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안야 빌마이어와 다니엘 로자코비치 - 서울시향
[공연리뷰] 안야 빌마이어와 다니엘 로자코비치 - 서울시향
  • 김광훈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3.06.27 1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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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9일 롯데콘서트홀
빌마이어 포스터 (사진제공=)
서울시향 연주회 포스터 (사진제공=서울시향)

[더프리뷰=서울] 김광훈 바이올리니스트/음악칼럼니스트 = 유럽의 떠오르는 신성(新星),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로자코비치(Daniel Lozakovich, 2001-)의 첫 내한 공연(리사이틀)에 이은 두 번째 무대(협연). 롯데콘서트홀은 설계 의도와 달리 좌석의 위치에 따라 소리가 꽤 다르게 들리는 편인데, 특히 지난 오귀스탱 뒤메이의 리사이틀을 반추해 봤을 때 바이올린 독주 무대로는 다소 불편한 공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날 연주된 생상스 <바이올린 협주곡 3번>의 첫 일성(一聲)에서 필자의 걱정은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로자코비치는 팬데믹 기간에 이 곡을 처음으로 배웠다고 했는데, 그의 연주는 마치 십수 년은 연주한 듯 노련한 동시에 세련된 느낌이었다. 지난 독주회에서도 깊이 공감한 바이지만 로자코비치의 가장 큰 강점은 탁월한 음악성에 더하여 평범한 패시지를 연주하더라도 특별하게 전달할 줄 아는 호소력에 있다. 이 곡은 사실 자주 연주되는 편이 아니며 전공자에게는 초중고 시절의 실기 레퍼토리로 친숙한 편이다. 하지만 곡은 요소요소(1악장의 빠른 스케일들, 2악장의 프랑스적 감수성의 구현, 그리고 3악장의 기민한 장면 전환 등)에 상당한 장애물들이 숨겨져 있어 오케스트라를 뚫고 이를 적확(的確)하게 드러내기란 쉽지 않다. 로자코비치의 연주는 마치 악기에 따로 엑스트라 앰프를 장착한 듯 홀의 구석구석까지 그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냈다. 사용하는 악기는 이브리 기틀리스(Ivry Gitlis, 1922-2020)가 평생을 함께한 스트라디바리우스, 상시(Sancy) 1713년 작으로, 기틀리스의 개성 넘치는 음색과는 확연히 다른 색깔로 청중의 귀를 매혹시켰다(역시 악기는 사용하는 연주자에 따라 전혀 다른 음색을 낸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서울시향 정기공연 모습 (사진제공=)
서울시향 정기공연 (사진제공=서울시향)

이날 지휘를 맡은 안야 빌마이어(Anja Bihlmaier)는 1, 3악장의 빠른 부분에서 간혹 솔리스트를 순발력 있게 따라가지 못하는 장면도 있었지만, 서울시향은 대체로 안정적인 연주를 들려주었다. 협연의 백미(白眉)는 2악장이었는데 생상스의 천재적인 멜로디 작곡 능력과 로자코비치의 천부적인 노래 솜씨(동시에 욕심내지 않는)를 동시에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목관 악기와 로자코비치의 투명한 하모닉스(harmonics) 연주가 빚어내는 절정의 앙상블은 섬세한 동시에 아스라이 빛나는 찬란한 순간을 만들어냈다. 열광하는 청중에게 로자코비치는 두 곡의 앙코르, 이자이(Ysaÿe) <무반주 소나타 3번 ‘발라드(Ballade)’>와 차이콥스키의 <감상적인 왈츠(Valse Sentimental)>를 연주했다. 팔색조의 매력을 뽐내는 이자이의 완전무결함도 말할 것 없지만, 오케스트라 반주 없이 연주된 무반주의 차이콥스키 연주에서 로자코비치는 자신이 어떤 음악가인가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서울시향 정기공연 모습 (사진제공=)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로자코비치 (사진제공=서울시향)

후반부에는 말러의 <교향곡 5번>이 연주됐다. 말러 교향곡에 관한 개인적 기호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5번>은 대중적 인기와 음악적 깊이를 동시에 담고 있는 작품이다. 빌마이어의 지휘는 동작이 큰 동시에 적절한 지시를 잊지 않고 내리는, 단원 밀착형의 친절한 리더십을 표방하고 있었다. 곡이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지를 잘 이해하고 있는 지휘를 펼쳤고 서울시향도 이에 적극적으로 호응해 주었지만, 작품 너머의 아우라를 드러내기에는 다소간의 아쉬움이 있었다. 탁월한 관악 주자들이 무대 위에 포진해 있었음에도 음들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이유는 연주 탓이라기보다 앞서 언급했던 홀의 특수성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게 느껴졌다.

서울 시향은 많은 영화에서 잊을 만하면 인용되는 이 곡의 4악장 아다지에토에서도 군더더기 없는 연주를 펼쳤지만, 곡의 핵심이라 할만한 3악장 스케르초에서 특히 발군의 연주력을 들려주었다.

‘Kräftig, nicht zu schnell(힘차게, 너무 빠르지 않게)’를 지시하고 있는 3악장 특유의 기괴한 분위기와 춤곡 본연의 흥겨움은 서울시향의 집중력 있는 연주와 수석 호른의 멋들어진 솔로에 힘입어 더욱 입체적으로 구현되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비평활성화 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김광훈 음악칼럼니스트
김광훈 음악칼럼니스트
38kdd@hanmail.net
바이올리니스트. 코리안 챔버 오케스트라(KCO) 단원이자 한양대 겸임교수. 월간 <스트라드>에 음악 칼럼니스트로 20년 이상 기고하고 있다.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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