축된 지역경제의 부흥과 상처받은 강릉 이재민들, 일반 시민들에게 위로와 배려의 마음을 전하는 대형 프로젝트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 사업의 취지는 강릉지역의 스토리(서사)와 공간, 그리고 인문학적 자원 등 강릉을 중심으로 강원도 고유의 전통적 문화자원을 근간으로 한 융복합적 문화관광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이다. <월하가요> <신(新) 신사임당-사임당을 그리다> <목소리의 주인> <마당컬-옹칼의 비밀>과 함께 무대에 올려진 <단오지향>은 마침 강릉단오제를 앞두고 사전 분위기를 조성하는 역할을 충실하게 했다.

'2023 강릉관광브랜드 공연-프레페스티벌' 공모선정작 중 '단오지향' 공연 장면 (사진제공=)
'2023 강릉관광브랜드 공연-프레페스티벌' 공모 선정작 중 '단오지향' (사진제공=강릉아트센터)

이른바 '미디어 융합 댄스 퍼포먼스'라는 정체성을 내세운 <단오지향>은 지역 공연장 제작시스템의 모범적 사례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해 진행된 공모지원사업에서 선정된 다섯 작픔 중 필자는 단언컨대 <단오지향>을 가장 완성도 높고 한국적 정서와 작품 주제를 제대로 실천한 종합예술(융합 이미지 댄스) 결과물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간단한 홍보전단 크기의 3단 접지 앞뒤 총 6쪽에 담긴 내용에 조금은 의아했다. ‘강릉관광브랜드공연’-프레페스티벌‘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내건 행사의 프로그램치고는 너무도 소박한 정보와 출연 캐릭터 그림, 직접 제작된 창작 탈의 모습과 그리 길지 않은 시놉시스, 그리고 소소한 ‘신주맛집’ 술 이야기 속 갈등과 ‘권선징악’ 주제를 알리는 내용이 전부였다. 하지만 맨 뒷장에 등장하는 제작 스태프진과 출연진의 이름을 보니 역대급 수준이었다. 실로 내로라하는 공연 현장의 장인들 이름이 줄을 지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공연은 그 이름값을 제대로 했다. 무릇 공연예술계 미션의 하나, 예술가들이 항상 꿈꾸는 예술성과 대중성, 그 두 마리 토끼를 제대로 잡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른바 ‘가무악 일체형’ 공연 결과물 작업에 기꺼이 참여한 출연진과 스태프진의 노고와 열정에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미디어 융합 댄스 퍼포먼스를 표방한 '단오지향' 공연 장면 (사진제공=)
미디어 융합 댄스 퍼포먼스를 표방한 '단오지향' (사진제공=강릉아트센터)
'2023 강릉관광브랜드 공연-프레 페스티벌' 공모선정작 중 '단오지향' 공연장면 (사진제공=)
'2023 강릉관광브랜드 공연-프레 페스티벌' 공모선정작 중 '단오지향' 공연 (사진제공=강릉아트센터)

출연진의 케미와 앙상블을 거론해 보고 싶다. 우선 주인공 소매각시 역을 맡은 박인선(강령탈춤 이수자)은 천하제일탈공작소의 일원으로 최근 탈춤판 뿐 아니라 현대무용, 그리고 융복합 형식의 공연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전통예술판의 차세대 선두주자이다. 아울러 부산 출신으로 트러스트현대무용단을 거쳐 ’29동‘이라는 다소 이색적 이름을 가진 단체의 예술감독 겸 안무가인 김영찬은 다양한 안무가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는 반전의 인물이다. 평소 말이 없고 조용하며 신중한 분위기를 유지하다가 무대에서는 능청스러움과 진지함, 그리고 페이소스를 남기는 팔색조 마력을 가진 인물이다. 이번 무대에서는 코발트색 두루마기와 검정 두건이 너무도 품격있는(?) 양반 역할을 찰떡같이 소화하며 시선을 사로잡았다. 조왕신 역의 김성의(창무회 단원)는 창작 탈에서도 슬쩍 엿보이는 해학을 통해 고향집 이웃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이 작품 속 빌런에 해당하는 역신 역을 맡은 송재윤 또한 특유의 재기발랄한 연기로 결코 밉지않은 악역을 잘 소화해 극적 긴장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2023 강릉관광브랜드 공연-프레페스티벌' 공모선정작 중 '단오지향' 공연 장면 (사진제공=)
'단오지향' 공연 장면 (사진제공=강릉아트센터)
'2023
 '단오지향' 공연장면 (사진제공=강릉아트센터)

이 작품에서 안무를 맡은 최지연은 후배이자 제자인 김성의(조안무)를 투입해 분위기를 일신시켰으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현역 원로 무용가 김매자 선생을 깜짝 등장시켜 무대 장악력을 보여주었다. 김매자 선생은 조왕신 역으로 특별 출연하여 작품의 무게감과 인과응보라는 소소한 주제의식을 선연하게 그려냈다. 등을 돌린 채 양팔을 서서히 올리며 손목사위만으로도 그 존재감을 과시했다. 특히 민천홍 디자이너의 춤 의상은 원로 무용가의 춤태와 내공을 과감없이 펼치는 데 크나큰 일조를 한 것으로 느껴진다. 그리 길지 않은 출연 분량임에도 범접하기 힘든 ’춤꾼 아우라‘를 뽐냈다. 객석에서는 "역시-"라는 마음의 소리가 절로 나올 수밖에 없도록 당당하고 비현실적인 인물상을 묵직한 무게를 담은 춤사위로 보여주었다. 함께 무대에 선 코러스(군무)와의 앙상블과 조화로움까지 세대를 넘어 함께 어울리는 춤 풍경을 연출해 냈다. 강원도 고성 출신인 김매자 선생은 지난 4월 26일 강원도립무용단(예술감독 윤혜정) 특별 기획공연 <불휘>(춘천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서도 마지막 출연자로 무대에 등장했었다. 자신의 안무작 산조춤 <숨>으로 다채로운 한국춤의 현대적 감성과 춤 결을 흠씬 쏟아내며 현재진행형 원로 무용가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실감시킨 바 있다.

'2023 강릉관광브랜드 공연-프레 페스티벌' 공모선정작 중 '단오지향' 공연 중 깜짝 등장한 원로무용가 김매자. (사진제공=)
'단오지향' 공연 중 깜짝 등장한 원로무용가 김매자. (사진제공=강릉아트센터)

주최측은 공연 시작부터 관객들에게 ‘소원지’ 작성을 유도해 저마다의 내용이 담긴 종이쪽지를 술 항아리에 넣으며 자신만의 기원의 모습을 시도했다. 관객참여형 기획력이 돋보인 장면이다. 이는 공연을 마치고 무대를 내려온 사물놀이 연주단이 객석의 소통을 이끌며 로비와 공연장 야외무대로까지 정해진 통로를 유도하며 관객들에게 포토라인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해주는 데까지 연장된다.

‘2023 강릉관광브랜드 공연-프레 페스티벌’ 공모선정작 중 '단오지향' 공연 을 보러 온 관람객들에게 단오신주에 소원지를 넣도록 했다. (사진제공=)
'단오지향' 공연 을 보러 온 관객들에게 단오신주에 소원지를 넣도록 했다. (사진제공=강릉아트센터)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칭찬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연예술 전문 분야 스태프들의 헌신적 열정과 노고, 그리고 서로의 장점을 최대치의 초능력적 기운으로 발휘해 범접하기 힘든 결과물을 도출했다는 점이다. 넉넉한 공연제작 예산이 엉뚱한 쪽으로 기울지 않았음을 공연장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동화 혹은 신화적 풍경의 무대 미장센 제작과 연출(오경택), 한국 창작품의 품격을 더해주는 의상 디자이너(민천홍)의 세심하고 풍부한 상상력이 빚은, 결이 다른 의상의 질감과 색상의 조화는 초여름 강릉의 자연과도 너무도 잘 맞았고 아름다운 우리 한복의 미감을 발산했다. 아울러 재미있는 창작 탈 제작과 소품까지 장인의 손길이 공연 전반을 관통하며 내는 신비한 기운, 80분 공연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끌고 가며 저력을 발휘한 뒷광대들의 조력도 무시할 수 없다. ‘단오신주’를 통한 서사를 처음부터 이끌고간 두 소리꾼(장자/이상화, 마리/이재현)의 연기와 노래는 ‘술’ 문화를 소재로 한 강릉지역의 이야기 보따리를 밝고 명랑한 분위기로 풀어 주었다.

‘2023 강릉관광브랜드 공연-프레 페스티벌’ 공모선정작 중 '단오지향' 공연 장면 (사진제공=)
'단오지향' 공연 장면 (사진제공=강릉아트센터)

아울러 현장 연주자(화랭이)들과의  소통 채널은 이번 무대에 마지막 방점을 찍었다. 마치 귀한 보석 같은 내공을 소유한 전통예술 분야의 선두주자들, 젊은 예술가들이다. 안무 최지연, 작사 그리고 소매각시 역의 박인선, 작곡과 음악감독을 맡은 신창렬, 무대 디자인 남경식, 조명 디자인 신호, 영상 디자인 김일현, 가면  디자인 류지언, 분장 디자인 백지영, 조연출 조안무 및 총괄 PD 손성원, 제작 PD 김서령·김진이 등 스태프들의 사력을 다한 애정과 열정, 그리고 전체 진행 조율에 애써 준 무대 안팎 크루들의 땀과 열정이 빚어낸 무대는 나무랄 데 없었다. 동해바다가 품어준 넉넉한 대자연 속의 문화관광 도시로 거듭나고 있는 강릉, 그 선두에 서 있는 강릉아트센터 관계자들께도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수억 원의 제작 예산이 투입된 이 작품이 단발성 행사로 그쳐선 안된다는 점이다. 앞으로 레퍼토리 공연으로 정착되어 매년 단오절 즈음 강원도 지역 순회는 물론 서울 무대를 포함해 전국 공연장 순회를 추진하길 바란다. 이를 통해 강원 지역 동시대 공연예술의 수준을 알림은 물론 일반인들의 관심에서 다소 멀어진 강릉단오제의 부활을 이끄는 융복합 공연물로 자리매김했으면 싶다. 그렇게 해서 강원도 강릉시 문화관광브랜드 공연을 대표하는 K-콘텐츠로 인정받기를 희망해 본다.

'단오지향' 공연 장면 (사진제공=강릉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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